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신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4
김시습 지음, 이지하 옮김 / 민음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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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습은 과거 공부를 하던 중, 세조가 조카 단종의 왕위를 찬탈했다는 소식을 듣고 과거를 포기, 주유방랑을 시작한다. <금오신화>는 그가 30대에 경주의 금오산에서 쓴 글을 묶은 서적인데, 원래 몇 편이 수록되어 있는지 알 수 없다. 현재 전하는 이야기는 아래의 다섯 편이다.


〈만복사저포기>의 배경은 남원이다. 만복사의 서생인 양생이 부처님 앞에 저포(윷 비슷) 놀이 내기를 하여 배필을 얻는다. 그녀는 고려 말 왜적 침략 때(1359년 충정왕 2년 순천 남원 구레 등지에 왜구 칩입한 역사 반영) 변을 당하고 길가에 묻힌 여인의 혼이었다. 양생은 그녀와 3일간 사랑을 나눈 후 헤어지게 도나 재를 올린 후 지리산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는다. 


〈이생규장전>은 고려말 송도가 배경이다. 최랑이 사는 집 담장을 이생이 엿본다. (제목인 '규장'의 의미) 이렇게 만난 이생과 최랑은 우여곡절 끝에 혼례를 올린다. 이생이 과거에 급제까지 하여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중, 1361년 홍건적의 난(이때 홍건적이 개경 침략, 공민왕은 안동까지 파난간 역사 반영)으로 최랑은 사망. 비탄에 젖은 이생 앞에 최랑의 혼이 나타나 몇 년을 더 같이 살았으나 결국 최랑은 자신의 유골 수습을 부탁한 후 저승으로 가고 이생도 몇 달 후 최랑의 뒤를 따른다.


〈취유부벽정기>는 조선 세조 시절(원작에는 명나라 연호를 써서 성화 연간이라고 나옴) 평양의 부벽정에 놀러간 홍생이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를 만나 서로 시를 주고받는 등 하룻밤의 정신적 교류를 즐긴다. 그녀는 기자조선의 공주였다. 나라가 망하자 천상에 올라가 항아의 시녀가 된 것. 그녀를 그리워하다가 병을 얻은 홍생은 꿈속에서 옥황상제의 부름을 받아 세상을 뜬다. 사람들은 그가 신선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남염부주지>는 세조시절 경주에 사는 박생이 꿈속에서 남쪽의 저승을 둘러보면서 염라대왕과 유불선 철학 토론을 하고 후한 대접을 받는 이야기. 꿈에서 꺤 박생은 곧 죽을 것을 깨닫고 주변을 정리한 뒤 몇 달 뒤 세상을 떴는데, 후임 염라대왕이 되었다고 한다.  


〈용궁부연록>에서는 고려 시절 송도에 사는 한생이 박연폭포에 사는 용왕의 부름을 받아 용궁을 구경하고 곽개사, 현 선생, 세 강물의 신, 용왕과 함께 시를 주고받으며 문장 실력을 겨룬다. 돌아온 한생은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고 살았다.

 

대단한 작품이다. 열심히 공부만 하고 있으면 뒷날 크게 써 주리라는 어린시절 세종의 약속이 세조의 왕위찬탈로 산산이 깨진 후, 평화롭던 자신의 과거 세계에 대한 상실감과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저항감으로 평생 떠돌던 저자 김시습의 삶이 각각 이야기의 인물과 배경에 반영되어 있다. 세상에 이런 세계관을 갖고 평생 개기며 살다간 사람도 있다. 말하자면 작가도 등장인물들도 다 아웃사이더, 방외인이었던 것.

 

중1때 처음 읽고, 대학시절 전공 공부하면서 두번째로 읽고, 지금 세번째 읽는다. 읽을수록 매혹적이다. 주인공은 다 현실 세계에 적응하지 못한다. 망한 나라 망한 도읍지에 가서 과거의 인물들과 만나 깊은 교감을 나눈다. 현실로 돌아온 후에도 긴장을 풀지 않는다. 스스로 죽음을 택하거나 속세를 떠나 산으로 들어가거나 아예 다른 차원의 세계로 가 버린다. 그들은 끝까지 대결의 자세를 버리지 않는다. 이런 배경과 이런 인물, 이런 삶의 자세에 나는 늘 매혹당한다. 나 역시 과거 역사와 사랑에 파묻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며 끝까지 개겨보는 또다른 박생이기에.

 

 

 

- 2015.  11, 7.  남원 만복사지 답사 사진. 가을비 내리는 흐린 날씨였다.

 

<금오신화>에 실린 5편의 공간배경은 남원, 개성, 평양, 경주다. 망한 왕조의 과거 도읍지. 이중 남원에 대해서는 좀 의아하실 분이 있을까싶어 부가한다. 남원은 남북국 시절 통일신라의 9주5소경 중 남원경이었다. 신라는 고구려 부흥운동을 토벌하고 그 유민들을 남원경에 이주시켰다. 그러므로 남원 역시 망한 왕조의 도읍지인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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