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달 자꾸 번역가가 쓴 책에 눈이 갑니다. 욕심내어 많은 조언을 확보했지만, 제 문장에 얼마나 그 배움을 녹여낼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번역은 정신적 고통이 따르는 창조과정이자 언어계 종합예술이라는 점은 분명히 배웠습니다. 그동안 "번역이 엉망이라 책을 이해할 수 없다"라는 차가운 반응에 동조해 본 적 있는데, 앞으로는 좀 더 신중히 반응할 터이고 책 읽을 때 번역가 이름이라도 한 번 더 눈여겨보아야겠다고 다짐합니다. 고도의 정신노동을 존중하는 마음을 담아서요.
번역 공부용으로 많이 추천 되는 <번역의 모험>에서 만난 글귀를 옮겨봅니다.
<번역의 모험>은 문턱이 낮은 한국어를 추구한다. 독자의 투자 자원은 유한하다. 문턱이 낮은 글은 독자가 편히 정주행하도록 돕는다... 문턱이 낮은 글 덕분에 독자는 자원을 덜 들이지만 역자는 자원을 더 들여야만 문턱이 낮은 글을 지어낼 수 있다. 궁리를 더 해야 하니까 말이다.
[번역의 모험] 서문
힘이 좋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나이가 들어서도 번역가로 대접받으려면 양보다 질을 중시해야 한다고 일찍부터 생각했습니다
(...)
기계번역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장래의 번역가도 고비원주의 자세로 번역의 앞날을 길게 바라보고 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쉬운 번역은 누구나 할 수 있기에 생명력이 짧습니다. 어려운 번역은 누구나 할 수 없기에 생명력이 깁니다.
(...)
좋은 번역가는 좋은 문장가입니다. 아무리 기계 번역의 시대가 와도 좋은 문장가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번역의 모험] 10장
"번역가는 기존의 사전에 없는 뜻에 기어이 이름을 지어주고야 마는 사전편찬자의 마음으로 이 말과 저 말을 잇는 징검다리를 만들어내겠다는 절박감이 있을 때 좋은 번역가가 될 수 있습니다."
29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