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의 중심 질문 중 하나가 바로, "인간다움은 무엇일까?"이다. 물론, 이 물음은 여러 갈래 가지치기도 가능하다. AI가 대화 상대가 되고, 바흐 버전 클래식도 작곡하고, 인간 심사위원들을 감쪽같이 속일 썩 괜찮은 사진을 생성해 내는 시대, '왜 인간은 인간다움에 천착하는가? '인간다움'이란 게 "있다"라는 믿음 자체가 인류의 오만한 자부심에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가? 인간과 인간 아닌 존재들을 경계 짓는 과정에서 죄책감이나 복잡한 셈법을 덜어주었던가?


이런 돈이 되지 않는 질문들은 한동안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 하지만, 최근 읽은 엘리자베스 문(Elizabeth Moon)의 [잔류인구]와 필립 K. 딕 (Phillp K. Dick)의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의 꿈을 꾸는가?] 가 이 질문을 내 일상에 소환했다. (길 걷다가고 생각하고, 책 검색하며 또 생각하고....) 전자는 인류와 외계 행성의 존재를, 후자는 인류와 안드로이드를 짝패처럼 등장시켜서 '인간다움'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유도한다. 질문은 질문을 낳는데 답을 찾으려면, 더 많은 참고자료가 필요해 보인다. [파리대왕]을 다시 읽는 이유이다. 


윌리엄 골딩의 대표작 [파리 대왕]은 고2 때 시사 YBM 버전으로 처음 만났고 , 민음사 버전으로는 20대 초반에 읽었다. 이번에도 [민음사] 번역본을 읽으며, 이전 두 번 모두 내가 작품을 깊이 이해하지 못한 채, 공포 혹은 불쾌감만 강하게 품고 책을 덮었음을 깨알았다. 그 덕분이라 해야할까? [파리 대왕]을 마치 처음 만난 것처럼 새로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 여전히 공포와 불쾌감이 주로 올라온다. 중간 중간 쉬어주어야 책장을 계속 넘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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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23-05-22 1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자가 노벨상을 받던 해에 읽었는데 내용이 어찌나 강렬하던지 아직도 주인공들의 이름과 그 행위들이 기억나는군요.

얄라알라 2023-05-23 09:37   좋아요 0 | URL
1983년에 노벨상 수상했네요. 차트랑님 말씀 듣고, 바로 찾아봤어요^^;;

이런 표현이 좀 유치하겠지만, 저는 [파리대왕]을 이렇게 어른이 되어 읽는데도 읽다가 중간중간 속상해서 울고 싶어지더라고요.
고등학교 때 읽었을 땐 충격, 경악, 공포....그 때는 공포감이 압도적이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더 복합적인 감정이라서 이 얇은 소설을 결코 빠르게 읽지 못하겠어요

새파랑 2023-05-22 16: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민음사 판으로 읽었는데 문예출판사 버젼도 좋다고 합니다 ^^

얄라알라 2023-05-23 09:35   좋아요 1 | URL
아 그런가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파랑님


저는 민음사 책 잘 읽고 있던 중, 네이버 검색하니
민음사 버전엔 한자어가 많다고 차갑게 이야기하시는 독자들도 여럿이더라고요. 읽는데 저는 지장 없던데...
문예출판사 버전도 궁금해지네요^^

얄라알라 2023-05-25 02:40   좋아요 0 | URL
새파랑님 말씀 들었으니, 주말에 꼭 문예출판사 버전 비교해봐야겠어요

아무래도, 어린 아이들의 대화 치고는 연세가 있으신 분들의 대화처럼 번역된 부분도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민음사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