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순간의 인문학
한귀은 지음 / 한빛비즈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유행따라 나오는 책은 죽어도 안 읽는 나름 지조가 있는 나는, 힐링이라든가 인문학이라는 말이 들어간 책들을 죽어라고 피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일단 집어들어 한 문단 읽어보고, 나는 그동안의 내 지조를 과감히 버렸다. 읽는 내내 저절로 헤프게 입이 벌어지며 감탄이 나왔다. 아, 이 책, 참 좋은 걸, 향기로운 걸.

 

하지만 홀딱 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다 읽는 데에는 오래 시간이 걸렸다. 어려워서가 아니다. 한 문장 읽고나면 저절로 가슴을 누르며 심호흡하게 되고, 한 문단 읽고 나면 책을 놓고 먼 산을 바라보게 된다. 한 꼭지 읽고 나면 생각이 많아져 더이상 읽어낼 수가 없다. 이 책은 내게 통독하기 힘든 책이었다.

 

저자가 궁금해졌다. 저자는 영화와 드라마의 예를 들어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면서도 꼭 필요한 순간에 관련 개념을 설명하고 책을 소개한다. 현학적이지도 않고 전체 내용과 겉돌지도 않는다. 저자의 필력이 대단하다. 한편 이런 글의 특성상, 좀더 자신의 사적인 경험이 더 많이 소개될 법도 한데, 저자는 두리뭉실하게 그 정도 나이의 사람이 겪었을 만한 보편적인 이야기만 하며 자신을 숨긴다. 절제를 잘 하든가 지극히 내성적이던가,,, 아니면 영악한 글쓰기에 도통한 사람이든가.

 

이리저리 생각할 점이 많고 배울 점도 많은 독서였다. 저자의 다른 책도 찾아 읽어봐야겠다. 멋진 작가를 한 분 알게 되어 기쁘다.

 

지적이면서 감성적인 남녀가 만나 대화를 나눌 때 생기는 인문학적 감성의 시너지 효과는 실로 대단하다. 둘 사이에는 지적ㆍ감성적 긴장뿐만 아니라 오묘한 성적 긴장까지 가세되어 더욱 매혹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물론 그 풍경은 당사자들의 내면의 풍경이다. 제삼자들은 그들의 모습에 아예 관심이 없거나, 만약 그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기라도 한다면 그 지적ㆍ감성적 과잉에 혀를 내두를지도 모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중요한 것은 내면 풍경.

둘이 연인이면 더 좋겠지만 그런 행운을 가진 이는 퍽 드물다. 간헐적이라도, 일회적이라도, 그런 만남과 대화를 가져본 경험이 있다면 그 시간에 대한 그리움과 후유증에 대해서 잘 알 것이다. 그것은 마치 흠뻑 사랑해보지도 못하고 헤어진 연인을 생각할 때와 비슷해서, 꼭 물을 들이킬 필요가 없을 정도의 애매한 갈증을 남긴다. 그 애매한 갈증이 인문학에 더 가까이 가게 함은 물론이다.

- 본문 8쪽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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