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절대 군주는 어떻게 살았을까? - 근대 민음 지식의 정원 서양사편 8
임승휘 지음 / 민음인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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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지만 알찬 책이다. 중세 봉건제 붕괴 이후 근대 시민 국가로 가는 과정의 과도기적 성격으로 간략히 치부되는 절대왕정시기를 훑어보기에 좋은 입문서이다.

 

제목과 달리, 유럽의 웅장한 궁전에서 펼쳐지는 절대군주의 사생활 위주가 아니다. 이 책은 절대군주의 정의, 탄생 배경, 주권에 대한 이론 등 충분한 역사, 사회 배경 설명 후에 프랑스와 프로이센의 절대 왕정을 다룬다. 물론 태양왕 루이 14세의 베르사유 궁전 생활이 가장 많이 등장하기는 한다.

 

대개 절대 왕정의 성립 이유로, 스스로 무장하여 독립적 생활을 했던 중세 기사 귀족의 몰락을 가져온 총포류의 등장과 상비군 제도를 든다. 이제는 거의 상식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절대 왕정의 몰락에 대해서는 혁명이나 시민 계급의 성장 등을 들며 어물쩍 넘어가버리는 역사서가 많다. 이 책은 바로 그 점을 집중척으로 파헤쳐준다는 점에서 좋았다. 특히 절대 왕정시기 프랑스의 경우, '짐은 곧 국가다'하는 식의 왕의 신격화와 절대 왕정을 뒷받침한 관료제(정확히 말해 관료제의 오용)가 오히려 왕정의 몰락을 가져 왔다는 점!

 

그러나 국왕을 신성한 존재롤 부각시키려는, 그래서 모든 제약에서 해방되어 오직 신에게만 책임을 지는 절대 군주를 만들려는 야심은 분명히 시한폭탄과 같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국왕이 살아 있는 신이 되면서 분명 정치적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중략) 문제는 왕의 신격화를 통한 절대주의의 완성이 불가피하게 관료제를 통한 권력의 공적 기구화와 결부되었다는 점이다. 애초에 왕의 개인적이고 사적인 의도로 추진된 국가였지만, 개인적이고 사적인 통치권은 점차 공적인 통치권으로 변모하였다. (중략) 통치 기구가 공공화되면서 왕실과 왕가는 그것의 한 기구로 전락하고 결국 아무것도 아닌 처지로 떨어질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주권자의 신격화는 그의 사라짐에 대한 예고편이었다.

- 본문  51쪽에서 인용

 

의의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바로 관료제인데, 여기에 관련하여 프랑스에 존재했던 '폴레트 세'도 흥미롭다. 이 독특한 세금은 관직 보유자가 관직 매입 가격에 대한 일정 비율의 액수를 매년 세금으로 납부하면서 이에 대한 대가로 관직의 상속 또는 매각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는 왕정의 세금 수입를 안정적으로 늘리고 관료직에 대한 대귀족의 영향을 배제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도입되었지만, 결과적으로 무의미한 관직의 증가와 관직의 완벽한 사유 재산화를 초래했다. 관직을 보유한 자들은 이제 왕정에 대해 더 큰 독립성과 자율성을 갖게 되었고, 이는 절대 군주의 영향력을 감소시키고 부패의 만연으로 이어졌다. 결국 왕은 혁명을 통제할 수 없게 되어 스스로의 몰락을 손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된 셈.

 

이렇듯 이 책은 얇지만 잘 몰랐던 정보의 액기스를 다루고 있어 읽기 좋았다. 부록으로 영국이 대륙의 나라들과 다른 길을 간 과정을 다룬 부분도 유익하다. 맨 뒤에는 더 읽어 볼 책들과 봐야 할 영화를 소개하고 있다. 이 시기의 사극 영화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이 책은 절대적으로 유익하다. 

 

민음사는 쓸데없는 선인세 낭비와 출혈 판매보다 이런 국내 젊은 연구자의 인문 교양 시리즈에 치중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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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와 거지의 비밀 - 산업자본주의와 노동자계급의 형성 퍼플북 2
장귀연 지음 / 한신대학교출판부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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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 읽다보면, 세상에 나랑 같은 발상을 갖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 꽤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블로그에서도 종종 그런 생각을 하는데, 이렇게 책으로 (내 책 보다) 먼저 써서 세상에 나온 성과물을 접할 때는 반갑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하다. 이런, 내 노트에, 임시보관함에 빡빡히 담아놓은 내 아이디어는 어쩌란 말인가! 이 분이 먼저 쓰셨잖아! 나 <집 없는 아이>랑 홈즈 시리즈는 <백마 ~> 2편에, <아홉살 인생>은 우리나라 편에 쓰려고 다 구상해 놓았는데! ㅠㅠ

 

(진정하고,,,, ) 이 책은 우리가 어릴 적 읽었던 동화를 바탕으로 산업자본주의와 노동자계급의 형성 과정의 역사를 쉽게 풀이해주고 있는 책이다. 자본주의나 노동 계급 이야기만 하면 빨간 색안경을 쓰고 펄쩍 뛰는 분들도 있다만, 사실 그런 이야기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지배하는 원리와 불평등의 양상이 만들어지는 과정, 객관적 역사 사실 나열 그 자체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지배하는 방식의 기본적인 틀을 파악하지 못하면 평생 이 틀의 문제를 보지 못하고, 당연히 아무 문제도 해결할 수 없지 않은가? 저자는 이런 의도룰 갖고 16세기 초 영국의 <왕자와 거지> 부터 20세기 후반 우리나라의 <아홉살 인생>까지, 산업자본주의 발달사와 노동자계급 형성사를 서술한다.

 

산업노동사회학을 전공하시고 현재 강단에 계신 분인데, 참 사고가 유연하시다는 생각이 든다. 그 분야 전공자들 중에서 그 누구가 동화 속 배경을 바탕으로 노동 문제를 강의하고 책으로 낼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그래도 전공은 전공인지라, 저자는 <왕자와 거지>에 등장하는 부랑민들에서 인클로저로 토지에서 유리되어 예비 노동자군을 형성하게 된 과정을 날카롭게 잡아낸다. 나는 거기까지 미처 보지 못했었다.

 

문장 표현이 조금 아쉽고, 책 제목은 매우 아쉽다. 좋은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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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의 역사
로리 롤러 지음, 임자경 옮김 / 이지북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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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책이 내게 오는 것, 참 신기하다. <이야기 속의 구두 총집합> 뭐 이런 글이랑, 전에 쓰다가 맘에 안 들어 덮어둔 <장화 신은 고양이>를 보완해서 다시 쓸 생각을 해보고 있던 중, 선물받은 책이다.

 

신발은 대개 그 사람의 존재를 상징한다. 신데렐라나 이아손의 예에서처럼. 이렇게 알던 사항도 있고, 프랑스의 나막신 사보(sabot)를 산업혁명 초 프랑스 노동자들이 기계 속에 던져 넣었던 사실에서 사보타주(sabotage)라는 단어가 나왔다는 것처럼 이 책으로 처음 안 사항도 있다. 아, 그래서 신현림 시인의 시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가 혁명적으로 느껴지는 거였나보다.

 

<장화 신은 고양이>와 관련해서는 확실한 정보를 얻지는 못했지만 아이디어를 얻었다. 고양이가 신은 이 장화가 그냥 우리식 장화가 아니라 귀족 전사, 총사들의 부츠였다. 고양이 얘가 기사들의 부츠를 신었기에 주인인 방앗간집 세째아들을 영주로 만들어줄 수 있었던 것 아닐까? 다른 두꺼운 서양 복식사 서적을 찾아 부츠의 역사를 파 보면 뭔가 나올 것 같다. 신난다. <Where Will This Shoe Take You?>라는 이 책의 원제가 딱 내가 쓰다만 <장화 신은 고양이>의 숨은 주제에 들어맞는 듯!

 

간략해서 정보가 많지는 않고 번역이 엉망(동화를 요정 이야기라고 번역한 부분은 정말 심하다)이지만 필요한 아이디어를 얻었기에 만족한다. 영미권 논문 목록 위주이긴 하지만 참고 문헌 정보가 의외로 충실한 점도 맘에 든다. 이 책을 주신 분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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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더스 - 세계사를 바꾼 튜더 왕조의 흥망사
G. J. 마이어 지음, 채은진 옮김 / 말글빛냄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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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역사상, 아니 세계 역사상 튜더 왕조만큼 후대에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긴 왕조가 또 있을까? 지금까지도 소설, 영화, 드라마 등으로 끊임없이 그 역사가 재생산되고 있는 튜더 왕조. 그러나 이 유명한 왕조는 겨우 5대 118년동안 영국을 다스렸을뿐이다. 그것도 지금의 영국(UK) 전체도 아니고 잉글랜드만을.

 

사실 이 왕조는, 이 왕조의 마지막 왕인 엘리자베스 1세 이후에 영국이 부상했기에 상대적으로 통치술이 대단한 왕조였다는 평가를 받는 면도 있고, 근대 초 중앙집권이 시작되며 본격적인 영국 의회 정치가 펼쳐지기 전인 과도기적 절대왕정 시기에 존재했던 왕조였기에 실제보다 그 업적이 더 부풀려져 보이는 점도 있다. 마침 세계를 호령하던 에스파냐가 쇠퇴기에 있었던 점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또 지금까지 이어지는 이 왕조의 대중적 인기에는 당시 헨리 8세와 엘리자베스 1세의 적절한 이미지 정치, 선전술도 한몫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왕조를 유명하게 한 것은 헨리 8세의 결혼 편력이다. 그와 여섯왕비,  세 왕비의 소생인 이후 왕과 여왕의 존재와 그에 얽힌 에피소드들이다. 그런데 이 책은 튜더 왕가의 인물을 다룬 기존의 책에서 많은 양을 할애하는 이 부분을 간략히 서술한다. 물론 헨리8세의 결혼 편력을 다루기는 하지만 연애담보다 당시 교황청과의 관계, 그리고 대륙의 에스파냐와 프랑스와의 대외관계 위주이다. 이후 에드워드 6세, 메리 1세, 엘리자베스 1세를 다루면서도 역시 그런 면에 중점을 두고 서술한다. 엘리자베스 1세에서도, 기존의 다른 책과 달리 그녀의 업적 미화 소개는 없다. 저자는 냉정하게 '그녀는 단지 현상을 유지하고 오래 살아 남는 것만을 원했다'라고 쓴다. 지금까지 그녀 시대의 업적이라고 알려진 것은 선대부터 키워온 신하귀족들의 업적으로 서술한다.

 

여튼, 튜더 시대 영국의 종교개혁사, 대외관계를 자세히 보는데는 대중 역사서 중 가장 괜찮은 책이다. 헨리 8세가 교황청과 관계를 끊을 당시 대륙 국가들이 십자군을 조직해 종교전쟁을 벌이지 못한 이유를 동쪽의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존재까지 들어서 이야기하는 점은 정말 마음에 든다. 물론, 오스만 제국의 통치 부분을 서구인의 편견으로 서술한 부분이 보이기는 하지만, 뭐 작은 옥의 티이다. 추천할 만한 책이다. 700쪽이 넘는 두께가 좀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그리 전문적이지 않아 편히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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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순간의 인문학
한귀은 지음 / 한빛비즈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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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따라 나오는 책은 죽어도 안 읽는 나름 지조가 있는 나는, 힐링이라든가 인문학이라는 말이 들어간 책들을 죽어라고 피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일단 집어들어 한 문단 읽어보고, 나는 그동안의 내 지조를 과감히 버렸다. 읽는 내내 저절로 헤프게 입이 벌어지며 감탄이 나왔다. 아, 이 책, 참 좋은 걸, 향기로운 걸.

 

하지만 홀딱 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다 읽는 데에는 오래 시간이 걸렸다. 어려워서가 아니다. 한 문장 읽고나면 저절로 가슴을 누르며 심호흡하게 되고, 한 문단 읽고 나면 책을 놓고 먼 산을 바라보게 된다. 한 꼭지 읽고 나면 생각이 많아져 더이상 읽어낼 수가 없다. 이 책은 내게 통독하기 힘든 책이었다.

 

저자가 궁금해졌다. 저자는 영화와 드라마의 예를 들어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면서도 꼭 필요한 순간에 관련 개념을 설명하고 책을 소개한다. 현학적이지도 않고 전체 내용과 겉돌지도 않는다. 저자의 필력이 대단하다. 한편 이런 글의 특성상, 좀더 자신의 사적인 경험이 더 많이 소개될 법도 한데, 저자는 두리뭉실하게 그 정도 나이의 사람이 겪었을 만한 보편적인 이야기만 하며 자신을 숨긴다. 절제를 잘 하든가 지극히 내성적이던가,,, 아니면 영악한 글쓰기에 도통한 사람이든가.

 

이리저리 생각할 점이 많고 배울 점도 많은 독서였다. 저자의 다른 책도 찾아 읽어봐야겠다. 멋진 작가를 한 분 알게 되어 기쁘다.

 

지적이면서 감성적인 남녀가 만나 대화를 나눌 때 생기는 인문학적 감성의 시너지 효과는 실로 대단하다. 둘 사이에는 지적ㆍ감성적 긴장뿐만 아니라 오묘한 성적 긴장까지 가세되어 더욱 매혹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물론 그 풍경은 당사자들의 내면의 풍경이다. 제삼자들은 그들의 모습에 아예 관심이 없거나, 만약 그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기라도 한다면 그 지적ㆍ감성적 과잉에 혀를 내두를지도 모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중요한 것은 내면 풍경.

둘이 연인이면 더 좋겠지만 그런 행운을 가진 이는 퍽 드물다. 간헐적이라도, 일회적이라도, 그런 만남과 대화를 가져본 경험이 있다면 그 시간에 대한 그리움과 후유증에 대해서 잘 알 것이다. 그것은 마치 흠뻑 사랑해보지도 못하고 헤어진 연인을 생각할 때와 비슷해서, 꼭 물을 들이킬 필요가 없을 정도의 애매한 갈증을 남긴다. 그 애매한 갈증이 인문학에 더 가까이 가게 함은 물론이다.

- 본문 8쪽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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