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울합니다 - 우울을 외면하는 당신에게 심리상담
최은미 지음 / 피그말리온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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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합니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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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울함'을 (주로) 사회 낙오자의 부정적 정서, 극복 혹은 치료의 대상으로 보는 한국 사회에서 "대" "놓" "고" '나는 우울합니다.'라니. 대범한 제목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우울한 사람을 위로하는 '덜 우울하거나, 안 우울한 사람'의 충고일거라 속단하고 책을 펴들었는데 서문에서 강력하게 한 방 먹었다. 심리 상담가로서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직업 18년차 되던 해의 최은미는 (어쩌면 대다수의) 독자들보다 극심한 우울을 경험했다고 한다. "지난 삼 년 동안 아마도 저는 저를 찾았던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거의 모든 정신적 문제들을 겪었던 듯합니다 (4).… (중략)… 암흑의 기나긴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고통은 극심했고 모든 게 변했습니다. 그 고통 속에서 처절한 고독을 삼키며 써낸 이 글을 나의 내담자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당신과 나누고 싶습니다(5) "
*

고양이의 호기심이 발동한다. 최은미 작가가 왜 그렇게 바닥까지 내려가 우울했을까? 그것도 3년씩이나. 비록 부부싸움이 잦고 그 강도가 강했으리라 추정은 되지만 비교적 안정적인 가정에서 자라 이화여대 법학과 졸업한 재원인 최은미 작가. 문장 행간을 보니 타고나길 자유분방하고 본인이 유학생활을 보냈던 인도 사회의 시간 리듬과 딱 맞는 낙천적인 성향의 사람 같은데, 어째서 그리 우울하다고 할까? 답은 <나는 우울합니다>의 곳곳에 써있다. 솔직한 저자가 아주 솔직하게 말해준다.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 혹은 아는 사람들이 상담가라는 직업을 가진 자신을 이용했다고. 그들이 감정의 쓰레기를 자신에게 상담료도 안 내고  쏟아부어놓고는  죄책감도 없이 홀가분하게 떠났다고. 그들이 "쓰레기 처리비를 전혀 내지 않고 가 버린 탓에 나는 그 쓰레기 더미에 묻혀 질식했다. 그리고 내가 정작 아팠을 때 내 이야기를 들어 준 사람은 거의 없었다.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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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무게에 짓눌려 타인의 이야기를 더 이상 들어 줄 여유가 없던 최은미 저자는 글쓰기, 놀기, 춤추기, 강아지와 산책하기 등 다양한 방식을 도모한 듯 하다. 그 중 '탱고 배우기'는 꽤 의외였는데, 저자는 "오직 믿을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고, 정신도 마음도 아닌 '몸'뿐입니다. 몸은 잃었던 기억과 자신의 정체성을 순간순간 신호로 말해 줍니다 (5)."라고 한다. 오죽하면 카타르시스와 자기 방어로서의 싸움의 방편 중 최고를 '춤대결'로 제안할까.  저자는 본문에서 두번이나 <그리스인 조르바>의 '조르바'를 빌어 '머리'와 대비한 '육체성'을 언급하며 육체성의 승리를 뻔뻔함에의 예찬과 연장선상에 놓는데 이 부분은 저자를 만나면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진다. 그 둘이 따로 가지 않는다고 보는 입장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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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울합니다>를 읽으며, 전체적으로 독자를 우선한 글인지 최은미 작가가 골방에서 쓴 일기의 연장인지 헷갈렸는데, 역시나 쿨한 최은미! 자기 약점을  바로 보고 솔직히 고백한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몇 줄 역시 담담한 '들려 주기'가 아니라 억울한 토로가 되고 있지 않은가. (잠시 독자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89)"라고. 처음에는 감정 과잉,  세세한 고백 과잉의 문체가 부담스러웠는데 차차 솔직한 이야기꾼으로서의 최은미 작가의 매력에 빠진다. 사적으로 알게 된다면 나이, 성별, 취향을 떠나 오래 친구하고픈 사람일 것 같다. 

*

 아하! 이렇게 자기 수다를 솔직하게 풀어 놓음으로써, 독자가 그것을 엿듣게 함으로써 독자를 편하게 해주는 구나! 아하! 이것이 18년 상담 경력의 최은미 작가가 독자에게 해주는 선물이구나를 느꼈다. 끝으로 "세상에서 가장 나쁘고 어리석은 일 중 하나가 타인에게 불필요한 죄의식이나 죄책감을 심어주는 일 (39)"이며, "타인을 지적하는 것은 문제적 행동(44)"이라는 최은미 작가의 문장에 격하게 공감하는 나 자신의 매듭은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증오심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행복한 사람의 특징이다. 행복하면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55)"라는데, 행복 바이러스의 전염을 꿈꾸는 사람으로서 나의 매듭부터 풀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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