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쓰레기 탐색자 - 소비문화와 풍요의 뒷모습, 쓰레기에 관한 인문학적 고찰
제프 페럴 지음, 김영배 옮김 / 시대의창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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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범죄학(cultural criminology)이라! 일찍이 CSI시리즈나 Criminal Mind 시즌 13까지 완파한 범죄물 광팬으로서도 상당히 생소하다.  이 분과의 전문가 역시 당연히 금시초문일 수 밖에. 제프 페럴(Jeff Ferrell)이라는 분은 문화 범죄학, 사회학, 인류학을 넘나드는 학자인 동시에 그래피티 애호가란다. 공식적 이력서 외에 한 줄을 더 추가하라면 "쓰레기 수집 전문가"라고 꼭 써넣어야겠다. 이 분이 쓴 책제목이 바로 『도시의 쓰레기 탐색자 Empire of Scrounge:  Inside the Urban Underground of Dumpster Diving, Trash Picking, and Street Scavenging』이다. 도서관 서가를 어슬렁거리다가 우연히 제목에 끌려 뽑아든 책이 이런 보물일 줄이야.  엄청 빠져 읽었다. 


오해는 마시라. 너무 재밌어서, 인문학이라면 절반은 팔리는 시대에 인문학 '농축서'여서도 아니다. 스릴러로 치면, 마치 이쯤해서 한 방 먹여줄 만 한데 하면서 스릴을 조마조마 기대하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었도라는 뜻이다. 작가가 애리조나 대학의 종신교수직을 박차고 고향인 텍사스 주 포스워스에서 8개월간 쓰레기 더미를 뒤진 이야기라는데 어찌 솔깃하지 않을 수 있으리. 한국 사회 그 누가, 이런 과감한 인생 역전의 지도를 그릴 수 있으리. 남이 신다 버린 고린내 나는 신발을 말려 신고, 커다란 쓰레기 통 안에 일단 방뇨부터 하고 본격 작업(쓰레기 더미 뒤지기와 건질 거리 건지기)을 무려 8개월간 생업 삼을 수 있는 대학교수가 한국에 있겠는가? 

340여쪽에 달하는 이 책의 80퍼센트는 제프 페럴이 쓰레기를 수집하며 기록한 일기를 편집하고 에피소드를 나열한 내용이다. 꽤 많은 논문과 책을 펴낸 학자이기에, 자신의 경험과 수집한 자료에 대한 본격적 분석은 어느 시점에 등장할까, 분석의 요지는 무엇일까. 기대기대하며 책장을 넘긴다. 그래서 스릴러의 '한방'을 기대했다고 표현했다. 
결론을 말하자면, '한방'은 아주 유연한 방식으로 부드럽게 와서 지난 줄도 모르겠더라. 이 책을 다 읽고나서 본격적 사회과학서라기보다 장르를 한정지을 수 없는 에세이라고 분류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내게는 오히려 제프 페럴이 굳이 방법론을 목차 속에 설계해 집어 넣고 설명하거나 분석틀을 딱딱하게 언급하는 아카데미아의 방식을 따르지 않고, 이처럼 그래피티 그리듯 자유롭게 자신의 경험을 옮기고 의미있는 주장을 하는 방식이 성공적이라고 느껴진다.


이쯤해서 저자의 '한방'을 살짝 소개해본다. 실제 대화해본 적은 물론 없지만 제프 페럴이라는 학자는 천상 아나키스트적 자유로운 영혼의 인물같다. '모난 돌 정맞는' 한국 사회에서라면 "괴짜" 딱지를 떼레야 뗄 수 없었을 것 같은. 그마나 크록스 신발에 등산조끼 입고도 대학강단에서 군소리 안듣고 강의할 수 있는 (일부) 미국 사회에서의 교수였으니 인정받았을 듯. 


『경계의 민족지 Ethnography at the Edge』의 저자이기도 한 이 분은, 연구자이자 쓰레기 수집가로서의 이중적 정체성을 고민할 여지도 없이 흠뻑 빠져들어 쓰레기를 수집한다. 만나는 이들과 공식이건 비공식이건 인터뷰를 할 의도도 아예 없다. 그냥 자신의 새로운 삶을 사는 듯 하다. 즉, 오만하게 관찰자의 시선으로 쓰레기 수집가의 삶을 묘사하고 분석하지 않았다. 정치인이나 도시 행정가들이 '해충,' 혹은 '괴물'로 제거하려드는 도시 쓰레기 수집인들의 삶을 긍정하고 그들이 이루는 지하경제의 미학을 예찬하고, 역으로 도시(특히 미국사회)의 속 빈 강정같은 소비문화를 비난한다. 



도시와 거리의 길모퉁이의 쓰레기통, 쓰레기더미, 쓰레기봉투 등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물건들을 보면서 나는 확실한 문제를 발견했다. 바로 끝없이 확산되는 미국 소비문화, 나날이 벌어지는 빈부격차, 문화적 물질주의에 기반한 글로벌 경제의 대량생산과 그 결과로서의 낭비가 그것이다. (278쪽)


“단순한 기생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의 주체적 생산: “물질문화의 가장자리에서, 소비와 도시의 삶 사이에서, 법과 도덕의 복잡한 혼돈 속에서 길거리의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중략)…소비 지향 도시의 집중화된 불평등 한가운데서 도시의 탐색자들은 날마다 남아도는 도시의 부를 재분배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pp.297-301)”


소비자는 어제의 신제품을 오늘 쓰레기통과 길거리로 집어던지기 바쁘고, 거리의 탐색자들은 쓰레기더미를 분류하고 솎아내서 찾아낸 것을 재활용한다. 결국 양자 모두 상품과 쓰레기, 공공과 개인, 소유와 버림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이 틀렸음을 증명해내는 셈이다. 이 과정에는 소위 불법이 끼어들기도 하지만, 비공식적 교환과 재활용을 통해 도시는 쪼개지지 않을 수 있었고, 사회적 계급이나 경제적 특권에 의한 도시의 분리를 막을 수 있었다. (3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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