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톡 손가락 풀기가 덜 된 탓이라 핑계를 댈까요? 저도 맞춤법 참 많이 틀리고, 글 쓸 때면 부산대 맞춤법 검사기에 손을 내밀거나 네이버 맞춤법 자동 검사 기능을 켜둡니다. 어느 정도의 오탈자는 되레 친밀함을 주는 실수라 칩시다. 그런데, 간혹 아니 기막힐 정도로 자주, 온라인 기사 읽다 보면 '이 기자님 대체 생각의 속도대로 타이핑해서 바로 기사 송고하셨나? 검토 단 한 번도 안 하고 전송 버튼 눌렀나?' 싶은 글들이 '나 좀 봐주소!'하며 손들고 있지요.

최근의 예로는, 심석희 선수를 '손석희'라 잘못 표기한 기사 이야기를 JTBC 뉴스에서 손석희 앵커가 직접 전한 걸 들 수 있습니다. 심석희 선수만 잘못 표기했냐고요? 가관입니다. 논란의 중심에 선 조재범 코치는 어느덧 김기덕 감독과 나란히 추잡한 범죄를 폭로당해 이름이 더럽혀질대로 더럽혀진 '조재현' 배우와 이름이 바뀌어 기사화됩니다. 안 믿기시면 녹색창에 검색해보세요.

 

 

 

 

 

 

 

그제, 우연히 제목만 보고도 '읽고 싶어진' 책을 발견했습니다. 오호! 2015년에 나온 책을 여태 몰라보고 지나쳤구나 하며 반가운 마음에 그 자리에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제목은 『모방 사회』, 교보문고에서 출간했습니다. 서문 마지막 문장이 이렇습니다. "물론 사회 분야"여야 하는데, "물론"을 "물로"로 잘못 썼습니다. "물론" 실수는 누구나 합니다. 서문부터 오타라니 편집자님 체면이 말이 아니겠지만 말입니다. 본문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예 대놓고 '나 편집 엉망이야'의 페이지가 연달아 나오더군요.

 

 

 

 

 

 

 

 

 출판사 작업은 전혀 모르지만, 요새 편집자분들이 개인적으로 책들을 많이 펴내시기에 편집 작업의 노고가 어떠할지 짐작은 합니다. 칼퇴근 개념 없이, 집에까지 일을 들고 와서 오탈자를 잡아내고 편집 일하기 일쑤라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얇은 책의 서문, 그리고 첫 페이지, 그리고 본문 구석구석, 이런 식의 편집이면 독자는 배려가 아닌, 무시당한 기분이 듭니다. 다행히 친절하게도 편집자 성함과 연락처가 적혀 있어서 연락도 드렸지요. 혹시 '2쇄' 발행하실 때는 제가 찾아낸 오류들을 수정하고 발간해주셔서 다른 독자들 배려해주십사 하고 말씀드렸는데 이런 답변을 받았습니다. "이 책은 더 찍지 않습니다. 말씀 전달하겠습니다." 네에, 감사합니다. 다음에 **문고에서 발행한 책들은 오탈자 깔끔하게 잡아서 최소한 수준의 편집이 이뤄진 완성본으로 만나보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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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4 1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1-14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에 오탈자가 있는 건 참을 수 있어요. 그런데 오탈자를 찾아내서 알려줬는데도 출판사 측이 고치지 않으면 화가 나요. 그건 독자의 목소리를 무시한 태도입니다.

2019-01-14 15: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ott 2019-01-22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토를 안하고 출판했나봐요 책만 찍어내고 수정을 안하다니
독자를 무시했네요

2019-01-23 09: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임모르텔 2019-02-07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책장에 제 취향의 도서들이 ? 엄지척~입니다.
 
작은 생각
멜 트레고닝 지음 / 우리동네책공장 / 201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표지가 평범해 보이지 않아서 도서관 책 더미에서 저도 모르게 집어 왔습니다. "작은 생각," 원제는 "Small Things"라네요. 유난히 좋아하는 '글자 없는' 그림책이었기에, 읽으려 쌓아둔 활자 피라미드를 밀어 놓고 『작은생각』부터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첫 페이지 문구가 마음에 걸립니다. 보통 첫 페이지에는 작가가 사랑하는 이들을 언급하며 "누구누구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라고 써 있는데, 그 반대입니다. 작가의 가족이 작가를 추모하는 듯한 인상의 문구를 새겨 넣었거든요. "이 책을 너에게 바친다. 이젠 네가 편히 쉬기를 바라며 너의 꿈은 이제 우리 모두의 꿈이 되었고, 우리 모두가 열심히 노력해 그 꿈을 이루었단다. 전보다 너를 더 많이 사랑하고, 네가 자랑스럽다."

 

 

『작은생각』을 끝까지 다 본 후,왠지 느낌이.......왔습니다. 작가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른다는......

마지막 메시지는 '널, 괴롭히는 생각들, 외롭고 버려졌고 남들과 다르다는 그 생각, 실은 다른 모든 사람도 한단다. 남들도 너만큼 외롭고 상처 많고 힘든데 감추며 사는 거야."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듯 했거든요. 글자 없는 그림책이긴 했지만 메시지가 강렬했습니다. 책 덮은 후 Mel Tregonning이란 이름으로 검색해보니, 제 느낌이 맞았습니다. 멜은 오빠와 여동생을 두었어요. 가족들은 쾌활하고 재치 넘치던 멜이 불면증을 호소하며 이상 신호를 보낼 때, 같이 있어주었지만 이런 파국에 치다를지 정녕 꿈도 꾸지 않았지요. 멜의 여동생이 글을 올렸더군요. 누군가 정신적인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절대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http://thingsmadefromletters.com/blog/2016/09/08/story-behind-small-things/

 

 

  

Mel Tregonning은 1983년에 태어났습니다. 상상하고 그리는 탁월한 재능 덕분에 이미 16세에 전국적 규모로 발행되는 잡지에 자신의 작품(만화)를 장기 연재했고, 관련 분야 수상을 하며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2014년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녀의 가족들이 Mel이 그린 초안을 책으로 출간한 것이 바로 이 『작은생각』입니다. 작품에서 과묵하고 표정 잃어가는 듯 보이는 소년은 우등생에서 외로운 왕따 피해자로 변해갑니다. 멜 트레고닝은 정신적 고통이 어떻게 신체화되는지, 서서히 생명 영역에 침범해 들어오는지를 무섭도록 공감되는 화풍으로 시각화했습니다. 몸에 금이 가고, 물질로서의 몸이 증발하여 자아가 상실되는 고통을 겪고 있는데 부모님도 선생님도 아이의 마음을 몰라줍니다.

 



 『작은생각』에서, 아이는 그래도 이 마음의 고통을 이겨내고 성숙해집니다. 내 고통에 침잠해서 타인의 정신세계를 보지 못했는데, 이 외로운 지구에서 외로운 지구인들은 저마다 고통을 겪고 있다는 걸 보고 연민을 보내거든요. 물론 활자화된 것이 아니라, 제가 멜 트레고닝의 생각을 상상해본 데 지나지는 않지만......사실은, 마지막 페이지는 멜 트레고닝이 직접 그린 것이 아니라 그녀 가족의 의뢰로 Shaun Tan이 완성했습니다. 그래서 더 마음이, 마음이 아파옵니다. 고통 속, 작가는 그런 회복의 메시지를 스스로 만들어내지 않았으니까요......


Shaun Tan의 블로그

http://thebirdking.blogspot.com/2016/09/mel-tregonnings-small-things.html 


이렇게 매혹적인 작품을 만들어낸 천재 작가가 더 이상 좋아하는 그림, 만화를 그릴 수 없다니 안타깝고 슬픕니다. 멜 트레고닝의 가족들이 전하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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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세먼지 수치 검색하듯, '알라딘'에도 짬 나면 접속합니다. 책 사려는 목적이라기보다, 책 덕후 알라디너들은 어떤 책을 읽을까 궁금해서 기웃거리는 게죠. 그렇게 알게 된 이름, '이언 매큐언.' 소외감을 느낄 만큼, 이미 많은 책덕후끼리 공유하는 스타 작가였더라고요. '책덕후들이 이토록 극찬하는 작가인데, 나도 입문해볼까?'하며 읽은 『솔라(Solar)』는 2010년대에 읽은 소설 중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이언 매큐언'을 더 알고 싶어서, 불과 두세 달 만에 그의 작품 다섯 편을 찾아다녔네요. 『넛셀』의 상상력, 『첫사랑 마지막 의식』의 대담함, 『칠드런 액트』의 독창성, 다 흡족했지만 그중 재미 면에서 한 권을 꼽으라면 『 Solar 』를, '걸작' 소리가 절로 나는 한 권을 꼽으라면 『어톤먼트(Atonement)』를 고르겠습니다. 500여 페이지의 소설을 한자리에서 새벽 4시까지 읽었습니다.



소설책 뒷면에 세 줄로 『속죄』의 내용을 압축해놨던데, 옮겨 보겠습니다.

시간이 멈춰버린 뜨거운 여름 오후,

소녀의 오해가 불러온 젊은 연인들의 비극,

그리고 이를 되돌리려는 한 소설가의 60년에 걸친 지난한 속죄

『속죄』 출판사 홍보 문구 중

얼핏 위 문구만 보면 한 캐릭터의 속죄, 치매로 잊거나 죽음으로써 밖에 면죄부 얻을 길 없는 죄책감이 주된 내용의 소설로 보입니다. 네, 그렇기도 합니다. 감수성이 유난히 예민하고 조숙한 소녀 브리오니가 '거짓말(이었다고 정작 자신은 생각하지 않으나), 거짓 증언'으로 친 언니의 남자친구를 강간범으로 몰아세운 후 평생 속죄하며 소설로서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으려 분투하는 줄거리가 소설의 한 축이니까요. 실제 '면죄부'는 자가 발행 수준으로밖에 이뤄질 수 없어요. 브리오니가 사죄해야 할 친언니와 그 연인 로비는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 각각 패혈증과, 폭격으로 아주 오래전 사망했거든요. 언니는 20세기 중반에서는 드물게,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수학한 여학생이자 남자친구를 범죄자로 전락시킨 가족(정확히는 브리오니)와 의절하고 외롭게 살았습니다. 로비는 가난한 가정부의 아들이었지만 의대 입학을 앞둔 수재였지만 브리오니의 증언으로 인생행로가 암흑 나락으로 곤두박질 칩니다. 소설의 2부에서는 로비가 그 참혹했던 전쟁터에서 연인과의 재회를 꿈꾸며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 펼쳐지지요. 이언 매큐언이 영국 왕립 전쟁박물관 문서관리소를 드나들며 1940년 당시 활동했던 군인과 간호사들의 서신, 일기, 회고록 등을 자료 삼아 쓴 만큼, 현실감 넘치는 묘사가 압도적입니다. 『속죄』를 읽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던케르트』를 다시 본다면, 사지에 몰려 있는 영국 군인들 속에서 로비를 찾아내게 될 것 같습니다.



"1999년"이라는 마지막 챕터, 즉 소설의 4부에서 독자는 브리오니가 결코 언니와 로비에게 사과하거나 잘못을 바로잡지 못했음을 알게 됩니다. 속죄하고자 60년간 소설을 써왔다지만,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할까 가명 등 여러 소설적 장치를 쳐 놓은 까닭에 정작 쓴 사람 빼고, 누가 알까요? 사실은 로비가 강간범 아닙니다. 엉뚱한 사람 인생 망친 거예요. 라고 누가 알까요?

게다가 브리오니는 계속 강조합니다. 자신이 살아 생전 그 속죄의 소설을 출간할 수 없는 정치적인 이유들을. 강간 당한 당사자인 사촌 언니 롤라와, 그녀를 강간했지만 '로비'가 대신 누명을 썼기에 승승장구한 진짜 강간범은 놀랍게도 결혼해서 반평생 잘 살고 있거든요. 그것도 엄청난 부호로서. 까딱하면 소설가인 브리오니가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할 수 있으니, 살아 생전 원고가 출간되지 않는답니다. 속죄일까요? 누구의 속죄가 필요한 걸까요?

『속죄』에는 주옥같은 문장과 마치 캐릭터의 머릿 속에 들어갔다 나온 듯 치밀한 심리 묘사가 매 페이지마다 펼쳐지는데, 500페이지 두께라는 걸 잊고 필사하고 싶어지기 까지 했습니다.

지난 오십구 년간 나를 괴롭혀왔던 물음은 이것이다. 소설가가 결과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존재라면 그는 과연 어떻게 속죄할 수 있을까? 소설가가 의지하거나 화해할 수 있는, 혹은 그 소설가를 용서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소설가 바깥에는 아무도 없다. 소설가 자신이 상상 속에서 한계와 조건을정한다. 신이나 소설가에게 속죄란 없다. 비록 그가 무신론자라고 해도, 소설가에세 속죄란 불가능하고 필요 없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그가 속죄 하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속죄』 5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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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1-04 13: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래 전에 절판된 <위험한 이방인>
빼고는 국내에 나온 이언 매큐언의 책들
을 모두 섭렵했는데, 역시 대단하더군요.

개인적으로 <솔라>가 제일 재밌었습니다.
진지근엄해 보이는 작가 스타일과 달라서
그런가 봅니다.

2019-01-04 14: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 - 신경인류학으로 살펴본 불안하고 서투른 마음 이야기
박한선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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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이름만 보고 책 집어 드는 건 수험용 학습지 이후로 없었는데, 요새 내가 재밌다고 읽은 책들의 교집합이 뒤늦게 눈에 들어오니 그 이름, '휴머니스트.' 읽어 내려가다 보니, '휴머니스트' 출판사 책이 많네요. "팔리는, 팔릴 만한" 책 제목을 뽑아내는 편집자들의 능력이야 아서 클라크(였나요?)가 아부했다는 '신의 영역'에 속할 텐데요, 특히나 진화 생물학, 진화 심리학 분야의 책 제목은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좋은 뜻에서요. 제목만 봐도 읽고 싶어지게 만들거든요. 『우리 모두는 2% 네안데르탈인이다』라는 데,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라는 데 읽지 않고 배겨 낼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후손이 있겠습니까? 동의하지 않으세요?



목차를 눈으로만 훑어도 이건, 안 읽고 못 배길 책이 맞습니다. 짝짓기(mating) 전략을, 인간의 자기 기만(self-deception) 본능을, 양가적 감정을 일으키는 여성의 유방을 이야기한다는데 읽고 싶어지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젯 밤 잠들기 전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정신과 전문의이자 신경인류학자라는 독특한 이력의 박한선 저자가, 마치 대학 교양강의를 전개하듯 쉽고 친절하게 신경인류학과 연관된 과거와 최신, 논문들을 정리하고 우리 삶과 연결지어 화두를 던져줍니다. 전중환 교수의 『오래된 연장통』과 함께 읽어 보기 추천합니다.




이 책에서 인용한 책들


"원더박스," "협력의 진화," "북아메리카 원주민 트릭스터 이야기," "비맨" "이타적 인간의 출현," "타고난 반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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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선 2019-01-03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ㅅ쇼

밑줄긋는시간 2019-03-10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티난다
 
감염된 독서 - 질병은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가
최영화 지음 / 글항아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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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서점에서 밀어주던 신간, 책덕후들이 적극 추천하던 책, 『감염된 독서』를 2018년 끄트머리 한가해진 마지막 주에 읽었습니다. "질병은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가"라는 부제가 아니었던들, 지레짐작 '책 읽기 권장' 서평 모음집으로 착각할 뻔했습니다. 이 책은 감염관리 분야 국내 권위자인 최영화 교수(아주대 의대)가 썼습니다. 처음부터 단행본 출간을 목적으로 쓴 글이 아니라, '아주대 의료원 소식지'에 쓰던 칼럼 5년 치를 모아 묶어냈답니다. 분명 원고 마감일과 얼굴 모를 독자들이 주는 압박감도 컸겠지만, 제가 상상하기로 최영화 교수는 신바람이 나서 글을 써 내려갔을 것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요? 글쓰기야말로 그녀가 좋아했고, 좋아하고, 또 잘할 수 있는 일이거든요. 아마 최영화 교수는 이 칼럼들을 쓰면서 감염내과 의사이자 교수, 동시에 두 형제의 엄마로서 바쁨에서 벗어나 어린 시절의 꿈을 만나고 다시 연장시켰을지도 모릅니다. 그녀는 처음부터 의사 되기를 꿈꾸지 않았답니다. 문학가를 꿈꾸기에 시집과 소설, 역사 책을 끼고 살던 문과 여고생이었는데 가족이 회유해서 의대를 목적으로 이과로 전향했답니다. 그제서야 의문이 풀립니다. '일단 의대 입학 후에는 『감염된 독서』에 등장하는 그 숱한 고전을 꼼꼼히 읽어나갈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을 텐데, 이미 10대 시절 다 읽었구나'하며 대략 그림을 그려봅니다. 어린 시절 읽었던 방대한 문학서적을 누에고치 삼아서 40대가 된 최영화 교수는 비단 뽑기, 수월하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치 신춘문예 응모하러 연습하듯, 『감염된 독서』에서 최영화는 의대교수로서라기보다는 문학도처럼 다채로운 문체와 형식을 시도합니다. 편지체, 보고서체, 자기독백형 일기체 등 문체가 다채롭고 매력적입니다. 어린시절부터 섭렵해온 문학작품의 탑에 더해, 의사로서의 경험이 워낙 풍부하기에 글에 힘이 있지요. 참 재미있습니다. 이 책 안 읽고, 2018년 넘어갔으면 어쨌을까 하며 신나게 읽었습니다.

최근 만난 『맛, 그 지적 유혹』의 저자 정소영 박사가 영문학자로서 소설을 '음식'을 키워드로 읽어냈다면 최영화 교수는 의학자, 그 중에서도 감염내과 전문의로서 문학작품에서 '감염병'의 징후를 포착하고 그에 대한 사람들(고통을 겪는 사람, 간호하는 사람, 병을 멀리하려는 사람 등)의 반응을 분석합니다. 역시 한 분야를 깊이 들어간 이들은 같은 작품을 읽어도 틈새 빛으로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는 거네요. 감탄하며 부러워합니다.

자, 이제 『감염된 독서』에서 제가 취하고 기억할 정보만 메모형식으로 기록해봅니다.

"내과 전공의가 되어 호흡기내과를 배정받았을 때 저는 객혈 환자를 볼 일이 가장 두려웠습니다...(중략)...아, 무섭다. 그렇지만 당시엔, 그리 먼 옛날도 아닌데, 장갑 끼고 마스크 쓰고 그러느라 꾸물대는 것은 회식한 뒤 돈 안 내려고 구두끈 매는 것만큼이나 치사하고 우스우며 소견 좁은 일이었습니다. 몸 사리지 않고 환자를 돌보는 것, 그것이 바람직한 자세였지요."

"벽엔 선홍색 피가 낭자했고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저는 객혈을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아요'라는 표정으로 굵은 혈관 주사를 시작했으며 피가래를 뽑아냈습니다. 마스크도 없이"

『감염된 독서』 202-3쪽.


'감염 따윈 두렵지 않아'하며 마스크 없이 객혈 쏟는 환자를 치료했던 의료진, 그래서 최영화 교수가 어떻게 되었느냐고요? 네, 결혁에 걸렸었지요. 이 대목에서 저는 '생의학'이 어쩌구저쩌구해도, 해당 지역의 정서 사회문화적 풍토에 따라 그 치유방식이나 몸에의 접근이 꽤 차이 나는구나싶어 재미있었어요. 100여년 전 제중원 수술 장면 사진 속 의사들이 맨손으로 집도하는 모습과 겹칩니다.

최영화 교수를 멘토로 모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르침, 후학 양성에 뜻을 세우고 재미도 느끼시는 이 분은 한센병 강의하는 고충을 다음과 같이 토로합니다.

저는 감염내과 의사로 제가 강의하는 대다수의 감염병을 가까이서 겪고 치료하지만 나병만은 본 적도 치료한 적도 없으면서 학생들 강의는 그럴듯하게, 마치 본 것처럼, 뇌와 손이 따로인 채로 열심히, 해마다 하고 있습니다.

『감염된 독서』 143족

오늘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을 읽으면서 현실이었던, 그것도 죽고 싶을만큼 고통스러운 현실이었던 환자들과 그 고통을 해결해보고자 했던 한 의사의 이야기를 문자로나마 전해 들으면서 소록도 한번 가지 않고서는 이 강의도 이제 그만두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위의 책, 147쪽

비슷한 생각을 해 본 적이 많습니다. 최영화 교수야, 한센병이 워낙 드물어서 그랬다는 핑계라도 대려면 대겠지만 핑계거리도 없는 사람은 그 죄책감을 어찌합니까? 판을 키우면 판 위에 오르는 언어가 달라질텐데, 게을러서 늘 같은 판 위에 같은 판서나 계속하는 자의 죄책감은 어떻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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