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 펭귄북스 오리지널 디자인 4대 비극 시리즈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노승희 옮김, 스탠리 웰스, T. J. B. 스펜서 편집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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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4대 비극 내용은 다 안다. 그런데 어릴적에 축약본이나 다른 작가 편저의 소설본으로 읽었다. 그랬군, 이건 뭐 안 읽고도 읽은줄 알고 어디가서 아는척 하며 살았군. 허허. 그래서 햄릿도 고뇌하는 근대적 인간형 어쩌구 이렇게 여기 저기서 주워 읽은 대로만 생각하고 살았나보다. 그런데, 이번에 일이 있어 셰익스피어의 희곡 원전으로 읽어보니 다른 것들이 보인다. 엉뚱한 생각도 많이 들었다. 아마 이건 나의 관심방향과 그동안 쌓인 독서이력 때문일 터. 이하는 걍 내 개인적 독후기록이다. 잊을까봐 적어 놓는 것일뿐.

 

흥미로운 것이, <햄릿>의 배경은 중세 덴마크의 엘시노어 성이다. 그런데 중세 덴마크만이 시공간적 배경이지는 않다. 극 중 배경과 극을 관람하는 관객의 배경이 섞여있다. 즉, 중세 덴마크와 셰익스피어 활동 시절 영국이 동시에 보인다. 나열해 보자. 클로디어스 왕이 햄릿을 죽이기위해 영국으로 보낼 때의 명분은 그동안 밀린 조공을 받아 오라는 것이다. 이건 '데인겔트'다. 중세 맞다. 오필리어는 자살했기에 매장이 거부되어야하나 높은 신분 덕에 예외적으로 허락된다. 여전히 중세다. 햄릿의 부왕은 노르웨이 왕과 결투하여 영토를 넓힌다. 중세다. 그리고 가장 재미있는 부분 - 햄릿의 부왕 유령은 라틴어로 말한다. 중세중세, 대박 중세다. 반면  부왕 사망 후 햄릿의 숙부 클로디어스 왕은 외교로 전쟁 위기를 풀어나간다. 근대적이다. 노르웨이 왕자인 포틴브라스는 부왕의 원수를 갚기위해 결투를 통한 사적 복수를 꾀하지 않고 국민을 징집, 군사훈련에 몰입하여 양국간 긴장감을 조성한다. 근대국가적 요소가 보인다. 그런데 햄릿 왕자는 클로디어스에 대한 사적 복수에 몰두한다. 자, 이렇게 볼 때, 햄릿의 사적 복수는 성공할 수가 없지 않는가? 그의 성격이 우유부단하든 맥주부단하든 간에. (나름 조크임.)

 

햄릿은 우유부단한 성격 때문에 복수를 미룬 것이 문제였다고들 한다. 부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숙부 클로디어스가 무방비로 홀로 등을 보이고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지만 그가 기도 중이었기에 칼을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도 중에 죽은 죄인이 천국에 갈 것을 우려해서. 하지만 햄릿의 성격이 어떻든 그의 복수는 성공할 수 없었다. 셰익스피어가 활동하던 16세기는 개인적 복수와 무력 사용이 허용되던 중세가 아니었다. 절대왕정 시기의 왕은 결투 등 사적 복수를 금지하고 국가만이 무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하여 권력을 자신의 손에 쥔다. 그러므로 무대에서 공연을 지켜보던 셰익스피어 시대의 관객들은 어차피 햄릿의 사적 복수가 실행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폭력이 국가권력이나 군대를 통해서만 정당화되는 시대가 되었기에.

 

그런데 <햄릿>에는 아버지의 복수를 하고 빼앗긴 왕국을 되찾으려는 왕자가 한 명 더 있었다. 노르웨이의 포틴브라스 왕자다. 그는 차근차근 군사력을 키워 클로디어스와 햄릿이 사망한 후 덴마크를 차지한다. 이렇게 볼 때, 성공 가능성 없는 사적 복수를 고민하다가 나라까지 망치는 햄릿과 다른 행보를 보이는 포틴브라스의 대비는 의미심장하다. 유럽의 신흥강대국으로 성장하는 당시 영국의 관객들은 햄릿의 성격에 집중하는 현대의 관객들보다 더 시사적인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장미전쟁이란 내전을 종식하고 양 가문의 결혼으로 튜더 왕조를 개창하여 유럽의 변방 잉글랜드가 막 강대국으로 도약하기 시작한 그 시점에서.

 

 

 

여기서 생각해본다. 세익스피어극을 인물 성격 위주로 분석하고 예찬한 것은 18세기 낭만주의 시대다. 과연 셰익스피어 당대에 이 연극을 보던 런던의 관객들은 이 극에서 무엇을 봤을까? 관객들의 시대는 르네상스 시대다. 이성적이고 실행력있는 남자가 당대의 대세 아니었던가. 참회기도하는 도중에 죽이면 천국에 갈까봐 걱정해서 등 뒤에 칼을 못 꽂는 성격을 가진 남자는 군주로서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을 것 같다.

 

오독인지도 모르겠다만, 내가 <햄릿>에서 본 것은 중세에서 근대로, 절대 왕정기로 이행하는 영국의 모습이다. 그리고 맡은 것은 군국주의와 여성 혐오의 역겨운 냄새.

 

*** 기타

햄릿은 어머니 거트루드 왕비에 대한 혐오를 일반적 여성 혐오로 확장하여 오필리어를 공격한다.

이 부분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관련 아동청소년 심리 쪽으로 풀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소년들이 성인남성의 세계로 넘어가면서 일시적으로 어머니에 대한 반발과 여성성에 대한 혐오를 거쳐가는 시기가 있다고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그렇다면 햄릿, 그는 성인남자가 덜 된 모지리로서,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 )

 

먹을수록 식욕이 더 커지듯이

그렇게 채 한달도 못 되어 -

생각하지 말자,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로다. (중략)

그토록 능란하게 근친상간의 잠자리로 달려가다니!

- 32쪽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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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rough the Labyrinth (Hardcover) - Designs and Meanings over 5,000 Years
Hermann Kern / Prestel Pub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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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mann Kern(1941 ~ 1985)의 1982년작 <Labyrinthe. Erscheinungsformen und Deutungen. 5000 Jahre Gegenwart eines Urbilds>의 영어번역본이다. 독어로 나온 초판에 영어판 편집자들과 감수자들이 최근 20년간의 미궁 연구 역사를 간략히 더한 내용이다. 각 장의 반 정도에는 끝에 Addendum이 달려 있어 케른의 입장을 정리하거나 반론을 소개하기도 한다.

       

뮌헨의 박물관 큐레이터로서 다수의 성공적인 전시회를 기획한 헤르만 케른은 오랜 기간 미궁을 연구하여 1981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전시회를 연다. 여기에서 선보인 카탈로그는 무려 434쪽이었고 550편의 도판이 삽입되어 있었다. 그 카탈로그를 바탕으로 독일 뮌헨에서 출판한 이 책은 전세계 미궁연구자들의 기본 필독서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이리저리 찾아보니 이 책의 저자인 헤르만 케른, 칼 케레니, 얀 피퍼가 거의 미궁학의 3대 거장인 듯. 

     

책은 전체 19장으로 나뉘어 있다. 미로Maze와 미궁Labyrinth의 개념 차이 등 미궁 관련 기초 사항이 워밍업으로 나오는 1장을 지나면 2장에서 크레타의 미궁 이야기가 나온다. 에반스 경의 발굴로 크노소스의 복잡한 궁전이 미궁이다,,,, 라는 상식 아닌 상식이 퍼져있지만 미궁이 크노소스 궁전이라는 고고학적 증거는 없다. 나는 사실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로스의 전설을 아테네와 크레타의 역사에서 풀어가는 부분이 궁금해서 이 책을 읽었는데 그 내용은 많지 않았다. 저자는 미궁이 실재한 건물이 아니라 크레타의 미노스 왕을 물리친 테세우스가 춘 학춤의 모양이라고 가정한다. 그리고 아리아드네의 실은 그 춤의 대형을 땅바닥에 그려 놓은 선이었다고. 저자는 프레이저의 설을 빌려, 9년마다 아테네의 처녀총각을 바쳐야한 이유를 9년마다 왕권 갱신 의식을 치르며 도전자를 받아야했던 미노스 왕의 의식에서 찾는다. 흥미롭다.

 

 

이어 3장에서는 이집트 등 고대의 미궁을 소개하고 4장에서는 청동기시대 미궁 암각화를, 5장에서는 트로이 미궁을, 6장에서는 로만 모자이크에 나타난 미궁을 소개한다. 도판 자료가 매우 훌륭하다. 그러나 각 도판 아래에도 깨알같은 설명이 달려 있어서, 화보가 많다고 휙휙 넘겨 쉽게 읽을 수만은 없는 책이라는 것이 함정. 

 

7장과 8장에서 또 내가 관심가진 부분이 나온다. 중세 유럽 필사본에 그려진 미궁과 교회 미궁 역사를 서술하는 부분이다. 고대 그리스의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로스의 미궁 도상은 이교적이지만 민중들의 심상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기에 카톨릭 교회의 달력과 교리 설명에 사용된다. 미궁은 죄 많은 현세, 도시에 비유된다. 어두운 중앙에 있는 미노타우로스는 사탄, 테세우스는 악을 물리치고 부활하는 그리스도다. 신도들은 교회 바닥에 그려진 미궁도를 따라 걸으며 신앙인의 자세를 묵상하고 재생을 경험하게 된다.

 

이어  9장부터 15장까지는 미궁의 역사와 관련한 짤막한 이야기들이 도판과 함께 소개된다. 잔디미궁이나 개인 상징으로 사용한 미궁, 정원 미궁, 사랑의 미궁, 게임, 미로로의 변화 등등. 전반적으로 미궁이 세속화되어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Troy Town과 Maiden's Dance를 설명한 16장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영국이나 스칸디나비아 등 서북부 유럽에 많이 보이는 치석 미궁, 이를 이용한 구혼 과정, 풍년을 비는 의식에서 유래한 처녀의 춤 등등이 소개되어있다. 기독교 전래 이전 태양 숭배나 유럽 농민들의 샤머니즘을 엿볼 수 있어 내겐 재미있었다. (소설 <테스>에서 엔젤과 테스가 스쳐가는 그 오월제 축제의 춤 장면과 관련해서, 이 부분은 나중에 다시 파 봐야겠다. )

 

17장 역시 만만찮게 흥미롭다. 저자는 미궁 도상이 지중해 연안이나 유럽 지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인도 마하바라타에 등장한 차크라 비유하라는 진형이나 미궁을 자궁과 연관시켜 주술로 사용하는 것, 필사본 삽화나 사원의 부조는 물론 타투 도안까지 인도에서 미궁은 무궁무진하게 발견된다.  저자는 지중해의 미궁 이미지가 인도에 등장하는 이유를 알렉산더에서 찾고 있다. 뭐 간다라에서 헬레니즘,, 그런 이치다. 이어 미궁 도상은 동진하여 아프가니스탄, 자바, 수마트라 등 인도의 영향을 받은 동남아시아에서도 여러 문양으로 등장한다. 버들고리 바닥의 문양 같은 것에서도. 그런데 미궁 도상은 놀랍게도 태평양을 건너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문화에서도 발견된다. 보편적이지는 않다. 미국 서남부에서만 발견된다. 저자는 그 이유를 유럽 선교사의 영향으로 추측하고 있다. 여튼, 호피 족의 경우 인도와 마찬가지로 미궁을 자궁으로 보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이 장 마지막에 붙은 Addendum은 케른 사후 20년간 더 진행된 전세계 미궁 연구를 추가하고 있다. 재미있게도, 페루 나스카 평원의 미스테리 도형까지 소개한다. 어이쿠, 그러고 보니 그렇네. (그런데 왜 우리나라의 강강술래는 없을까? 테세우스의 Crane Dance와 비슷한데?)

 

18장과 19장에서는 청동기 시절부터 5000년의 역사를 가진 미궁 도상이 놀이동산의 미로 공원이나 예술가들에 의해 새롭게 해석되고 창조되는 오늘날을 소개한다. 제주도의 김녕 미로공원을 디자인한 세계적인 미로 디자이너 애드리언 피셔도 비중있게 소개된다.

 

전체적으로 그리 무시무시하게 어려운 전문 용어들이 난무하는 역사책은 아니다. 역사, 신화, 고고학, 도상학 쪽 기본 용어 몇 개만 처음에 사전 찾아보면 이후부터는 술술 읽을 수 있다. 이쪽 분야에 관심이 있거나 여기 있는 내용이 배경 자료로 필요하신 분들은 한번 읽어보시길. 그동안 읽은 책 들 중, 미궁 관련 지식을 다루는 부분은 거의 이 책을 통째로 번역만 해서 베꼈다는 것을 알고 분노하게 되실 것이다. 

  

책은 꽤 크다. 펼치면 A3 용지 크기 정도인데 한 쪽에 58행이 깨알같이 인쇄되어 있다. 총 369쪽이다. 다 읽고 나니 노안이 온 것 같다. 그러니, 다들 읽으시라. 나만 늙을 수는 없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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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 아틀라스 역사 시리즈 5
김호동 지음 / 사계절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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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라스 중국사>의 책날개 뒤편에서 김호동 선생님의 중앙유라시아가 근간 예정이라고 적힌 것을 본 이후, 얼마나 손꼽아 이 책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드디어 책이 나왔다. 얼른 주문했다. 유치한 경쟁심이 있어서, 다른 분들보다 특히 치약님보다 먼저 읽고 먼저 리뷰 쓰고 싶었다. 그러나 이 책은 빨리 읽을 수가 없었다. 다른 역사서에 비해 이 시리즈 책의 글자야 많은 편이 아니다. 본문과 지도를 같이 음미하느라 시간이 걸린 것이다.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쓸 말이 없다. 내 경우에는 중국사를 통해 누덕누덕 기워 읽고 내 상상력으로 이리저리 맞추어 보던 내용이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한 권으로 정리되어 있는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게다가 김호동 선생님 책이 아닌가. 물론 한 권 분량 안에, 아틀라스 시리즈라는 책의 틀에 이 방대한 내용을 축약해 넣으려니 좀 무리는 있다. 저자도 편집자도 정말 고생이 많았을 것이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확실히 독자의 배경 지식에 따라 매우 어렵게 읽힐 수도 있는 책이다. 그래도 이 지역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일단은 이 책을 갖추어 놓으시라. 이 책을 기본 교과서로 삼고 책 뒤쪽 참고서적을 한 권씩 격파해가시라. 

 

 

- 본문 38쪽에서.

 

책의 만듦새가 감동적이다. 지도 자체도 그렇지만 그 지도를 독자에게 보여주는 솜씨도 감동적이다. 위의 지도를 보면, 흉노의 좌현왕 우현왕 위치를 독자에게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지도의 남북을 바꿔 놓았다. 글로 설명을 달아놓지는 않았어도, 유목민들의 동서남북 전후좌우 개념은 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바라봐야 한다,,, 는 내용까지 담겨 있는 정성어린 지도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정말 편집팀이 애 많이 쓰셨다. 다른 아틀라스 시리즈와 달리 이번 중앙유라시아 편에 실린 지도는 메르카토르 도법으로 네모지게 그린 지도가 아니라 지구 형태대로 둥글게 그린 지도가 많은 것도 감동적이다. 메르카토르 도법으로 그리면 적도 부근만 정확하다. 고위도로 올라갈수록 실거리보다 과장되게 그려진다. 그래서 네모낳게 그린 유라시아 지도를 보면 유목민들이 말타고 달려 대륙을 횡단했다는 것이 와 닿지 않는다. 그러나 북반구의 둥근 모양을 살려 그린 유라시아 지도를 보면 좀더 실감이 난다. 그래서인지 이번 책에 실린 대부분의 지도는 지구의 구형 모양 지도다.   

 

,,, 그런데 내겐 사망한 칸의 부인(카툰)에게 '미망인'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좀 거슬린다. '그의 미망인 소르칵타니 베키(134쪽)'와 같은 표현이 여러 군데 보인다. '미망인(未亡人)'은 '아직 따라 죽지 않은 사람'이란 뜻으로, 성차별적인 단어다. 신문 방송 출판 등에서 이런 이유로 사용하지 않는 추세인 단어인데, 편집팀에서 실수한 것 같다. 또, 당시 몽골의 상황으로 봐도 맞지 않는다. 몽골에는 인도의 '사티'같은 풍습은 커녕, 죽은 아버지나 형의 아내와 결혼하는 수혼제가 있었다. 그시절 다른 농경정주 문화권에 비해 여성의 권리가 높은 편이었다. 칭기스칸은 아내와 딸들에게 권력을 나눠 주기도 했다.

 

이런 맥락에서, 182 ~183쪽에 서술된 다얀 칸과 만두 카이 카툰 부분도 나는 좀 신경쓰인다. 7세 정도에 즉위한 다얀 칸의 업적은 사실상 연상 아내인 만두 카이 카툰의 업적인데  그 부분을 좀더 명확히 써 주셨으면 싶다. 물론 저자분은 몽골 카툰의 위상과 업적을 이 책에 쓰긴 쓰셨다. 본문 182쪽을 보면 만두카이가 바투 뭉케(다얀 칸)과 결혼하기 전에 에시 카툰(소르칵타니 베키)의 영전에 기원을 했다는 부분이 길게 서술되어 있으니까. 그런데, 그뿐이다. 다른 칸들은 즉위시 칭기스칸의 사당에 기원을 했는데 만두 카이는 소르칵타니 베키에게 기원하여 즉위했다는 것, 이는 명목상 남편인 17세 연하(이 부분은 학자에 따라 조금씩 나이 차가 다르지만 일단 17세로 적음)의 어린애 대신 몽골을 지배하는 카툰으로서의 자신의 각오와 권력의지를 보여준 것이라는 것, (소르칵타니 베키는 남편 톨루이 사망 이후 재혼하지 않고 은인자중, 아들을 후대 칸으로 키워냈다. 아들 중 하나가 그 유명한 쿠빌라이 칸이다. ) 이후 만두 카이는 몽골을 다시 일으켰다는 것 등등의 내용은 이 책 이 부분에 서술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만두 카이가 소르칵타니 베키의 영전에 기원을 했다는 내용만 서술된 이 책을 읽고 이런 내용을 다 알아차릴 독자가 얼마나 될까. 이런 점에서 나는 독자의 배경지식에 따라 이 책이 어렵게 읽힐 수도 있다고 앞에서 썼다. (쓰고 보니 잘난척 같아서 좀 민망하다.) 이런 점이 이 책의 약점이다. 아틀라스 시리즈의 성격상, 한정된 지면에 한 주제를 압축해서 서술해야 한다. 저자분은 다 알기에 생략하고 넘어가는 부분이 많다. 그러기에 역사 초보자의 경우, 이 시리즈는 결코 만만하게 읽히지 않는다.  

 

그렇다고 좀 읽은 역덕들에게는 시시할 것이냐, 그것도 아니다. 이미 알고 있던 네르친스크 조약 서술이라도 다른 중국사나 러시아사 책에서와 달리 이 책은 이 조약이 중앙유라시아에 미친 영향 위주로 서술한다. 역사서 독서 이력이 많이 쌓인 독자에게도 다른 쪽 입장에서 다시 보게 해 주는 좋은 책이다. 

 

뭐 미망인이니 뭐니 조금 지적하기는 했지만, 이 책 전체적으로 큰 편견은 없다. 오히려 중앙유라시아 지역 유목민족의 역사에 대한 편견을 깨주는 내용이 많아 정주농경민족 위주의 사관과 서술에 익숙한 일반독자들의 시선을 교정해준다. 하기사, 그런 점은 김호동 선생님 책을 읽으면 계속 느끼게 된다. 아래, 그런 부분을 인용하며 리뷰를 마친다.

 

 

1260년경 쿠빌라이의 집권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몽골 제국의 지배체제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에 대해 이제까지는 하나의 통일 제국이 4개의 지역 정권, 즉 '칸국'으로 분열되었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방식은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올바로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 몽골 제국, 즉 '대몽골 울루스'라는 거대한 정치체는 칭기스칸 일족들이 보유하는 다수의 울루스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몽골 제국이 울루스들의 연합체라는 구성적 원리인 '울루스 체제'는 14세기 중후반 제국이 붕괴될 때까지 변하지 않았다. (중략) 따라서 몽골 제국이 4개의 독립적인 국가로 분열되었다고 보는 것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성이 있다.

(중략) 따라서 쿠빌라이가 집권과 함께 중국적인 왕조인 '원'을 창건했다고 하는 주장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과 상충된다.

- 본문 142쪽에서 인용

 

 

- 사계절에서 나온 중앙유라시아 쪽 역사서들 중 내가 읽은 것. 그리고 우리집의 지배자 냐'옹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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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약 2016-02-12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요? ㅎㅎ 전 다 읽었지만 퍼풱트하고 아튀스트적이며 아방가르드한 리뷰를 작성하고자 숙성시키고 있답니다.~~~ / 이쪽 동네 중앙아시아는 그런대로 익숙한데 저쪽 동네 중앙아시아는 익숙치 않아 읽기 뻑뻑해 느릿느릿 읽고 있습니다.

자유도비 2016-02-17 14:55   좋아요 1 | URL
오 나의 치약님! 저 무안하지 않게 이렇게 등장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chengken 2016-02-16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사계절출판사 인문팀입니다. 서평이 너무 좋아서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댓글 남깁니다. 지적해주신 점 저자 분과 상의하여 책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이 서평을 사계절출판사 페이스북에 링크해도 될까요?

자유도비 2016-02-17 14:58   좋아요 0 | URL
어이쿠, 저자 선생님과 출판사에 폐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런 마음입니다.
// 사계절 역사서와 김호동 선생님 팬입니다. 그래도 이번 책에서 미망인이란 용어 사용과 만두 하이 업적 부분을 정확히 서술해 주지 않으신 점은 많이 아쉬웠습니다.
// 어차피 공개된 서점 블로그에 쓴 글이니 상관없습니다.
 
블리스, 내 인생의 신화를 찾아서
조지프 캠벨 지음, 노혜숙 옮김, 한성자 감수 / 아니마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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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반 전에 나온 책인데 흔적님 리뷰 읽고 담아두었다가 이제 읽었다. 책은 조지프 캠벨의 대표작 중 하나인 <천의 얼굴을 한 영웅>을 쉽게 풀어쓴 부분이 대부분이다. 캠벨 사상, 그리고 일반적인 신화학 입문용으로 좋다. 칼 융 이론도 잘 녹아 있다. 한마디로 수준있는 이론서이면서도 베스트셀러 자기계발서만큼이나 대중적으로 독자에게 말을 건넨다.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강추할만한 책이다.

 

저자는 전세계적으로 비슷한 유형을 보이는 영웅신화를 예로 들어 인생을 말한다. 신화의 기능이나 상징은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가치가 있다. 비록 신화의 우주관과 사회관이 과학 발달과 사회 변화로 인해 21세기 지금의 현실과 유리되긴 했지만 젊음, 성숙, 나이, 죽음과 관련된 인간의 정신적 문제들은 본질적으로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안락하고 익숙한 세계를 떠나 다른 세계로 가서 모험을 하고 성숙, 각자 인생의 영웅이 되어야 한다. 우선 어두운 숲으로 혼자 들어가야 한다. 길은 없다. 이미 길이 있다면 그 길은 다른 사람의 길이지 내 길이 아니다. 그럼 내 길은 어떻게 찾나? '블리스(bliss)'를 따라가면 된다. 블리스는 희열을 말한다. 모험을 떠나야만 하는 다른 세상은 다름아닌 자신의 내면이다. 자신의 억압된 다른 측면, 그림자를 인정하라. 집단 무의식이 각각의 신화에 어떻게 원형 상징으로 등장했는지를 한번 파악해 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신화가 보여주는 통과의례적 성격은 인생의 다음 두 단계에서 매우 유용한다. 소년에서 성인이 될 때, 그리고 노인이 되어 죽음을 만날 때.

 

나는 아직도 존재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의식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하지만 희열이 어떤 것인지는 알고 있다. 그것은 온전하게 현재에 존재하는 느낌, 진정한 나 자신이 되기 위해 해야 하는 어떤 것을 하고 있을 때의 느낌이다. 이러한 느낌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면 이미 초월성의 언저리에 있는 것이다.

- 26쪽

 

대중 강연을 바탕으로 만든 책이다. 캠벨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과 편집자의 역량이 돋보인다. 뭐랄까, 유명한 석학의 강연이나 대담이 바탕인 책을 읽다보면 녹취록을 그대로 옮겨 타이핑만 했나? 이럴려면 편집자가 왜 필요하지? 싶을 때가 많은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편집자가 전체 책의 주제와 흐름에 맞게 조율을 잘 해 놓았다. 덕분에 앞에서부터 차례대로 읽어나가기만 했는데도 미궁을 더듬다가 마침내 빠져나온 기분이 든다. 내겐 이 책이 아리아드네의 실꾸미였나보다.  

 

(참고 : 뒷부분에 저자와 청중의 대담이 실려있다. 여성영웅에 대한 여성 청중의 질문에 캠벨의 답이 좀 아쉬운 생각이 든 독자라면, 그 부분은 <여성 영웅의 탄생>을 읽어보시길. 캠벨은 너무 겸손하게 자신이 남성이라는 이유로 그 부분 설명은 안 하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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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시아 샤머니즘과 신화론 대우학술총서 신간 - 문학/인문(논저) 557
김열규 지음 / 아카넷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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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는 오래 전에 다 읽었는데, 이 책에 대해 뭐라 쓰기가 난감하다. 일단 내용 요약 자체가 안 되는 책이다. 이럴 때에는 목차를 옮겨 놓는 것이 장땡.

 

서론을 겸한 안내 : 동북 아시아 샤머니즘과 신화 비교

제1부 오늘날 동북아시아 샤머니즘을 보는 눈

         1 도입 : 동북 아시아 샤머니즘의 범역

         2 오늘에 제기될 문제

         3 수난과 고통의 의미론
제2부 샤머니즘 일반론, 그 개관
제3부 동북시베리아 샤머니즘과 신화
         1 동북 시베리아 비교 신화론의 탐색

         2 시베리아 비교 신화론을 위한 민족지적 전제

         3 한국 신화 주지와의 비교

         4 타계 여행의 주지군

         5 신화의 샤머니즘

         6 타계 여행의 샤머니즘

         7 주변의 상황

제4부 샤머니즘의 인간적 맥락

         1 샤머니즘과 고통의 의미

         2 샤머니즘과 인간 정신

제5부 동북아시아 샤머니즘의 유산

         1 제기될 물음의 질과 범주

         2 유산의 물욕

         3 유산의 오늘의 의미

 

이런 책이다. 북극 지역에서부터 중앙 아시아, 바이칼 호 연안에서부터 몽골, 우리나라, 일본까지 광범위한 지역의 샤머니즘과 한국의 샤머니즘을 비교, 연구하는 책이다. 샤먼의 역할과 위상, 각 문화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같은 원형 상징인 타계 여행, 우주 동물, 우주 나무, 샤먼 킹, 샤먼이 사용하는 무구, 암각화 등을 살핀다. 국문학과 민속학의 거두답게 우리나라 샤머니즘의 경우에는 주로 신화의 상징을 비교한다. 책은 기본적으로 샤먼, 무당, 미신에 대한 편견을 깨 준다. 아래 인용부분과 같은, 가슴뛰게 만드는 문학적 문장들도 많다.

 

샤머니즘 및 샤머니즘 신화의 궁극적인 그리고 영원한 주제는 이승/저승 사이의 '길 내기(길 닦음)'과 통교, 곧 내왕이다. (중략) 따라서 일반인의 영혼에게 샤먼의 영혼은 꿈이다. 놓쳐버린, 회복할 수 없는 꿈이다.

- 본문 209쪽에서

 

책 두께와 빽빽한 활자에 비해 술술 읽힌다. 바로 이 부분이 이 책에 대해 내가 뭐라 언급하기 난감한 부분이다. 쉬울 리가 없는 책인데, 쉽다. 아마 익숙한 서구 유명 학자들의 견해가 많이 소개되어서일지도 모른다. 레비스트로스, 캠벨, 엘리아데, 프레이저, 융, 케른, 프로프 등등. 그럼 이 책이 쉬운 이유는 내 배경지식 덕분일까. 이 책 전에 어렵게 읽은  <샤먼이야기>의 경우에는 러시아와 몽골 연구자의 연구 내용 소개와 요약, 비교, 비판이 많았기에 어느 정도는 그럴 수도 있겠다. 한국 신화와 샤머니즘의 관련성 같은 부분은 내가 전공 수업시간에 교수님께 이미 듣고 다 배웠던 이야기들이여서 그럴 수도 있겠다. 책을 읽다보면 한번 읽었던 것 같은, 다 아는 내용이 계속 나온다. 중복되어 나오기도 한다. (이 점에서, 나는 다른 생각이 들지만 이 글에 쓰지는 않겠다. ) 

 

여튼, 샤머니즘이나 신화와 역사 관련짓는 쪽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절판되었지만 도서관에서 한번 읽어볼만한 책이다. 단군 신화의 단군이 '당골", 무당이며 고조선은 제정일치 사회였다는 정도는 국사시간에 배워 다들 많이 아시지만, ‘해모수-동명왕-유리왕’으로 이어지는 고구려 시조 3대의 신화와 탈해왕 신화, 박혁거세 신화, 수로왕 신화의 샤머니즘을 살펴서 한반도가 무권과 왕권이 중첩된 샤먼킹(巫王) 신화권(중앙아시아-티베트-몽골-중동부 시베리아-한국-일본으로 이어지는)에 속한다는 것은 이 책에서 제대로 읽을 수 있다. 주몽과 송양왕이 왜 북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나, 이런 부분은 너무도 재미있었다. (북은 무당의 무구. 북은 영혼을 저 세상으로 건네주는 배이므로) 또 김유신의 환시 체험을 근대 최수운의 환청까지 연결짓는 부분은 매우 흥미롭다.

 

단, 이 시기 고대사를 잘 모르거나 기본적인 삼국유사 삼국사기 내용을 모르는 독자에게는 권하지 않는다. 책은 결론 위주이며 추적 과정을 친절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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