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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 가족
그레구아르 들라쿠르 지음, 이선민 옮김 / 문학테라피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개인주의 가족
프랑스 소설 좋아한다면서, 몇
년전부터는 아예 프랑스 베스트 작가 TOP10의 목록에서 이름을 내린 아멜리 노통브만 들먹이기도 민망하던
차이다. 부끄럽지만 이제야 새로 알게된 이름이 있다. 그레구아르 들라쿠르 (Grégoire
Delacourt). 그의 <개인주의 가족>(원제: L'écrivain de la famille )을 읽으며 깡마른 체구의 30대
초반 작가를 상상했는데 찾아보니 지성적 이미지가 강한 중장년층 작가이다. 카피라이터 출신이던 그를 혜성처럼 프랑스 문단에 데뷔시켜준 이 작품을
한국 독자에게 소개한 문학테라피 출판사에서는 진달래색 표지를 썼다. 그래, 그 노랑만큼 시니컬해서 재미난 구석도 있다. 동시에 묘하게 우울하고
묘하게 늘어진다. 노랑색인데...... 마지막 결말에서 '그것은 사랑이었네'의 아름다운 인생관을 확인할 수는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가족의 해체,
이상적인 가족에 대한 낭만화를 깨는 이야기인 것
같다.
*
<개인주의 가족>의 원제 <L'écrivain de la
famille >에서 가족의 소설가는 바로 주인공인 에두아르이다. 일곱 살 나이에 운율을 맞춘 시를 읊어서 문학계의
조르디(Jordy)를 예견한 가족들이 축배를 들게 한 기특한 꼬마이다. 하지만 열번째 생일이 다가올 무렵, 꼬마의 지위는 영재에서, 정신과
치료를 요하는 학습 부진 유급생으로 전락한다. 아버지는 에두아르를 기숙사로 떠나보낸다. "글을 쓰면 아문다"는 아리송한 말씀과 함께. 날개
제대로 펴보지도 못했던 문학 꼬마 에두아르는 혀를 내두르고 싶을 만큼 조숙하다. 커가면서 점차 자기 가족의 균열과 상처를 꿰뚫어보고, 그 균열을 글로써 봉합시켜달라는 가족의 무언의 기대를 감내한다.
"네가 쓴 글을 읽었으면 좋겠구나."하며 에두아르의 처녀작 출간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시는 부모님. 여기에 더해 열 여덟살 난 동갑내기
아가씨 모니크는 우렁 색시를 자처하며 에두아르의 소설창작에 채찍질을 해댄다. "아빠, 사람이 자기 인생을 선택하는 건가요 아니면 인생은
운명처럼 정해져 있는 건가요?"(61쪽)하고 묻던 에두아르는 모니크에게 이끌려가듯 결혼해버렸다.
*
이혼한 부모님, 정신병원에 들어간 남동생, 소설가로서 잘 안 풀리는 자기 인생, 에두아르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빈대처럼
살다가 어느 날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계시처럼 알게된다. 바로 광고 문구 제작. 그는 비록 소설가는 아니었으나 카피라이터로 성공을
거둔다. 이번에는 '무늬만 아내'인 모니크가 그의 빈대를 자처하며 그가 벌어온 돈을 흥청흥청 대신 써주니 물질적으로는 여전히
빈자였지만. 백만프랑을 받는 고액 연봉자였지만 인생은 고독했고 주머니 역시 텅 비어 있었다. 하룻밤 즐기려고 그를 따라 숙소에 왔던 여자 인턴이
"광고 기획 부서장이 이런 방에서 썩어 지내다니 도대체 뭐 하는 놈이냐,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질 정도면 당신 인생도 참 얼마나 고달팠을까?"하며
에두아르를 능멸하는 장면은 에두아르의 균열적 인생을 압축적으로 드러내준다. 알제리 전투에 참여했다 총기사고로 무고한 원주민을 죽인 이후 우울증,
급기야는 치매를 겪는 아버지. 첫 경험은 친 오빠 에두아르와 했지만 백마탄 왕자를 만나려했던 여동생, 그 미혼모 여동생이 낳은 손녀를
돌봐주면서도 연애에의 욕구를 포기하지 않은 매력적인 엄마, 요양원에서 뛰어내려 달팽이 구경하던 꼬마의 생명을 굳게하고 자신의 생명도 포기한
남동생, 자기 핏줄인지도 모를 딸아이들의 사치스런 양육을 위해 어마한 양육비를 지급해야하는
에두아르.
암 울 할 까? 그래도
<개인주의 가족>의 마지막 장면은 노랑이다.
"아빠, 나는 상처를 치유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하지만 한번 배워 볼게요, 약속해요. 어떤 방법이 있는지 알아보고, 원칙을 익혀 볼게요. 그런 뒤에 사랑 이야기를 쓸게요.
우리 가족의 사랑 이야기 말이에요."
(91쪽)
가족의 해체를 이야기한 많은 문학
작품이나 영화가 텁텁한 황토빛으로 마무리된다면 이 이야기는 맑은 노랑이다. 그래서 앞으로 더 그레구아르 들라쿠르란 작가의 책을 찾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팬이 되겠다는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