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질한 위인전 - 위인전에 속은 어른들을 위한
함현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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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질한 위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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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하게 시작해보자. 다들 그런 경험 있지 않은지?  화장실이라고는 가지 않을 것 같은 공주풍 연예인 역시 하루 서너 번은 화장실을 들락인다거나, 그 위대한 세종대왕이 수십 명의 자식을 거느렸다는 사실에 충격받아 보지 않았는가? 초등학교 시절, 내가 그랬다. 자고로 위인이라면 범인과 대극점, 저 높은 곳에서 무결점의 완전을 빛내는 별인 줄 알았으니까. 하지만 커갈수록 '위인' vs '범인'이 이항대립의 범주가 아님을 안다. 우리 안에 위인 있고, 위인 안에 범인 있고, 한 마디로 위대함과 찌질함은 따로 가는 속성이 아니다! 이렇게 "위인전에 속은 어른들을 위해" <딴지일보>의 기자 함현식은 대놓고 위인들의 찌질함을 폭로한다. 딴지일보에 연재했던 글을 모은 <찌질한 위인전>을 통해. 저자 스스로가 대한민국의 주류 엘리트 코스와는 달리 학사 출신으로 11개월이나 백수 생활을 거치며 "찌질의 구렁텅이(출판사 측 저자 소개의 표현에 따르면)"에서 허우적 거려보았단다. 그 "백수생활" 시기에 만났던 김수영과 고흐에게서 찌질함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가능성을 보았다. 저자는 "위인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어두운 면모를 밝힘으로써 그들을 범인의 수준으로 끌어(6쪽)"내리거나 "우리들 각자의 찌질함을 그냥 보아넘어가주자는 식의 얄팍한 합리화 (6쪽)"를 위해 이 책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위인들의 스스로 찌질함과 어떻게 맞서 싸우면서 업적을 남겼는지 그 과정에서 배움을 얻자는 의도로 책을 썼다 한다.
*
<찌질한 위인전>을 먼저 읽은 독자들의 평이 우호적이어서 기대를 하고 책장을 펼쳤다. 역시나 저자 함현식이 가장 깊이 생각해본 인물인 김수영과 고흐 이야기가 전면에 배치되었다. 나 역시 대학입시를 위한 반 강제 자율학습이 밤 11시까지 계속되던 상황에서도 "도서관 열람 시간에 꼭 가봐야 한다"라는 엉뚱한 조퇴사유를 대어 도서관에서 빈센트 반 고흐 평전을 뒤적이던 팬이 아니던가. 존경하는 반 고흐에게서 함현식 작가가 찌질함을 끄집어내겠다는데 호기심은 더욱 커진다.  
<반 고흐, 사랑과 광기의 나날>(데릭 펠, 세미콜론)과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빈센트 반 고흐, 예담)의 책을 중점적으로 참고한 저자는, 아니나 다를까 반 고흐의 경제적 무능을 찌질함의 속성으로 제시한다. '비운의 천재' 고흐는 살아서는 단 한 점의 유화만을 팔았을 만큼 경제적으로 궁핍하였다. 게다가 미친 몰입과 열정으로 땡볕 아래서 태양의 빛을 화폭에 담으며 유화물감을 두텁게 칠했던 그에게 그림재료비는 얼마나 많이 필요했겠는가? 다행히도 그런 반 고흐를 이해하고 지원해주는 자가 있었으니 동생 테오였다. 외로웠을 반 고흐는 동생과 예술혼을 공유하고 이해받으며 그를 천군만마로 삼았다. 
반 고흐 외에도 아내에게 손찌검했던 시인 김수영, 억척스러운 현실 감각 떨어지는 가장으로서의 이중섭, 완전한 사랑을 위해 기꺼이 화려한 여성편력을 보인 리처드 파인만, 이름조차 지워지고 반역자로 처단된 천재 허균, 파울 괴벨스, 평화주의자라고만 보기엔 보수주의적 행보로 시작했던 마하트마 간디, 마초성 과시에 탐닉했던 관계의 파괴자 어니스트 헤밍웨이, 넬슨 만델라, '가장 성공한 소시오패스'라고도 불리는 인격장애자 스티브 잡스, 자기비화와 체념을 노래의 양념 삼았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등이 '찌질한 위인'으로 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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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 일보에 일정 기한 마감 시각 제한을 두고 연재한 글들인 만큼 아무래도 초반부에 소개된 인물 분석의 밀도가 훨씬 높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김수영, 반 고흐, 이중섭에 대한 밀도 높은 인물분석과 에피소드 소개는 다시 읽고 싶어진다. 하지만 인물당 2권 정도의 참고 문헌을 섭렵하고 분석한 글인만큼, 일부 분석에서는 저자 함현식의 목소리보다도 1차 자료 저자의 목소리가 압도적이라는 인상도 받았다. 예를 들어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관계 파괴자'로 규정하고 찌질함을 분서하는 데에 함현식은 '제프리 메이어스'의 평가에 많이 기댄다. 왜 다른 위인들에게서는 가족력으로서의 우울증이나 정신 장애를 지적하면서, 함현식은 왜 헤밍웨이의 자살 가족력은 언급하지 않았는지 무척 궁금하다.
요새는 어린이 책에서도 '위인'이라는 말대신 '인물'이라고 쓰기도 한다(비룡소 <새싹 인물전> 등). 위인이 너무 빛나 바라볼 수도 없는 태양이 아니라 여러 부정적 속성을 극복하거나 그것을 되려 발전의 원동력 삼아 나아가는 인물이라는 의미에서......."찌질함은 위대함의 일부였다." 그러니 우리도 우리에게서 가능성을 인정하고 발현해보자! <찌질한 위인전>이 주는 위로와 자극의 메세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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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페이지 중반 "1885년, 허봉은 나이 서른 다섯에 벼슬길이 완전히 끊겼다"에서 1885년은 1585년으로 수정되어야 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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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오늘
법상 지음 / 마음의숲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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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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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가뭄으로 마른 한국의 산천지만큼이나 출판계 역시 가뭄이라지만 예외가 있으니 바로 컬러링 북의 대 유행. 컬러링 북의 유행은 "저녁이 있는 삶"은 커녕 '주 5일 근무제에도 피곤에 찌든' 한국인이 기대는 자기만의 동굴로서의 침잠이자 개인화된 치유라고 해석된다. 차마 말하진 못해도, '누군가 건조한 삶에 촉촉한 단비를 내려주었으면, 누가 날 위로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컬러링 북을 찾게 하는 게 아닐까?  그런 따뜻한 보듬음을 원한다면 법상 스님의 <눈부신 오늘>을 추천한다. 표지부터가 노오란 개나리 빛, 페이지마다 총천연색의 아름다운 사진이 삽입되어 있다. 스마트폰으로 사시가 될 지경인 눈이 편안해지고, 여백의 편집에 책장을 넘기는 손가락의 움직임이 느려지고, 마음에도 여유가 찾아든다.  

법상스님은 동국대학교에서 불교를 공부하고, 16년간 군법사로 활동하며 '비종교적 종교인'을 자처해왔다. 스스로 마음 공부에 매진하면서도 더 많은 대중에게 이를 전하고자 불교방송 (BBS)에서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반야심경과 마음공부 등 불서를 꾸준히 펴내 오고 있다. 2005년에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이후, 꾸준히 책을 펴내오던 그가 3년 만에 대중에게 선보이는 <눈부신 오늘>은 제목 그대로 '눈부신 오늘, 오늘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서문부터 법상 스님은 <눈부신 오늘>이 밥을 숟가락을 떠서 먹여주는 류의 책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아무리 현명할지언정 스승에게 답을 전적으로 기대지 말라는 메세지는, 인스턴트 시대 '떠 먹여주는 밥'에 익숙해진 독자들을 뜨끔하게 한다. 즉, <눈부신 오늘>을 읽고 '오늘의 눈부심' 을 재발견할 몫은 오로지 독자 앞에 놓인다. 

 

  '해야 할' 일에 대한 압박감 때문인지, 독자로서의 제 몫을 하기 어렵다. 법상 스님의 말씀이 모두 마음에 와서 박히지는 않으니 말이다. 나 자신이 세속적 범인이기에, 나를 괴롭히는 인연 조차도 다 긍정하라거나, 부정적인 말도 다 흘려보내라는 메시지가 '머리로는 수긍해도, 마음으로 인정하긴' 어렵다. 그 와중에 가장 마음에 쏙 와서 박히는 충고는 일상의 명상법인데, 무척 쉽다. 이름하여 '감사와 사랑의 호흡명상.' 숨을 들이쉬면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숨을 내쉬면서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란다. 법상 스님은 자비와 사랑은 많이 표현할수록 마치 눈덩이 굴릴수록 커지듯 더 커진다는데, 범인의 귀에도 그 말씀은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오늘의 눈부심'은 결국 내 마음에 있다는, 내가 만들기 나름이라는 메시지. <눈부신 오늘>을 통해 다시 확인한다.
 
 

다가오는 여름에는 <눈부신 오늘>에 실린 풍경 사진을 찾아다니는 여행을 해볼까나........'오늘의 눈부심'을 찾기 위해서는 왠지 걸어야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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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읽는 아들러 심리학 2 - 실천편 만화로 읽는 아들러 심리학 2
이와이 도시노리 지음, 황세정 옮김 / 까치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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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읽는 아들러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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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입견이 무섭다. 만화여서 얕잡아 보았다. <아들러 심리학 1,2> 제목 앞에 '만화로 읽는'이란 문구에 얕잡아 보았다. 한국에서 출판된 책들과 반대 순서로 진행되는 페이지 배치하며, 일본 작가들이 기획하고 썼기에 일본 특유의 느낌이 강하다고 생각하며 책을 집어 들었다. '만화니까.......'하면서 메모지도 꺼내놓지 않고, 편하게 읽다가 몇 분 안에 가방을 뒤져 펜과 메모지를 찾아냈다. 마음 뜨끔뜨끔하게 찌르면서도 놓치기 아까운 주옥같은 충고가 넘쳐나서 뭔가를 적어두어야만 할 것 같았으니까. 

*

 

자세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최근 일본에는 아들러 심리학 열풍이 불고 있다. 이에 아들러 심리학을 일반 대중에게 쉽게 설명하면서도 실천의지까지 자극하는 실전안내서로서 나온 책이 바로 <만화로 읽는 아들러 심리학>이다. 아들러 심리학을 요약서술한 파트와 만화 파트라는 이원화된 구조를 취한 것은 출간 취지에 부합하는 탁월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 챕터마다 먼저 아들러 심리학이 절실히 필요한 인물들이 아들러의 유령(?)에게 가르침을 받으면서 긍정의 변화를 이뤄낸다는 내용의 만화가 펼처진다. 이어 이와이 도시노리가 만화의 일화와 연관지어 아들러 심리학을 쉽게 설명한다. 그는 아들러 심리학을 바탕으로 현재 상담하고 상담가를 양성하는 일에 종사하는 저자는 1권을 출간한 이후 독자들의 열렬한 성원으로 2권까지 연달아 출간하게 되었다며, 책의 활용법을 제시한다. 먼저 통독을 하고, 두 번째는 글만 읽고, 세번째는 만화만 다시 보라 한다. 나 역시 이 책은 한 번 읽고 '다 보았다'기에 미안해서 그 방식으로 다시 읽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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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 1870-1937)가 프로이트니 융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심리학의 3대 거장이라 한다. 신장154cm라는 신체적 약점과 7형제의 둘째로서 형의 그늘에 가려 있던 열등감을 극복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빈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스물 다섯 살에 이미 의사 면허를 취득하고 이후 정신과의사가 되었다.  프로이트 학파의 일부에서는 아들러를 '배신한 제자'라 표현하지만, 아들러는 프로이트의 강의에 한 번도 출석한 적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받은 적이 없다. 즉, 독자적으로 자신의 길을 갔으며 특히 1920년대 미국으로 건너간 후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된다.

*

 

약 6개월의 시차를 두고 출간된 <만화로 읽는 아들러 심리학> 1권과 2권 모두에서, 아들러 심리학을 깔끔하게 시각화한 표가 등장하는데, 자기결정성, 목적론, 전체론, 인지론, 대인관계론을 그 키워드로 제시한다. 흥미로웠던 점은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가족, 지역, 직장 등의 공동체 안에서 느끼는 소속감이나 공감, 신뢰감, 공헌감을 총칭"(1권 24쪽)한 "공동체 감각"을 중요한 가치관으로 제시한다. 어찌보면 단순해 보이고, 어떻게 보면 거창해보이는 이론인데 <만화를 읽는 아들러 심리학>을 읽다보면 의미가 쏙쏙 들어온다. 또한 실제 아들러의 밀착 멘토링 덕분에 삶의 변화를 맞은 주인공들을 보면, 독자 역시 내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 싶다는 욕구와 실천의지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끼게 된다. 실제 저자는 아들러 심리학을 "인간의 무한의 가능성을 가르쳐주는 심리학 (2권 230쪽)"이라며 용기를 주는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다. 과거에 고착되어, (자기 스스로가 규정한) 불행의 원인을 환경이나 타자에서 찾는 자기 파괴적 행위를 그만두고, 건설적으로 스스로를 바꿔보라는 메세지가 책 전반에 흐른다. 물론 변화란, 현재의 편안함(comfort zone) 밖으로 걸어나가 새로운 유형에 도전하는 과정이기에 용기와 결단이 따른다. 용기 역시 타인의 과잉칭찬이나 외부의 자극으로 얻는 것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용기를 부여하고 더 높은 곳을 향해, 나만 생각하지 않고 '공동체 감각' 속에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  <만화를 읽는 아들러 심리학>, 날 많이 돌아보게 한 책이었다. 한 동안 손 닿는 곳에 꽂아두고 자주 다시 꺼내 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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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읽는 아들러 심리학 1 만화로 읽는 아들러 심리학 1
이와이 도시노리 지음, 황세정 옮김 / 까치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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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읽는 아들러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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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입견이 무섭다. 만화여서 얕잡아 보았다. <아들러 심리학 1,2> 제목 앞에 '만화로 읽는'이란 문구에 얕잡아 보았다. 한국에서 출판된 책들과 반대 순서로 진행되는 페이지 배치하며, 일본 작가들이 기획하고 썼기에 일본 특유의 느낌이 강하다고 생각하며 책을 집어 들었다. '만화니까.......'하면서 메모지도 꺼내놓지 않고, 편하게 읽다가 몇 분 안에 가방을 뒤져 펜과 메모지를 찾아냈다. 마음 뜨끔뜨끔하게 찌르면서도 놓치기 아까운 주옥같은 충고가 넘쳐나서 뭔가를 적어두어야만 할 것 같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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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최근 일본에는 아들러 심리학 열풍이 불고 있다. 이에 아들러 심리학을 일반 대중에게 쉽게 설명하면서도 실천의지까지 자극하는 실전안내서로서 나온 책이 바로 <만화로 읽는 아들러 심리학>이다. 아들러 심리학을 요약서술한 파트와 만화 파트라는 이원화된 구조를 취한 것은 출간 취지에 부합하는 탁월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 챕터마다 먼저 아들러 심리학이 절실히 필요한 인물들이 아들러의 유령(?)에게 가르침을 받으면서 긍정의 변화를 이뤄낸다는 내용의 만화가 펼처진다. 이어 이와이 도시노리가 만화의 일화와 연관지어 아들러 심리학을 쉽게 설명한다. 그는 아들러 심리학을 바탕으로 현재 상담하고 상담가를 양성하는 일에 종사하는 저자는 1권을 출간한 이후 독자들의 열렬한 성원으로 2권까지 연달아 출간하게 되었다며, 책의 활용법을 제시한다. 먼저 통독을 하고, 두 번째는 글만 읽고, 세번째는 만화만 다시 보라 한다. 나 역시 이 책은 한 번 읽고 '다 보았다'기에 미안해서 그 방식으로 다시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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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 1870-1937)가 프로이트니 융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심리학의 3대 거장이라 한다. 신장154cm라는 신체적 약점과 7형제의 둘째로서 형의 그늘에 가려 있던 열등감을 극복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빈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스물 다섯 살에 이미 의사 면허를 취득하고 이후 정신과의사가 되었다.  프로이트 학파의 일부에서는 아들러를 '배신한 제자'라 표현하지만, 아들러는 프로이트의 강의에 한 번도 출석한 적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받은 적이 없다. 즉, 독자적으로 자신의 길을 갔으며 특히 1920년대 미국으로 건너간 후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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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6개월의 시차를 두고 출간된 <만화로 읽는 아들러 심리학> 1권과 2권 모두에서, 아들러 심리학을 깔끔하게 시각화한 표가 등장하는데, 자기결정성, 목적론, 전체론, 인지론, 대인관계론을 그 키워드로 제시한다. 흥미로웠던 점은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가족, 지역, 직장 등의 공동체 안에서 느끼는 소속감이나 공감, 신뢰감, 공헌감을 총칭"(1권 24쪽)한 "공동체 감각"을 중요한 가치관으로 제시한다. 어찌보면 단순해 보이고, 어떻게 보면 거창해보이는 이론인데 <만화를 읽는 아들러 심리학>을 읽다보면 의미가 쏙쏙 들어온다. 또한 실제 아들러의 밀착 멘토링 덕분에 삶의 변화를 맞은 주인공들을 보면, 독자 역시 내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 싶다는 욕구와 실천의지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끼게 된다. 실제 저자는 아들러 심리학을 "인간의 무한의 가능성을 가르쳐주는 심리학 (2권 230쪽)"이라며 용기를 주는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다. 과거에 고착되어, (자기 스스로가 규정한) 불행의 원인을 환경이나 타자에서 찾는 자기 파괴적 행위를 그만두고, 건설적으로 스스로를 바꿔보라는 메세지가 책 전반에 흐른다. 물론 변화란, 현재의 편안함(comfort zone) 밖으로 걸어나가 새로운 유형에 도전하는 과정이기에 용기와 결단이 따른다. 용기 역시 타인의 과잉칭찬이나 외부의 자극으로 얻는 것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용기를 부여하고 더 높은 곳을 향해, 나만 생각하지 않고 '공동체 감각' 속에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  <만화를 읽는 아들러 심리학>, 날 많이 돌아보게 한 책이었다. 한 동안 손 닿는 곳에 꽂아두고 자주 다시 꺼내 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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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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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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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강의실에서 페미니즘의 F는 입에 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사실 이야기할 만큼 알지도 못했거니와, 4음절 이름(부계 사회, 족보에서 지워진 여성을 회복한다는 취지에서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성씨를 각각 취해오니 성씨는 자연스레 2음절이 된다)을 스스로 부여한 페미니스트들을 노골적으로 경멸하는 교수님 앞에서 F를 나불대었다가는 왠지 '찍힐' 것 같았다.  'gendered archeology'를 주창하며 패기차게 등장한 학자들이 쓴 <Feminist Anthropology>를 읽다가 깜짝 놀랐다. F가 강의실에서 암묵적 금기어였던 것은 대한민국에서 뿐이 아니구나! 사실 페미니즘(feminism)은 세상의 모든 남자를 적삼아, 여성이 여성을 위해 여성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편협한 운동이 아니라고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페미니즘의 'F'만 발음해도 색안경을 끼는 사고의 이분론자들이 많은 것 같다. 그들이 리베카 솔닛 (Rebecca Solnit 1961~)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읽으면 어떻게 반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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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원제 『MANSPLAIN : Men Explain Things to Me』)는 제목부터가 반발을 불러 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 "남자들은 아직도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그리고 내가 알고 그들은 모르는 일에 대해서 내게 잘못된 설명을 늘어놓은 데 대해 사과한 남자는 아직까지 한 명도 없었다. (21쪽)" 등, 공격적일만큼 솔직한 저자의 문체 역시 마찬가지이다. '멘스플레인(mansplain)은 2010년 『뉴욕 타임스』올해의 단어에 올랐고 2014년에는 옥스퍼드 온라인 영어사전에도 실릴 만큼 파급력을 발휘했다. 정작 그녀는 이 신조어를 처음 쓴 이가 아니지만, 종종 그 신조어의 진원으로 언급되기도 했다. 2008년 '톰디스패치' 블로그에 실린 그녀의 글(원문: http://www.tomdispatch.com/blog/174918/tomgram%3A_rebecca_solnit%2C_the_archipelago_of_arrogance
 )  이 많이 읽힌 탓도 있으리라. 그 글발 대단한 필진이 포진한 잡지, 하퍼스(Harper's)의 편집자였고 "지난 20년가량을 글로 먹고 살"(147쪽)"아온 작가답게 그녀의 필력은 대단하다. 번역자 김명남은 그녀의 글쓰기 전략을 두고, "모든 경로를 다 거닐어보는 글, 뜻밖의 연결을 환영하는 글, 끝나지 않는 대화를 시작하는 글, 그러면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숨기지 않는(235쪽)" 글이라며, 레베카 솔닛의 말을 소개한다.  
*
탄탄한 독자층을 거느린 베스트셀러 작가인 만큼, 그녀는 적재적소에 셀러브리티의 이름을 심어 놓았고 카니발리즘 살육 실화 등 자극적인 소재들도 소개한다(소녀를 성폭행한 유명 감독 로만 폴란스키나 라나 클라크슨을 엽총으로 살해한 필 스펙터 사례 등). 그렇다고 여성 잡지 기사처럼 트렌디한 소재와 현란한 문구로 화장한 가벼운 글이 아니다. 예술평론과 문화비평에 역사평론까지 섭렵해온 팔방미인에다 환경, 반핵, 인권 운동의 현장에 서온 열렬한 현장운동가(activist)로서 그녀는 세상의 갑질에 집중포격을 한다. 대포가 아닌 글발, 아니 정확히는 노트북 타이핑으로.....속이 후련하다.   
특히 그녀가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Dominique Strauss Kahn 1949~ )의 성폭력 범죄를 아프리카와 유럽의 식민역사에 우아하게 빗대면서도 격렬하게 비난할 때 속이 후련했다. 상원의원 후보자 리처드 머독(Richard Mourdock 1951~ )이 강간임신을 "신이 준 선물(gift from god)"이라며 되려 강간범의 권리보호에 앞장섰다고 폭로하는 대목에서 또 속이 후련했다.  
*
나는 이미 레베카 솔닛에게 강하게 끌렸다. 차근차근 그녀의 글을 찾아 읽어나갈 것이다. 예비독자를 레베카 솔닛의 팬덤에 초대하며,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읽어야 할 이유 두 가지를 더 소개하고 싶다. 먼저, 이 책 덕분에 젠더, 섹슈얼리티, 인종의 문제를 탐색한 화가 아나 떼레사 페르단데스(Ana Teresa Fernandez 홈페이지: http://anateresafernandez.com  )를 알게 된다. 두번 째, 버지니아 울프를 스승 삼은 레베카 솔닛 덕분에 대해 '울프의 어둠'을 새롭게 볼 수 있다. 울프는 "다른 무언가가 되는 능력, 넘어서는 능력, 속박되지 않는 능력, 더 많은 것을 포함하는 능력"(141쪽)을 지향했다는데, 나 역시 그런 능력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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