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신화 전등신화 - 사랑과 죽음, 꿈과 현실의 이중주 동아시아 고전 엮어 읽기 1
김시습.구우 지음, 김수연 외 옮김 / 미다스북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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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고 유용한 구성이다. 이 책 한 권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이지만 구우의 <전등신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국어시간에 배운 <금오신화>를 비교하며 읽을 수 있다. <전등신화>는 총 21편이다. 이 책에서는 그 중 총 5편이 남아 전하는 <금오신화>와 짝을 이루어 읽기 좋은 5편만을 수록했다. 목차에 이어 내가 읽고 요약한 내용을 덧붙인다.

 

***


1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사랑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등목취유취경원기?穆醉遊聚景園記

 

<만복사저포기>의 배경은 남원이다. 만복사의 서생인 양생이 부처님 앞에 저포(윷 비슷) 놀이 내기를 하여 배필을 얻는다. 그녀는 고려 말 왜적 침략 때(1359년 충정왕 2년 순천 남원 구레 등지에 왜구 칩입한 역사 반영) 변을 당하고 길가에 묻힌 여인의 혼이었다. 양생은 그녀와 3일간 사랑을 나눈 후 헤어지게 도나 재를 올린 후 지리산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는다. 

 

<등목취유취경원기>

등생(등목)은 원나라 연우 (1314-20) 연간 영가 지방에 사는 서생이다. 과거 보러가는 길에 항주 서호 근처 취경원에서 시를 읊는데 어떤 여인이 나타난다. 여인은 송나라 이종 때 궁인인 위방화였다. 그녀는 23세에 죽어 당시 황제의 정원인 취경원에 묻힌 것이다. 등생은 그녀가 죽은 혼령이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고향으로 함께 가서 3년간 부부로 산다. 여인의 혼령이 떠난 이후에도 묘 앞에서 글 짓고 조상하며 죽을 때까지 새장가를 들지 않고 여인에 대한 변치 않는 사랑을 보여준다. 공간 배경인 항주는 남송의 수도.

 

=> 등생은 여인이 혼령인 것을 알고 사랑을 나누나 양생은 모르고 사랑에 빠진다. 그래서 <만복사 저포기>쪽이 좀더 미스틱하고 애틋한 맛이 있다. 사랑을 나눈 시간도 등생은 3년, 양생은 3일. 3일간의 사랑에 이후 생을 다 포기하다니. 양생 쪽이 더 극적인듯.


2 사랑의 진혼곡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취취전翠翠傳

<이생규장전>은 고려말 송도가 배경이다. 최랑이 사는 집 담장을 이생이 엿본다. (제목인 '규장'의 의미) 이렇게 만난 이생과 최랑은 우여곡절 끝에 혼례를 올린다. 이생이 과거에 급제까지 하여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중, 1361년 홍건적의 난(이때 홍건적이 개경 침략, 공민왕은 안동까지 파난간 역사 반영)으로 최랑은 사망. 비탄에 젖은 이생 앞에 최랑의 혼이 나타나 몇 년을 더 같이 살았으나 결국 최랑은 자신의 유골 수습을 부탁한 후 저승으로 가고 이생도 몇 달 후 최랑의 뒤를 따른다.

 

<취취전>의 주인공 취취는 원나라 말 회안 지방 여인인데 어려서부터 똑똑했다. 부모를 졸라 학교에 들어간 후 동기 김생(김정)을 만나 부부가 된다. 1341 ~ 68년 장사성의 난 때 이 장군의 포로로 잡혀 첩이 되었으나 남편 김생에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다. 김생은 아내 취취가 장사성의 난 때 잡혀가자 찾아다니다 이장군의 첩이 된 것을 알고, 취취의 오빠라 하여 이장군 휘하에서 서기로 일하며 그녀를 지켜보다가 상사병으로 죽는다.  취취는 남편이 죽자 따라 죽는다.

 

=> 두 작품 다 전란 배경인 것 비슷. 그런데 최랑은 취취에 비해 사랑을 스스로 얻는데 매우 적극적이다. 결말도 먼저 죽고 따라 죽는 순서가 다르다. 이생이 최랑을 만나 점차적으로 변하는 과정이 참 매혹적이다.


3 선비, 가을밤 천녀를 만나다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감호야범기鑑湖夜泛記

 

<취유부벽정기>는 조선 세조 시절(원작에는 명나라 연호를 써서 성화 연간이라고 나옴) 평양의 부벽정에 놀러간 홍생이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를 만나 서로 시를 주고받는 등 하룻밤의 정신적 교류를 즐긴다. 그녀는 기자조선의 공주였다. 나라가 망하자 천상에 올라가 항아의 시녀가 된 것. 그녀를 그리워하다가 병을 얻은 홍생은 꿈속에서 옥황상제의 부름을 받아 세상을 뜬다. 사람들은 그가 신선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감호야범기>는 원나라 문종 천력 연간 (1328-29) 때 절개성 회계 지방 처사인 성영언이 주인공. 그는 출세를 바라지 않고 뱃놀이를 즐겼다.  어느 가을날, 감호에서 배 타고 놀다가 배가 은하수로 가서 직녀를 만난다. 직녀는 세상에 알려진 견우직녀 설화와 다른 선녀 관련한 고사가 허황된 거짓임을 말하고 세상에 진실을 알릴 것을 부탁한다. 성영언은 선물을 받고 돌아와 회계산의 신선이 되었다.

 

=> <취유부벽정기>쪽이 시를 짓는 몽환적 낭만적 분위기가 강하다. 망한 나라 망한 도읍지의 아련한 정서도 잘 배어 있다. <감호야범기>는 직녀의 한탄 위주여서 좀 덜 낭만적.

 
4 저승에 대한 두 가지 체험기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영호생명몽록令狐生冥夢錄

 

<남염부주지>는 세조시절 경주에 사는 박생이 꿈속에서 남쪽의 저승을 둘러보면서 염라대왕과 유불선 철학 토론을 하고 후한 대접을 받는 이야기. 꿈에서 꺤 박생은 곧 죽을 것을 깨닫고 주변을 정리한 뒤 몇 달 뒤 세상을 떴는데, 후임 염라대왕이 되었다고 한다.

 

<영호생명몽록>는  송 고종 12년(1142)에 살았던 강직한 선비 영호선이 주인공이다. 그는 이웃집 부자인 오로가 병들어 죽은지 사흘만에 후하게 재를 올려서 다시 살아난 것을 보고  저승을 비꼬는 시를 짓는다. 그 죄로 저승사자에게 잡혀갔지만 염라대왕 앞에서 당당하게 항변하여 풀려난다. 돌아오는 길에 저승 감옥을 구경하여 송나라 진회가 벌 받는 것을 목격한다. 꿈에서 깬 후에 이웃집 부자의 생사를 확인해보았더니 부자는 다시 잡혀가 죽었더라고.

 

=> <남염부주지>는 철학 토론 분위기, <영호생명몽록>은 꽁트 한 편 읽는 느낌.

 
5 다른 세상에 대한 백일몽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수궁경회록水宮慶會錄

 

<용궁부연록>에서는 고려 시절 송도에 사는 한생이 박연폭포에 사는 용왕의 부름을 받아 용궁을 구경하고 곽개사, 현 선생, 세 강물의 신, 용왕과 함께 시를 주고받으며 문장 실력을 겨룬다. 돌아온 한생은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고 살았다.  

 

 <수궁 경회록>은 원나라 시절 조주(현 광동성 지역)에 살던 문사 여선문이 용궁에 초대받아 남해 용왕 광리왕의 부탁으로 상량문 지어주고 낙성식 구경하는 이야기. 그는  전별 선물로 받은 보배를 팔아 부자가 되지만 세상의 이익에 뜨을 두지 않고 도를 찾아  산으로 들어간다.

 

=> 이 두 작품, 뭔가 세상에 타협하지 않는 꼴통스런 느낌은 한생 쪽이 강하다.

 

***

 

대강 살펴보니 제목, 소재, 등장인물과 공간배경 설정 등등 두 작품 사이에 유사성이 꽤 보여서, <금오신화>가 <전등신화>의 영향을 받았음이 느껴진다. 한편, 저자 김시습과 구우의 생애도 꽤 비슷하다. 구우는 원말 명초 격동기의 인물이다. 그는 과거에 낙방하고, 오랜 귀양살이를 하며 문장으로 쓸쓸함을 달래며 살았다. 그의 대표작인 <전등신화>는 당시 중국은 물론 동아시아 문학계 전체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그래도 <금오신화>는 단순한 <전등신화>의 모방은 아닌 것 같다. <전등신화>보다 좀더 세상과 대결하며 타협하지 않는 자세가 강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공간배경과 당시 시대적 상황이 소설 분위기, 주제와 잘 어우러지는듯하다. 아마 이건 내가 중국 역사보다 우리 역사와 지리에 더 익숙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쪽은 전문 견해를 봐야할 듯.

 

여튼, 이 책은 연구자 아닌 나같은 평범한 독자가 두 작품집의 유사 작풍을 비교하며 읽기에 좋다. 시대와 배경 설명도 앞 뒤로 넣고 관련 고사 풀이도 해 주는 등, 굉장히 애쓴 흔적이 가득한 책이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쓰기가 죄송할 정도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참 촌스럽고 못 만들었다. 페이지도 뒤죽박죽 섞여있어서 읽다가 짜증이 날 정도다. 유익한 구성과 내용을 담았지만, 솔직히 다른 분들께 권하지는 못하겠다.

 

책 맨 뒤에는 한문 원문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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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신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4
김시습 지음, 이지하 옮김 / 민음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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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습은 과거 공부를 하던 중, 세조가 조카 단종의 왕위를 찬탈했다는 소식을 듣고 과거를 포기, 주유방랑을 시작한다. <금오신화>는 그가 30대에 경주의 금오산에서 쓴 글을 묶은 서적인데, 원래 몇 편이 수록되어 있는지 알 수 없다. 현재 전하는 이야기는 아래의 다섯 편이다.


〈만복사저포기>의 배경은 남원이다. 만복사의 서생인 양생이 부처님 앞에 저포(윷 비슷) 놀이 내기를 하여 배필을 얻는다. 그녀는 고려 말 왜적 침략 때(1359년 충정왕 2년 순천 남원 구레 등지에 왜구 칩입한 역사 반영) 변을 당하고 길가에 묻힌 여인의 혼이었다. 양생은 그녀와 3일간 사랑을 나눈 후 헤어지게 도나 재를 올린 후 지리산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는다. 


〈이생규장전>은 고려말 송도가 배경이다. 최랑이 사는 집 담장을 이생이 엿본다. (제목인 '규장'의 의미) 이렇게 만난 이생과 최랑은 우여곡절 끝에 혼례를 올린다. 이생이 과거에 급제까지 하여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중, 1361년 홍건적의 난(이때 홍건적이 개경 침략, 공민왕은 안동까지 파난간 역사 반영)으로 최랑은 사망. 비탄에 젖은 이생 앞에 최랑의 혼이 나타나 몇 년을 더 같이 살았으나 결국 최랑은 자신의 유골 수습을 부탁한 후 저승으로 가고 이생도 몇 달 후 최랑의 뒤를 따른다.


〈취유부벽정기>는 조선 세조 시절(원작에는 명나라 연호를 써서 성화 연간이라고 나옴) 평양의 부벽정에 놀러간 홍생이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를 만나 서로 시를 주고받는 등 하룻밤의 정신적 교류를 즐긴다. 그녀는 기자조선의 공주였다. 나라가 망하자 천상에 올라가 항아의 시녀가 된 것. 그녀를 그리워하다가 병을 얻은 홍생은 꿈속에서 옥황상제의 부름을 받아 세상을 뜬다. 사람들은 그가 신선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남염부주지>는 세조시절 경주에 사는 박생이 꿈속에서 남쪽의 저승을 둘러보면서 염라대왕과 유불선 철학 토론을 하고 후한 대접을 받는 이야기. 꿈에서 꺤 박생은 곧 죽을 것을 깨닫고 주변을 정리한 뒤 몇 달 뒤 세상을 떴는데, 후임 염라대왕이 되었다고 한다.  


〈용궁부연록>에서는 고려 시절 송도에 사는 한생이 박연폭포에 사는 용왕의 부름을 받아 용궁을 구경하고 곽개사, 현 선생, 세 강물의 신, 용왕과 함께 시를 주고받으며 문장 실력을 겨룬다. 돌아온 한생은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고 살았다.

 

대단한 작품이다. 열심히 공부만 하고 있으면 뒷날 크게 써 주리라는 어린시절 세종의 약속이 세조의 왕위찬탈로 산산이 깨진 후, 평화롭던 자신의 과거 세계에 대한 상실감과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저항감으로 평생 떠돌던 저자 김시습의 삶이 각각 이야기의 인물과 배경에 반영되어 있다. 세상에 이런 세계관을 갖고 평생 개기며 살다간 사람도 있다. 말하자면 작가도 등장인물들도 다 아웃사이더, 방외인이었던 것.

 

중1때 처음 읽고, 대학시절 전공 공부하면서 두번째로 읽고, 지금 세번째 읽는다. 읽을수록 매혹적이다. 주인공은 다 현실 세계에 적응하지 못한다. 망한 나라 망한 도읍지에 가서 과거의 인물들과 만나 깊은 교감을 나눈다. 현실로 돌아온 후에도 긴장을 풀지 않는다. 스스로 죽음을 택하거나 속세를 떠나 산으로 들어가거나 아예 다른 차원의 세계로 가 버린다. 그들은 끝까지 대결의 자세를 버리지 않는다. 이런 배경과 이런 인물, 이런 삶의 자세에 나는 늘 매혹당한다. 나 역시 과거 역사와 사랑에 파묻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며 끝까지 개겨보는 또다른 박생이기에.

 

 

 

- 2015.  11, 7.  남원 만복사지 답사 사진. 가을비 내리는 흐린 날씨였다.

 

<금오신화>에 실린 5편의 공간배경은 남원, 개성, 평양, 경주다. 망한 왕조의 과거 도읍지. 이중 남원에 대해서는 좀 의아하실 분이 있을까싶어 부가한다. 남원은 남북국 시절 통일신라의 9주5소경 중 남원경이었다. 신라는 고구려 부흥운동을 토벌하고 그 유민들을 남원경에 이주시켰다. 그러므로 남원 역시 망한 왕조의 도읍지인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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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로큰롤
오쿠다 히데오 지음, 권영주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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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쪽으로 튀어>를 읽고, 도대체 이 작가는 어떤 성장기를 보냈기에? 하는 생각이 들어 읽은 책이다. 흠, 그랬군. 그는 록 소년이었군. 흠, 그랬군. 마루야마 겐지는 영화, 오쿠다 히데오는 록.

 

성인인 현재 시점에서 작가가 오디오를 장만하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작가는 과거에 수집한 음반을 새 오디오로 들으며 왕년의 록 소년 시절을 회상한다. 중고교 시절의 작가는 여러가지로 문화 혜택을 받기 힘든 시골에서 부단한 노력을 통해 1970년대 록 밴드의 전성기를 영미 팬들과 실시간으로 누리게 된다. 1969 ~ 77년까지 대략 6년간이다. 중학교에 입학한 후 독립적인 공간이 필요한 중딩 오쿠타 소년은 라디오를 사고 테이프에 좋아하는 음악을 녹음한다. 집에 오디오가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던 시절을 거쳐, 드디어 부모님을 졸라 오디오를 산다. 이제 엘피 음반을 모으기 시작한다. 용돈을 아껴 음악 잡지를 사고 인근 대도시로 공연을 보러간다. 유명 록커들의 패션을 따라한다. 당연히 늘 돈이 모자란다. 개성 강한 친구들과도 록 음악 덕분에 뭉치고, 파칭코로 음악 관련 활동을 할 돈을 벌기도 하는 등 록 덕분에 버라이어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런 이야기들이 주요 곡명을 제목으로한 각각의 꼭지에 들어 있다. 그렇게 록 소년의 한 시절이 회상되면 각 꼭지 뒤에는 앨범 소개가 있다. 재미있는 구성이다. 번역도 발랄하다.

 

음악 이야기가 주이기는 하지만, 당시 영미 록 뮤직을 몰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저자의 능청스런 입담 덕분이다. 나는 읽으면서 얼마나 소리내어 웃었는지 모른다. 작가는 당시 어린 소년의 입장에서 세세한 일화를 진지하게 소개한다. 그러다 갑자기 현재 성인의 시점이 되어 과거의 자신과 거리를 두고는 '참으로 한심한 오쿠타 소년이었다.'하는 식으로 논평해 버린다. <제인 에어>에서 반항적이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소녀와 숙녀의 두 시점을 사용하는 것의 코믹 버전같다. 예를 들자면 1976년 레인보의 첫 내일(來日) 공연 일화. 저자는 오전 수업 후 학교에서 도망가 공연장 매표소 앞에 줄 서서 표를 산다. 공연이 무르익자, 어린 작가는 리치 블랙 모어가 기타를 부수는 퍼포먼스를 기대한다. 그러나 그만 보고 만 것이다. 리치가 기타를 부수기 전에 몰래 무대 뒤에서 싼 기타로 바꿔 매는 것을. 그 장면을 현재 성인인 작가는 이렇게 서술한다.

 

아아, 무대 뒤를 보고 말았다. 어른은 정말 교활하구나. 하기야 애용하는 스트라토캐스터를 부술 수는 없겠지. 어차피 연출이겠다. 오쿠타 소년은 어른의 사정을 하나 더 알게 되었다.

- 252쪽

 

아아, 독특한 성장담 서술 방식이로고!

 

***

 

저자는 당시 희망대로 음악 관련 직업을 갖지 못하고 작가가 된다. 그러나 록에 빠졌던 그 경험은 작가로서의 삶에 밑거름이 되었다. 말하자면 저항 정신이나 예술가의 자세 같은 것?

 

하지만 그 시절, 열여섯 나이에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 208쪽

 

나는 작가가 되고 나서 뼈저리게 느꼈다. 창작자는 고독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그렇기에 지금의 나는 같은 창작자로서 피니건을 비롯해 '숨은 명반'을 만든 이들의 심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훌륭한 작품이 팔리지 않은 데 대해 당신은 평정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까? 괴롭지 않았나요? 차가운 레코드 회사에 불을 싸질러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까?

- 267쪽

 

마이크 피니건이나 에이머스 태릭이 돼서 누군가 볼 줄 아는 사람에게 발견되고 싶다. 그런 작가를 은밀히 지향하고 있다.

- 270쪽

 

간단히 말해서, 팔리고 싶다, 하지만 농담이 통하지 않는 대중은 상대하기 싫다. 마니아가 인정하는 고고한 존재로 있고 싶다, 하지만 돈과 명성에도 매우 미련이 있다. 그런 딜레마 속에서, 그럼 중간을 취한다 칠 때 어느 정도의 포지션이 이상적이냐 하면 그게 스틸리 댄인 것이다. 1년에 한 권 정도 책을 내서 그럭저럭 팔리고 평가도 받고, 오래도록 사랑해주는 팬이 있으면서 배신하지 않는다. 아아, 그런 작가로 있을  수 있다면,,,,, 나도 꽤나 얌체 같은 소리를 한다. 하하하.

 - 281쪽

 

솔직히, 나는 록 음악 이야기하는 부분보다 위의 인용 부분이 더 와 닿았다. 오쿠타 씨, 저도 고고한 작가인 척하면서 돈에 미련 있는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

 

책의 마지막에는 마치 음반의 보너스 트랙처럼 단편 소설이 한 편 실려 있기도 하다. 임진모 씨의 글도 있다. 일본 원서는 어떨지 몰라도 일러스트며 표지며 대단히 공들인 티가 나는 책이다. 왕년에 록 소년이었던 분은, 아니 지금까지도 록 소년인 분(이 정도만 써도 블로그 글벗 중 누구이신지 다들 감이 오실 것이다. )은 록에 문외한인 나 보다 훨씬 더 재미있게 읽을 듯 하다.

 

자신이 십대 때 듣던 록이며 팝을 좋은 음질로 다시 듣는다는 것은 어른이기에 가능한 은밀한 즐거움이다. 나는 이제 새 음악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현역이 아닌 것이다. 복고 지향이라고 하든 말든, 사람이 뭔가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허용량이라는 게 있다. 그게 다 찬 사람은 그 안에서 조용히 노는 게 일종의 점잖음이 아닐까.

- 21쪽

 

***

 

아 참, 또 와 닿은 부분이 있다. 저자가 록 음악 이야기를 하며 허세 부리는 대목. 중고딩 시절의 나는 '참으로 한심했던 오쿠타 소년'과 다른 방식으로 책을 읽으며 잘난 척을 하던 '참으로 한심했던 껌정 소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가한다. 333쪽에 '개랑 원숭이랑 꿩이야. 조금은 도움이 될 테니까 데려가라." 는 말은, 일본민담인 <모모타로>에서 아기 장수 모모타로(복숭아 동자)가 개, 원숭이, 꿩을 육해공군 부하로 데려가는 것을 빗대어 자기들이 오케이의 거사를 도와주겠다고 제안한 것이라는 거, 다들 아셨나요? 그외 '기요미즈의 무대에서 뛰어내린다'라든가 '오봉 춤 박수' 등등,,, '참으로 한심한 껌정 소녀'인 저는, 책을 읽는 내내 역자 주석 없이 서술된 일본 역사 문화 배경 지식에 대해 무진장 잘난척 하고 싶어졌답니다. 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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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튀어! 2 오늘의 일본문학 4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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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다 읽고 리뷰는 2권에만 남긴다.

 

초등학교 6학년인 지로의 아버지 우에하라 이치로는 지로가 보기에 사고뭉치다. 대학시절 과격 운동권의 전설적 행동대장이었다가 현재는 아나키스트가 되었다. 프리라이터라지만 발간된 책은 없고 찻집을 하는 엄마에게 얹혀 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오차노미즈 여대의 잔다르크로 불렸던 엄마는 그런 아빠에게 불만이 없다. 오히려 아버지를 깊이 사랑하고 신뢰한다. 소설은 소년 지로가 부모의 언행과 공건력과 자본에 저항하는 싸움을 보고 듣고, 자신 역시 폭력에 대항해 싸우며 성장해가는 이야기다. 

 

1권은 도쿄 나카노, 2권은 오키나와 남쪽 이리오모테가 배경이다. 2권 마지막에 가면 섬의 전설이 소개되는데 그 전설과 지로의 부모 이야기는 겹친다. 그래서 크게 보면 지로의 이야기, 부모의 이야기, 전설, 이렇게 세 가지 이야기가 얽힌다. 앞에는 학원물 명랑 성장소설같지만 (조흔파 선생의 얄개전 같은) 뒤로 갈수록 묵직해지고 힘을 받아 세 이야기가 어우러진다. 머리 좋은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중앙 정부뿐만 아니라 현재 중앙- 오키나와, 과거 사쓰마번, 류큐국과 오키나와 남쪽 섬 지역,,, 에 겹겹이 이어지는 중심부와 주변부의 얽히고 설킨 폭력의 역사를 다룬 점에도 감탄했다. 별난 아버지의 캐릭터에 묻히기에는 이런 작가의 역사 인식이 빛난다.  

 

"모든 어른에게는 좋은 부분과 나쁜 부분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거기에 휘둘려서는 안 됩니다. 만일 의문을 품었거나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을 잊지 말고 가슴 속에 간직해주세요. 그리고 어른이 되었을 때, 자신의 머리로 판단하여 정의의 편에 서는 사람이 되어 주세요. "

지로는 큰 격려를 받은 것 같았다. 자신 역시 아버지만이 정의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  248쪽.

 

그리고 지로 아버지만큼 개성이 강하지는 않아도, 선생님과 순경 등 어른다운 어른들이 소설 곳곳에 등장한다. 위의 인용 부분은 지로 아버지가 대형 사고를 친 이후, 교장 선생님께서 전교생 앞에서 훈화말씀하는 대목이다.

 

기타 이 소설에서 흥미로운 점 :  어린 소년이 화자로 등장하는 소설을 읽을 때 재미있는 점은, 그 화자의 현재 모습과 화자의 아버지 모습에서 작가의 어린 시절과 지금 성인기의 모습이 보인다는 점. 어차피 소설을 써서 책으로 발간하는 시기는 성인 나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어린 소년의 감성과 세상의 불의에 의문을 갖는 소년의 시각을 여전히 갖고 성장한 성인 남자의 뚝심이 같이 잘 버무려져있다. 신기하다. 흠, 오쿠다 히데오, 이 작가의 성장기는 어땠을까. 이어서 <시골에서 로큰롤>을 읽었다.  

 

 

***

 

각각 알아서 수신제가치국평천하( 修身齊家治國平天下 )를 잘 하면 좋으련만, 띨띨한 나 자신의 문제도 많은데 집안 어르신 문제에 나라 문제에 전 지구 문제까지,,, 점층적으로 겹겹이 우울하고 무기력해지는 요즘이다. 오쿠다의 이 소설을 읽고 나니, 그래도 읽고 쓰고, 내가 할 수 있는 소소한 역할을 하며, 쉽고 유쾌하게 세상에 문제 제기하는 방법을 꾸준히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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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 1
이윤기 지음 / 민음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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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미노타우로스와 테세우스, 미궁 이미지, 영웅과 어른됨에 대해 꽂혀서, 미노타우로스에 대해 서술한 책들을 주욱 찾아 보았다. 그런데 이건 좀 아닌걸, 하는 부분을 발견했다.

 

이 괴물의 내력은 이렇다. 크레타 왕비 파시파에는 매우 음탕한 여자였다. 왕비는 궁중에서 기르던 아주 잘생긴 황소를 보고는 욕정이 생겨 다이달로스에게 어떻게 황소와 정을 통해 볼 방법이 없겠느냐고 통사정했다.

- 39쪽

 

반인반우 괴물 미노타우로스의 출생의 비밀을 서술하는 대목이다. 저자는 괴물 탄생 원인을 왕비 파시파에가 음탕했기 때문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 저자는 그 앞 내용을 잘랐다. 크레타 왕 미노스가 왕위를 차지하는데 도와준 포세이돈에게 약속을 지키기 않은 것이 괴물 탄생의 근본 원인인데. 미노스는 포세이돈이 보낸 소를 보고 욕심이 나서 소를 바꿔치기하여 다른 소를 제물로 바친다. 그래서 분노한 포세이돈은 미노스를 벌하기 위해 파시파에가 바로 그 소에 반하게 만든 것이다. 과연 저자가 이 내용을 몰라서 이 책에 못 썼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이런 분야 집필하는 저자는 자신이 아는 모든 정보를 다 자신의 책에 쓰지는 않는다.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취사선택해서 쓰기 마련이다. 그러나 독자 입장에서는 저자의 가이드를 그냥 따라 가다가 잘못된 정보를 접할 수도 있다. 그런 정보의 배열이 뿜어내는 가치관에 영향받을 수도 있다.

 

이것 뿐만 아니다. 여성인 나는, 이 저자가 쓴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를 보면 매우 불편하다.

국정 역사 교과서만 아이들에게 해로운 것이 아니다.

 

(나는 파시파에는 황소를 숭배하는 크레타의 여사제였다고 생각한다. 황소와 섹스, 오르가즘, 그건 신내림 순간의 황홀경 혹은 법열을 표현한 것일뿐이라고 생각한다. 음탕하기는 개뿔! 성스럽기만 하다. )

 

 

- <파시파에와 황소> 줄리오 로마노 그림.

 

심지어 이 책에 실린 이 그림에는 '암소의 생식기와 젖이 매우 불량해 보인다(39쪽)'라는 설명이 달려 있다. 아놔,,, 이 설명은 저자가 직접 달았을까 아님 에디터가 달았을까? 정말 짜증나서 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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