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드니 뵐뇌브 Denis Villeneuve 감독을 좋아한다. 오래전 1월 1일, [그을린 사랑 Incendies] (2010)으로 처음 이 분을 알게 되었는데, 영화가 준 정서적 충격이 압도적이었다. 새해 첫날 다이어리에 적은 글이나 희망찬 계획들이 갑자기 허무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 후로, 드니 뵐뇌브는 나의 최애 영화감독이자 존경하는 예술가가 되었다. [시카리오] (2015), [Arrival](2016), [Blade Runner 2049] (2017) 그리고 [Dune](2021)까… 이 분의 천재성과 장인정신에 감복하고 감사하며 영화를 보아 왔다.



 특히 [Dune](2021)은 사회적 거리두기에 아랑곳 안 하고 극장에서 4번(2D 2번, IMAX 2번)이나 보았을 만큼, 모든 면에서 판타스틱했다.


  • 음악: 한스 짐머 _ 흰 리넨 로브를 입은 꿈속 여인이 사막에 등장하는 장면에서 터지는 사운드, 사막행성의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 연기: 레이디 제시카 역의 레베카 퍼거슨을 오래전부터 좋아했는, [Dune] 보고 난 후에는 젠데이야 콜먼과 티머시 샬라메의 매력에 새로 눈 떴다. 배급사에서 영화 판권을 딴 계약을 마치고 감독을 발탁하는 데 불과 15분 걸렸듯, 샬라메 역시 폴 아트레이드 역 적임자로 바로 낙점되었다.


  • 대본: 923쪽인 소설 [Dune]을 읽는 데 하루 종일 걸렸다. 그나마 전체 시리즈 중 시작에 해당하는 1권뿐인데도 말이다. 이런 압도적 스케일과 방대한 서사를 어떻게 2~3시간 상영시간에 담아낼까? 그래서, 드니 뵐뇌브 감독은 1편과 2편으로 나누어 제작하기로 결정한다. 손 보고 또 손 보아서 최선을 대본을 뽑아낸다. 현란한 스펙터클과 속도감을 기대하는 관객과 인물의 내면과 내적 성장에 초점을 둔 원작 사이에서 균형 맞추기가 어려운 작업이었을 텐데, 역시 "프랭크 허버트 찐팬" 드니 뵐뇌브 감독답다.


  • 영상: 숨을 잠시 멈추게 하는...... [DUNE] 4차 관람의 유!

그래픽 노블로, 소설로 그리고 영화관에서 4번 관람까지 총 6번 [DUNE]을 횡단했는데도, 놓친 부분이 많았다. [듄: 메이킹필름북] 덕분에 그 놓친 부분, 영화 만으로는 결코 알 수 없었던 디테일을 확인했다. 토요일을 무겁고 두꺼운 [듄: 메이킹필름북]과 보낸 보람이 있었다.


[아바타: 물의 길]은 최근 2번이나 보았으나, 흥미롭게도 줄거리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마치 놀이기구 탑승 체험처럼, 객석에서 일어나는 순간 신기루처럼 화면의 잔상도 흥분감도 사라진다. 사운드트랙도 희미하다.

반면 [DUNE]은 소설과 그래픽 노블로도 접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잔상이 마음속에 뻐근하게 남아 있다. 두 작품 모두, 엄청난 자본과 어마한 전문인력이 투입된 장기 프로젝트였던 만큼 감히 저울질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다만, 관객으로서나 개인으로서 나는 아날로그 스타일을 더 좋아하는구나를 깨달았을 뿐이다. 


예를 들어, 아트레이드의 전사 던컨 아이다호가 사막행성에 착륙(?)하는 장면도 영화 [DUNE]에서는 중장비까지 동원하여 사막 혹은 세트장에서 직접 찍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오니셉터( ornithopter)를 여러 기종 (+ 낡은 것과 새 것)으로 제작하고, 상당한 수송료를 지불하고 사막으로 직접 실어 날라 촬영했다 한다. 새삼 드니 뵐뇌브 감독의 장인정신에 감복한다.


장인 정신은 소품과 의상 등 물질적인 요소뿐 아니라 전투씬의 무술 동작과 사막행성의 독특한 걸음걸이, 언어와 문자 등 비물질적인 요소에서도 드러난다. 드니 뵐뇌브 감독은 영화의 완성도를 극대화하기 위해, 무술 전문가, 언어학자, 리넨 디자이너, 현대 무용가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했다. 


영화를 네 번이나 보면서도, 사막 부족 프레멘의 칼, 아트레이드 가문의 칼, 잔혹한 용벙 사우르카의 무기를 눈여겨 보지 않았다. 하지만, 무기 디자인과 색감은 해당 무기를 다루는 집단의 에토스까지 반영하는 식별 표지라는 걸 [듄: 메이킹필름북]을 통해 알았다. 마찬가지로 하코넨의 야수적인 잔혹함과 탐욕을 드러내는 장치로 캐릭터의 몸집과 의상이 중요한 기여를 하는데, 드니 뵐뇌브 감독의 디테일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심지어 하코넨의 식탁에 올라간 메뉴들도 캐릭터의 성격을 반영한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원작과 달리, 사막행성의 카인즈 박사가 여성인 까닭이 궁금하면서도 흡족했다. 원작자 프랭크 허버트가 사막지역 출장을 계기로 [DUNE]을 쓴 지 거의 60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인지라 이 캐릭터를 여성화하여도 큰 무리가 없다. 드니 뵐뇌브 감독이 다른 스태프들과 나눈 대화를 들여다보면, 감독의 Dune 세계관을 희미하게나마 유추할 수 있다. 뵐뇌브 감독은 베니 게서리트로 대표되는 여성 캐릭터들은 세계를 움직이과 역사의 흐름을 설계하는 면에서 남성 권력자들과 차원이 다른 시간관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한 마디로, 매우매우멀리 내다보고 큰 스케치를 해두는 장기적인 설계가 여성적 접근이다.


그 맥락에서 베네 게서리트들이 타고 다니는 우주선의 모양이 계랸형인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한다. 달걀 EGG는 난자, 즉 다산성과 생식력으로 볼 수 있는데, 장기적 설계도를 현실화시키는 이음매들은 바로 그 생식력이다. 아! 뵐뵈느 감독 천재!





사막은 자비를 모른다. 적응하지 못하면 죽음뿐이다. [듄] 대본 첫 페이지 문구 


사막을 좋아한다는 드니 뵐뇌브 감독은 이 문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듄>은 고향에서 뿌리 뽑혀 새로운 환경으로 이주당한 뒤 대다수가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이곳 토착민들의 문화를 배울 만큼 호기심이 있는 사람은 생존을 위한 지식과 지혜를 얻을 겁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정치, 기술, 환경이 모두 빠르게 변하죠. 여기서도 역시 가장 많은 지식을 얻는 사람이 살아남을 겁니다...

나는 <Dune>이 젊은이들에게 울림이 있는 작품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 프로젝트의 DNA 곳곳에 이 적응이라는 개념이 배여 있어요.

나는 젊은이는 아니지만, <DUNE>의 메시지에 충분히 진동한다. 물을 비롯 자원이 풍요로운 행성의 이방인 눈에는 사막행성 프레멘의 문화가 무자비해 보일 수 있다. 프레멘은 회복이 어렵게 다친 동족의 피와 체액을 취하여 생명수로 바꾼다. 100사람을 살릴 수 있는 귀한 물을 야자수 한 그루에 퍼부으며, 미래의 풍요를 기원하는 주술적 의미를 담는다. 생존에 우호적인 환경 속에서 풍요를 누리던 사람들의 눈에는 기괴하고 가혹한 삶의 방식이다. 하지만, 그런 적응력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야말로 그들을 가혹한 환경 속에서도 세대를 걸쳐 생존시킨 힘이다. 프레멘에게서 무엇을 배울까? 신념은 단단하게 가지되, 상황에 따라 말캉해질 수 있는 적응력. 자비를 모르는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환경을 인공위성 시야로 내려다보며 좌표 찍는 치밀함. <Dune> 대본집의 대사가 나를 진동시킨다.

"사막은 자비를 모른다. 적응하지 못하면 죽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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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1-29 16: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네 번이나 보시다니... 하긴 저는 오디오북으로 단편소설을 열 번 이상 들어 본 신기록이 있어요.
체호프의 단편이었죠.ㅋㅋ

얄라알라 2023-01-29 16:55   좋아요 2 | URL
와! 역시 페크님!!! 열 번 이상!
문장을 외우셨겠네요!

저는 필름 메이킹북으로 복습하다 보니, 그렇게 눈에 불을 켜고 봤어도 제가 놓친 부분이 많아서
재개봉하면 다시 극장 가고 싶어졌어요

고양이라디오 2023-01-29 19: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듄 2번(2D, IMAX) 봤지만 더 보고 싶은 마음이네요! 재개봉하면 달려가고 싶네요!

<컨택트>도 보셨나요? 저도 드니 뵐뇌브 최애 감독입니다^^b <그을린 사랑>도 보고 싶은데 감당하기 어려울까봐 아껴놓고 있네요ㅠㅋ

얄라알라 2023-01-29 23:06   좋아요 1 | URL
최애!!! 저에게도 그러하옵니다!
그을린 사랑,... 감당 어려웠어요.

1월 1일이었는데, 살짝 후회되었을 만큼 진동을 심하게 남긴 영화였어요...

오늘 Dune OST 첨부터 끝까지 다 들으며 장면들을 상상했는데
아무래도 IMAX로 다시 보고 싶어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