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하는 여자 - 과학이 외면했던 섹스의 진실
대니얼 버그너 지음, 김학영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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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또 성(性)스런 책 리뷰다. 좀 민망하긴 하지만 내 블로그에 오시는 글벗분들이 날 어떻게 보건 말건, 나는 이런 책을 계속 읽을 수밖에 없다. 아시다시피, 내 주된 관심사는 역사 분야다. 그런데 서양 중세사 읽다보면 모순된 부분이 보인다. 남성 지배자들은 끊임없이 여성은 수동적 성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여성의 성욕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왜 그러면서도 여성의 성욕을 두려워하여 정조대를 만들고 종교 교리에 그런 내용을 넣고(이브와 뱀이 한 세트로 욕 먹는 것 등) 심지어 마녀 사냥 같은 일종의 제노사이드까지 벌였을까? 이거 너무 이상하지 않나? 여성은 성적으로 수동적 성인데 왜 그리 여성의 성욕을 무서워할까?

 

 

 

또 이상하다. 여성에게도 선거권이 주어지고, 법적 양성 평등이 이루어진 현재 대한민국은 물론, 거센 68혁명을 거친 현대 서구에서까지 왜 '여자의 성욕은 약하지만 남자의 성욕은 참기 힘들다.'‘남자는 처음 만난 상대와도 섹스를 할 수 있고 그게 당연하지만, 여자는 친밀한 관계가 선행되어야 섹스를 할 수 있다. 여자는 섹스보다 정서적 친밀감을 더 좋아한다. 그건 진화의 산물이다.'라는 성담론이 상식으로 되어 있을까? 같은 동물인데, 남녀 없이성욕은 다 똑같고(성 차이보다 개인차가 더 클걸?), 누구에게나 가장 흥분되는 상대는 처음 본 상대 아닌가?

 

 

 

이런 궁금증 때문에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욕망하는 여자>는 성과학자 메레디스 시버스(Meredith Chivers)가 실험한 질내 혈류측정기 결과를 논한다. 시버스는 피실험 여성들에게 밀실에서 다양한 경우의 섹스 장면을 담은 포르노 영상을 틀어주고 흥분도를 과학적으로 측정하기 위해 장치를 사용하여 질내 혈류량을 측정하는 실험을 한다. 결과는 어땠을까? 우리가 상식처럼 알고있는 사실과 달리, 여성들은 안정적 연인이나 남편과의 관계로 설정된 섹스 보다 낯선 남자나 동성과의 섹스, 심지어 보노보의 섹스 장면 등에 더 흥분했다. 하지만 지필 조사 결과는 그 반대로 나왔다. 실험 여성들이 거짓말을 한 것일까? 아니다. 실험 여성들은 진짜 그렇게 믿고 있었다. 단지 여성의 질과 두뇌가 각각 다른 말을 할 뿐이었다.

 

 

 

이어 이 책은 이렇게 말한다. 여성은 남성만큼, 어쩌면 남성 이상 성욕이 강하다고. 다만 그간의 문화와 훈육 때문에 욕망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고. 그런 예가 하나 더 있다. 여성들이 성적 욕망을 품을 때 떠올리는 장면은 낯선 남자를 덮치는 장면이 아니라 자신이 낯선 남자에게 강간당하는 장면이다. 왜 이럴까? 분명 현실에서라면 끔찍하고 공포스러우며 여성 아무도 원하는 상황이 아닌데. 여기에 대해 이 책은 이렇게 설명한다.

 

 

 

강간 판타지는 죄의식과 관계가 없다. 여성은 소녀 때부터 자신에게 부과되는 성적 수치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어려서부터 자신들을 옭아 맨 속박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강간 판타지를 매개로 삼는다.

 

- 135쪽에서 인용

 

 

 

그렇다. 자신의 능동적 성욕을 인정할 수 없기에 여성은 자위를 위해 성적 환상을 그리면서도 '어쩔 수 없이 당하는'장면을 상상해서 죄의식을 피하려하는 심리가 있는 것이다.

 

 

 

좀더 알고 싶지만, 이 책은 이 정도에서 더 진도 나가지 않는다. 아마 여성 성과학 분야는 별로 많이 연구되지 않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여성 성과학 분야 연구가 진척되지 않는 것은 어쩌면 여성의 성욕은 남성보다 약하고 여성은 수동적 성이라는 것을 그냥 진리로 상식으로 여기고 싶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여성을 통제하고 싶은 남성들이 많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비아그라에 비해 플리반세린(여성용 핑크 비아그라)의 개발과 시판이 훨훨 어렵고 늦어지는 것과 같은 맥락.

 

 

 

책은 꽤 유머러스하다. 여성용 비아그라인 리브리도와 리브리도스를 이른바 '일부일처해독제'라고 부르는 대목에서 빵 터졌다. 섹시한 여성의 사진을 보고 좋아하는 여성의 심리를 일종의 나르시즘으로 보는 시선에 감탄했다. 누드 사진을 보고 성욕을 느끼는 남성 입장과 달리, 여성은 그런 사진 속의 여성과 자신을 동일시하여 남성의 시선을 받는 나르시즘의 충족을 느껴서 흥분한다니! 재미있다.

 

 

 

어떻게 보면, 진화심리학자들이 하는 말, 즉 여성은 아이를 낳고 길러야하기때문에 가정을 돌볼 성실한 남성과 섹스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여 일회성 성관계보다 장기적 정서적 관계를 더 좋아하도록 진화되었다,,,, 는 것은 다 남성 위주의 냉혹한 현실을 살면서 현실적 이익을 추구하는 여성들에게 속아서 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여성들은 자신의 성욕을 숨기는 것이 현실적으로 이익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에 맞춰 질과 두뇌를 분리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온 것 아닐까?

 

 

 

그런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진짜 궁금하다. 왜 남성들은 굳이 그렇게 여성의 성욕이 약하다고 주장하면서 반대로 여성의 성욕을 두려워할까? 단순히 여성을 지배하기 위해서? 혹시 먼먼 인류의 조상들이 발정기의 암컷들을 보고 무서워했던 기억(서유기에 나오는 서량여인국이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마존 등 남성들이 기빨려 죽는 전설이 세계 각지에 있는 것, 먼 옛날 발정기 여성 무리에 혼자 떨어져 분투한 남성의 고통스런 기억이 반영된 것 아닐까? )이 수컷만의 Y유전자에 전해지기 때문은 아닐까? (이 부분에 대해 아시는 분 혹은 관련 책 소개해주실 분들 대환영! )

 

 

 

 

 

***  

 

 

 

편집이 엉망이다.

 

 

 

230 ~ 236쪽까지, 한 쪽의 마지막 문장과 다음 쪽의 첫 문장이 이어지지 않는다.

 

편집 디자인 과정에서 틀에 앉히면서 마구 단어를 잘라먹은 것 같다.

 

편집팀은 각성하시길. 한번도 아니고, 이거 너무 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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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 동화집 에오스 클래식 EOS Classic 7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이나경 옮김 / 현대문학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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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반 덴마크 작가 안데르센의 동화집이다. 다른 작업하다가 어린이용 편역본이 아닌 완역본으로 안데르센 동화내용을 확인해볼 일이 생겨서 읽었다. 유명한 이야기 외에 처음 읽는 이야기도 여러 편 있어, 완역본이 궁금한 독자에게 추천할만한 책이다. 어른이 읽어도 좋다. 우리나라에서는 동화작가로 유명하지만 사실 그는 시인, 극작가, 소설가, 여행작가이기도 했다. 당대에는 디킨스나 하이네, 위고 등과 나란히 거론되던 대문학가이다.

 

이 책에 실린 작품은 아래와 같다.

 

황제 폐하의 새 옷(그러니까 벌거벗은 임금님), 눈의 여왕: 일곱 편의 이야기가 전하는 동화, 공주님과 완두콩, 나이팅게일, 못생긴 새끼 오리(미운 오리 새끼), 인어공주, 부시통, 백조왕자, 엄지공주, 성냥팔이 소녀, 꿋꿋한 양철 병정, 잠의 요정 올리, 빨간 구두, 그림자, 프시케, 가장 놀라운 일, 어느 어머니의 노래, 빵을 밟은 소녀, 불사조, 집요정과 식료품장수, 치통 아주머니, 하늘을 나는 가방, 상심 ,종소리

 

어릴적 계몽사전집에서 읽고 무서워했던 눈이 둥그런 개들이 나오는 <부싯돌>도, 불꽃놀이의 무서움을 잘 알려준 <하늘을 나는 가방>도,,,, 다들 옛친구처럼 반가왔다. <엄지공주>를 다시 읽으니, 튤립이 필 때마다 봉우리를 바라보며 엄지공주가 들어 있을까봐 설레곤하던 생각이 나서 행복했다. <공주님과 완두콩>을 다시 읽으며, 내가 멍이 잘 드는 이유를 알아내서 기뻤다.

 

이들 중 가장 관심이 가는 동화는 <빨간 구두>이다. 마치 된장녀 허영녀를 공격하는 이야기의 원조같은 이 잔혹동화. 카렌이 나쁜 아이인 것도 알겠고 그런 짓하면 받는 벌도 무서운데, 이상하게 이 이야기는 매혹적이다. 내게, 아니 세상의 모든 얌전한 소녀들의 마음 속에, 벌 받아도 욕 먹어도 좋으니 빨간 구두 신고 마음껏 춤추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일까.

 

어느 날 여왕이 어린 딸인 공주를 데리고 시골을 지나 여행을 왔다. 사람들이 성 주위로 몰려들었고, 카렌도 거기 있었다. 어린 공주는 고운 흰 옷을 입고서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창가에 서 있었다. 공주에게는 길게 끌리는 옷자락도 없었고 머리에 황금 왕관도 쓰지 않았지만 고급 가죽으로 지은 화려한 빨간 구두를 신고 있었다.

- 252쪽에서 인용 

 

원래 유럽에서 빨간 구두는 황제만이 신을 수 있었다. 서로마, 동로마 황제와 로마 교황(전임 교황 성하가 빨간 구두 신은 사진을 검색해보라). 종교 개혁 이후 루터파 신교 국가가 된 덴마크에서는 사악한 로마교황을 상징하는 빨간 구두를 신을 수 없었겠지. 그런데 그렇게도 욕 먹는 빨간 구두를 공주가 신었을 때는 왜 아무도 욕하지 않을까. 게다가 카렌이 신은 구두는 백작이 딸을 위해 주문했다가 치수가 맞지 않아 찾아가지 않은 것이었다. 백작의 영애도 빨간 구두를 신을 수 있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공주도 백작의 영애도 아닌 가난한 고아 카렌만 욕 먹는다. 이거 참 이상하다.

 

"춤을 추거라!"그가 카렌에게 말했다. "네가 차갑고 창백하게 될 때까지, 네 피부가 미라처럼 쭈글거릴 때까지 빨간 구두를 신고 춤을 춰라.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춤을 춰라. 교만하고 허영심 많은 아이가 사는 집마다 문을 두드려 아이들이 네 이야기를 듣고 널 두려워하게 해라! 춤을 춰라! 춤을!"

- 257쪽에서 인용

 

게다가 카렌은 너무 과한 벌을 받는다. 아무래도 이 동화는 여성/약자의 욕망에 대해 지나치게 경계하고 과잉반응을 보인다,,, 고 생각하며 계속 읽어나갈 즈음, <빵을 밟은 소녀>라는 작품을 처음 만났다. 주인공은 가난한 농가집 딸 잉게르. 그녀는 시골 귀족 집에 일하려 간다. 주인집은  잉게르에게 잘 대해 주었다. 옷도 예쁘게 입혀주었다. 잉게르는 좋은 옷을 입고 아름다워짐에 따라 점차 허영심이 커졌다. 주인집에서 1년 일한 후 잉게르는 휴가를 받아 집에 간다. 그러나 들에서 일하고 있는 어머니의 남루한 모습을 보고 어머니를 부끄럽게 여겨서 돌아선다. 다시 여섯 달 후, 주인집에서는 이번에는 흰빵을 선물로 주며 집에 보낸다. 늪지대를 지나며 잉게르는 구두가 더러워질까 걱정해서 흰빵을 땅바닥에 던지고 징검다리 삼아 밟고 건너가다가 지옥으로 떨어진다. 사람들은 두고두고 잉게르의 이야기를 하며 반면교사로 삼는다. 오랜 시간이 흘러, 울고 반성하던 잉게르는 작은 새가 되어 날아간다,,, 라는 이야기이다.

 

빵을 신성시하여 생긴 유럽의 전설이 바탕이긴 하지만, <빵을 밟은 소녀>는 거의 <빨간 구두>와 비슷하다. 예쁜 구두 탐닉, 허영, 가난한 소녀, 벌,,,, 그런데 이 완역본 전집 전체를 봐도 교만하거나 허영에 들뜬 소년이 과한 벌을 받는 이야기는 없다. 안데르센 자서전을 보면, 세례식에 구두 생각만 했던 자기 어릴적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자기가 쓴 작품에는 소년이 아니라 소녀로 주인공을 바꾼다. 여기에 없는 소설이지만, <즉흥 시인>을 봐도, 같이 성애에 탐닉하는 실수를 저질러도 청년에 비해 여인이 더 타락한 존재로 그려진다. 아아, 안데르센 선생은 여성에 대해 콤플렉스가 있었던 것일까? 가난하고 못배운 자신의 과거로 덴마크 상류사회에서 멸시를 받은 사실 때문에, 외모에 신경쓰거나 자기 표현에 솔직한 여성들을 보면 '비뚤어져서' 허영심 많고 비기독교적이라고 공격하게 된 것일까? 

 

선생의 심리나 견해가 어떻든, 이런 이야기가 명작으로 계속 유통되는 이유는 뭘까. 소녀가 벌받기 이전에 욕망추구하는 부분을 우리 어린이/여성/약자 독자들은 더 흥미로워하기 때문인 것이 아닐까. 아픈 할머니를 간호하지 않고 무도회장에 가는 거, 이거 너무 통쾌하지않나? 우리는 그런 상상만 하고 실행은 못하기때문에.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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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약자 테마명작관 3
니콜라이 고골 외 지음, 강완구 엮음, 고일 외 옮김 / 에디터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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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람진의 <가련한 리자>가 절판되었다. 검색 끝에 이 책에 <가엾은 리자>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는 것을 알았다. 이 책에는 리자 외에 '사회적 약자'라는 주제 하에 농노 처녀, 가난한 사람 등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다룬 5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거의 <가난한 사람들>이 분량을 다 차지하고 있다. 실린 작품의 목차는 아래와 같다.

 

가엾은 리자(카람진)
역참지기(푸슈킨)
외투(고골)
가난한 사람들(도스토옙스키)
관리의 죽음(체호프)

 

<가엾은 리자>는 까람진이 1792년 발표한 단편이다. 모스크바 근교에 사는 농부의 딸 리자가 귀족 청년 에라스트와 사랑을 나누다가 버림받아 자살한다는 내용. 도회지 사교계의 삶에 찌든 에라스트는 꽃을 팔러 모스크바에 온 리자를 만나 그녀의 순수한 아름다움에 반한다. 그러나 육체적 사랑에 이른 후 전쟁을 핑계로 리자와 헤어진다. 도박 빚을 갚기위해 돈 많은 과부와 결혼한다. 리자가 집으로 찾아가자 에라스트는 백 루블을 주고 그녀를 내쫓는다. 절망한 리자는 강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 와중에도 돈은 홀어머니에게 보낸다.

 

'지금 내 마음을 송두리째 차지하고 있는 이가 평범한 농부나 목동으로 태어났다면 얼마나 좋을까!(본문 16쪽)'라는 리자의 독백에서도 알 수 있듯, 소설에서 가엾은 리자가 겪는 비극은 크게 보아 계급문제에 기인한다. 리자는 에라스트를 사랑하면서도 그와 자신과의 계급차를 알고 있다. 그와 정식 결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욕 한 마디 없이 저항 없이 리자는 걍 에라스트의 인생에서 미래에서 조용히 사라져 준다. 아놔, 이게 뭥미?

 

그런데, 바로 이 미련곰탱이같은 비련의 여주인공인 것이 또 18세기~ 19세기 초 러시아 독자들에게 먹혔다. 당시 러시아에서 소설의 독자층이었던 귀족들은 바로 이 점에 감동받았다. 오, 세상에, 농부의 딸도 이렇게 순수한 사랑을 할 수 있다니, 그들도 인간의 감정을 가진 자 였다니,,,,

 

러시아의 농노 해방은 이 소설로 부터 거의 90년후인 1861년에 이뤄졌다. 이 맥락에서 나는 <파멜라>와 <춘향전>과 함께 노예, 농노, 여성의 사랑할 권리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싶다. 사랑의 역사는 약자가 권리를 찾아가는 역사였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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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멜라 2 대산세계문학총서 80
새뮤얼 리처드슨 지음, 장은명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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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0년작인데, 현대 대한민국 막장드라마 원조같은 소설이다.

 

1권에 이어, 우리의 파멜라는 여전히 하녀로 일하던 귀족집 주인남의 괴롭힘을 당한다. 부모님 집으로 보내준다며 마차에 태워 자신의 영지에 있는 한 저택으로 납치, 그녀를 가둔다. 하녀로 변장하여 침실에 숨어있다가 강간하려고도 하는 둥, 온갖 악랄한 방법으로 파멜라의 육체를 정복하려 든다. 드디어 변함없는 파멜라의 저항에 단념, 그녀를 진짜 부모님 댁으로 돌려 보낸다. 그러나 파멜라를 보낸 후, 편지를 써서 심부름꾼에게 보낸다. 편지에는 이전과 달리 진지하게 구애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파멜라는 그 편지를 읽고 마음을 바꿔 B씨에게 돌아온다. 알고보니 파멜라가 그동안 부모님께 쓴 편지를 읽고 그녀의 덕성에 감동받은 것이었다. (이 소설은 파멜라가 부모님께 자신이 겪고 있는 실황을 중계하는 서간체 소설임) 둘은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린다.

 

당신의 미덕은 모든 유혹을 견디어냈고 공포에도 굴하지 않았소. 그리고 난 당신에 대한 나의 열정을 이길 수가 없었기 때문에 나 스스로 바르게 마음을 먹고 내가 제시하는 조건으로는 당신이 내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았으므로 당신 자신의 조건에 따라 내 사람으로 만들기로 씸했던 거요. 그리고 이제는 당신 자신의 조건 이외의 어떤 다른 조건으로도 당신을 내 사람으로 만들기를 원하지 않소. 정말이오. 그러니 결혼식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하오.

- 본문 151~ 152쪽에서 인용. 남자 주인공 B씨의 말.

 

여기서 불행 끝, 행복 시작이냐? 물론 아니다. 국내 막장 드라마에서 시어머니가 하는 배역을 맡은 셈인 B씨의 누나인 레이디 대버스가 찾아와 파멜라를 모욕한다.

 

 

넌 그 애를 첩으로 삼든가 아내로 삼든가 둘 중 하나겠지. 만약 전자라면 우리 어머니가 사랑하셨고 정말 아주 착한 아이인 그 불쌍한 계집애를 망치지 않고도 첩으로 삼을 여자들이 많지 않느냐. 그러니 이 점에 대해 너는 부끄러워할지도 모르지. 후자에 대해서라면 아마도 그런 생각은 하고 있지 않고 있겠지. 그러나 혹시라도 그런 생각을 한다면 넌 결코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다. 얘야, 우리 집안은 벼락출세한 가문이 아니라 이 왕국의 어느 최고의 가문 못지않게 오래된 가문이라는 것을 심사숙고해라. 그리고 수백년 동안 우리 가문의 후계자들이 기우는 혼사로 망신을 당했다고 알려진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이 나라 최고의 몇몇 가문들이 너와 인척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하고 있지 않느냐. 네가, 혹시 역사가 짧은 가문이나 제가 그처럼 좋아하는 듯이 보이는 하층계급에 가까운 가문의 자손이라면 그 애와 결혼해도 괜찮겠지. 그러나 나와 내 모든 가족들은 네가 그처럼 볼꼴 사납게 채신을 떨어뜨린다면 너와의 관계를 영원히 끊을 것이라고 말해두겠다.

- 본문 75 ~ 76쪽. 동생인 B씨에게 충고하는 레이디 대버스의 편지

 

 

당근 레이디 대버스는 막장 드라마 공식 대로 마침 남편이 외출 중이어서 현장 목격을 못 할 때에 찾아온다. 시누이는 막장 드라마 그대로 친정을 모욕하고, 남편의 과거 여자 문제 등을 거론하여 파멜라에게 상처를 준다. 이리저리 하여 남매는 화해, 레이디 대버스도 주위 귀족 여인들도 그동안의 곡절을 듣고 파멜라의 미덕을 찬양한다.

 

여기서 끝이냐, 그럼 막장 드라마 원조 자격이 없다. 파멜라는 자기 이전에 첩이 있었다는 뉘앙스의 시누이 말의 진위를 궁금해한다. 알고보니 남편 B씨에게는 숨겨진 딸이 있었다. 친모인 샐리 곳프리는 현재는 신분세탁을 위해 서인도제도로 가서 결혼했다. 파멜라는 남편의 딸인 귓윈 양을 데려와서 잘 키워 좋은데 시집보낸다. 이러쿵저러콩하여 부부는 잘 먹고 잘 살았다더라,,,, 하는 이야기이다.

 

1편 리뷰에 쓴 대로, 이 소설은 서구 근대소설의 효시격이다. 그 이전 귀족이나 성직자 계급이 누리던 소설 비스무레한 산문 쟝르가 이 소설을 계기로 주 독자층으로 시민을 확보하게 된다. 하녀 파멜라를 통해 귀족의 횡포, 부도덕함에 저항하는 시민의 도덕성과 의지를 부각시키는 혁명성도 있다.

 

그리고 남자 작가 작품인데도 화자 파멜라를 너무너무 잘 형상화했다. 그녀의 심리 표현이 기가 막히다. 한편, 결혼 이후 남편 내조를 다짐하여 지켜야할 항목을 메모한다거나 남편의 혼외 출생한 딸을 거두는 모습은 남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여성의 모습을 반영한듯 싶다. 편지이건 사진이건 자녀이건, 과거 여자를 떠올리게 하는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거두는 여자라니, 이건 하녀가 귀족부인이 되는 것보다 더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결혼하자마자, 자신이 죽은 후 파멜라가 겪을 고난을 생각해서 과부연금부터 규정해서 공증받아두는 장면은 넘넘 멋지다! B씨는 1권에서는 변사또인데 2권에서는 이몽룡에다가 로미오로 바뀐다. 하지만 이 역시 비현실적이라는. 역사에는 귀촌상혼후 남편이 죽고 나서 다시 하녀 취급받고 유산 빼앗기고 본처 지위도 박탈당한 채 쫓겨난 여인들이 더 많다.

 

여튼, 18세기, 근대 시기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성이 사랑할 권리, 맘에 맞는 남자와 섹스할 권리를 다룬 이야기가 등장하는 현상이 나는 참 흥미롭다. 러시아의 <가엾은 리자>, 우리나라 <춘향전> 등등. 내 생각에, 이들 작품은 크게 봐서는 다 말뚝이의 현실 비판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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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3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인규 옮김 / 민음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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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의 주 사건은 탈옥수 매그위치의 등장과 관련해 벌어진다. 핍의 유산 증여자가 밝혀지고, 매그위치가 체포되고, 무일푼이 된 핍은 매부 조 가저리의 보살핌을 받고 그제서야 교훈을 깨닫는다.

 

몸이 극도로 허약한 상태였으므로 침대에서 일어나 그에게로 갈 수 없었던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누운 채 참회의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오, 하느님, 그를 축복하소서! 오, 하느님, 참 그리스도인다운 이 고결한 사람을 축복하소서!"

- 본문 387쪽에서 인용. 병상에서 눈 뜬 후 매부 조 가저리를 발견한 핍의 말.

 

여기서 '참 그리스도인다운 이 고결한 사람'은 원작에 'gentle christian man'이라 적혀있다. 그렇다. 젠틀맨, 신사인 것이다. 이 부분은 이 소설의 주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문장으로 인용되곤 한다. 신앙은 긍정하고 계급은 부정하던 당시 대중 소설의 독자, 시민계급의 구미에 실로 맞는 주제라 볼 수 있다.

 

한편, 사랑 없이 조건만 보고 결혼한 에스텔러 역시 고된 결혼생활을 정리한 후에 성숙해진다. 그제서야 자신를 바라보던 핍이 얼마나 상처받았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시련이 다른 모든 가르침보다 더 강력한 교훈을 주어서, 하느님이 너를 축복해 주시기를, 그리고 하느님이 너를 용서해 주시기를!이라고 말이야. 그때 그렇게 나에게 말할 수 있었다면, 네가 지금 이 순간에 다시 그렇게 말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일 거야. 그 시련의 가르침을 통해 내가 네 심정이 한 때 어떠했는가를 이해할 수 있게 된 지금 이 순간에는 말이야. 그동안 나는 휘어지고 부서졌어. 하지만 희망컨데 좀 더 나은 모양으로 휘어지고 부서졌다고 생각해. 전에 그랬던 것처럼 나에게 동정심과 너그러움을 베풀어 줘. 그리고 우리가 여전히 친구라고 나에게 말해 줘. "

- 426쪽에서 인용.  새티스 저택에서 핍을 우연히 만난 에스텔라가 하는 말.

 

"그동안 나는 휘어지고 부서졌어. 하지만 희망컨데 좀 더 나은 모양으로 휘어지고 부서졌다고 생각해. "라니! 이 얼마나 '돌아온 첫사랑 그녀'의 대사로 어울리는가! 외워두어야겠다. 겪고도 깨우치지 못해 새로운 섶을 지고 새로운 불구덩이로 뛰어들어가는 여자들도 많은데, 그나마 에스텔러는 다행인 셈이다. 어떻게 보면 핍과 에스텔라는 각각 하층과 상층 계급에서 출발했지만, 인생의 교훈을 얻은 계단의 위치는 같다. 이제 같은 높이에서 만났으니 둘에게 새로운, 더 나은 미래가 열릴지도 모른다. 소설은 둘이 함께 할 미래를 암시하며 이렇게 끝난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 폐허의 장소에서 걸어 나갔다. 오래전 내가 대장간을 처음 떠났을 때 아침 안개가 걷혔던 것과 똑같이, 그렇게 저녁 안개가 그 순간 대지 위에서 걷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개 밑으로 넓게 펼쳐져 나타난, 고요한 달빛 속의 그 모든 풍경 속에서 나는 그녀와의 또 다른 이별의 그림자를 전혀 보지 못했다.

- 427쪽에서 인용.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다.

 

하층계급에 속하는 대장장이 조 가저리가 진정한 신사였고, 늦게 깨달은 얼치기 신사 견습생 핍은 자신이 그토록 갈망하던 새티스 저택이, 상류 사회가, 신사라는 계급이 '폐허'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에스텔러의 손을 잡고 폐허를 나선다. 이제 둘의 이별은 없을것만 같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조차 나에겐 에스텔러에 대한 서술이 거의 와닿지 않는다. 에스텔러, 그녀는 이름 그대로 별stella이기만 하면 되는 건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디킨스선생은 여성 인물을 잘 못 그려 내는듯. 반면 미스 해비셤이나 가저리 부인같이 독특한 성격을 가진, 약간 괴팍하고 사이코같은 여성은 잘 표현한단 말이야. 흠, 이상해. 이제 디킨슨 선생의 연애편력을 파헤쳐 봐야할 시간인가? -_-

 

또 하나, 이런 핍의 성숙을 이끌어내는 정신적 스승 겸 인도자 샤먼같은 조 가저리의 직업이 대장장이라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서구 문명 전통에서 연금술사와 대장장이의 역할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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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03 17: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유도비 2015-06-03 17:46   좋아요 0 | URL
소설에는 어떤 직접적 언급은 없어요.
`그 모든 풍경 속에서 나는 그녀와의 또 다른 이별의 그림자를 전혀 보지 못했다. `가 마지막 문장이어서, 저는 긍정적 미래를 암시한다고 생각했어요.

유부만두 2015-06-03 17:48   좋아요 0 | URL
전 둘이 각자의 길을 간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찾아보고 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