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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나도 미치고 싶다 - 5만 시간의 연구 끝에 밝혀진 31가지 마음의 비밀
스티븐 그로스 지음, 전행선 옮김 / 나무의철학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때로는 나도 미치고 싶다
원제 The Examined Life
<때로는 나도 미치고 싶다>. 영국 최고의 정신분석가라는 스티븐 그로스의 처녀작이다. 이 험한 세상, 일상에서 “미쳐버려” “미칠 것 같아” “미치고 싶어”란 말을 연발하는 이가 많을 텐데도 막상 활자화된 제목은 꽤나 자극적이다다. 게다가 딱 20년전인 1993년, 역시 정신과 의사인 이나미 박사가 냈던 책 제목이 <떄론 나도 미치고 싶다>이기에 살짝 의아스럽다. 원제 The Examined Life가 주는 진중함과 스티븐 그로스의 문학적이고 우아한 문체가 자극적인 제목에 묻혀 버리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하긴 그 우아하면서 치밀한 스티븐 그로스의 정신 세계에서 유영하기는 제목과 상관없이 독자의 몫이지만.
‘상담’ 내지는 ‘정신과’ 등의 단어와는 거리를 두려는 한국 사회에서는 생소할지도 모르지만, 정신분석가의 카우치에 누워보는 상상을 해본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 푹신한 카우치에 누워서, ‘나는 누구인지, 내가 왜 이러는지’를 탐험해보고 싶은 두렵지만 거부할 수 없는 호기심. 스티븐 그로스는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의 호기심에 응대하며 그의 카우치로 초대한다. 25년간 5만 시간을 상담에 오롯이 쏟았던 대가의 카우치로.
<때로는 나도 미치고 싶다>를 읽다보면, The Examined Life라는 원제가 중의적으로 해석된다는 생각이 든다. 스티븐 그로스의 눈으로, 동시에 독자 자신의 눈으로 내면을 성찰(examine and examined)한다는. 게다가 분석의 대상이 되는 이는 비단 스티븐 그로스의 카우치를 거쳐간 실제 내담자, 독자 뿐 아니라 저자 스티븐 그로스 자신이기도 하다. 분석자로서의 내려다 보는 오만한 시선이 아닌, 자기 자신의 욕망과 두려움 등을 우아하게 드러낼 수 있다니, 이 얼마나 겸손한 자기성찰인가. 스티븐 그로스의 치열한 직업정신, 다방면에 조예 깊은 유식함, 인품에 반해서 330여 페이지의 두터운 책을 한 달음에 읽고, 다시 천천히 음미하며 재독했다.
<때로는 나도 미치고 싶다>를 명상서인양, 소중한 일기인양 수차례 읽은 독자는 나 뿐만이 아닐 듯 하다. 출간 즉시 아마존 (amazon.com) 1위에 등극하는가하면, 〈가디언〉, 〈BBC〉, 〈타임스〉 등 언론에서도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으로 선정했으니 말이다. 베스트셀러 인기의 비결? 아마도 쉽게 읽혀서이지 않을까? 버클리와 옥스포드라는 소위 “후덜덜한” 조합의 명문대 출신, 게다가 런던대학교에서 정신분석이론을 강의해온 학구적인 스티븐 그로스는 의외로 소박한 언어를 구사한다. 어려운 정신분석의 전문용어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총 31편의 에피소드들을 우아한 소설처럼 엮으며, 인간 심리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았다. 한국 문화권의 저자가 아님에도, 소개되고 있는 사연들이 마치 내 이야기, 내 친구나 지인의 이야기인양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도 신기하다. 그가 탐색해 들어간 인간 심리의 심연은 이미 ‘보편’의 경지에 이르렀는지도 모르겠다.
31개의 에피소드 중에서 유난히 인상 깊었던 이야기를 두 가지 소개하면서 초보 독자의 <때로는 나도 미치고 싶다> 예찬을 마치고자 한다.
이야기 하나. 스티븐 그로스 박사는 우리 시대 아이들에게 남발되고 있는 공허한 칭찬에서 무관심의 화살을 잡아낸다. 그는 공허한 칭찬 대신, “곁에 있어주기”야 말로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사랑표현임을 넌지시 일꺠워준다.
이야기 둘. 스티븐 그로스 박사는 9.11 테러 당시 비행기가 북쪽 타워를 뚫고 지나간걸 목격한 남쪽 타워의 많은 이들이 그 참상을 무시하면서 하던 일을 계속했음을 지적한다. 그가 정신분석가로서 25년 동안 깨달은 바에 따르면, “사람들은 변화를 거부하고 현재에 안주하고 싶어한다.......(중략).......우리는 변화의 목전에서 주저한다. 변화는 곧 상실이기 떄무이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어느 정도의 상실감은 과감히 수용할 줄 알아야 한다 (pp.77-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