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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1 - 중세에서 근대의 별을 본 사람들 ㅣ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1
주경철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4월
평점 :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1
중세에서 근대의 별을 본 사람들
"생김새로 보면 말 사료 상인에 한
표"라는 표현이라든지, 사전에도 안나오는 유행어 "엽색"이 등장하는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서양사학자 주경철 교수(서울대)의
문장이 경쾌하다 싶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 책은 애당초 몇 년 동안 천천히 퇴고하며 만든 정통 역사책이 아니라 네이버팟캐스트에 연재했던 글
모음집에 가깝다. "온라인의 글을 짧고 강렬하고 섹시해야 통한다 (325)"는 조언에 따라 주경철 교수가 "나름 최선을 다해 '선정적으로'
쓰려고 노력한 만큼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는 스포츠신문 기사만큼이나 흥미롭다. 동시에 읽는 중간중간, 그리고 다 읽고 나서도
"아하! 유럽사가 이렇게 재미있었어? 좀 제대로 공부해볼걸. 이제라도 알아야겠다."는 자성을 독자에게 안겨주는 '공부자극' 역사책이다. 주경철
교수가 대학에서 만나는 학생들이 고등학교 "선택"과목으로서의 세계사에 무지할뿐더러, 그 "사고가 '해저 2만리 수준'으로 떨어(324)"진
수준에 있음을 절감한다고 한다. 알아야 보인다고, 세계사 특히 유럽사를 젊은세대에게 제대로 알리고 싶다는 생각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세계사'가
'문과'계 '필수'과목이던 시절에 고등학교에 다녔으나, 교과서를 샅샅이 읽었어도 기억에 남는 건 '장미전쟁,' '헨리8세' 정도의 단어 나열
수준이었다. 하지만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를 읽다보니 그 단어들 사이에 멋진 '짜잔'하고 시냅스가 연결되는 느낌이랄까. 암튼
정말 재밌었다. 총 3권 시리즈로 기획된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의 첫번째 권 부제는 "중세에서 근대를 본 사람들"이다. 책 표지에 멋들어진 활자체로 이름 새겨진 8인의 인물 -
잔 다르크, 부르고뉴 공작들, 카를 5세, 헨리 8세, 콜럼버스, 코르테스와 말린체, 레오나르도 다 빈치, 마틴 루터 -를 중심으로 근대를 향한
유럽의 물결을 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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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소개하는 인물은 잔
다르크로(Jeanne d’Arc)서 "역사상 가장 신비한 인물 중 하나 (17)"라는 표현과 "성녀인가 마녀인가"라는 부제에 인물의 의미가
압축되는 듯 하다. 1431년 19세의 나이로 화형을 당하기 전, 무려 2년 반이나 긴 재판을 받았기에 그녀에 대한 자료가 방대한 재판기록으로서
남아 있다고 한다. 온라인 유랑자들을 배려한 '선정적' 글쓰기를 염두한 주경철 교수는 잔 다르크의 남장(男裝)에 대한 설로서 "비정상
DNA"까지 거론해준다. 또한 잔 다르크의 측근이었던 젊은 귀족 '질 드 레 Gilles de Rais'가 소년 200명을 무참히 살해한
연쇄살인범이라는 소금간도 쳐준다.
살아 있는 성녀로 추앙받고,
국왕에게서 황금 백합이 그려진 문장(紋章)을 하사받았던 소녀가 어떻게 종국은 이단취급받고 화형되었을까? 주경철 교수는 잔 다르크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페미니스트,' '애국자,' '신비주의자' 등 그 모두일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역사 무대에 느닷없이 등장하여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 (51)"고 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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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부르고뉴 공작들" 편에서는
필리프 2세, 장 1세, 샤를 1세, 필리프 3세가 언급되는데 흥미롭게도 주경철 교수는 이들의 겹치는 이름을 변별해줄 별칭을 써준다. 앞에서부터
각가 대담공, 용맹공, 담대공, 선량공과 매칭하면 된다. 중세판 무협지를 연상시키는 '베고 베이는 정치판 싸움'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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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카를 5세"를 다룬
장에서도, 나처럼 가쉽성 기사 좋아하는 얕은 독자는 카를 5세가 근친가족력으로 인한 주걱턱('일명 '합스부르크 턱') 에, 통풍으로 말년까지
고생하였다더라 식의 내용에 귀를 가장 많이 팔랑거린다. 비록 21세기 현대인의 눈에 카를의 외모는 비호감이나, 그는 왕관만 17개를
가진 권력자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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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헨리 8세의 이야기는 말그대로
"푸른 수염의 거인"을 연상시키는 엽기왕의 전형같이 느껴졌다. 친형 아서(1486~1502)가 불과 결혼 5개월만에 사망하면서 6세 연상의
형수뿐 아니라 왕위를 물려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절대왕권을 확립하고 "기껏해야 양이나 쳐서 양모를 대륙에 팔던 가난한 국가" (169)였던
"잉글랜드를 그 찬란한 발전의 도상에 오르게 한 인물(169)"이었지만, 헨리 8세는 재임기간 동안 무려 985명을 공식 사형에 처했다고 한다.
설상가상, 총 6명의 아내들이 '이혼 divorce, 참수 beheaded, 사망 died, 이혼 divorce, 참수 beheaded, 생존
survived'했으니 가히 '푸른수염'으로 불릴만도 하다.
5장의 인물은 서양사에서 가장 많이
이름 오르내리는 인물임에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콜롬버스'를 집중해서 다룬다. 먼저 우리가 알고 있는 그의 얼굴 초상은 사실 상상화이며,
콜롬버스는 독학으로 지리와 천문학을 배운자로서 사실 말년에는 신비주의 점성술가와 같은 기록들을 남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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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에서는 신대륙을 상징하는
'코르테스'와 구대륙을 상징하는 '말린체'를 중심으로 멕시코가 탄생하기까지 그 이전 조우의 역사가 얼마나 폭력적이고 야만적이었나를 묘사한다.
특히, 코르테스의 통역사이자 정부였던 '말린체'가 한 동안 민족을 팔아먹은 반역자 취급을 받가가 '멕시코 혁명 (1910~1917)으로 민족주의
정신이 고취되면서 혁명정부가 멕시코 건국의 어머니라는 이데올로기적 아이콘으로 활용하였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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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살핀
7장에서는 인류사를 통털어 최고의 천재라 할 레오나르도를 향한 주경철 교수의 애정(?)이 느껴지기도한다. 레오나르도를 두고, "파우스트의
이탈리아 형제"라고도 한다지만, 사실 그는 "인간의 경험이 가장 천재적으로 꽃핀 시대, 르네상스가 낳은 '경험의 아들(283)'"이라고 평한다.
7장을 읽다보면, '만능 엔터테이너'라는 별칭으로는 다 담아낼수 없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천재성과 시공간을 넘나들고 싶어하는 초월적 인간의
욕구가 보이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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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마틴 루터편. 교과서에서
'면죄부'로 배웠던 그것의 옳은 번역은 '면벌부'가 더 정확하다는 것을 배웠다. 벼락이 신의 계시라 생각하고 수사가 되기를 맹세한 루터가
변호사로서의 보장된 출세길을 버리고 수사되기로 마음 먹었다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진다. 600여년도 더 전 유럽 사람이지만, 아버지는
아버지인가. 출세길을 포기한 아들이 못마땅해 악담을 퍼붓고 속상해했다는 루터의 아버지 마음이 뭔지 알 것 같았다. 그래도 루터는 꿋꿋하게 자기
길을 가서 종교 개혁의 물꼬를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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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2권에서는 '근대의 빛과
그림자’, 3권에서는 '세계의 변화를 조주한 사람들’을 다룬다고 한다. 두 권 모두 2017년에 출간완료된다니 목 빠지게 기다려야겠다.
재밌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