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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하늘, 이제 그만 - 환경이야기 (물) ㅣ 노란돼지 창작그림책 15
이욱재 글.그림 / 노란돼지 / 2012년 3월
평점 :
<맑은 하늘, 이제 그만>
아이들 동화책이라면 "맑은 하늘아 매일
만나자"가 더 친숙한 제목일텐데, "맑은 하늘 그만"이라니 제목에서부터 호기심이 끌렸습니다. 노란돼지 출판사답게 온통 노랑 책 겉표지를 보면,
곱슬머리의 까만 피부의 아이가 한눈에는 눈물을 그렁그렁, 한 눈은 쏟아지는 빗방울에 살짝 감고 있습니다. 표정이 묘합니다. 이 함축적인 아이의
표정에 이욱재 작가님이 전하고 싶어하는 메세지가 역시나 함축되어 있는 듯 합니다.
작가의 글을 보니, 어느날 TV 채널을
이리 저리 돌리다가, 아프리카의 물부족 문제를 다룬 프로그램을 보고 충격을 받아서 이 동화를 구상하게 되었답니다. 대단한 환경 운동가는
아니지만, 작가는 작은 실천들을 통해 환경 사랑의 정신을 공유하고, 아프리카 대륙의 기아와 물부족 고통을 함께 나누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하네요.
즉, '나비효과'이지요. 작가의 이런 염원을 염두하면서 아이와 함께 읽었습니다.
책표지를 넘기면 제일 먼저 파란 하늘
그림이 나옵니다. 그리고 책장을 덮을 즈음, 그 파란 하늘에는 먹구름이 끼고 비가 주루룩 내립니다. <맑은 하늘, 이제 그만>을 읽은
독자라면, 오히려 이런 먹구름에 미소를 띨지 모르겠습니다. 맑고 깨끗한 물이 간절한 수단의 8살 소녀 아리안이 이 비에 얼마나 함박 웃음 지을지
상상될테니까요.
이욱재 작가님은 지구촌 환경 재앙 문제가
'남의 이야기, 먼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지구촌 모든 이들의 공통의 생존의 문제이자, 서로 얽혀있기에 서로 도우며 풀어내야 할 과업임을 효과적인
이야기 장치로 보여줍니다. 바로 "물 펑펑나지 물값싸지, 물 아껴쓸 필요조차 못느끼게
풍요한 대한민국의 8살 아이 맑음이"와 "맑은 물을 구할 수 없어서 친한 친구가 병으로 저세상에 가고, 마을의 우물을 차지하려 총칼로
유혈극벌이는 것을 목격해야 하는 수단의 8살 아이 아리안"의 이야기를 교차하는 장치를 통해서입니다.
맑음이네 가족.
보물 1호 차를 번쩍번쩍 세차하고 희열을
느끼는 아빠,
설겆이 수도물을 펑펑 틀어놓고 전화 수다
삼매경인 엄마,
양치질하는 내내 수도물을 콸콸 틀어 놓는
버릇이 있는 맑음이.
온 가족이 티비를 보는데 똑똑똑
수도꼭지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하지만, 지금 이순간 TV보는 재미를 빼앗기고 싶지 않아 모두들 수도꼭지 잠그기를 나중으로 미룹니다.
동시대 아프리카 수단에 사는 아리안은 학교에 가는 대신 아침마다 오빠와 왕복 3시간 거리의 물 웅덩이로 물을 뜨러 나갑니다. 그나마 우리가 흔히
보는 맑은 수도물도 아닙니다. 코끼리가, 기린이, 작은 짐승들이 지난 밤 나누어 마셨을 물, 이웃 마을 아이들과 터싸움을 해서 조금 얻어오는
흙탕물입니다.
이욱재 작가님은 그림으로 메세지를
전달하는 재주가 진정 탁월합니다. 마치, 장편 다큐멘터리를 본 듯 그림 몇장이 전하고 있는 이야기가 참으로 강렬하고도 서사적입니다. 예를 들어,
수단 아리안의 마을 정경을 묘사한 이 한 장의 그림을 보면, 물부족으로 인해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서로 싸우는 모습에 쩍쩍 갈라져나가게 아픈
아리안의 마음을 보는 듯 합니다. 7세 아들은 땅이 처참할 만치 가뭄으로 갈라진 장면은 처음 보는지라, 제가 마른 지점토를 예를 들어 설명을
해주어야 했습니다. 저는 다음의 두 페이지에서 이욱재 작가님의 기발한 장치를 또 발견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반전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서 더
아리안이 겪을 참혹한 현실이 가슴 아프게 다가옵니다.
물을 길러 3시간 왕복 맨발로 걷던 아리안의 오빠
다리안,
갑자기 땡볕 하늘에서 물줄기가 꼬마의
머리 위로 한 줄기 시원하게 쏟아집니다. '엇, 어디서 물이 났지?' 다음 장에서 그 의문은, 슬픈 끄덕거림으로 바뀝니다. 몇 시간 내 뙤약볕
아래서 걷다가 일사병 걸릴 염려가 있는 상황에서 기린의 오줌은 큰 냉각수의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자연과 공존하고 환경을 최대 활용하는 아리안과
다리안의 모습에 존경의 마음마저 들지만, 동시에 기린 다리 밑에 머리를 숙이고 있는 다리안의 모습에 가슴이 뭉클하기도 합니다.
이욱재 작가님은 실제로, 아프리카의 물 부족 문제를 다룬 TV 프로그램을 보는데 물이 똑, 똑, 똑, 떨어지는 소리가 나서 얼른 달려가 잠갔다고 합니다. 작가의 그런 경험과 자기 반성의 마음이 동화에서는 맑음이의 모습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아리안의 눈물을 보고는, 맑음이 역시 황급히 부엌으로 달려 가는 군요. 그리고 빗물을 모아, 아리안에게 보내주려고 우비를 입고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물통을 조르르 나란히 세워놓고는. 맑음이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불쌍하고 가난한 쟤들좀 어떻게 도와주자."식의 온정주의도 아니고, "나는 그래도 편하게 물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나라에 태어났으니 얼마나 다행이야."의 안도의 태도도 아닙니다. 아리안의 고통에 공감하고 지구편 어딘가의 8살 동갑내기 친구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나눠주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