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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질한 위인전 - 위인전에 속은 어른들을 위한
함현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5월
평점 :
품절
찌질한 위인전
유치하게 시작해보자. 다들 그런 경험 있지 않은지? 화장실이라고는 가지 않을 것 같은 공주풍 연예인 역시 하루 서너 번은 화장실을 들락인다거나, 그 위대한 세종대왕이 수십 명의 자식을 거느렸다는 사실에 충격받아 보지 않았는가? 초등학교 시절, 내가 그랬다. 자고로 위인이라면 범인과 대극점, 저 높은 곳에서 무결점의 완전을 빛내는 별인 줄 알았으니까. 하지만 커갈수록 '위인' vs '범인'이 이항대립의 범주가 아님을 안다. 우리 안에 위인 있고, 위인 안에 범인 있고, 한 마디로 위대함과 찌질함은 따로 가는 속성이 아니다! 이렇게 "위인전에 속은 어른들을 위해" <딴지일보>의 기자 함현식은 대놓고 위인들의 찌질함을 폭로한다. 딴지일보에 연재했던 글을 모은 <찌질한 위인전>을 통해. 저자 스스로가 대한민국의 주류 엘리트 코스와는 달리 학사 출신으로 11개월이나 백수 생활을 거치며 "찌질의 구렁텅이(출판사 측 저자 소개의 표현에 따르면)"에서 허우적 거려보았단다. 그 "백수생활" 시기에 만났던 김수영과 고흐에게서 찌질함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가능성을 보았다. 저자는 "위인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어두운 면모를 밝힘으로써 그들을 범인의 수준으로 끌어(6쪽)"내리거나 "우리들 각자의 찌질함을 그냥 보아넘어가주자는 식의 얄팍한 합리화 (6쪽)"를 위해 이 책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위인들의 스스로 찌질함과 어떻게 맞서 싸우면서 업적을 남겼는지 그 과정에서 배움을 얻자는 의도로 책을 썼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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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질한 위인전>을 먼저 읽은 독자들의 평이 우호적이어서 기대를 하고 책장을 펼쳤다. 역시나 저자 함현식이 가장 깊이 생각해본 인물인 김수영과 고흐 이야기가 전면에 배치되었다. 나 역시 대학입시를 위한 반 강제 자율학습이 밤 11시까지 계속되던 상황에서도 "도서관 열람 시간에 꼭 가봐야 한다"라는 엉뚱한 조퇴사유를 대어 도서관에서 빈센트 반 고흐 평전을 뒤적이던 팬이 아니던가. 존경하는 반 고흐에게서 함현식 작가가 찌질함을 끄집어내겠다는데 호기심은 더욱 커진다.
<반 고흐, 사랑과 광기의 나날>(데릭 펠, 세미콜론)과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빈센트 반 고흐, 예담)의 책을 중점적으로 참고한 저자는, 아니나 다를까 반 고흐의 경제적 무능을 찌질함의 속성으로 제시한다. '비운의 천재' 고흐는 살아서는 단 한 점의 유화만을 팔았을 만큼 경제적으로 궁핍하였다. 게다가 미친 몰입과 열정으로 땡볕 아래서 태양의 빛을 화폭에 담으며 유화물감을 두텁게 칠했던 그에게 그림재료비는 얼마나 많이 필요했겠는가? 다행히도 그런 반 고흐를 이해하고 지원해주는 자가 있었으니 동생 테오였다. 외로웠을 반 고흐는 동생과 예술혼을 공유하고 이해받으며 그를 천군만마로 삼았다.
반 고흐 외에도 아내에게 손찌검했던 시인 김수영, 억척스러운 현실 감각 떨어지는 가장으로서의 이중섭, 완전한 사랑을 위해 기꺼이 화려한 여성편력을 보인 리처드 파인만, 이름조차 지워지고 반역자로 처단된 천재 허균, 파울 괴벨스, 평화주의자라고만 보기엔 보수주의적 행보로 시작했던 마하트마 간디, 마초성 과시에 탐닉했던 관계의 파괴자 어니스트 헤밍웨이, 넬슨 만델라, '가장 성공한 소시오패스'라고도 불리는 인격장애자 스티브 잡스, 자기비화와 체념을 노래의 양념 삼았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등이 '찌질한 위인'으로 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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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 일보에 일정 기한 마감 시각 제한을 두고 연재한 글들인 만큼 아무래도 초반부에 소개된 인물 분석의 밀도가 훨씬 높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김수영, 반 고흐, 이중섭에 대한 밀도 높은 인물분석과 에피소드 소개는 다시 읽고 싶어진다. 하지만 인물당 2권 정도의 참고 문헌을 섭렵하고 분석한 글인만큼, 일부 분석에서는 저자 함현식의 목소리보다도 1차 자료 저자의 목소리가 압도적이라는 인상도 받았다. 예를 들어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관계 파괴자'로 규정하고 찌질함을 분서하는 데에 함현식은 '제프리 메이어스'의 평가에 많이 기댄다. 왜 다른 위인들에게서는 가족력으로서의 우울증이나 정신 장애를 지적하면서, 함현식은 왜 헤밍웨이의 자살 가족력은 언급하지 않았는지 무척 궁금하다.
요새는 어린이 책에서도 '위인'이라는 말대신 '인물'이라고 쓰기도 한다(비룡소 <새싹 인물전> 등). 위인이 너무 빛나 바라볼 수도 없는 태양이 아니라 여러 부정적 속성을 극복하거나 그것을 되려 발전의 원동력 삼아 나아가는 인물이라는 의미에서......."찌질함은 위대함의 일부였다." 그러니 우리도 우리에게서 가능성을 인정하고 발현해보자! <찌질한 위인전>이 주는 위로와 자극의 메세지였다!
*138페이지 중반 "1885년, 허봉은 나이 서른 다섯에 벼슬길이 완전히 끊겼다"에서 1885년은 1585년으로 수정되어야 할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