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같이 다들 제멋대로 - 본격남자망신에세이
권용득 글.그림 / 동아시아 / 2016년 7월
평점 :
품절


출판사 측의 소개글에 의하면 저자의 직업은 프리랜서 예술 노동자(만화가)이다. 아내 송아람씨 역시 같은 직업을 가졌다. 이 책에서 저자는 경기도 양벌리, 서울 휘경동과 논현동 등 자신이 살았던 공간의 기억과 아내, 아이, 부모, 이웃 등과 함께 살았던 시간의 기억을 유머러스하고 따뜻하게 이야기한다.

 

부부는 진정 하고 싶은 대안 만화 그리기보다 삽화 일감을 그려 생활을 해결해야한다. 집에서 작업하다보니 부모/남녀 역할 나눌 것 없이 한 사람이 작업하면 다른 사람은 육아와 가사를 맡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저자는 저자 또래 남성들보다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 동네 아줌마 육아 수다 모임 참가는 물론, 아들 친구들과도 거리낌없는 우정(?)을 나누게 된다. 아들을 키우며 본인의 아버지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하고, 어머니의 삶을 생각하며 아내의 성공을 응원하기도 한다. 소소한 에피소드를 정겹게 묘사하는 저자의 글솜씨 덕분에, 읽다보면 나도 몰래 미소짓게 된다.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소개하자면,

 

<스타워즈>가 한 세대를 거슬러 올라갔다가 또 다음 세대로 이어 나가는 것처럼, 우리 집도 새로운 역사를 쓰는 중이다. 그리고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누가 뭐래도 '엄마의 포스'덕분이었다. (다쓰베이더 같았던 아버지도 한몫하셨다)

- 347

 

위의 대목처럼, 영화, 책, 음악 등 같은 문화적 경험을 통해 같은 추억을 가진 내 또래 글쓴이가 마흔 즈음이 되어 부모를 돌아보는 이야기가 특히 좋았다. (오, 내 아버지도 다쓰베이더 같았다구요!)

 

여덟 살이나 여든에 가까운 일흔이나 거기서 거기였다. 어쩌면 인생은 스케치북에 물감을 잔뜩 풀어놓고 접었다 펼친 데칼코마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241

 

만화가의 에세이라고 유머와 반전으로 일관하지도 않다. 위 인용 부분처럼,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주는 문장이 곳곳에 있다.

 

좋아서 시작한 일을 돈이나 생활 때문에 포기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말하자면 맨땅에 헤딩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헬싱키까지 와서야 새삼 깨닫는다. 맨땅에 헤딩도 '계속하면' 헛되지 않구나.

- 301

 

그리고, 나 역시 몇 년 째 맨땅에 헤딩하는 입장이기에, 위 인용 부분처럼 하고 싶은 일과 생활 사이에서 고민하는 부분이 특히 좋았다. 마흔 언저리의 생활인들, 다른 작업하다가 스스로 회의하면서 심신이 고갈되신 분들께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표지와 책 제목, 약간 아쉽다. 표지를 보면 고무장갑에 앞치마 차림인 남성이 있다. 지쳐서 넋 나가 보이는 표정이다. 그 옆에 '하나같이 다들 제멋대로'라는 제목이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전업주부일을 하는 남성이 가사노동에 지쳐 제멋대로 어지르는 가족들의 만행을 고발하고 자신의 피곤을 하소연하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제목이 등장하는 부분의 내용은 이렇다. 헬싱키 만화 축제에 초대작가로 참가한 저자가 헬싱키 거리 풍경을 관찰하고 이렇게 말한다.

 

질서든 무질서든 '알아서' 지키는 분위기다. 또 하나같이 다들 제멋대로다. 그러면서도 서로 암묵적으로 철통같이 지키는 것이 하나 있었다. '타인의 자유'.

- 280쪽

 

사실은, 이렇게 멋진 내용을 담고 있는 제목이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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