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 펭귄북스 오리지널 디자인 4대 비극 시리즈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노승희 옮김, 스탠리 웰스, T. J. B. 스펜서 편집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셰익스피어 4대 비극 내용은 다 안다. 그런데 어릴적에 축약본이나 다른 작가 편저의 소설본으로 읽었다. 그랬군, 이건 뭐 안 읽고도 읽은줄 알고 어디가서 아는척 하며 살았군. 허허. 그래서 햄릿도 고뇌하는 근대적 인간형 어쩌구 이렇게 여기 저기서 주워 읽은 대로만 생각하고 살았나보다. 그런데, 이번에 일이 있어 셰익스피어의 희곡 원전으로 읽어보니 다른 것들이 보인다. 엉뚱한 생각도 많이 들었다. 아마 이건 나의 관심방향과 그동안 쌓인 독서이력 때문일 터. 이하는 걍 내 개인적 독후기록이다. 잊을까봐 적어 놓는 것일뿐.

 

흥미로운 것이, <햄릿>의 배경은 중세 덴마크의 엘시노어 성이다. 그런데 중세 덴마크만이 시공간적 배경이지는 않다. 극 중 배경과 극을 관람하는 관객의 배경이 섞여있다. 즉, 중세 덴마크와 셰익스피어 활동 시절 영국이 동시에 보인다. 나열해 보자. 클로디어스 왕이 햄릿을 죽이기위해 영국으로 보낼 때의 명분은 그동안 밀린 조공을 받아 오라는 것이다. 이건 '데인겔트'다. 중세 맞다. 오필리어는 자살했기에 매장이 거부되어야하나 높은 신분 덕에 예외적으로 허락된다. 여전히 중세다. 햄릿의 부왕은 노르웨이 왕과 결투하여 영토를 넓힌다. 중세다. 그리고 가장 재미있는 부분 - 햄릿의 부왕 유령은 라틴어로 말한다. 중세중세, 대박 중세다. 반면  부왕 사망 후 햄릿의 숙부 클로디어스 왕은 외교로 전쟁 위기를 풀어나간다. 근대적이다. 노르웨이 왕자인 포틴브라스는 부왕의 원수를 갚기위해 결투를 통한 사적 복수를 꾀하지 않고 국민을 징집, 군사훈련에 몰입하여 양국간 긴장감을 조성한다. 근대국가적 요소가 보인다. 그런데 햄릿 왕자는 클로디어스에 대한 사적 복수에 몰두한다. 자, 이렇게 볼 때, 햄릿의 사적 복수는 성공할 수가 없지 않는가? 그의 성격이 우유부단하든 맥주부단하든 간에. (나름 조크임.)

 

햄릿은 우유부단한 성격 때문에 복수를 미룬 것이 문제였다고들 한다. 부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숙부 클로디어스가 무방비로 홀로 등을 보이고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지만 그가 기도 중이었기에 칼을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도 중에 죽은 죄인이 천국에 갈 것을 우려해서. 하지만 햄릿의 성격이 어떻든 그의 복수는 성공할 수 없었다. 셰익스피어가 활동하던 16세기는 개인적 복수와 무력 사용이 허용되던 중세가 아니었다. 절대왕정 시기의 왕은 결투 등 사적 복수를 금지하고 국가만이 무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하여 권력을 자신의 손에 쥔다. 그러므로 무대에서 공연을 지켜보던 셰익스피어 시대의 관객들은 어차피 햄릿의 사적 복수가 실행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폭력이 국가권력이나 군대를 통해서만 정당화되는 시대가 되었기에.

 

그런데 <햄릿>에는 아버지의 복수를 하고 빼앗긴 왕국을 되찾으려는 왕자가 한 명 더 있었다. 노르웨이의 포틴브라스 왕자다. 그는 차근차근 군사력을 키워 클로디어스와 햄릿이 사망한 후 덴마크를 차지한다. 이렇게 볼 때, 성공 가능성 없는 사적 복수를 고민하다가 나라까지 망치는 햄릿과 다른 행보를 보이는 포틴브라스의 대비는 의미심장하다. 유럽의 신흥강대국으로 성장하는 당시 영국의 관객들은 햄릿의 성격에 집중하는 현대의 관객들보다 더 시사적인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장미전쟁이란 내전을 종식하고 양 가문의 결혼으로 튜더 왕조를 개창하여 유럽의 변방 잉글랜드가 막 강대국으로 도약하기 시작한 그 시점에서.

 

 

 

여기서 생각해본다. 세익스피어극을 인물 성격 위주로 분석하고 예찬한 것은 18세기 낭만주의 시대다. 과연 셰익스피어 당대에 이 연극을 보던 런던의 관객들은 이 극에서 무엇을 봤을까? 관객들의 시대는 르네상스 시대다. 이성적이고 실행력있는 남자가 당대의 대세 아니었던가. 참회기도하는 도중에 죽이면 천국에 갈까봐 걱정해서 등 뒤에 칼을 못 꽂는 성격을 가진 남자는 군주로서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을 것 같다.

 

오독인지도 모르겠다만, 내가 <햄릿>에서 본 것은 중세에서 근대로, 절대 왕정기로 이행하는 영국의 모습이다. 그리고 맡은 것은 군국주의와 여성 혐오의 역겨운 냄새.

 

*** 기타

햄릿은 어머니 거트루드 왕비에 대한 혐오를 일반적 여성 혐오로 확장하여 오필리어를 공격한다.

이 부분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관련 아동청소년 심리 쪽으로 풀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소년들이 성인남성의 세계로 넘어가면서 일시적으로 어머니에 대한 반발과 여성성에 대한 혐오를 거쳐가는 시기가 있다고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그렇다면 햄릿, 그는 성인남자가 덜 된 모지리로서,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 )

 

먹을수록 식욕이 더 커지듯이

그렇게 채 한달도 못 되어 -

생각하지 말자,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로다. (중략)

그토록 능란하게 근친상간의 잠자리로 달려가다니!

- 32쪽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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