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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 욕망의 근원과 변화
난 멜링거 지음, 임진숙 옮김 / 해바라기 / 2002년 3월
평점 :
절판
구석기 인류의 수렵시절부터 현재까지 인간 역사와 고기의 관계를 고찰한 흥미로운 책이다. 책은 얊지만 종횡으로 방대한 지식을 담고 있다. 참고 문헌과 주석이 충실하여 더 알아보고 싶은 것은 맘껏 찾아 읽을 수 있다,,,, 그런데 거의 국내 번역된 것이 없다. <식인과 제왕>, <육식의 성정치>외에는 다 독일어 원서다. 아놔, 독일어, 독일어,,,, ㅠㅠ
내용은 이렇다. 남녀구별 없이 몰이식 사냥으로 고기를 구해 비교적 평등하게 나눠 먹던 구석기 시대가 가고, 정착 농경의 시작으로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육식은 통제되기 시작하며 남성 지배자의 고기 분배 권력이 강화된다. 고기는 신에게 제물로 바치고 나눠 먹는 신성한 음식이 되는데, 이는 르네 지라르의 희생양 이론에 나오듯, 스스로 짐승에게 먹히도록 던져주던 집단 내 구성원에 대한 죄의식 씻김과 관련있다. 제물이 가축이든 인간이든 기본은 같다. 산업화 이후 고기를 통한 지배는 사라진 것 같지만, 가난한 나라의 들판과 초원을 이용, 자국민에게 고기를 공급한다는 점에서 고기를 통한 지배는 글로벌화되었다. 여기까지야 그려러니 하는데, 재미있는 것은 마지막 5장. 변함없는 것은 고기를 둘러싼 여성의 위치. 여성은 고기 섭취를 제한받거나 금지당하면서 또한 남성에게 먹히는 고기 역할을 한다. 이 부분은 내가 흥미를 가지고 이 책에서 찾아보길 원했던 내용이었다. 사실, 여성이 초컬릿 등 달콤한 음식을 좋아하고 고기를 즐기지 않는다는 통념 바탕에는 권력 관계가 깔려 있다고 나는 그동안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여성에게 고기 섭취를 금지하고 박탈한 이성적인 근거들은 역사가 진행되면서 ‘미식가적인 억압’의 형태로 발전되었다. 그 억압에 내재하는 권력 관계는 남성들뿐만 아니라 여성들에게도 내면화되었다. 종교에서도 이 가부장적인 고기 시스템이 받아들여졌다. 고기는 (남성) 신들이나 지배 계층, 즉 성직자, 추장 혹은 왕들과 전사들의 음식으로서 상품 내지는 남성의 거래 형태의 상징이었으며, 여성들은 이에 거의 참여할 수 없었다. 여성들은 흔히 이런 고기 분배 의식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
- 본문 66쪽에서 인용
남녀간의 성의 특징에 따른 노동의 분배와 수렵 채집 활동에서 성별간에 주어진 과제의 엄격한 분리에서, 고기를 먹는 남성상과 주로 식물성 음식을 먹는 여성상이 생겨났다.
- 본문 167쪽에서 인용
거의 모든 문화에서 성욕과 육체의 합일에 대한 언어 사용은 영양 공급과 관련된 언어와 유사하다.
- 본문 173쪽에서 인용
실제로 동물을 성공적으로 순화시키는 것과 여성을 ‘집안의 동물’로 변화시킴으로써 ‘남녀간의 성의 투쟁’이 결정된 시기는 일치한다. 즉, 동물과 여성을 길들이는 시기는 대략 농경 사회로 진입하는 과도기에 이루어졌다.
- 본문 76쪽에서 인용
현재 절판이지만 중고 매장에 책이 몇 권 나와 있다. 사서 읽을만한 책이다. 특히 구석기 신석기 시대 역사와 페미니즘 쪽, 가부장제 기원 공부하는 분들은 꼭 읽어 보시길. 신석기 시대 농업 혁명이 일어나면서 동물을 가축으로 길들이기와 여성을 억압하는 역사가 병행되어 진행되었다는 것, 계급이 발생하고 노예제가 시작하면서 여성을 가내 노예화하는 역사도 병행되었다는 것 관련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부분은, 서구에서는 전 세기에 이미 나온 논의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세계사 통사에 안 실리고 있다. <사피엔스>나 <좌파세계사>등 서구 세계사 번역서에서는 선사시대에서 이 부분 언급해주고 있다. ) 더불어, <남자들은 왜 싸우려 드는가>와 <여신의 언어> 등 마리야 김부타스의 올드 유럽 여신 이론 기반한 책들과 함께 읽어 보시길. <육식의 성정치>와 <동물 홀로코스트>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