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에 비친 유럽 유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1
조셉 폰타나 지음, 김원중 옮김 / 새물결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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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두 개 정도 더 주고 싶은데 줄 수가 없어 아쉬운 책. 결론부터 말하자면 역사에 관심이 많은 친구분들께 절판되기 전에 얼른 주문해서 소장하시라고 권해 드리고 싶다. 이 시리즈 <유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총서는 유럽 10개국 유명 역사가들의 최근 연구 경향을 반영하여 나 같은 독학자에게 가이드 용으로 딱인 책인데, 아쉽게도 금방 절판되기 때문이다. (내가 <유럽의 음식 문화>를 구해 읽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럴 수가, 내가 구하자마자 재판 찍어 다시 예스에 들어왔다! )

 

게다가 이 책은 친절한 통사식 설명이 아니라 독자들이 기본 역사 사항은 다 안다는 전제하에 저자분이 종횡무진 역사 논평을 하는 책이므로 일종의 "키재기 자"와 같은 역할을 한다. 말하자면 '오늘 이 책의 한 챕터를 읽어보고 이해가 안 되었으면 조용히 덮어둔다. =>그러다 몇 달 후, 각국사와 다른 역사서를 읽어 본 후에 다시 이 책의 같은 부분을 읽어보면 갑자기 책에서 다룬 주제의 배경 전후 사항이 술술 이해되고 저자의 논평이 어떤 맥락에서 나온 말인지 이해가 된다. => 아, 그동안 내가 성장했구나!' 이런 식이다. 이렇게 이 책을 읽고 또 읽다 보면 마치 어린 시절 부모님께서 벽에 빗금 그어 1인용으로 만들어주신 키재기자를 바라보고 있는 기분이 든다. 이런 책은 꼭 소장하고 1년에 한 번씩 읽어 주어야 한다. (내 경우엔 2013년 현재 중세 독일 유럽사 부분은 잘 이해되지만 스페인사 부분은 아직도 헤매고 있다. )

 

이 책의 저자인 조셉 폰타나는 스페인의 마르크스 주의 역사학자의 대표격이다. 저자분은 유럽의 형성과정을 9개의 거울을 통해 보여준다. 유럽의 지배 엘리트들은 자신들을 규정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남과 구별하기 위해 비춰 보는 거울로서 '야만''기독교''봉건제''악마''촌뜨기''궁정''미개''진보''대중'의 거울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유럽의 지배 엘리트들은 기독교도, 도시민, 지식인, 남성들이 중심이 되어 각각 타자에 대한 두려움을 반사하여 자신들의 지배권력을 위협할만한 세력들을 희생시키는 문화와 제도들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들 중심의 사관은 유럽을 지배하며 놀랍게도 비유럽인들에게까지 널리 퍼져 '정설'이 되어 버린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중세의 이단에 대한 공격은 신앙이나 교리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기성 교회의 개혁을 주장했기 때문에 발생했다는 식.

 

모든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란 거울에다 자신을 비춰봄으로써 자신을 정의하고 그럼으로써 자신을 남들과 구별한다. 이것은 같은 언어를 말하고 생활 방식과 습관을 공유하는 사회에서는 간단한 문제이지만 유럽인들에게는, 특히 종교적 일체감이 깨지고 여러 속어들의 문학적 사용이 증가 추세에 있던 16세기 이후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1714년의 위트레흐트 조약은 유럽에서 '기독교 공화국'이란 용어로 작성된 최후의 문서였다. 이 복수의 (유럽) 민족들은 이제부터는 자체의 다양함 속에서 자기를 나타내는 표식을 확인하고, 다시 이 자신을 다른 나머지와 구별시켜주는 것을 찾아내기 위해 좀더 복잡한 일련의 거울들 속에서 자신을 비춰보아야 했다. 이제 유럽인들이 자신들을 생각하는 새로운 방식은 더이상 종교와는 상관없으며 대신 도덕적, 지적 우월성에 대한 확신에 기반을 둔 자각으로부터 생겨났다. 하지만 이런 이미지는 다시 비유럽인은 열등한 본성을 갖고 있다는 전제 위에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유럽인들이 자신들을 규정하기 위해 바라다본 거울은 이중의 면을 갖고 있었다. 인종적 차이가 보이는 한쪽 면에서는 '미개인'의 얼굴이 나타난다. 또다른 면에서는 유럽 중심적 역사관에 기반해 '원시인'의 얼굴이 보인다. 전자로부터는 인종 대학살과 노예 무역이, 후자로부터는 제국주의가 각각 나타났다.

- 본문 211쪽, '7. 미개의 거울'에서 인용

 

그렇다고 이 책의 저자는 지난 5세기간의 유럽사를 흑백논리로만 보지는 않는다. 서구 제국주의는 다 악이고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등 서구의 식민지배를 겪은 나라들을 다 선의의 희생자로 그리지도 않는다. 지금 보편적으로 말하는 유럽의 진보라는 것 역시 같은 유럽인들 대부분의 희생을 대가로 이루어졌다는 것, 그리고 피식민지배 국가의 지배계층의 문제점 역시 밝혀 준다. 무엇보다 저자는 한 역사적 현상을 단적으로 정의하지 않고 여러 가능성을 열어 서술해 주신다.

 

이런 수정주의적 관점은 사실 별로 새롭지는 않다. 그러나 일반 교양인들이 상식으로 알고 있는 유럽사 혹은 유럽 위주의 세계사에 대한 이해 수준에 비춰 보았을 때, 이런 관점은 현재까지도 매우 신선하며, 비단 역사해석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상 생활을 해 나가고 타인을 접할 때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더군다나 일본을 거쳐 온 유럽과 미국의 역사 해석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옛날옛적 역사 교과서와 대중 역사서만 읽어온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이러한 관점을 제시했다가 종종 삐딱하고 이상한 사람으로 몰려 본 나의 입장에서는 정말 이 책을 널리 알리고 싶다. 왜냐하면 이 책은 유럽인의 거울에 대한 책이자, 편향된 역사관을 갖고 있는 우리들의 거울이기도 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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