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사람에게서 힘을 얻게 마련"이라는 삶의 경험을 농축하신 분들도 많겠지만,  "나무와 풀"에서 덤으로 기운을 더 얻는 이도 있겠죠. 제가 그렇습니다. 아는 건 없어도, 제대로 돌보거나 돌봄을 받는 관계를 맺지도 못하면서 나무를 보면 사시사철 참 좋습니다. 기운을 충전받기에 고마움을 늘 느낍니다. 1년에 365일 생일이라면 365일 수목원 나들이 생일선물을 해달라고 사랑하는 이에게 조르고 싶을 지경입니다. 나무 구경을 제대로 하러 작정하고 떠났습니다. 세계에서 인정한, 주목받는 수목원. 천리포수목원으로요. 


다양한 경로로 입장권 할인 받거나, 무인발권 시스템으로 대기 없이 빠르게 티케팅할 수 있습니다. 

설레는 마음에 빨리 들어가고 싶어서 안내 지도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군요. 발길가는 대로 돌아다닐 작정이므로 사실 지도를 미리 머릿속에 채워두는 건 별 의미가 없습니다. 혼자 5시간 쯤 확보하고 올 경우라면, 지도를 꼼꼼 살피겠습니다만......


천리포수목원은 그 설립자, 민병갈님을 알고 보면 더 감동입니다. "아름다운 삶의 향기를 남긴 푸른 눈의 한국인"이라는 이 분은 미군이라는 신분으로 한국 땅을 처음 밟으셨다지요. 하지만 (만약 전생이 있다면) 마치 전생에 한국인이었듯 한국의 많은 부분이 친숙하고 못내 좋아서, 3년 동안 어머니를 설득하여 귀화하셨습니다. 그 사이 천리포수목원 부지를 매입하여 풀과 나무로 채워나가셨지요. 수목원 내, 민병갈 전시관에는 누군지 참 재치 넘치게 이 분을 일컬어 "오타꾸의 궁극을 보여준 식물계의 전무후무한 인물"이라고 표현하셨더라고요.  연세가 드실 수록, 되레 그 어려운 식물 학명도 척척 외우시고 수목에 대한 앎과 사랑이 깊어지셨기에.....

어머니께서 걱정하실까봐 하루 4갑씩 피우던 담배를 참아냈던 효자이시기도 합니다. 


이처럼 열심히 한글을 익히고, 한국 땅의 나무와 풀들을 공부하시고 아끼셨다지요. 이 분의 생전 쓰셨던 집무실입니다. 한눈에 수목원의 주요 전경을 온 감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암투병으로 몸이 쇠약해지셨을 때도 이 수목원으로 그토록 돌아오고 싶어하셨답니다. 


발길 가는 대로 탐색해서 이하 사진에 두서가 없습니다...
꽃은 꽃대로, 나무는 나무대로 예사로운 생명이 하나 없습니다. 만지고 싶어 자꾸 발길이 느려집니다.


수목원 설립자 민병갈 박사는 유언대로 목련나무 아래 잠드셨다네요. 그래서인지 수목원에서 목련나무, 유난히 눈에 많이 들어오더군요.

오호! 그런데, 이 가을에 목련 꽃을  발견합니다. 봄에 피는 꽃의 대명사 목련이 아니던가요?
이게 왠일? 하며 수목원을 나오다보니, 수목원 입구에 이런 mission이 있었네요. 의도치 않게 미션 완료한셈이네요. 인증 샷은 아래에! 


혼자 왔더라면, 점심 식사로는 생수만 챙기고 5시간이고 머무를 수 있었을 것 같아요. 나무 한 그루 한그루 참 개성이 강한데 서로 어우러지네요. 원산지를 보면 민병갈 박사가 세계 각지에서16,000여종의 식물을 수집하고 키워왔음을 실감할 수 있어요.  


민병갈 박사의 집무실과 그 밖 풍경입니다. 심지어 천리포 수목원에서는 탁트인 서해바다와 함께 낭새섬도 볼 수 있어요. 하루에 두번 길이 열려서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라고도 불린다지요. 



이미 9월 숙소 예약이 꽉차서 포기해야했던 수목원 내 한옥 별채. 그 중에서도 이 집이 단연 으뜸입니다. 메롱나무집. 봄에 오고 싶습니다. 


이렇게 감사히 힘을 얻어 왔으니, 이제 어떻게 이 힘을 흘려보낼까요. 보내고 새로 받고.....흐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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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9 03: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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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라의 손(Tara's Great Hands) 


현대백화점 어린이 책미술관, 전시 일정은 행여 놓칠세라 일부러챙겨둔다. (기획자와 행사 관계자에게는 죄송하지만, 점점 아이 눈높이의 생기 넘치는 체험전에서 어른 눈높이의 세련된 갤러리풍으로 변질되가는 듯 하지만) 챙겨 찾는 보람을 느낀다. 


이번 "타라의 손 (Tara's Great Hands)는 평소 눈여겨 보았(지만 워낙 고가이기에 집안으로 들이지 못했던) 보림 출판사 그림책 원본을 볼 수 있을 듯 해서 찾았다. 더 솔직해지자면, "나무"를 보고 싶어서 찾았다. 이유는 탐색해보지 않았지만, 나는 늘 나무향에서 힘을 얻으면서도 초록이 무섭다. 인류 멸망을 다룬 어떤 SF 중에서도 식물이 인류의 정신을 조종해서 자멸하게 한다는 SF가 가장 설득력 있다고 믿는 이유겠지만. "타라의 손" 전시실을 들어서자 마자, 기대했던 대로 "나무"랑 만난다. 

전시 제목 "타라의 손"은 인도의 남쪽 첸나이 지역에 기반을 둔 출판사 ‘타라북스’에서 따왔을 듯. ‘타라 Tara’가 '나무'일거라 생각했는데, 인도 말로 ‘별’이라고 한다. 또한 짐작했던 대로 '타라의 손'은 한 점 한 점, 한 면 한 면, 사람의 애정과 끈기를 담아 수작업으로 책을 만드는 이 출판사의 특징을 나타내는 듯 하다. 전시회 휘리릭 둘러보고 나가는 관객이 많던데, 5F 구석에 마련된 영상실에서는 타라북스의 최근 대표작인 "CREATION"의 제작과정 영상을 보여주는 데 꼭 감상, 추천한다. 팀웤이 단단해 보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일일이 실크스크린 작업에, 한장 한장 그림책 낱장을 모으고 실로 꿰어 책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18000여권의 제작을 위해 이 팀은 8개월 꼬박 일했다고 한다. 

보림 출판사에서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한 "나무들의 밤" 책을 좋아해서, 기대는 했지만 흐뭇하리만큼 잘 소개되어 있었다. 단 '옥의 티(?)'가 있다면, 기념품으로 파는 에코백의 가격이 무려 무려 80000원이었다는. 일본에서 제작했다고 하는데, 그 반값이었다면 업어 왔을 텐데 과도히 비싸다! 

어린이를 위한 실크스크린 및 파지 책, 체험 코너 


 인도 각 지역에서 전해지던 신화, 설화 등의 직접 전역에서 수집하고, 인도 토착 문화의 숨결을 살리려 노력해온 타라북스. 장인정신이 느껴지는 그림책을  만나게 해준 보림 출판사와 현대백화점 어린이 책미술관에 감사의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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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무용단 픽업스테이지

2018년 9월 예술의 전당에서 펼쳐진 국립현대무용단의 "스텝업 프로젝트(Step-Up Project)" 공연을 보고 난 후, 기획팀장 곽아람의 글이 더 잘 이해된다. 아하, 지속가능한 현대무용 레퍼토리의 개발과 팬심 확보, 확대! 원대한 꿈을 꾸며 진행되는 프로젝트구나! 


현대무용은 왜 공연을 한 두 번만 해요?"라는 질문을 수 없이 받았다. 답은 간단하다. 공연은 많고 관객은 적기 때문. 

결국 작품이 남는다. 다양하고 지속가능한 '스텝업'이 좋은 공연으로 보다 많은 관객들과 만나기 위해 시작된 프로젝트인 만큼, 계속 그 역할을 해 낼 수 있도록 창작자들과 관객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 국립현대무용단 기획팀장 곽아람 - "

  


연 이 원대한 꿈의 첫 스텝은 성공일까?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다. 그! 렇 ! 다! 놀랍게도 또 매진이다. 9월 7일 공연의 좌석을 더 구할 수가 없을 지경!




총 110분, 3작품으로 구성된 9월 7일의 STEP-UP 공연을 보고나니, '매진일 수 밖에 없구나! 영화로 치면 1000만 관객 조짐의 대박 공연! 8일 또 보러 오고 싶은데 표가 없다니 너무 아쉽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춤이 좋았다. 남들 춤 구경과 직접 추는 것 사이의 무게를 굳이 따지자면 몸무게가 늘어있는 지금에야 남들 춤 보는게 더 편하긴 하지만, 여전히 춤 추고 싶다. 춤 추는 이를 보기만 해도 설레고 사람의 움직임으로 활기 띤 공간에 있기만 해도 충전된다. 2017년부터 계속 국립현대무용단 덕분에 감사히 충전 받고 있다. 내가 참 춤을 좋아했던 사람임을, 계속 움직이고 싶어함을 다시 확인시켜준 무용단이다. 특히 이번 STEP-UP 공연은 말로 전하기 아까울만큼 참신했고 재미있었다. 

주류와 비주류, 끌고 가는 집단과 진입하려는 집단, 명성 확보한 작품과 새로 선보이는 작품. "STEP_UP" 공연은 소위 기득권 아닌 집단이 보여줄 수 있는 최대 장점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드러내준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배효섭 안무의 "백지에 닿기까지," 이은경의 "무용학 시리즈 vol.2 -말, 같지 않은 말," 정철인 안무의 "0g." 각기 매력 넘치는 작품인데, 셋을 한 무대에 버무려 올렸을 때 '신선함'의 시너지가 팡 터진다. 

총 110분, 3작품으로 구성된 9월 7일의 STEP-UP 공연을 보고나니, '매진일 수 밖에 없구나! 영화로 치면 1000만 관객 조짐의 대박 공연! 8일 또 보러 오고 싶은데 표가 없다니 너무 아쉽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춤이 좋았다. 남들 춤 구경과 직접 추는 것 사이의 무게를 굳이 따지자면 몸무게가 늘어있는 지금에야 남들 춤 보는게 더 편하긴 하지만, 여전히 춤 추고 싶다. 춤 추는 이를 보기만 해도 설레고 사람의 움직임으로 활기 띤 공간에 있기만 해도 충전된다. 2017년부터 계속 국립현대무용단 덕분에 감사히 충전 받고 있다. 내가 참 춤을 좋아했던 사람임을, 계속 움직이고 싶어함을 다시 확인시켜준 무용단이다. 특히 이번 STEP-UP 공연은 말로 전하기 아까울만큼 참신했고 재미있었다. 


배효섭 안무의 "백지에 닿기까지" - 공연 팜플릿에서 


영리하게도 배효섭은 무대 안의 무대 라는 액자 장치를 올렸다. 무용수로서의 자신의 움직임 어휘의 근족보와 움직임 본능을 명상하듯 안으로 탐색하는 동시에, 몸의 물질성이 관객에게 노출되어야만 움직임의 의미를 갖는 직업무용수의 숙명을 그 무대장치로 표현한 듯 느꼈다. 
'도대체 저런 무대 의상은 누가 디자인하고 만들었을까?' SF 영화 '스타트렉'의 의상으로도 손색없을 듯 모던한 화이트 의상은 두 무용수의 단단하고도 유연한 몸에 흐르는 맥을 잘 드러내준다. 느꼈다. 배효섭 안무가는 정말 춤추기를 좋아하는 구나! 업으로 삼지 않았으면 어쩔뻔했나? 그의 안무에는, 그가 어린시절 무료한 시간을 달래며 딱지치기와 병행했을 의미 없는 반복 동작들도 등장하고, 동물흉내몸짓이라고 봐야하나 자유로운 탐색이 이어진다. 





이은경 안무의 "말, 같지 않은 말"



이은경의 "무용학 시리즈 vol.2 -말, 같지 않은 말"은 베네통 광고의 통통 튀는 원색을 연상시킨다. 화장법에 비유자면, 과감하리 도발적인 색상을 주로 쓰지만 기본기가 워낙 탄탄해서 프로페셔널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정교하게 계산된 세련미가 폴폴 풍기는 작품. 도발적인 듯 보이는 건 표면이고 안정적 전형성이 기저에 흐른다고 느꼈다.

안무가 이은경은 유학시절 자신의 춤에 대한 교수진의 평가서를 (영문 그대로 관객에게) 읽어 전하며, "참된 몸짓을 찾으라"는 교수진의 훈육, 타인의 시선, 자기검열의 엄격함이 실제 자신의 움직임과 몸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탐색한다. 흥미로운 점은 타인의 시선이 주로 "키 작다. 상체 움직임이 뻣뻣하다, 파트너와의 협업에 부자연스러운 반응을 보인다, 움직임에 생각이 많다" 등등 부정적인 면에 집중된다는 점. 흠집을 찾아내어 이를 보완하라는 훈계는 사실 무용계 교육현장에만 독특한 점은 아니리라......

*




   "무용학 시리즈 vol.2 -말, 같지 않은 말"을 위한 춤판에, 이토록 끼 넘치는 춤꾼들을 어찌 한자리에 모였나? 특히 목소리와 눈빛까지도 도저히 잊혀지지 않는 신재희는 "끼로 똘똘 뭉친"이라는 수사어구 그 자체이다. 그녀가 관객들의 온 시선을 사로잡아 버렸음을 나는 관객들 뒤통수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대단한 엔터테이너 춤꾼!  




정철인의 "자유낙하"


 2018년 스텝업 프로젝트에 응모된 총 68개의 작품 중, 엄정한 심사를 걸쳐 뽑힌 3명의 안무가 작품. 얼추 계산해도 20대 1의 경쟁율이다. 그렇게 무대에 오른 3작품 중에서도, 정철인의 "자유낙하"는 그 진지함과 몰입도면에서 탁월했다. 앞서 보인 이은경의 작품이 드러낸 화려한 세련미와 대극점에 있는 작품. 예술의 전당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춤판은 마치 4인 무용수, 그들만의 진지한 연습실에서의 움직임과 호흡을 옮겨다 놓은 듯 했다. 진지하고 순수해서, 춤이 끝났을 때 관객들의 박수 소리가 멈추지를 못했다. 

무용계에서 애초부터 성골이지 않았던 이들이,  되려 춤에의 그 순수한 열정과 멋부리지 않은 몸짓으로 모두를 사로잡은 작품. 가벼움의 시대에 이토록 진지한 작품이 묵직하게 잔상을 남긴다. 앞으로도 정철인의 작품이라면 달려가 보게 될 것 같다.





이 프로젝트는 단지 국내 무대에 1회성으로 소개되는 데 그치지 않고, 향후 세계무대에서 선보이게 될된다."국립현대무용단"이 시도하는 "pick-up Stage"가 글로벌 예술교류와 한국현대무용의 위상알리기에 혁혁한 공을 세우기에 팬들을 열렬한 환호와 박수, 그리고 전석매진 예매로 화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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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래빗 전집
베아트릭스 포터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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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래빗 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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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하지 않는 육아 베테랑도 많을 것입니다. 편견일까 조심스럽지만 말씀드려보자면, 어린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쥐어 주면 '돌아올 수 없는 강' 건너는 꼴입니다. 광속 회전하는 팽이와 번쩍 번쩍 광선검에 열광하는 친구들은 피터 래빗과 그 친구들의 여유롭고 부드러운 몸동작을 기다려줄 여유가 남아 나지 않습니다. 21세기 스펙테클, 마블 시리즈에 비한다면 클라이맥스조차 무척 밋밋한 스토리에도 감흥 느끼기 어렵습니다. 일단 마블 시리즈와 번쩍번쩍 섬광이 보이는 영상물에 온 신경이 동요하는 이들에게 "피터 래빗"의 아날로그 정서는 먹히기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주장하고 싶습니다. 가급적 피터래빗 시리즈는 꼬꼬마, 그러니까 영유아 시절부터 접해주라고.

전  그 자신이 피터래빗 전집과 성장했기에 자녀들까지 피터래빗의 친구로 맺어준 지인 덕분에 일찍 피터래빗의 세계에 초대 받았습니다. 나른함, 부드러움, 따사로움, 자연스러움....피터 래빗 시리즈의 매력에 빠진 저는 원서 혹은 번역본으로 한권씩 사 모으고 보드북 전집까지 구매했지요. 그런데 한 권에 그  컬렉션을 담아낸 책이 있다기에 눈이 번쩍, 반가웠습니다. 민음사에서 베아트릭스 포터(Beatrix Potter, 1866-1943)의 피터래빗을 『 피터래빗 전집 』, 한 권에 담아 주었네요. 두꺼운 양장본 표지도 매력적인데 그 두께가 상당합니다. 700여 페이지에 이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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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여 년 넘게 세계적으로 널리 사랑받는 베아트릭스 포터의 작품은 16년에 걸쳐 스물 세권의 시리즈로 출간되었습니다.  그 동안 전 세계 1억 부 이상, 30개 언어로 출간되었다고 하니, 과연 그림책계의  지존이자 영국 국민이 자부심을 가질만한 캐릭터가 아닐 수 없네요. 지금에야 피터래빗은 세계 어느 나라 도서관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 베아트릭가 초판 낼 당시 많은 출판사가 그 원고를 거절했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지요? 
피터 래빗을 사랑하다보면 자연히, 그 창조자인 베아트릭스 포터에 관심을 가지게 될 터인데요 그녀는 영국 상류층 가정의 외동딸로서 그림 그리고 자연 관찰하는 아름다운 취미를 계속 포기하지 않았다하네요. 학위만 없을 뿐이지, 왠만한 식물학자, 곤충학자보다 더욱 자연의 숨결을 잘 들을 수 있고 시인처럼 포착해낼 수 있었던 그녀. 그녀가 말년에 어떤 멋진 기여를 이 세상에 했는지 궁금한 독자는 꼭 그녀의 전기를 찾아 읽어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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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터래빗 전집 』에는 그 유명한 피터는 물론, 다람쥐 넛킨, 고슴도치 티기 윙클 아주머니, 아기 돼지 피글링 블랜드, 오리 제미마 퍼들덕, 아기 고양이 톰 키튼, 여우 토드, 생쥐 토마시안 티틀마우스 아주머니,  겁 없는 사고뭉치 벤자민 버니, 개구리 제레미 피셔 아저씨, 심술쟁이 생쥐 엄지손가락 톰과 훙카뭉카 등 베아트릭스가 어린이들의 친구로 불러온 많은 동물들이 등장한답니다. 이미 대중화된 에피소드도 있고, 새롭게 접해보는 이야기도 있어요. 하루에 다 읽을 욕심은 접고 손이 가는 대로 에피소드를 한 두개씩 읽어나가며 천천히 피터 래빗의 세계에 젖어드는 방식도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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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트릭스는 동물을 통해, 따뜻한 가정과 가족의 이미지를 많이 보여주고 있어요. 아래 이미지에서 볼 수 있듯, 엄마가 꼬마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차려주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 것 역시 베아트릭스의 소박하고 따뜻한 세계관을 보여주는 것이겠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많은 이들이, 베아트릭스 포터가 후손에게 남겨준 이 아름답고 따뜻한 세계를 이해하고 사랑해주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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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조장하는 위험들 - 위기에 내몰린 개인의 생존법은 무엇인가?
브래드 에반스.줄리언 리드 지음, 김승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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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을 믿을 이유를 갖게 되면, 생명세계에서 벌어지는 변형들을 보면서 절망의 구름 위에 아름답고 시적인 것들이 있음을 믿고 긍정하게 되는 방식으로 새로운 윤리적 감수성을 가지고 세상과 계속해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213)



활자중독이 과했던 꼬마 시절, 리더스 다이제스트사의 "세계의 불가사의"로 기억하는 두꺼운 백과사전에서 얻은 정보가 이후 세계관에 영향을 미쳐왔다. 쥘 베른의 "해저 2만리" 등을 예로 들며, 인간의 집합적 상상력은 자기실현적 예언력을 발휘한다는 요지로 기억한다. Sci-Fi 영화를 즐기고나서도 께름칙했던 이유는, 대다수의 영화가 암울한 인간의 미래 혹은 되돌이킬 수 없는 대절멸을 기정사실화하고 전개되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빈곤한 디스토피아적 상상대로 미래가 회색 구름 아래 펼쳐진다면, 날개펼 수 있는 자 누구인가? 보험가입도 허무하다. 사과나무 동산을 일구는 상상도 허무하다. 저출산의 기저에는이런 허무주의도 작용할까?


『국가가 조장하는 위험들 (원제: Resilient Life: the art of living dangerously)』를 읽기 전까지는, 미래에 대한 자포자기적 불안이 나만의 유산, 즉 꼬꼬마때 읽었던 쪼가리 정보 탓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문자 그대로 내게는 "eye opener"가 되어준 이 소중한 정치철학서에서 공저자 브래드 에반스(Brad Evans)와 줄리언 리드(Julian Reid)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출처: Julian Reid 의 Twitter   


질투날 만큼, 쿵짝이 잘맞는 공저자(본문에서는 계속 "We"라는 주어를 쓰지만, 목소리가 갈리지 않아서 마치 한 명의 학자와 이야기하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브래드 에반스와 줄리언 리드에 따르면, 인류세의 종말에 대한 디스토피아적 상상과 이에 대응하는 회복력 담론은 신자유주의의 통치전략이라고 한다.  
 "안전"과 "경계가 확실한 공동체"이라는 자유주의 통치체제 아래의 개념은 이제 "불가피한 재앙"으로 대체되었다. 이제 불안정과 불안정은 되레 정상으로 여겨지고 주체는 그 안에서 "회복력"을 갖출것을 요구받는다. (이 '회복력(resilience)' 담론이 어찌나 급속히 보편 도그마로 작동하는지, 이제 일상의 대화에서조차 "울 아이 회복탄력성을 길러주는 육아를 해야겠다"든지 하는 말을 자주 들을 지경이다)
불가피한 "전지구적 위험" 앞에서 인간은 한낱 죽음 앞에 서서 두려워하는 취약체로 전락한다. 두 저자는 이렇게 신자유주의의 회복력 담론이,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환경 담론, 허무주의와 결합하여 인간이 더 이상 유토피아를 꿈꾸지 못하게 한다고 비판한다.



"회복력" 혹은 "회복탄력성"이라는 말을 사회과학서, 미디어, 심지어는 육아 코칭 수업과 일상에서조차 익숙하게 들으면서도, 그 기저의 불손한 정치적 함의를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국가가 조장하는 위험들』은 소심해진 주체의 몸사림과 탈정치화를 꼬집 각성시킨다다. 회복력 담론은 "어떻게 안전을 확보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위험에 적응할 것인가(51쪽)"을 핵심 문제로 규정하고, 안전을 병리화한다. (다시 생각해보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며 유토피아를 꿈꾸는 개인도 병리화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즉, 인간 본질의 이상을 꿈꾸는 시인은 되려 강제로 거대 시스템에 연결되거나 셀에 감금당한다) 게다가 "실제로 위험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문제를 일으키는 주범으로 여겨지니." (34쪽) 세상의 빈자, 가난한 국가의 사람들은 생명자격시험에서 탈락하여 방치되고 벌거벗은 존재로 전락한다. 



브래드 에반스와 줄리언 리드는  "생태논리와 경제 논리가 맞물려 생명영역뿐 아니라 인간의 정치적 역량마저 훼손하는 데 공모하는 지점"(119)을 드러낸다. "냉전 종식 직후의 자유주의 통치가 '개발 - 안전 결합'의 형태였다면, 21세기의 자유주의 통치는 '지속가능개발(sustainable development) - 회복력 결합'의 형태"(106)임을 밝힌다. 



"회복력은 거대한 비즈니스다. (143)"


『국가가 조장하는 위험들 』 덕분에 나는 익숙하다 못해 당연시 했던 개념들을 불편하게 헤쳐본다. "중년의 위기" "아이의 회복탄력성" 의 대중서적 제목이 암시하듯, 인간의 생애주기는 전 주기에 걸쳐 병리화되고 영속적 위기에 처해있다는 신호를 내보낸다. 신자유주의 통치전략 아래, 사회적 책임은 자연스럽게 개인에게 전가되고 개인은 "자기돌봄"의 기술을 내면화한다. 2018년 대한민국 사회에 유행하는 "각자도생"이나 "자기계발서"의 베스트셀러화도 이런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성공"이 곧 "정상성(nomalcy)'가 되는 사회에서, "시장의 고려사항에 맞는 특정한 종류의 주체, 열망,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교육 프로젝트"(150)에 세뇌된 우리는 과연 어떤 전복을 꿈꿀 수 있을까? 



지적 테러리스트인 두 저자는 그렇다면 21세기를 지배하는 재앙 담론의 함의를 까발리며, 어떤 대안을 제시하는 것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난무하는 지구멸망의 시나리오가 헛되다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런 대종말의 시나리오 앞에서일지라도, 우리가 "인간 존재의 자기실현적 엔드게임을 어떻게 넘어설지 말하는 대안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220)라고 반문한다. 즉, "자신이 처한 상황이 불가피하고 필연적인 상황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을 반드시 극복"(226)하고 "상상과 이미지를 통해 만들어낸 비전이 열어준 길을 따라가고 긍정할 수 있는 주체"(276)가 되어보자고 촉구한다. 흠, 어렵다. 자크 아탈리의 『언제나 당신이 옳다』를 읽고 나서의 헛헛함과 살짝 겹친다. 



그럼에도 나는 브래드 에반스와 줄리언 무어가, "파시즘적 지구를 구성하려 하는 정치적 상상에 맞서서, 우리의 삶을 계속 변혁시켜나가자"는 촉구의 의미를 담아 쏜 화살, 즉 이 책, 『국가가 조장하는 위험들 』 에 탄복한다. 그들이 쓴 다른 책들도 차근 차근 읽어나갈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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