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6일, 목요일. 대한민국 수학능력시험 시행일이었다. 시험 하나에 나라가 들썩이는 형국을 외국인들이 신기해한다는 식의 뉴스 기사들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대한민국 반도 밖 외부자의 시선에서야 뜨거운 입시경쟁열기가 독특해 보이나 보다! 산후조리원 입소나 돌잔치 뷔페 예약부터 경쟁하고 유치원도 추첨으로 경쟁자를 이기고 입학하고 경쟁 after 바늘구멍 경쟁을 체화한 한국인에게는 뭐 새삼 새로울 것도 없다. 1990년대, 2000년대 한국 사회 가족을 분석한 글들을 뒤지다 보면, 특히 도시 중산층 가족을, 대학입시라는 마라톤에 출전한 팀으로 비유하는 경우도 찾을 수 있다. 엄마는 총괄 디렉터이자 코치, 아이는 그 가문의 영광을 드높여주기 위해 선발된 대표주자. 너무 뻔하고 익숙한 풍경이라 이건 뭐 박사 학위 가진 학자들의 분석이라기에는 블로그 일상 글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을 정도이다. 내 말은, 그 정도로 "입시경쟁 승리를 위한 청소년 쥐어짜기"는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에게 내면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수능이 끝난 밤, 길을 걷는데 멀리 보이는 낮은 빌딩의 꼭대기 층이 지나치게 환하다. 눈이 부시다. 간판을 보니 100% 입시학원이다. "###$ 스파르타"라는 걸 보니, 재수생 특화 학원일지도 모르겠다. 어둠이 뚫고 나오는 공격적인 형광 불빛에 눈살을 찌푸리며 나도 모르게 '졸래야 졸 수가 없겠네. 가여워라.'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저렇게 눈이 시리게 훤한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어떻게 졸 수나 있을까? 눈 꽉 감아도 저 강렬한 빛의 고문이 얇은 눈꺼풀을 뚫고 들어올 것만 같았다.




"스파르타" 학원의 형광등 고문을 보다 보니, 고등학생 때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그 당시엔 한 교실에 4~50명씩 바글바글하게 앉아 공부했는데, 모든 학생이 1인당 30만 원씩 전기세를 내라고 했다. (주체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새우깡이 300원(?) 하던 시절이었으니 30만 원이면 새우깡이 1000봉지(그렇다! 새우깡을 좋아하는 나는 BIg Mc지수 대신 '깡지수'로 환산한다.) 자율학습하는데 불을 켜놓으면 전기세가 많이 나오니 각자 차출을 해야 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다시 말하지만 주체가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가 그 돈을 내셨고, 세상 셈법에 아둔했던 나이지만 '"30만 원 곱하기 50명 = 1500만 원" 교실당 1500만 원이면 전기세가 몇 억씩 나온다는 건가? 전기가 그렇게 비싼 건가?'하며 의아해했다. 지금은 그 돈이 누구에게 갔을지, 왜 필요했을지 너무나 잘 안다.

그 시절, 형광등 전기세를 빌미로 거둬갔던 상납금이나 2023년 밤거리를 밝히는 '스파르타'의 불빛이나 뭐가 달라진 건지 모르겠다. 별로 달라지지 않았나 보다. 그러니 우리나라에서는 19살에 [프랑켄슈타인]을 쓴 메리 셀리 같은 10대가 나오기 어려운지도 모르겠다. 정말 똑똑한 친구들을 형광등 불빛 아래 가둬 놔서 비타민D 결핍이나 걸리게 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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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7 07: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23-11-17 09: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간판 불빛이 밝힌 밝네요. 음...저 간판은 빛공해로 구청에 신고해야 한다고 봅니다...ㅎㅎㅎ

근데 무슨 학교에서 인당 30만원씩 전기료를 내라고 하나요?? 저도 사립고를 다니긴 했는데...학생들에게 전기료를 걷는 학교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정말 희한한 학교군요!!

2023-11-17 1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3-11-20 0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학교에서 전기료를 내라고 한 건가요 그건 좀... 학교에서 그런 걸 학생한테 내라고 하다니... 그런 건 안 내도 괜찮을 텐데, 지금은 이렇게 생각해도 고등학생일 때는 내라고 하면 내기도 했겠습니다


희선

2023-11-20 0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