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사회 - 폭력은 인간과 사회를 어떻게 움직이는가?
볼프강 조프스키 지음, 이한우 옮김 / 푸른숲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세상이 왜 이럴까, 저 새끼들은 도대체 왜 저럴까,,, 이런 생각이 들면 관련 키워드를 검색해서 책을 찾아 읽는다. 이번엔 '폭력'이다. 주욱 살펴보니 이 책이 땡겼다. 읽었다. 아아, 다 읽고 나니 더 무기력해진다. 그래도 리뷰는 남긴다.

 

저자는 독일의 유명한 사회문명비평가라고 한다. 사회학과 교수 출신이라고 하는데, 책 내용을 보면 서양 문명사, 정치사에 역사, 문학이 어우러져 있다. 각 장의 내용은 질서와 폭력, 무기, 폭력과 격정, 폭력 불안 그리고 고통, 고문, 구경꾼, 사형 집행, 전투, 사냥과 도주, 학살, 사물들의 파괴, 문화와 폭력을 다룬다. 기본적으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란 홉스의 견해가 깔려 있고 섣부른 희망이나 인류애, 연대를 말하지도 않는다. 핵전쟁 이후나 좀비 습격, 자연재해 이후 살아남은 인류가 등장하는 영화 속 내래이션이 떠오를 정도다. 인용해보자면, 이런 식.

 

사회는 타인과 어울리고 싶어하는 끊임없는 충동이나 노동의 필요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을 협력하고 단합하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폭력의 경험이다. 사회란 공동체의 구성원들끼리 공동의 보호를 위해 만든 예방 조치이다.

- 13쪽

 

저자는 1장 '질서와 폭력'에서 말한다. 사회를 구성하는 도덕과 근거는 바로 인간이 서로에 대해 느끼는 불안이라고.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는 끊임없는 유혈 사태가 아니라 그런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으로 인한 지속적인 불안감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그리고 2장 '무기'에서는 강자들이, 사회를 지배하는 세력이 사용하는 폭력의 무기는 돌, 쇠, 화약, 총뿐만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능력, 즉 지식이나 계략, 술책까지 포함한다고 통찰한다. 이렇게 폭력과 사회 관련한 내용이 이어지는데 각각의 장은 폭력에 관한 역사적 예나 관련 예술 작품 소개로 시작한다. 질 드 레의 예, 성경의 예, 베이컨의 그림 <십자가형을 위한 세 개의 습작>, 독일 재세례파의 우상 파괴 예, 기요틴 사례 등등,,, 그 부분만 봐도 엄청나다. 저자의 내공이 보통이 아니다.

 

사실, 나는 이 저자분의 주력 분야 쪽 배경 지식이 얊다. 지금 내가 가진 능력과 시야로는 서양 중세사 부분만 평가할 수 있다. 폭력의 맥락에 등장하는 각종 서양 중세 형벌 제도 관련 부분 서술은 정확했다. 고문의 역사는 하층민, 아웃사이더, 부적응자의 사회사와 밀접하게 연결되있다고 고문의 희생자를 역사적으로 고찰해서 결론 내리는 부분은 물론, 사형당한 시체를 매장하지 않고 방치하는 이유를 징벌과 본보기만이 아니라 그가 아직 죽은 자들의 세계에 도착하지 않았기때문이라고 중세인들의 사고방식 속에서 설명하는 부분, 형 집행의 목적이 징벌이 아니라 붕괴된 상태의 복원임을 명시해 주는 부분  등등, 중세사 부분이 전공자 서술만큼 깊이있고 믿음직스러웠다.  이런 역사적 고찰 끝에 저자는 사형이 옛날 인간 희생관행과 맺고 있는 관계를 간과해서는 안된다며 인신공희 제사가 축제였던 시절과 현대 사행 집행을 연결시켜서 인간의 본성을 말한다. 즉, 현대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사형 집행을 일반 사람들이 직접 볼 수 없도록 하는데 그건 문명화된 동시대 사람들이 그 순간을 보지 못하도록 보호 차원에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대중들이 그런 경험을 더 즐기고 싶어 하여 문명의 근간을 흔들어 놓을까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놀라운 견해였다.   

 

하지만, 다른 장은 현재 내 독서이력으로는 내용 평가가 어렵다. 여기는 인상깊은 부분 인용으로 지나가기로 한다.

 

육체는 인간의 한 부분이 아니라 인간을 구성하는 중심이다. 따라서 육체에 가해지는 상해는 곧바로 영혼과 정신, 자아, 그리고 사회적 실존 방식과 관계된다.

- 95쪽

 

폭력은 삶의 연속성을 끊어버린다. 거기서 살아남은 사람은 단순히 전과 다른 사람이 아니라 또 하나의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폭력을 겪기 전과 겪은 후는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세계는 더 이상 친숙한 고향이 아니라 반복되는 위협의 원천으로 바뀐다. 주변의 낯익은 것에 대한 신뢰는 붕괴된다. 주변의 사물은 그가 눈을 뜨는 순간 곧바로 사라질 것처럼 위협한다. 폭력으로부터는 벗어났지만 새로운 세상을 살게 된 귀환자는 모든 정상적인 것으로부터 추방당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도무지 귀 기울이려 하지 않거나 그를 주목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상실의 체험이  결코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 112쪽

 

특히, '학살' 장은 생각해볼 거리가 많았다. 저자는 인간이 잔혹 행위를 하기 위해 먼저 다른 사람들과 그들이 속한 사회에 거리를 두고 평가하거나 비인간하거나 같은 인간 종이 아니라고 간주한다는 통념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살인 사건은 살해자가 희생자를 직접 죽이는 것이고 신체 접촉이 있는 것, 자기 힘을 느끼는 과정을 거쳐 이뤄진다고 말한다. 그러기에,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마치 두 사람 사이의 사적이고 친밀한 행위와 흡사하다.

- 264쪽

 

피에 대한 굶주림과 살인 욕망은 적대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증오나 분노가 대향학살을 위한 필요조건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행위 자체, 자신이 가진 힘에 대한 체험,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경험이다. 자기 한계를 벗어나려는 강렬한 충동이 마구 발산된다. 이런 충동은 더 이상 비밀의 보호막 속에 숨거나 의식의 질서 속에 움츠러들 필요가 없다. 살해자들은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의 삶을 마음껏 즐기고 표출한다.

- 267쪽

 

그것은 다름 아닌 무제한적인 자기 발산에서 오는 야수적인 만족감이다. 그는 스스로 총체적인 세계가 된다. 그의 육체는 폭력과 융합되어 스스로 폭력이 된다.

- 269쪽

 

아마도, 나는 위의 '학살' 부분을 읽음으로써, 이 사회가 왜 이렇게 폭력적이며, 저 새끼들은 어떻게 같은 인간에게 저렇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나, 에 대한 답은 찾은 것 같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가 폭력은 같은 인간에 대한 몰이 사냥이 전쟁터의 전투나 이방인과 이웃 사람들에 대한 일제 검거나 린치 등 국가 제도로 정착된 것이구나, 하고. 위에서 시켜서 마지 못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폭력을 즐겨서 그랬을 수도 있구나, 하고. 즉, 역사적으로 인간 사냥은 보편적 집단 폭력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 맥락이 있는 일이었다고 그게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마지막 장인 '문화와 폭력'에서 저자는 말한다. 폭력은 그 자체가 인간적인 문화의 산물이자 문화 실험의 결과물이며 폭력은 그때그때의 파괴력의 수준에 따라 실현된다고. 그리고 인간들은 기꺼이 폭력에 참여하여 파괴하고 살해하고 있다고. 사회 시스템이나 인간의 문화는 이런 잠재력에 형식과 형태를 부여하면서 돕기까지 한다고. 문제는 폭력과 문화의 협력에서 생겨나며 문화는 결코 평화주의적이지 않다고.  아아, 그렇다면 문화를 바꿔야 하는 건가? 저자는 아무런 대안도 전망 제시도 없이 글을 끝내 버렸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사족 1

 

내용을 떠나, 이 저자의 문체도 관심이 간다.  매우 독특했다. 역사적인 폭력 장면을 서사시처럼 서술한다. 유장한 내래이션이 마치 일리아드를 읽는 느낌이었다. 대구가 들어맞는 문장 구사가 고급스럽다. 대단한 저자다. 이런 느낌이 독자인 내게 그대로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역자분의 능력도 대단하신 것 같다. 이한우 선생님 번역이었다.

 

읽다가, 314쪽에  '7개의 성문을 가진 테벤 성' 이라는 부분이 있어서 의아했다. 분명 <안티고네>의 배경인 '테베'를 말하는 건데 왜 '테벤'이라 하셨을까? 이런 실수를 하실만한 분이 아닌데 싶어 찾아보니 헬라어(고대 그리스어) 표기로는 테벤(Theben)이었다.  실수가 아니라, 너무 꼼꼼한 번역이었던 것이다!

 

*** 사족 2

 

 

지금의 국가 폭력에 분노하여 <폭력 사회>란 책을 읽었다.

만든이들의 이름이 적힌 책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

백남기 선생님, 그리고 모든 국가 폭력에 희생된 사람들을 잊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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