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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의 언어
장한업 지음 / 아날로그(글담) / 2018년 10월
평점 :
"다문화-상호문화협동과정," 2014년부터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새롭게 운용하는 프로그램이라 한다. 그 중추에 장한업 교수가 있다. 그는 한국사회가 20세기 말 이후 본격 다문화시대에 접어들었음에도 여전히 민족중심주의와 차별의 언어가 성찰 없이 통용됨을 안타까워 하며 『차별의 언어』를 썼다. 문제의식은 명료하고 분석은 냉철하지만, 독자는 마치 대중강연의 앞자리에서 저자 직강을 듣는 기분이 들 정도로 편안한 문체를 구사하였다. 그래서인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헉, 내 이야기구나'하는 뜨끔뜨끔한 반성과 함께 저자의 주장에 자연스럽게 설득되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다르다"와 "틀리다"
장한업 교수는 여기서 시작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다르다"를 "틀리다"고 말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고. 그 익숙한 어법이 누군가에는 차별의 칼날이 되는데 인식하지 못할 뿐. 사실 내가 속한 집단에는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지만 바깥 집단이라고 여겨지는 대상에는 부정적 인식을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기에, 이런 차별적 인식은 비단 한국 사회만의 문제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장한업 교수가 지적하듯 한국 사회에서는 '단일민족신화'라는 특수한 색채가 더해진다. 유독 '우리'라는 말을 자주 쓰는 만큼이나, '우리'라는 울타리에 쉽게 누구(들)을 집어 넣지 못한다. 울타리 밖 대상에는 가혹하리만큼 차별적이라는 것이 장한업 교수의 관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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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화여자대학교 강단에서뿐 아니라, 교사, 학부모 그리고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많은 대중강연을 통해 수집한 이야기와 일상에서의 면밀한 관찰로 충분한 사례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거의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쓰는 '쌀국수'란 명칭도 실은 차별적 시선을 반영한다고 주장한다. 베트남 현지에서 쓰는 'pho'대신 한국인에게 친숙한 용어로 부르는 이 논리를 그대로 적용한다면, 스파게티는 '이태리 밀국수'라고 불러야겠지 않느냐는 반문에 뜨끔하지 않을 한국인들 얼마나 있을까? 그 외에도 한국 사회에서 유독 많이 쓰이는 '국민' 혹은 '가족'에의 비유어가 실은 민족중심주의를 반영함을 저자는 지적한다. 단순히 저자 독단의 해석이 아니다. 실로 한국의 민족중심주의는 자칫 제노포비아나 국수주의로 비춰질 수 있을 지경인지 2007년 UN 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서는 '한국인은 단일민족'이라는 고정관념을 수정하기를 요구했다고 한다.
장한업 교수는 이런 차별의 언어가 언젠가는 한국인을 겨냥한 칼이 되어 돌아올지 모르기에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자 『차별의 언어』를 썼다고 한다. "세 살 버릇 여든" 갈만큼 고치기 어려운 습관, 하물며 개인이 아닌 사회 집단에 굳은 살처럼 박혀 있는 언어 습관인데 하루 아침에 고칠 수 있으랴. 그래도 장한업 교수의 말을 그대로 빌어오자면, "우리의 편협한 인식을 개선하고 그를 바탕으로 상호문화적 대화를 지속해 나가야(233쪽)"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