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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의 즐거움
임희택 지음 / 한빛비즈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망각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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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을 냉장고에 두고 한 나절을 찾았네,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통화하면서 온 방을 찾아 다녔네.'하며 "저주받을 기억력 감퇴, 건망증"을 한탄하는 이들을 보았다. 자식 SKY로 올려보내고자 기억력 증강법을 백방으로 찾아다니는 부모도 보았다. 실제로 최근 망각 유전자를 억제하여 기억력을 증강시키는 시도가 행해진다고 한다. 하지만, <망각의 즐거움>의 저자 임희택은 말한다. "잊어라. 망각으로 자유의 즐거움을 사라." 그의 통찰을 극단적으로 요약하자면, 망각이야 말로 인류의 오랜 생존기제의 하나이기에 망각을 억제하지 말고 오히려 행복한 생존으로 가는 통로로 활용하라는 것이다.
<망각의 즐거움>은 서울 사이버대학교 심리학과에 편입후 망각을 연구해온 저자 임희택의 책장을 엿보는 기분이 들 정도로 많은 심리학 용어, 실험 및 이론이 등장한다. 브레이트, 보르헤스, 러셀, 카뮈, 세익스피어 등 임희택의 독서편력을 짐작케 할 문학작품에서의 인용도 눈에 뜨인다. 어떤 의미에서 <망각의 즐거움>은 대중에게 공개하는 저자의 고백서같다. 정작 저자 자신은 이 책의 주관성을 견제하기 위해 일부러 학자와 유명 저서의 권위를 빌렸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임희택은 기억하기에 집착하는 완벽주의 성향으로 고통받았고 벗어나려 노력해왔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3학년때 육성회비를 내지 못하고 반 아이들 앞에서 면박을 당했던 그는 가난을 증오하고 부끄러워하던 그 기억을 35년이 지나서도 생생히 기억한다. 임희택은, “과거의 나는 무엇을 기억하는 능력에만 매달렸지 무엇을 잊으려고 애쓴다는 것은 생각지도 않았다. 내게 있어 잊어버린다는 것은 능력의 부재와 같은 뜻이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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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이게도 기억에 집착했던 그가 이제는 망각의 즐거움, 생존에서의 그 필수불가결성을 이야기한다. 그는 “저주받을 기억력”을 가진 인물들의 비극적 종말을 독자에게 환기시키며 '기억력과 행복이 비례'한다는 대중적 신화에 일침을 놓는다. 인류 최고의 기억술사로 불리는 솔로몬 셰르셉스키는 말년에 자신이 5분 전에 들은 이야기와 5년 전에 들은 이야기를 구분 못하는 지경의 혼돈에 빠져 결국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보르헤스의 <픽션들>에 등장하는 기억의 천재 푸네스 역시 “나의 기억력은 쓰레기 하치장”이라며 고통스러워하다가 결국 스물한 살도 채 못되어 생을 마감한다.
망각은 심리학적으로 건조하게 정의하자면 “연습을 하지 않은 기간에 뒤따라 나타나는 학습된 행동의 퇴화(p.26)”이다. 임희택은 망각을 거부하고 억제하려는 욕망을 소유의식과 집착의 연장으로 본다. 대신 망각의 절대적 순기능을 강조한다. 망각이야말로 인류에게 보호막을 제공하며, 생존에 유리한 유전자를 선택하면서 진화해온 긍정적 능력이라는 것이다. 즉, 기억이 환경 변화에 대처하는 뇌의 방어기제의 대표적인 씨줄이라면 망각은 정신 보호기능의 날줄이다. 이 씨줄과 날줄을 조율을 잘해야 현대인을 괴롭히는 불면증, 공황장애, 스트레스 등 현대사회의 심리적 고통에서 보다 멀어질 수 있다. 정신건강의 발목을 잡는 기억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 잊으라고? 아니다. <망각의 즐거움>은 망각의 필요성과 원리, 그 실천법에 대해 학문적으로 접근하려 애쓴 저자의 노력이 엿보이는 책이다. 저자는 망각을 원리와 필요성에 대해 인문학, 과학으로 접근함으로써 설득시킨다. 잊어버리는 것이 기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며, 불필요한 스트레스에 휘둘리지 않고 삶의 에너지를 현재에 집중시킬 수 있는 망각의 기능을 강조한다. 기억에 대한 집착으로 마음에 담아둘 수록, 쌓아둔 생각들도 부패하며 독소를 만들어 몸과 마음에 병을 가져온다. 그렇다면 집착적 기억에서 어떻게 탈출할 것인가? 저자는 몰입을 답으로 제시한다. 몰입이야말로 망각과 기억 사이의 중용이라며.
‘저주받을 건망증과 기억력 감퇴’를 한탄하는 이나, 완벽주의 성향으로 기억 창고를 꽉꽉 채워두려 하는 이들, 그래서 늘 가슴이 뻐직근하게 무겁고 숨쉬기 답답한 이들에게 <망각의 즐거움>을 권한다. 이왕이면 몰입해서 읽어서, ‘망각과 기억 사이의 중용’을 경험해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