공화국과 시민 창해ABC북 1
마리 클로드 쇼도느레 / 창해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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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프랑스의 문화 정책에 대해 엄청난 헛소리를 당당하게 하는 책을 읽고 깜짝 놀랐다. 프랑스 통사 한 권만 제대로 맥을 잡아 읽어도, 프랑스 문화 정책의 기틀은 '공화국의 가치' 수호며 그 '공화국의 가치'란 프랑스 혁명으로 시작되어 제 3공화국 때 거의 완성되었다는 것을 알텐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싶었다. 그래서 혹시 내 기억이 틀렸나 싶어 이 책을 다시 펼쳐 들어 읽었다.

 

 

이 책은 프랑스 근현대사를 담고 있다. 그러나 통사식 구성은 아니다. 이 시기 프랑스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키워드를 설정해서 그 위주로 관련 역사 설명을 하는 방식이다. 그러니까 각 조각 조각 퍼즐이 모여 전체 프랑스 공화국과 시민의 모습이 완성되는 형식이다. 얇은 책이지만 기본 배경 지식이 없는 사람에게는 엄청 두꺼운 책 못지않게 독파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다. 프랑스란 나라가 어떻게 지금의 공화국 형태가 되었는가,를 보여준다는 확실한 목적으로 집필된 책이기에 프랑스 근현대사 기본 지식 갖추고 있는 독자분이 다른 책 읽다가 의아한 항목만 빨리 찾아 보기에는 매우 유용하다. 전체적으로 프랑스 혁명기와 3공화국 시기에 중점을 둬서 서술한다. 깨알같은 글씨에 많은 내용을 집어 넣었다. 도판도 작게 많이 들어가 있다.

 

원제는 <l'ABC daire République et du Citoyen>이다. 아베쎄 순서로 편집된 책을 번역본으로 국내에서 내면서 가나다 순으로 재배열했다. 그래서 연도 순과 아무 상관없이 내용이 등장한다. 앞에서부터 읽으면, 제4공화국 - 제3공화국 - 제5공화국 - 제2공화국 - 제1공화국 순으로 공화국 역사를 읽어야 한다는 말. 뭐 이 정도가 단점이라면 단점이지만 장점이 훨씬 많은 책이다. 예를 들자면,

 

오늘날 마리안은 프랑스에서 매우 인기가 있다. 그러나 거기에 브리지드 바르도에서 카트린 드뇌브에 이르기까지 여자 스타들의 얼굴을 덧붙임으로써 공화국의 상징은 변질되었고, 나아가 그 의의를 상실했다. MCC

- 62쪽에서 인용

 

남성을 대상으로 하는 선거에서는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보다 앞서 나갔던 프랑스는 여성에게 선거권을 확대하는 일에는 뒤떨어졌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이민자들에게 선거권을 확대하는 일에 뒤떨어져 있다. JYM

- 66쪽에서 인용

 

인용문 마지막의 MCC는 '마리 클로드 쇼도느레', JYM는 '장 이브 몰리에'라는 필자 이름 약자다. 이 책은 네 명의 필자가 항목을 나누어 집필하고 마지막에 약자로 필자 이름을 밝힌다. 그래서 각 필자 별로 관심 분야와 개성을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있다. 네 명 중 두 명은 여성, 두 명은 남성이다. 전체적으로 여성 참정권 획득 부분이나 알제리 독립 전쟁 등등 눈여겨 볼 항목만 봐도 서술하는 시각이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명쾌하다. (책 많이 읽은 사람들도 잘 모르는 것 같다. 필자에 따라 역사 서술 주의해서 읽어야 한다는 것을. 역사책이라고 다 사실만 써 놓는 게 아닌데.  )

 

현재 절판이지만 이쪽에 관심 많은 분이라면 도서관에서 대출해 한번 읽어 보시길. 중고서점 검색해서 구입해 읽는 것도 추천한다. 책장에 갖추어 놓고 두고두고 찾아 보기 좋은 책이므로. 비록 시라크 대통령 시절에서 서술이 끝나고 사르코지와 올랑드는 없지만, 어차피 5공화국이란 정체가 바뀌지는 않았으니까 큰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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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사회 - 폭력은 인간과 사회를 어떻게 움직이는가?
볼프강 조프스키 지음, 이한우 옮김 / 푸른숲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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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상이 왜 이럴까, 저 새끼들은 도대체 왜 저럴까,,, 이런 생각이 들면 관련 키워드를 검색해서 책을 찾아 읽는다. 이번엔 '폭력'이다. 주욱 살펴보니 이 책이 땡겼다. 읽었다. 아아, 다 읽고 나니 더 무기력해진다. 그래도 리뷰는 남긴다.

 

저자는 독일의 유명한 사회문명비평가라고 한다. 사회학과 교수 출신이라고 하는데, 책 내용을 보면 서양 문명사, 정치사에 역사, 문학이 어우러져 있다. 각 장의 내용은 질서와 폭력, 무기, 폭력과 격정, 폭력 불안 그리고 고통, 고문, 구경꾼, 사형 집행, 전투, 사냥과 도주, 학살, 사물들의 파괴, 문화와 폭력을 다룬다. 기본적으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란 홉스의 견해가 깔려 있고 섣부른 희망이나 인류애, 연대를 말하지도 않는다. 핵전쟁 이후나 좀비 습격, 자연재해 이후 살아남은 인류가 등장하는 영화 속 내래이션이 떠오를 정도다. 인용해보자면, 이런 식.

 

사회는 타인과 어울리고 싶어하는 끊임없는 충동이나 노동의 필요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을 협력하고 단합하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폭력의 경험이다. 사회란 공동체의 구성원들끼리 공동의 보호를 위해 만든 예방 조치이다.

- 13쪽

 

저자는 1장 '질서와 폭력'에서 말한다. 사회를 구성하는 도덕과 근거는 바로 인간이 서로에 대해 느끼는 불안이라고.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는 끊임없는 유혈 사태가 아니라 그런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으로 인한 지속적인 불안감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그리고 2장 '무기'에서는 강자들이, 사회를 지배하는 세력이 사용하는 폭력의 무기는 돌, 쇠, 화약, 총뿐만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능력, 즉 지식이나 계략, 술책까지 포함한다고 통찰한다. 이렇게 폭력과 사회 관련한 내용이 이어지는데 각각의 장은 폭력에 관한 역사적 예나 관련 예술 작품 소개로 시작한다. 질 드 레의 예, 성경의 예, 베이컨의 그림 <십자가형을 위한 세 개의 습작>, 독일 재세례파의 우상 파괴 예, 기요틴 사례 등등,,, 그 부분만 봐도 엄청나다. 저자의 내공이 보통이 아니다.

 

사실, 나는 이 저자분의 주력 분야 쪽 배경 지식이 얊다. 지금 내가 가진 능력과 시야로는 서양 중세사 부분만 평가할 수 있다. 폭력의 맥락에 등장하는 각종 서양 중세 형벌 제도 관련 부분 서술은 정확했다. 고문의 역사는 하층민, 아웃사이더, 부적응자의 사회사와 밀접하게 연결되있다고 고문의 희생자를 역사적으로 고찰해서 결론 내리는 부분은 물론, 사형당한 시체를 매장하지 않고 방치하는 이유를 징벌과 본보기만이 아니라 그가 아직 죽은 자들의 세계에 도착하지 않았기때문이라고 중세인들의 사고방식 속에서 설명하는 부분, 형 집행의 목적이 징벌이 아니라 붕괴된 상태의 복원임을 명시해 주는 부분  등등, 중세사 부분이 전공자 서술만큼 깊이있고 믿음직스러웠다.  이런 역사적 고찰 끝에 저자는 사형이 옛날 인간 희생관행과 맺고 있는 관계를 간과해서는 안된다며 인신공희 제사가 축제였던 시절과 현대 사행 집행을 연결시켜서 인간의 본성을 말한다. 즉, 현대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사형 집행을 일반 사람들이 직접 볼 수 없도록 하는데 그건 문명화된 동시대 사람들이 그 순간을 보지 못하도록 보호 차원에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대중들이 그런 경험을 더 즐기고 싶어 하여 문명의 근간을 흔들어 놓을까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놀라운 견해였다.   

 

하지만, 다른 장은 현재 내 독서이력으로는 내용 평가가 어렵다. 여기는 인상깊은 부분 인용으로 지나가기로 한다.

 

육체는 인간의 한 부분이 아니라 인간을 구성하는 중심이다. 따라서 육체에 가해지는 상해는 곧바로 영혼과 정신, 자아, 그리고 사회적 실존 방식과 관계된다.

- 95쪽

 

폭력은 삶의 연속성을 끊어버린다. 거기서 살아남은 사람은 단순히 전과 다른 사람이 아니라 또 하나의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폭력을 겪기 전과 겪은 후는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세계는 더 이상 친숙한 고향이 아니라 반복되는 위협의 원천으로 바뀐다. 주변의 낯익은 것에 대한 신뢰는 붕괴된다. 주변의 사물은 그가 눈을 뜨는 순간 곧바로 사라질 것처럼 위협한다. 폭력으로부터는 벗어났지만 새로운 세상을 살게 된 귀환자는 모든 정상적인 것으로부터 추방당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도무지 귀 기울이려 하지 않거나 그를 주목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상실의 체험이  결코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 112쪽

 

특히, '학살' 장은 생각해볼 거리가 많았다. 저자는 인간이 잔혹 행위를 하기 위해 먼저 다른 사람들과 그들이 속한 사회에 거리를 두고 평가하거나 비인간하거나 같은 인간 종이 아니라고 간주한다는 통념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살인 사건은 살해자가 희생자를 직접 죽이는 것이고 신체 접촉이 있는 것, 자기 힘을 느끼는 과정을 거쳐 이뤄진다고 말한다. 그러기에,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마치 두 사람 사이의 사적이고 친밀한 행위와 흡사하다.

- 264쪽

 

피에 대한 굶주림과 살인 욕망은 적대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증오나 분노가 대향학살을 위한 필요조건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행위 자체, 자신이 가진 힘에 대한 체험,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경험이다. 자기 한계를 벗어나려는 강렬한 충동이 마구 발산된다. 이런 충동은 더 이상 비밀의 보호막 속에 숨거나 의식의 질서 속에 움츠러들 필요가 없다. 살해자들은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의 삶을 마음껏 즐기고 표출한다.

- 267쪽

 

그것은 다름 아닌 무제한적인 자기 발산에서 오는 야수적인 만족감이다. 그는 스스로 총체적인 세계가 된다. 그의 육체는 폭력과 융합되어 스스로 폭력이 된다.

- 269쪽

 

아마도, 나는 위의 '학살' 부분을 읽음으로써, 이 사회가 왜 이렇게 폭력적이며, 저 새끼들은 어떻게 같은 인간에게 저렇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나, 에 대한 답은 찾은 것 같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가 폭력은 같은 인간에 대한 몰이 사냥이 전쟁터의 전투나 이방인과 이웃 사람들에 대한 일제 검거나 린치 등 국가 제도로 정착된 것이구나, 하고. 위에서 시켜서 마지 못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폭력을 즐겨서 그랬을 수도 있구나, 하고. 즉, 역사적으로 인간 사냥은 보편적 집단 폭력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 맥락이 있는 일이었다고 그게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마지막 장인 '문화와 폭력'에서 저자는 말한다. 폭력은 그 자체가 인간적인 문화의 산물이자 문화 실험의 결과물이며 폭력은 그때그때의 파괴력의 수준에 따라 실현된다고. 그리고 인간들은 기꺼이 폭력에 참여하여 파괴하고 살해하고 있다고. 사회 시스템이나 인간의 문화는 이런 잠재력에 형식과 형태를 부여하면서 돕기까지 한다고. 문제는 폭력과 문화의 협력에서 생겨나며 문화는 결코 평화주의적이지 않다고.  아아, 그렇다면 문화를 바꿔야 하는 건가? 저자는 아무런 대안도 전망 제시도 없이 글을 끝내 버렸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사족 1

 

내용을 떠나, 이 저자의 문체도 관심이 간다.  매우 독특했다. 역사적인 폭력 장면을 서사시처럼 서술한다. 유장한 내래이션이 마치 일리아드를 읽는 느낌이었다. 대구가 들어맞는 문장 구사가 고급스럽다. 대단한 저자다. 이런 느낌이 독자인 내게 그대로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역자분의 능력도 대단하신 것 같다. 이한우 선생님 번역이었다.

 

읽다가, 314쪽에  '7개의 성문을 가진 테벤 성' 이라는 부분이 있어서 의아했다. 분명 <안티고네>의 배경인 '테베'를 말하는 건데 왜 '테벤'이라 하셨을까? 이런 실수를 하실만한 분이 아닌데 싶어 찾아보니 헬라어(고대 그리스어) 표기로는 테벤(Theben)이었다.  실수가 아니라, 너무 꼼꼼한 번역이었던 것이다!

 

*** 사족 2

 

 

지금의 국가 폭력에 분노하여 <폭력 사회>란 책을 읽었다.

만든이들의 이름이 적힌 책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

백남기 선생님, 그리고 모든 국가 폭력에 희생된 사람들을 잊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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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같이 다들 제멋대로 - 본격남자망신에세이
권용득 글.그림 / 동아시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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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출판사 측의 소개글에 의하면 저자의 직업은 프리랜서 예술 노동자(만화가)이다. 아내 송아람씨 역시 같은 직업을 가졌다. 이 책에서 저자는 경기도 양벌리, 서울 휘경동과 논현동 등 자신이 살았던 공간의 기억과 아내, 아이, 부모, 이웃 등과 함께 살았던 시간의 기억을 유머러스하고 따뜻하게 이야기한다.

 

부부는 진정 하고 싶은 대안 만화 그리기보다 삽화 일감을 그려 생활을 해결해야한다. 집에서 작업하다보니 부모/남녀 역할 나눌 것 없이 한 사람이 작업하면 다른 사람은 육아와 가사를 맡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저자는 저자 또래 남성들보다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 동네 아줌마 육아 수다 모임 참가는 물론, 아들 친구들과도 거리낌없는 우정(?)을 나누게 된다. 아들을 키우며 본인의 아버지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하고, 어머니의 삶을 생각하며 아내의 성공을 응원하기도 한다. 소소한 에피소드를 정겹게 묘사하는 저자의 글솜씨 덕분에, 읽다보면 나도 몰래 미소짓게 된다.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소개하자면,

 

<스타워즈>가 한 세대를 거슬러 올라갔다가 또 다음 세대로 이어 나가는 것처럼, 우리 집도 새로운 역사를 쓰는 중이다. 그리고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누가 뭐래도 '엄마의 포스'덕분이었다. (다쓰베이더 같았던 아버지도 한몫하셨다)

- 347

 

위의 대목처럼, 영화, 책, 음악 등 같은 문화적 경험을 통해 같은 추억을 가진 내 또래 글쓴이가 마흔 즈음이 되어 부모를 돌아보는 이야기가 특히 좋았다. (오, 내 아버지도 다쓰베이더 같았다구요!)

 

여덟 살이나 여든에 가까운 일흔이나 거기서 거기였다. 어쩌면 인생은 스케치북에 물감을 잔뜩 풀어놓고 접었다 펼친 데칼코마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241

 

만화가의 에세이라고 유머와 반전으로 일관하지도 않다. 위 인용 부분처럼,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주는 문장이 곳곳에 있다.

 

좋아서 시작한 일을 돈이나 생활 때문에 포기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말하자면 맨땅에 헤딩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헬싱키까지 와서야 새삼 깨닫는다. 맨땅에 헤딩도 '계속하면' 헛되지 않구나.

- 301

 

그리고, 나 역시 몇 년 째 맨땅에 헤딩하는 입장이기에, 위 인용 부분처럼 하고 싶은 일과 생활 사이에서 고민하는 부분이 특히 좋았다. 마흔 언저리의 생활인들, 다른 작업하다가 스스로 회의하면서 심신이 고갈되신 분들께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표지와 책 제목, 약간 아쉽다. 표지를 보면 고무장갑에 앞치마 차림인 남성이 있다. 지쳐서 넋 나가 보이는 표정이다. 그 옆에 '하나같이 다들 제멋대로'라는 제목이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전업주부일을 하는 남성이 가사노동에 지쳐 제멋대로 어지르는 가족들의 만행을 고발하고 자신의 피곤을 하소연하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제목이 등장하는 부분의 내용은 이렇다. 헬싱키 만화 축제에 초대작가로 참가한 저자가 헬싱키 거리 풍경을 관찰하고 이렇게 말한다.

 

질서든 무질서든 '알아서' 지키는 분위기다. 또 하나같이 다들 제멋대로다. 그러면서도 서로 암묵적으로 철통같이 지키는 것이 하나 있었다. '타인의 자유'.

- 280쪽

 

사실은, 이렇게 멋진 내용을 담고 있는 제목이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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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해상자위대, 과거의 영광 재현을 꿈꾸는가 - 키워드로 이해하는 세계 최정상 해군력, 해상자위대의 실체 KODEF 안보총서 85
류재학.배준형 지음 / 플래닛미디어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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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제2위의 해군력을 가진 일본 군사력의 핵심, 해상자위대에 대한 책이다. 2015년 9월, 일본 안보법안이 통과되었다. 패전 후 70년이 흐른 지금까지 일본은 '자위대'라는 이름의 군대도 아니고 경찰도 아닌 조직이 국방을 맡았다. 자위대 임무는 평화헌법 9조에 따라 일본이 공격을 받을 때에만 반격하는 것으로 제한되었다. 오로지 방어만 한다는 전수방위(專守防衛)는 일본 방위정책의 기본원칙이었다. 그러나 이제 자위대는 적의 직접적인 공격을 받지 않지 않더라도 동맹국이 타국으로부터 침략을 받으면 무력으로 개입할 수 있는 국제법적 권리를 갖게 되었다. 즉, 미국과 함께 전쟁에 나설 수 있는 것이다. 중국에 맞서 일본과 협력을 원하는 미국이야 이웃 아시아 국가나 한국의 불안한 입장은 신경쓰지 않는다. 덕분에 아베 정권은 방위비 예산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 4년째 증액되던 일본 방위비 예산은 2016년 사상 최고치이다. 일본의 군사력 순위는 지난해 9위에서 올해 7위로 상승했다. 이런 시점에서, 나는 동북아 국제 정세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이 책을 찾아 읽었다,,,

 

,,,,는 것은 아니고, 메이지 시대 일본의 근대화 서구화 정책과 음식문화 관계를 파다보니, 종착역이 이 책이었다. 육식 해금령과 부국강병 탈아입구 화혼양재(일본 자기네 말로) 따라가다 보니 일본군 급식 관련 역사에 이르고, 커리 라이스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니 일본 해군 급식에 이르게 되었다. 결국 해상자위대의 역사까지 파다 보니 이 책에 이른 것이다. 

 

책은 전체 5 CHAPTER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에서 책은 일본의 해양사상과 전략을 설명한다. 해양 영토까지 포함하면 일본은 세계 6위의 대국이다. 해양교통로인 1,000해리 바닷길을 지키는 것은 일본의 국가 생존을 지키는 것이다. 책은 과거에는 러시아와의, 현재 중국과의 바다 지배를 놓고 일본은 갈등과 긴장 관계에 놓여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2장에서 책은 해상자위대의 전신인 과거 일본 해군의 흥망사를 다룬다. 시바 료타로의 소설 <언덕 위의 구름>이나 전쟁 영화도 같이 인용해서 읽기 지루하지 않다. 메이지 시기부터 태평양전쟁 패전까지 주요 키워드로 일본 근대해군사를 설명한다. 진주만 공습과 미드웨이 해전, 야마토 전함, 가미카제 등등 관련 역사 서술이 이어진다. 망한 제국 해군에서 해상자위대로의 부활의 배경이 된 Y위원회 관련 이야기가 흥미롭다. '해상자위대의 실체'라는 제목을 단 3장에서는 내가 모르는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해상자위대의 조직, 수상함과 잠수함, 항공기, 소해함 등등에 대한 설명이 사진과 도표와 함께 이어진다. 일본 해역 5개 지방대며 해상 보완청, 함정 조직과 편성, 계급장에 관련한 내용도 있다. 이쪽은 내가 워낙 배경 지식이 없어서 뭐라 쓸 말이 없다. 다 읽었지만 그 배가 그 배 같다. 계급장이 별이 아니라 사쿠라란 것만 기억난다.  이어 4장에서는 '해상자위대 문화'를 다룬다. 침략의 상징 욱일기가 자위함기로 쓰이고 있으며 다른 나라와 달리 일본 함정에는 위인 이름을 붙이지 않고 '이즈모함'하는 식으로 지명을 붙인다는 것. 해상자위대의 가장 큰 이벤트인 관함식 소개에 이어, 드디어 내가 이 책을 읽은 목적인 해군 카레의 역사 배경이 나온다. 고기와 야채를 쉽고 빠르고 맛있게 먹일 수 있는 방식은 스튜. 게다가 따뜻한 스튜는 선박 식량인 비스켓 등 딱딱하고 차가운 빵을 찍어 먹기 좋다. 영국 해군은 식민지 인도의 향신료를 넣은 카레 스튜를 보급하고, 메이지 시기 영국을 본따 근대 해군을 만든 일본은 카레 스튜도 들여와서 독특한 해군 카레 라이스를 완성한다. 아래, 그 과정을 인용한다.

 

그러던 중 의외의 일을 계기로 카레라이스가 일본 해군의 메뉴에 오르게 되었다. 1900년대 일본 해군 병사들은 각기병으로 몸살을 앓았다. 당시 일본 군대의 병사 계층의 메뉴는 장교의 메뉴와는 달리 밥, 간장, 단무지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에야 각기병이 비타민 B1의 부족으로 생기는 병이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당시 초보적인 의학 기술로는 그 원인을 알아낼 수 없었다. 이 때 영국에서 유학하여 최초의 일본 해군 군의관이 된  다카키 가네히로는 영국의 식단을 참고하여 각기병을 퇴치하기 위해 다양한 식단을 적용하던 중 영국 해군의 비프스튜에 주목한다. 영국 해군은 비프스튜에 오래된 재료의 냄새를 없애기 위해 카레가루를 넣고 끟이는 것이 유행이었다.

그러나 이를 맛본 일본 해군은 반감이 강했다, 그래서 양식처럼 고기를 일부 섞되 밥을 넣어 먹는 것으로 변화시켰다. 우여곡절 끝에 일본 해군 내에 만연한 각기병 해결책의 일환으로 카레라이스가 탄생하게 되었고, <해군 조리법>이라는 책자까지  발간되어 본격적으로 카레라이스가 일본 해군의 메뉴로 도입되었다. 맛과 건강 면에서 카레라이스는 인기를 끌었고, 이후 각기병 환자까지 현저히 줄어드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심지어 토요일에는 카레를 먹는 풍습까지 생겼다. 이는 장기간 바다에서 항해하는 해군 승조원들이 요일 감각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전해진다. 이외에도 당시 해군은 토요일 점심 후에 외출을 나가는데 조리원들의 식사 준비와 뒤처리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함정의 부함장이 제안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 본문 219 ~ 220쪽에서 인용

 

 

 

 

흠, 외국 일반인인 내가 해군 카레를 맛보려면 사세보 요코즈카 등 해상자위대의 5개 지방대가 있는 항구도시 식당에 가야 하는구나. 마지막 5장에서는 중일 갈등의 현장인 센카쿠 열도와 러일 갈등의 현장인 쿠릴 열도에 대한 서술이 있다.


책을 다 읽은 후, 이런 종류의 책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용이 아니라, 저자 입장에서 어렵다라는 것이다. 즉, 이런 책은 저자가 쓰느라 고생한 만큼 성공을 거두거나 좋은 평가를 받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전문성과 대중성 중 어느 하나에 치중하면 다른 하나를 망치기 때문이다. 중간 정도를 유지해 대중적 개론서로 서술한다고 해도, 각각 독자들의 배경 지식에 따라 혹평받기가 쉽다. 군사 쪽은 모르고 역사 쪽으로는 조금 읽은 역덕인 내 입장에서 말하자면, 일본사에 대한 부분은 너무 상식적 내용만 나와서 시시했다. 반면, 밀덕(밀리터리 덕후)인 독자가 읽는다면 온갖 함정과 잠수함 등등을 소개한 부분이 너무 간략해서 시시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군사 장비 나오는 그 부분이 가장 지루하고 어려웠다.

 

다방면으로 공부하여 이 책을 쓰느라 저자 두 분은 정말 고생했을 것이다. 그런데 책 자체의 수준이 그리 만족스럽지 않다는 말을 리뷰에 남기게 되어 괜히 미안한 마음이다. 저자분들의 잘못은 아니라, 이런 종류의 책들이 갖는 기본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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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의 역사, 상상과 욕망의 시공간 살림지식총서 205
임종엽 지음 / 살림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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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 지식 총서 시리즈라고 다 입문자 용은 아니다. 필자에 따라 편차가 크다. 극장, 정확히 말하면 서구 극장건물의 역사를 간략히 다루는 이 책을 읽으면서 참,,, 만감이 교차했다.

 

건축 전공 교수인 저자는 자신이 아는 바를 최대한 응축해서 90쪽 안에 담았다. 그런데 사실에 기반한 지식 전달보다 자신이 아는 바에 대해 의미 부여하고, 이를 멋진 문장으로 표현하는 데 주력하신 것 같다. 곳곳에 추상적이고 아름답고 긴 문장들이 보이는데, 정작 독자인 내가 극장의 역사에 대해 뭘 읽었는지 생각해보면 너무 내용이 없다. 서구 극장의 역사가 그리스 극장에서 로마, 중세 유럽, 엘리자베스 왕조시대 극장으로 이어진다는 것 정도. 굳이 극장의 역사에 대한 서적을 따로 찾아 읽지 않아도 서양문화사나 셰익스피어 조금 읽어본 독자라면 다 아는 정도의 내용이 있다. 

 

물론, 이 시리즈 성격 상 제한된 분량 안에 극장의 역사를 다 담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예상 독자를 생각하고 책의 목적을 명확히 해야 했다. 지식 위주로 가고 저자의 논평은 자제했어야 했다.  

 

역사는 문명과 전쟁을 동시에 진행시키지만 그 문화의 흐름을 역행시킬 수는 없다. 따라서 극장의 모습이 그리스에서 로마로 전이되면서 인간들은 사회적, 정치적 적응의 과정을 통해 상징과 은유를 읽어내는 즐거움에 그치지 않고 상상과 실험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선험적 자아 대신 절대적인 상상력에 더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원형보다는 본능에 가까운 본질에 더 충실하며, 인식에 의한 상관주관성보다 상상에 의한 통주관성에 더 끌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것은 변환의 과정에서 추출되는 고전에 대한 최초의 좋은 사례가 된다.

- 본문 44쪽에서 인용

 

내가 이상한가, 싶어서 위에 본문을 인용했다. 무슨 내용인지 당신은 의미가 명확히 이해되는가? 내가 바보였던가?

 

국내 저자가 한글로 쓴 책인데, 이상하게도 읽는 내내 나는 엉망으로 번역된 외국 철학서 읽는 기분이 들었다. 문장의 외적 형식을 봐도, 주어와 서술어가 일치하지도 않고 지시어가 남발되어 의미가 불명확한 부분이 많다. 내용을 봐도, 곳곳에 이해가 어려운 부분들이 많았다. 좋게 봐서 추상적이고 나쁘게 봐서 현학적인. 나도 책 꽤 읽은 사람이고, 나름 역사 쪽으로는 배경 지식이 좀 있어서 저자가 웬만큼 생략해 써도 행간의 의미를 알아차리는 능력이 있는 편인데,,,,  아아, 내 능력 부족 탓인가? 아님 단지 기분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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