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위험한 책 - 로마 제국부터 나치 독일까지 <게르마니아> 오독의 역사
크리스토퍼 B. 크레브스 지음, 이시은 옮김 / 민음인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가장 위험한 책>이라는 제목, "어떻게 한 권의 책이 600만 명을 학살하게 되었나"라고 크게 적힌 띠지, 한 권의 책을 입수하기 위한 나치 친위대원들의 빌라 폰타데모 습격 과정이 영화의 오프닝처럼 표현된 이 책의 프롤로그,,,, 하하, 여기에 낚이셨는가? 

 

이 책을 읽어가면서 책 구입 당시의 기대와 달라 살짝 당황하거나 아예 이 책 읽기를 포기할지도 모르실 분들을 위해 이 글을 쓴다. 이 책은 <게르마니아> 본 책과 필사본이 세상에 등장한 경위와 <게르마니아> 오독의 역사를 건조하게 추적한 책이다. 결코 흥미진진한 픽션적 성격을 가미한 대중 역사물이 아니다. 물론, 이 책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고 읽을만하다. 독자 자신이 이 책을 읽는 목적을 분명히 하고 그에 맞춰 기대를 하고 읽는다면. 그러나 기본적인 독일사와 대략의 유럽사를 모른 상태에서 읽는다면 따분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바루스 전투에 대해 모른다면, 아르미니우스(헤르만)이라든가 토이토부르크 숲이 뭔지 모른다면, 유태인 학살 과정의 뉘른베르크법을 모른다면, 게르만 신화와 바그너 악극의 관련성을 모른다면,,, 이 책은 "낚였다!"라는 기분만 들게 만들 수도 있다.

 

<게르마니아>는 고대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가 게르만족에 대해 쓴 역사책이다. 당시 타락해가는 로마 지배계층에 경고하기 위함인지 타키투스는 로마의 안보를 위협하는 적인 게르만족의 야만성과 더불어 육체적 강건함과 전쟁시의 용맹함 등 미덕 또한 기록해 두었다. 이 책은 잊혀졌다가 근대 독일 통일 운동 시기에 독일민족 지식인들 사이에서 재조명 받게 된다. 고대 게르만의 사료가 양적으로 매우 부족한 실정에 게르만족의 장점이 정확히 문자로 기록된 이 책은 곧 민족이식이 없는 분열된 독일 민중에게 민족적 자긍심을 불어넣게끔 이용된다. 중세를 거치면서 필사되는 과정에 이미 약간의 왜곡이 가해진 이 책은 프로이센 주도의 통일과 나치 시절을 거쳐 대대적으로 왜곡되고 의도적으로 오독된다. 이러한 <게르마니아>의 오독 과정과 왜곡 실례 등을 저자인 고전학 교수 크레브스는 해박한 언어 능력을 가지고 방대한 자료를 추적하여 독자에게 전달해준다.

 

사실 고대의 게르만족이란 매우 추상적이고 범위가 넓은 민족 개념이었고, 현대의 독일 민족울 비록 '게르만'이란 단어로 표기한다고는 해도 그때 그 고대 게르만족의 직계 순혈 후손이라고 볼 수도 없다. 히틀러나 나치 친위대 총사령관 히믈러, 그외 독일의 권력자들이 그렇게 주장했더라고 해도 이는 역사적 근거가 있어서 한 이야기가 아니라 단지 자신들의 현실적 이익을 얻기 위해, 자신들의 주장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역사적 권위를 지닌 <게르마니아>를 인용했을 뿐이다. 결국 위험한 것은 고대 문헌인 <게르마니아> 책 자체가 아니라 책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 보고 한 구절을 침소봉대하여 이용하는 현재의 독자들이었다.

 

'낚이셨는가'라며 건방지게 이 글을 쓰기는 했지만, 사실 나도 이 책의 진가를 제대로 알고 읽지 못했다. 라틴어와 독일어를 모르기에, 저자 크레브스가 필사본 변형 과정을 추적한 부분의 묘미를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책 읽기를 주저하거나 겁낼 필요는 없다. 대중 역사책 읽기에서 중요한 것은 세부사항의 정확한 이해라기보다 전체를 관통하는 저자의 주제의식 느끼기라고 난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좋은 대중역사서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확실한 주제의식, 즉 왜 우리가 이미 지난 과거 역사를 알고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독자에게 명확히 주기 때문이다.

 

비단 <게르마니아>에 대한 해석 뿐이겠는가. 과거 역사 해석을 놓고 벌어지는 국가별 분쟁이나 겨우 스포츠 행사일뿐인데도 과도한 민족 이데올로기의 주입을 유도하는 지배계층의 행태를 보라. 자신이 속한 계급의 이권을 정확히 드러내는 정치인의 역사 발언을 보라. 역사 왜곡과 민족 신화를 주입하여 자신들의 이권을 챙기고 600만 유태인을 학살한 나치는 지금도 우리 곁에 널려 있다. 이렇듯 과거 역사를 해석하고 이용하는 시각을 보면 현재의 각 집단간의 이권얽힘이 보여 그들의 정체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역사서 독서, 매우 유익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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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로 보는 악과 악마
이경덕 / 동연출판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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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보면, 일부러 찾아 읽은 게 아니라 내가 관심가는 분야를 읽었을 뿐인데도 계속 만나게 되는 저자, 역자분이 있다. 이 책의 저자이신 이경덕씨도 그렇다. 처음에는 내가 좋아하는 강상중 선생님 책들의 역자로만 알았다. 그런데 신화, 종교, 일본 역사 쪽으로 읽어나갈수록 자꾸 이분을 만나게 되지 뭔가. 아무래도 내가 독자로서 스토킹에 나서야 할 저자분이신 것 같다.

 

책은 전반부에서는 '악이란 무엇인가'하는 철학적인 문제를 놓고 신화, 철학, 고대 종교에서의 악의 개념을 다룬다. 후반부에서는 일반인들이 갖는 악의 이미지를 생활속에서 살핀다. 민담이나 풍습, 문학작품을 통해서. 내겐 후반부의 여러 사례들이 훨씬 재미있었다.

 

책이 두껍지는 않지만, 담고 있는 내용이 워낙 방대해서, 요약 소개가 불가능한 책이다. 그래도 인상깊은 부분을 잠깐 적어 보겠다. 신화 쪽에서 악의 탄생을 서술한 부분이다. 신화는 인간이 자연을 객관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즉 고대의 인간이 자연과 분리되면서 자연과 신을 객관적으로 상정하고 사고하기 시작하는 데에서 신화가 탄생했다는 말이다. 천둥벼락이 치면 천둥의 신을 만들고 하는 식으로. 이 과정에서 예측할 수 없는 자연의 공포가 악신으로 인격화된다. 그런데 이 인간과 자연의 분리과정 때 일어나는 긴장이 신화에서는 선과 악을 각각 대표하는 쌍둥이의 싸움으로 표현된다는 것! 수많은 종교 경전과 신화 속에 등장하는 쌍둥이의 갈등이 바로 그런 거였다니, 정말 흥미롭다. 또 고대사에서 전쟁에 패배한 종족의 신이 악마의 지위로 전락하여 승리한 종족의 신화나 민담 체계에 편입되어 악마가 탄생하기도 했다라는 설명도 재미있었다. 악은 선에 대응해서 그려지므로 다신교에서의 악마들보다 유일신교에서의 악마들이 더 강력하다는 것도 역시 재미있다. 물론 내게 제일 흥미로운 부분은 몽마(인쿠부스, 스쿠부스), 늑대인간, 마녀, 흡혈귀 같은 서양 중세 민담 속의 소악마들 이야기였다.

 

이 책 자체는 좀 산만하다. 논문 같은 느낌이다. 중언부언하는 내용도 조금 있다. 자신이 아는 방대한 지식을 어떻게 담아낼지몰라 저자 스스로 글쓰면서 곤란해한 느낌이 든다. 이 책은 저자분이 30대 후반에 쓰신 책이다. (한 저자분을 스토킹해 읽으면서 이 분이 어느 연령대에 이 책을 쓰셨는지, 그 앞뒤로 비슷한 소재나 주제를 가지고 쓰신 다른 책의 수준은 어떤지 비교하면서 읽는 버릇이 있음) 이 저자분은 40세 이후로 대중적 문장 전달력을 갖게 되신 듯 하다. 저자분이 40대 초반에 쓰신 <우리곁에서 만나는 동서양 신화>와 비교하면 이 책은 (죄송하지만) 이 책은 난삽해 보일 정도로 전달력이 아쉬운 편이다.

 

그렇지만 동서양 신화와 종교, 문학을 넘나들면서, 기성 종교와 민중 신앙까지 넘나들면서 (가톨릭과 오컬티즘 쪽  같은) 버라이어티한 예를 들어 어려운 주제를 패기있게 다뤄 주신 점은 정말 감탄스럽다. 나는 이 책에서 여러 방면으로 두고두고 많은 도움을 받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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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앞에서 본 중세 - 책, 안경, 단추, 그 밖의 중세 발명품들, 역사도서관 003 역사도서관 3
키아라 푸르고니 지음, 곽차섭 옮김 / 길(도서출판)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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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재미있다, 재미있다! 어떻게 역사서인데, 강단 사학자인데 이런 서술이 가능할까? 이 책을 읽으면서 감탄하고 즐거워하고 샘나서 아토피 돋은 피부가 마구 가려웠다. 아, 이렇게 위의 두 문장을 쓰고 나니 더 쓸 말이 없다. 약간 또라이 같지만, 책에다 대고 이렇게 말해주고 싶을 정도다. 당신, 왜 이제야 내 앞에 나타난 거죠? 왜? 왜? 왜? 남자라면 넥타이 잡고 목이라도 조르고 싶다.

 

(계속 이렇게 쓰다가는 친구분들이 걱정하실 것 같군. 워워, 진정하고 계속)

 

키아라 프루고니의 이 책은 서양 중세의 발명품들의 역사를 가볍고 재미있게 들려준다. 안경의 발명자를 추적하는가 하면 중세 성화 속에 등장하는 안경을 놓고 안경의 변천사를 들려준다. 곧이어 대학, 마취약, 대학 교과서와 관련한 책 제작술, 활판 인쇄술의 발명으로 이야기는 거침없이 뻗어간다. 마취약과 아라비아 숫자와 영(0)의 사용과 전파 과정,  카드, 타로 카드, 체스 등의 중세에 발명된 오락과 잡기들의 역사, 카니발과 사순절의 관계, 연옥의 탄생과 도시의 시간, 시계의 발명,  도레미파솔라시 음계의 이름이 붙게된 경위, 단추와 탈착식 소매의 발명, 사치품인 팬티와 바지, 스타킹 착용의 얼마 안 되는 역사까지 중세 발명품들의 소소한 역사가 당시 민중들의 삶과 함께 펼쳐진다. 저자는 마치 구연 동화 들려주시는 할머니처럼 구수하게 대상을 넘나들며 서술하시는 능력자이시다. 포크의 사용사를 말하다가 포크 보급에 지대한 공헌을 한 마카로니의 역사로 넘어가고, 다시 마카로니의 재료인 밀가루 이야기로 넘어갔다가는 밀가루를 만드는 방앗간과 중세의 수력 풍력 사용을 논한다. 재미있어서 미칠 지경이다! 그리고 읽다보면 어느새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중세를 암흑기로만 보고 중세의 가치를 간과했는지를 깨닫게 된다.

 

내가 그동안 조금이나마 읽었던 유럽사의 저자들은 대부분 영, 프, 독 국적이었는데 이렇게 이따금 이탈리아 사학자의 책을 읽어보면 서술방법이나 접근방법에서 같은 미시사, 생활사라 해도 매우 개성적인 스타일을 지닌다는 느낌이 든다. 이 부분은 내 공부가 부족해서 아직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저자분이 이탈리아 중심의 중세 역사를 말하고 있는 점은 좀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하겠다. 내가 보기에는 나침반이나 국수, 화약의 발명 등에서 동양의 영향을 언급하지 않는 점은 좀 아쉽다.

도서출판 길의 '역사 도서관'시리즈에 속한 책들은 정말 매혹적이다.현재까지 나온 9권 중 이 책 <코 앞에서 본 중세>와 <마녀와 베난단티의 밤의 전투>, <중국의 서진> 이렇게 3권을 읽었는데 읽는 동안 눈 깜빡이는 시간도 아까울 정도로 읽고 또 읽고 싶었다. 마지막 장을 읽고 덮고나니 저자분과 역자분 모두에게 샘이 나서 몸에 열이 오르는 것 같다. 멋진 독서 경험이었다. 아, 이런 헛소리 쓸 시간에 계속해서 더 읽어야지! (혹 오해 있을까봐 밝힘. 3권 모두 나 스스로 구입해 읽은 책임. 심지어 <마녀와 베난단티의 밤의 전투>는 품절되었기에 중고서점에서 정가보다 더 비싸게 주고 어렵게 구해 읽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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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기사 윌리엄 마셜 한길 히스토리아 3
조르주 뒤비 지음, 정숙현 옮김 / 한길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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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아날 학파의 제3세대, 조르주 뒤비의 책이다. 12-13세기에 지금의 영국과 프랑스에서 활약한 기사인 윌리엄 마셜의 생애를 다루고 있는데, 저자의 명성에 지레 겁먹지 않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대중적 서술 수준이어서 읽기 편했다.

 

1145년 경, 궁정 기마 관리 장교였던 존 마셜과 솔즈베리 백작의 여동생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난 윌리엄은 1159년경 노르망디의 친척 기욤 드 탕카르빌에게 맡겨진다. 기사 수업을 마친 윌리엄은 1167년 기사로 서임된다. 장자가 아닌 그는 상속을 기대할 수 없었기에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야만 했다. 또 원래 대단한 가문 출신도 아니었다. 그는 마상시합을 통해 부를 획득하며 불패의 기사로 유명해진다. 물론 실제 전투에도 참전한다. 이 과정을 거쳐 그는 신분상승을 이룬다. 헨리, 헨리2세, 사자왕 리차드, 존 왕, 헨리 3세에 이르기까지 플랜태저넷(앙주, 앤저빈) 왕조의 다섯 왕을 섬기고 나중에는 어린 헨리 3세의 섭정의 자리에까지 오른 것이다. 물론 이 승승장구 과정에는 부유한 상속녀인 아내와의 결혼이 결정적이었다. 여튼 그는 성공한 기사로서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고 그의 생애를 음유시인의 노래를 통해 후대에 전하게 된다. 저자는 이러한 윌리엄의 생애를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에서 시작하여 찬가를 분석하고 기사 수업과 결혼 과정, 세 나라에 걸친 서약 과정(그의 영지가 분산된 관계로, 윌리엄은 영국, 아일랜드, 프랑스 왕과 삼중의 서약을 한 봉신이었다)의 서술을 통해 흥미롭게 보여준다.

 

특히나 내게 재미있는 것은 윌리엄의 생애를 통해본 당시 중세 기사도의 실상과 결혼 제도이다. 이 부분은 히스 레저가 출연한 영화 <기사 윌리엄>을 통해서 그 일면을 볼 수 있기도 하다. 중세의 돌아다니는 편력기사들은 마상시합을 통해 금전적 이득을, 상속녀 귀부인과의 결혼을 통해 신분 상승과 영지획득을 꿈꾸었던 것이다. 그 외 기사도란 미명 아래 행해지는 약탈과 증여 경제 부분도 재미있었다. 학문적으로는 잘 몰라도, 그냥 아날학파의 책들은 읽기에 다 재미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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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에 비친 유럽 유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1
조셉 폰타나 지음, 김원중 옮김 / 새물결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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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두 개 정도 더 주고 싶은데 줄 수가 없어 아쉬운 책. 결론부터 말하자면 역사에 관심이 많은 친구분들께 절판되기 전에 얼른 주문해서 소장하시라고 권해 드리고 싶다. 이 시리즈 <유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총서는 유럽 10개국 유명 역사가들의 최근 연구 경향을 반영하여 나 같은 독학자에게 가이드 용으로 딱인 책인데, 아쉽게도 금방 절판되기 때문이다. (내가 <유럽의 음식 문화>를 구해 읽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럴 수가, 내가 구하자마자 재판 찍어 다시 예스에 들어왔다! )

 

게다가 이 책은 친절한 통사식 설명이 아니라 독자들이 기본 역사 사항은 다 안다는 전제하에 저자분이 종횡무진 역사 논평을 하는 책이므로 일종의 "키재기 자"와 같은 역할을 한다. 말하자면 '오늘 이 책의 한 챕터를 읽어보고 이해가 안 되었으면 조용히 덮어둔다. =>그러다 몇 달 후, 각국사와 다른 역사서를 읽어 본 후에 다시 이 책의 같은 부분을 읽어보면 갑자기 책에서 다룬 주제의 배경 전후 사항이 술술 이해되고 저자의 논평이 어떤 맥락에서 나온 말인지 이해가 된다. => 아, 그동안 내가 성장했구나!' 이런 식이다. 이렇게 이 책을 읽고 또 읽다 보면 마치 어린 시절 부모님께서 벽에 빗금 그어 1인용으로 만들어주신 키재기자를 바라보고 있는 기분이 든다. 이런 책은 꼭 소장하고 1년에 한 번씩 읽어 주어야 한다. (내 경우엔 2013년 현재 중세 독일 유럽사 부분은 잘 이해되지만 스페인사 부분은 아직도 헤매고 있다. )

 

이 책의 저자인 조셉 폰타나는 스페인의 마르크스 주의 역사학자의 대표격이다. 저자분은 유럽의 형성과정을 9개의 거울을 통해 보여준다. 유럽의 지배 엘리트들은 자신들을 규정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남과 구별하기 위해 비춰 보는 거울로서 '야만''기독교''봉건제''악마''촌뜨기''궁정''미개''진보''대중'의 거울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유럽의 지배 엘리트들은 기독교도, 도시민, 지식인, 남성들이 중심이 되어 각각 타자에 대한 두려움을 반사하여 자신들의 지배권력을 위협할만한 세력들을 희생시키는 문화와 제도들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들 중심의 사관은 유럽을 지배하며 놀랍게도 비유럽인들에게까지 널리 퍼져 '정설'이 되어 버린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중세의 이단에 대한 공격은 신앙이나 교리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기성 교회의 개혁을 주장했기 때문에 발생했다는 식.

 

모든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란 거울에다 자신을 비춰봄으로써 자신을 정의하고 그럼으로써 자신을 남들과 구별한다. 이것은 같은 언어를 말하고 생활 방식과 습관을 공유하는 사회에서는 간단한 문제이지만 유럽인들에게는, 특히 종교적 일체감이 깨지고 여러 속어들의 문학적 사용이 증가 추세에 있던 16세기 이후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1714년의 위트레흐트 조약은 유럽에서 '기독교 공화국'이란 용어로 작성된 최후의 문서였다. 이 복수의 (유럽) 민족들은 이제부터는 자체의 다양함 속에서 자기를 나타내는 표식을 확인하고, 다시 이 자신을 다른 나머지와 구별시켜주는 것을 찾아내기 위해 좀더 복잡한 일련의 거울들 속에서 자신을 비춰보아야 했다. 이제 유럽인들이 자신들을 생각하는 새로운 방식은 더이상 종교와는 상관없으며 대신 도덕적, 지적 우월성에 대한 확신에 기반을 둔 자각으로부터 생겨났다. 하지만 이런 이미지는 다시 비유럽인은 열등한 본성을 갖고 있다는 전제 위에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유럽인들이 자신들을 규정하기 위해 바라다본 거울은 이중의 면을 갖고 있었다. 인종적 차이가 보이는 한쪽 면에서는 '미개인'의 얼굴이 나타난다. 또다른 면에서는 유럽 중심적 역사관에 기반해 '원시인'의 얼굴이 보인다. 전자로부터는 인종 대학살과 노예 무역이, 후자로부터는 제국주의가 각각 나타났다.

- 본문 211쪽, '7. 미개의 거울'에서 인용

 

그렇다고 이 책의 저자는 지난 5세기간의 유럽사를 흑백논리로만 보지는 않는다. 서구 제국주의는 다 악이고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등 서구의 식민지배를 겪은 나라들을 다 선의의 희생자로 그리지도 않는다. 지금 보편적으로 말하는 유럽의 진보라는 것 역시 같은 유럽인들 대부분의 희생을 대가로 이루어졌다는 것, 그리고 피식민지배 국가의 지배계층의 문제점 역시 밝혀 준다. 무엇보다 저자는 한 역사적 현상을 단적으로 정의하지 않고 여러 가능성을 열어 서술해 주신다.

 

이런 수정주의적 관점은 사실 별로 새롭지는 않다. 그러나 일반 교양인들이 상식으로 알고 있는 유럽사 혹은 유럽 위주의 세계사에 대한 이해 수준에 비춰 보았을 때, 이런 관점은 현재까지도 매우 신선하며, 비단 역사해석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상 생활을 해 나가고 타인을 접할 때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더군다나 일본을 거쳐 온 유럽과 미국의 역사 해석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옛날옛적 역사 교과서와 대중 역사서만 읽어온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이러한 관점을 제시했다가 종종 삐딱하고 이상한 사람으로 몰려 본 나의 입장에서는 정말 이 책을 널리 알리고 싶다. 왜냐하면 이 책은 유럽인의 거울에 대한 책이자, 편향된 역사관을 갖고 있는 우리들의 거울이기도 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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