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신화 전등신화 - 사랑과 죽음, 꿈과 현실의 이중주 동아시아 고전 엮어 읽기 1
김시습.구우 지음, 김수연 외 옮김 / 미다스북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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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고 유용한 구성이다. 이 책 한 권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이지만 구우의 <전등신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국어시간에 배운 <금오신화>를 비교하며 읽을 수 있다. <전등신화>는 총 21편이다. 이 책에서는 그 중 총 5편이 남아 전하는 <금오신화>와 짝을 이루어 읽기 좋은 5편만을 수록했다. 목차에 이어 내가 읽고 요약한 내용을 덧붙인다.

 

***


1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사랑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등목취유취경원기?穆醉遊聚景園記

 

<만복사저포기>의 배경은 남원이다. 만복사의 서생인 양생이 부처님 앞에 저포(윷 비슷) 놀이 내기를 하여 배필을 얻는다. 그녀는 고려 말 왜적 침략 때(1359년 충정왕 2년 순천 남원 구레 등지에 왜구 칩입한 역사 반영) 변을 당하고 길가에 묻힌 여인의 혼이었다. 양생은 그녀와 3일간 사랑을 나눈 후 헤어지게 도나 재를 올린 후 지리산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는다. 

 

<등목취유취경원기>

등생(등목)은 원나라 연우 (1314-20) 연간 영가 지방에 사는 서생이다. 과거 보러가는 길에 항주 서호 근처 취경원에서 시를 읊는데 어떤 여인이 나타난다. 여인은 송나라 이종 때 궁인인 위방화였다. 그녀는 23세에 죽어 당시 황제의 정원인 취경원에 묻힌 것이다. 등생은 그녀가 죽은 혼령이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고향으로 함께 가서 3년간 부부로 산다. 여인의 혼령이 떠난 이후에도 묘 앞에서 글 짓고 조상하며 죽을 때까지 새장가를 들지 않고 여인에 대한 변치 않는 사랑을 보여준다. 공간 배경인 항주는 남송의 수도.

 

=> 등생은 여인이 혼령인 것을 알고 사랑을 나누나 양생은 모르고 사랑에 빠진다. 그래서 <만복사 저포기>쪽이 좀더 미스틱하고 애틋한 맛이 있다. 사랑을 나눈 시간도 등생은 3년, 양생은 3일. 3일간의 사랑에 이후 생을 다 포기하다니. 양생 쪽이 더 극적인듯.


2 사랑의 진혼곡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취취전翠翠傳

<이생규장전>은 고려말 송도가 배경이다. 최랑이 사는 집 담장을 이생이 엿본다. (제목인 '규장'의 의미) 이렇게 만난 이생과 최랑은 우여곡절 끝에 혼례를 올린다. 이생이 과거에 급제까지 하여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중, 1361년 홍건적의 난(이때 홍건적이 개경 침략, 공민왕은 안동까지 파난간 역사 반영)으로 최랑은 사망. 비탄에 젖은 이생 앞에 최랑의 혼이 나타나 몇 년을 더 같이 살았으나 결국 최랑은 자신의 유골 수습을 부탁한 후 저승으로 가고 이생도 몇 달 후 최랑의 뒤를 따른다.

 

<취취전>의 주인공 취취는 원나라 말 회안 지방 여인인데 어려서부터 똑똑했다. 부모를 졸라 학교에 들어간 후 동기 김생(김정)을 만나 부부가 된다. 1341 ~ 68년 장사성의 난 때 이 장군의 포로로 잡혀 첩이 되었으나 남편 김생에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다. 김생은 아내 취취가 장사성의 난 때 잡혀가자 찾아다니다 이장군의 첩이 된 것을 알고, 취취의 오빠라 하여 이장군 휘하에서 서기로 일하며 그녀를 지켜보다가 상사병으로 죽는다.  취취는 남편이 죽자 따라 죽는다.

 

=> 두 작품 다 전란 배경인 것 비슷. 그런데 최랑은 취취에 비해 사랑을 스스로 얻는데 매우 적극적이다. 결말도 먼저 죽고 따라 죽는 순서가 다르다. 이생이 최랑을 만나 점차적으로 변하는 과정이 참 매혹적이다.


3 선비, 가을밤 천녀를 만나다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감호야범기鑑湖夜泛記

 

<취유부벽정기>는 조선 세조 시절(원작에는 명나라 연호를 써서 성화 연간이라고 나옴) 평양의 부벽정에 놀러간 홍생이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를 만나 서로 시를 주고받는 등 하룻밤의 정신적 교류를 즐긴다. 그녀는 기자조선의 공주였다. 나라가 망하자 천상에 올라가 항아의 시녀가 된 것. 그녀를 그리워하다가 병을 얻은 홍생은 꿈속에서 옥황상제의 부름을 받아 세상을 뜬다. 사람들은 그가 신선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감호야범기>는 원나라 문종 천력 연간 (1328-29) 때 절개성 회계 지방 처사인 성영언이 주인공. 그는 출세를 바라지 않고 뱃놀이를 즐겼다.  어느 가을날, 감호에서 배 타고 놀다가 배가 은하수로 가서 직녀를 만난다. 직녀는 세상에 알려진 견우직녀 설화와 다른 선녀 관련한 고사가 허황된 거짓임을 말하고 세상에 진실을 알릴 것을 부탁한다. 성영언은 선물을 받고 돌아와 회계산의 신선이 되었다.

 

=> <취유부벽정기>쪽이 시를 짓는 몽환적 낭만적 분위기가 강하다. 망한 나라 망한 도읍지의 아련한 정서도 잘 배어 있다. <감호야범기>는 직녀의 한탄 위주여서 좀 덜 낭만적.

 
4 저승에 대한 두 가지 체험기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영호생명몽록令狐生冥夢錄

 

<남염부주지>는 세조시절 경주에 사는 박생이 꿈속에서 남쪽의 저승을 둘러보면서 염라대왕과 유불선 철학 토론을 하고 후한 대접을 받는 이야기. 꿈에서 꺤 박생은 곧 죽을 것을 깨닫고 주변을 정리한 뒤 몇 달 뒤 세상을 떴는데, 후임 염라대왕이 되었다고 한다.

 

<영호생명몽록>는  송 고종 12년(1142)에 살았던 강직한 선비 영호선이 주인공이다. 그는 이웃집 부자인 오로가 병들어 죽은지 사흘만에 후하게 재를 올려서 다시 살아난 것을 보고  저승을 비꼬는 시를 짓는다. 그 죄로 저승사자에게 잡혀갔지만 염라대왕 앞에서 당당하게 항변하여 풀려난다. 돌아오는 길에 저승 감옥을 구경하여 송나라 진회가 벌 받는 것을 목격한다. 꿈에서 깬 후에 이웃집 부자의 생사를 확인해보았더니 부자는 다시 잡혀가 죽었더라고.

 

=> <남염부주지>는 철학 토론 분위기, <영호생명몽록>은 꽁트 한 편 읽는 느낌.

 
5 다른 세상에 대한 백일몽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수궁경회록水宮慶會錄

 

<용궁부연록>에서는 고려 시절 송도에 사는 한생이 박연폭포에 사는 용왕의 부름을 받아 용궁을 구경하고 곽개사, 현 선생, 세 강물의 신, 용왕과 함께 시를 주고받으며 문장 실력을 겨룬다. 돌아온 한생은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고 살았다.  

 

 <수궁 경회록>은 원나라 시절 조주(현 광동성 지역)에 살던 문사 여선문이 용궁에 초대받아 남해 용왕 광리왕의 부탁으로 상량문 지어주고 낙성식 구경하는 이야기. 그는  전별 선물로 받은 보배를 팔아 부자가 되지만 세상의 이익에 뜨을 두지 않고 도를 찾아  산으로 들어간다.

 

=> 이 두 작품, 뭔가 세상에 타협하지 않는 꼴통스런 느낌은 한생 쪽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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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 살펴보니 제목, 소재, 등장인물과 공간배경 설정 등등 두 작품 사이에 유사성이 꽤 보여서, <금오신화>가 <전등신화>의 영향을 받았음이 느껴진다. 한편, 저자 김시습과 구우의 생애도 꽤 비슷하다. 구우는 원말 명초 격동기의 인물이다. 그는 과거에 낙방하고, 오랜 귀양살이를 하며 문장으로 쓸쓸함을 달래며 살았다. 그의 대표작인 <전등신화>는 당시 중국은 물론 동아시아 문학계 전체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그래도 <금오신화>는 단순한 <전등신화>의 모방은 아닌 것 같다. <전등신화>보다 좀더 세상과 대결하며 타협하지 않는 자세가 강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공간배경과 당시 시대적 상황이 소설 분위기, 주제와 잘 어우러지는듯하다. 아마 이건 내가 중국 역사보다 우리 역사와 지리에 더 익숙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쪽은 전문 견해를 봐야할 듯.

 

여튼, 이 책은 연구자 아닌 나같은 평범한 독자가 두 작품집의 유사 작풍을 비교하며 읽기에 좋다. 시대와 배경 설명도 앞 뒤로 넣고 관련 고사 풀이도 해 주는 등, 굉장히 애쓴 흔적이 가득한 책이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쓰기가 죄송할 정도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참 촌스럽고 못 만들었다. 페이지도 뒤죽박죽 섞여있어서 읽다가 짜증이 날 정도다. 유익한 구성과 내용을 담았지만, 솔직히 다른 분들께 권하지는 못하겠다.

 

책 맨 뒤에는 한문 원문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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