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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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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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강의실에서 페미니즘의 F는 입에 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사실 이야기할 만큼 알지도 못했거니와, 4음절 이름(부계 사회, 족보에서 지워진 여성을 회복한다는 취지에서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성씨를 각각 취해오니 성씨는 자연스레 2음절이 된다)을 스스로 부여한 페미니스트들을 노골적으로 경멸하는 교수님 앞에서 F를 나불대었다가는 왠지 '찍힐' 것 같았다.  'gendered archeology'를 주창하며 패기차게 등장한 학자들이 쓴 <Feminist Anthropology>를 읽다가 깜짝 놀랐다. F가 강의실에서 암묵적 금기어였던 것은 대한민국에서 뿐이 아니구나! 사실 페미니즘(feminism)은 세상의 모든 남자를 적삼아, 여성이 여성을 위해 여성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편협한 운동이 아니라고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페미니즘의 'F'만 발음해도 색안경을 끼는 사고의 이분론자들이 많은 것 같다. 그들이 리베카 솔닛 (Rebecca Solnit 1961~)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읽으면 어떻게 반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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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원제 『MANSPLAIN : Men Explain Things to Me』)는 제목부터가 반발을 불러 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 "남자들은 아직도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그리고 내가 알고 그들은 모르는 일에 대해서 내게 잘못된 설명을 늘어놓은 데 대해 사과한 남자는 아직까지 한 명도 없었다. (21쪽)" 등, 공격적일만큼 솔직한 저자의 문체 역시 마찬가지이다. '멘스플레인(mansplain)은 2010년 『뉴욕 타임스』올해의 단어에 올랐고 2014년에는 옥스퍼드 온라인 영어사전에도 실릴 만큼 파급력을 발휘했다. 정작 그녀는 이 신조어를 처음 쓴 이가 아니지만, 종종 그 신조어의 진원으로 언급되기도 했다. 2008년 '톰디스패치' 블로그에 실린 그녀의 글(원문: http://www.tomdispatch.com/blog/174918/tomgram%3A_rebecca_solnit%2C_the_archipelago_of_arrogance
 )  이 많이 읽힌 탓도 있으리라. 그 글발 대단한 필진이 포진한 잡지, 하퍼스(Harper's)의 편집자였고 "지난 20년가량을 글로 먹고 살"(147쪽)"아온 작가답게 그녀의 필력은 대단하다. 번역자 김명남은 그녀의 글쓰기 전략을 두고, "모든 경로를 다 거닐어보는 글, 뜻밖의 연결을 환영하는 글, 끝나지 않는 대화를 시작하는 글, 그러면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숨기지 않는(235쪽)" 글이라며, 레베카 솔닛의 말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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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한 독자층을 거느린 베스트셀러 작가인 만큼, 그녀는 적재적소에 셀러브리티의 이름을 심어 놓았고 카니발리즘 살육 실화 등 자극적인 소재들도 소개한다(소녀를 성폭행한 유명 감독 로만 폴란스키나 라나 클라크슨을 엽총으로 살해한 필 스펙터 사례 등). 그렇다고 여성 잡지 기사처럼 트렌디한 소재와 현란한 문구로 화장한 가벼운 글이 아니다. 예술평론과 문화비평에 역사평론까지 섭렵해온 팔방미인에다 환경, 반핵, 인권 운동의 현장에 서온 열렬한 현장운동가(activist)로서 그녀는 세상의 갑질에 집중포격을 한다. 대포가 아닌 글발, 아니 정확히는 노트북 타이핑으로.....속이 후련하다.   
특히 그녀가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Dominique Strauss Kahn 1949~ )의 성폭력 범죄를 아프리카와 유럽의 식민역사에 우아하게 빗대면서도 격렬하게 비난할 때 속이 후련했다. 상원의원 후보자 리처드 머독(Richard Mourdock 1951~ )이 강간임신을 "신이 준 선물(gift from god)"이라며 되려 강간범의 권리보호에 앞장섰다고 폭로하는 대목에서 또 속이 후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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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미 레베카 솔닛에게 강하게 끌렸다. 차근차근 그녀의 글을 찾아 읽어나갈 것이다. 예비독자를 레베카 솔닛의 팬덤에 초대하며,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읽어야 할 이유 두 가지를 더 소개하고 싶다. 먼저, 이 책 덕분에 젠더, 섹슈얼리티, 인종의 문제를 탐색한 화가 아나 떼레사 페르단데스(Ana Teresa Fernandez 홈페이지: http://anateresafernandez.com  )를 알게 된다. 두번 째, 버지니아 울프를 스승 삼은 레베카 솔닛 덕분에 대해 '울프의 어둠'을 새롭게 볼 수 있다. 울프는 "다른 무언가가 되는 능력, 넘어서는 능력, 속박되지 않는 능력, 더 많은 것을 포함하는 능력"(141쪽)을 지향했다는데, 나 역시 그런 능력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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