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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여기에 있을까요? - 2015년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작
콘스탄케 외르벡 닐센 지음, 아킨 두자킨 그림, 정철우 옮김 / 분홍고래 / 2017년 2월
평점 :
나는 왜
여기에 있을까요?
이번에도 역시 한 눈에
알아보았습니다. 그들의 작품임을. 예전에 <나는 혼자가 아니에요>의 표지만 보고도 콘스탄체 외르벡 닐센이 쓰고 아킨 두자킨이 그린
그림책인줄 대번에 알았거든요. 그 때 제가 쓴 리뷰를 다시 읽어보니 "노르웨이가 선정한 '가장 아름다운 책' 상과 '브라게' 상 등을 수상해온 아킨 두자킨의 그림체는 지문이나 홍채만큼이나
흉내낼 수 없는 독특성이 있"다고 적었네요. 탈세속적
몽환미를 뿜어내는 일러스트레이션과 함께 독자를 끌어들이는 1인칭 독백의 심연을 이 두 작가의 홍채라 하겠는데
<나는 왜 여기에 있을까요?>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의 고통과 번뇌를 이야기하면서도 파스텔빛 몽환의 그림을 입혔고, 곱씹을수록 가슴을
파고드는 문장이 시와 같습니다.
사실 <나는 왜 여기에
있을까요?>는 그림책치고는 유독 철학적이라 하겠습니다. 이 책을 함께 읽었던 유치원생과 초등학생들을 반응은 '어! 뭔가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거 같은데 무슨 뜻일까?'하는 아리송해하는 표정이었거든요. 어쩌면 이 책은 이민자가 연일 핫 이슈인 유럽의 아이들에게 더 빨리 와 닿을지
모릅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 전쟁이나 민족탄압 등 생사가 걸린 이유로 국경을 넘어 오는 이민자들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지는 않으니까요. 이
책에서는 혼자 뗏목을 탔거나 사막을 홀로 횡단하는 어린 아이가 화자입니다. 아이는 계속 묻습니다.
"나는 왜 나인지, 다른 누군가가 아닌지
그리고 나는 왜 여기에 있는지……. ” 아이가 자신에게 묻지만, 독자 역시 그 질문에 답하고 싶어지는 자신을
발견하며 깊이 책 속에 감정이입합니다.
추상화된 문장과 몽환적 그림이지만
<나는 왜 여기에 있을까요?>를 읽다보면 지구촌의 구체의 현실을 상상하게 됩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쉴 새 없이 일해야하는 아이들.
부모도 없이 전쟁통에 다리 밑 임시 거처에서 살아야하는 아이들. 소속된 기관도, 자신을 보호해 줄 국가도 없이 그저 생존을 위해 보트에 몸을
실어야하는 아이들. 마실 물, 먹을 음식 등 생존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물자가 부족해서 죽음을 가까이 한
아이들.
<나는 왜 여기
있을까요?>는 이런 가혹한 현실을 구체화된 언어로 콕 집어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그냥 화자인 어린이가, 끊임없이 자문하는 와중에 독자
스스로 타인의 고통에 눈 뜨게 해줍니다. 저는 책장을 넘기다가 떠다니는 유빙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서있는 펭귄무리를 화자인 아이가
지켜보는 그림에 놀랐습니다. 어쩌면 삶의 고통은 특정 역사적 현실에 속한 개개인뿐 아니라 인류 나아가 생명 가진 존재 모두에게 숙명이라는
메시지를 읽었거든요. 부정하거나 분노할 것이 아니라, 생의 양면성으로서 감사히 끌어안아야 한다는 의미까지! <나는 왜 여기에
있을까요?>는 한 개인의 정체성 고민에서 나아가 생명가진 존재들의 연대를 시사합니다. 홍수에 뗏목하나 의지하고 표류하는 아이가 작은
동물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듯, 모두 연약하고 번뇌하는 존재이지만 타인을 보듬을 수 있습니다. 함께 고민하고 보듬으면 세상이 좀 더
따뜻하지겠지요.
너무 아름다운 문구가 있어서
<나는 왜 여기에 있을까요?>의 본문에서 옮겨와 소개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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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왜 여기에 있는지 아는 사람이 있을까요? / 모두 안다고 착각하며 사는 건
아닐까요? /
어쩌면 나처럼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요. /
그런데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산다면
어떡하죠?
아이가 당신을, 우리를 응시합니다. 그러면서 눈으로 묻습니다. 당신은 왜 사느냐고? 당신은
누구냐고?
다시 되뇌여봅니다.
우리가 왜 여기에 있는지 아는 사람이 있을까요? / 모두 안다고 착각하며 사는 건
아닐까요? /
어쩌면 나처럼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요. /
그런데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산다면
어떡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