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전, 오해.


 1] 부제 "펜데믹 시대, 역사학자의 병상일기" 에 갇힌 독자의 상상: Covid-19 투병 & 회복 일기겠지? 


 2] 설마 저자가 죽음 저편까지 넘나들며 아픈 건 아니었겠지? 병상일기를 쓸 수 있었으니... 



둘 다 틀렸다. 

[치료받을 권리 (Our Malady: Lessons in Liberty from a Hospital Diary)]의 저자 티머시 스나이더(Timothy Snyder)는 2019년 12월부터 2020년 봄까지 패혈증으로 생사를 넘나들며 아팠다. 저자의 장인과 장모가 코로나를 앓았지만, 적어도 저자는 코로나로 인해 직접적인 고통을 겪진 않았다. 



병감病感은 복통이었다. 티머시 스나이더는 복통을 느꼈지만 예정된 강연도 마쳤다. 2019년 12월 3일 병원에 입원했고 다음날 퇴원했다. 십여 일 후, 맹장염 수술 후 다음날 퇴원했다. 집도한 의사가 별다른 주의를 주지 않았고 티머시 스나이더는 크리스마스 휴가를 떠났다. 휴가지인 플로리다에서 잠시 입원했었지만 차도가 없어, 12월 28일엔 뉴헤이븐 응급실로 들어갔다. 고작 며칠 사이, 그는 간농양 제거를 위해 수술을 두 차례 받았다. 몸에 9개의 구멍을 뚫었고 튜브를 주렁주렁 단 중환자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의 후진적이고 불평등한 의료 시스템을 경험한 티모시 스나이더가 느꼈을 무력감과 분노는 다음의 자조적 문장으로 압축된다. "나는 하나의 환자, 세트의 손상된 장기들, 감염된 피가 담긴 하나의 용기에 불과했다. (13)"


Mogens Engelund, CC BY-SA 3.0 , via Wikimedia Commons


패혈증을 방치한 탓에 세균이 온몸에 넘실거리는 상태에서 미국인 티머시 스나이더는 아내에게 폴란드어로 말하기도 했다(본인은 기억하지 못한다). 수십년 헌신해온 연구 주제인 나치즘과 스탈린주의 관련한 인물들이 환영처럼 그의 반의식 속에 침투하기도 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그의 정신줄을 붙잡은 것은 부성애였다. "내가 나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고, 오직 내가 ' 아이들의 , 아이들의 아버지'라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삶이 단지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떠다니는 깨달음, 다정한 공감 나를 호위해 죽음에서 멀어지게 했다. (18)"

그토록 아픈 와중에도 티머시 스나이더는 역사학자이자 한나 아렌트 상 수상 작가답게 일지를 남겼고, 친구의 권유로 회복 기간에 [치료받을 권리]를 썼다. 원제 [Our Malady]는 미국의 공적 질병public malady을 의미한다. 그는 21세기 미국인 상당 비율이 '더 짧고, 더 불행하게' 살면서도 엄청난 건강보험료를 지불하는 모순에 분노한다. 의료보장은 마땅히 보편적 권리인데, 특권층에게만 혜택이 집중됨으로써 혜택받지 못한 사람을 사지로 내모는 상황에 분노한다. 지인들은 왜 티모시 부부가 생명이 위급한 시점에서 연줄을 동원해서 힘 있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않았는지 의아해했다(그는 예일대 석좌교수이며, 장인도 의사이다.) 티모시 스나이더는 그런 시각 자체가 특권의식이라고 본다. '삶과 죽음 앞에서 누군가가 더 취약해서는 안 된다. 인간 모두가 취약성을 드러내는데, 우리는 연대해야 같이 산다.' 이것이 바로 미국인 티모시 스나이더가 조국에 던지는 쓴소리이자 병상에서 돌아온 회복환자로서 절규이다. 



  • "우리가 타인을 질병의 보균자로, 우리 자신을 건강한 피해자로 여기고 있다면, 우리는 나치와 하등 다를 바가 없다." (57)
  • "코로나 바이러스는 상업용 부동산 소유자들처럼 질병과 상관 없는 경제적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의 배를 불리는 금전적 노다지였다." (161)
  • "고독과 연대는 균형이 필요하다. 우리가 지금 지독하게 외롭다고 느끼는 가지 이유는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방법을 우리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189)
  • "건강은 우리 공통의 취약성이고, 함께 자유로워질 있는 우리 공동의 기회이다...자유롭기 위해 우리에게는 건강이 필요하며, 건강하기 위해 우리에게는 서로가 필요하다." (199)


치료받을 권리의 편재성, 사람의 고통과 생명값이 동일하게 다뤄지지 않고 경제 논리에 따라 계산되는 현실에 맞서 티머시 스나이더 내면에서 올라온 횃불은 혼자 타고 싶어하지 않는다. 세상을 움직이려는 질주에서 분노의 외바퀴만으로는 위험해진다. '연대'라는 다른 바퀴를 탑재해야 한다. "나에겐 감정(분노와 연대) 모두가 필요했다. 회복하기 위해, 자유로워지기 위해, 나에겐 횃불과 뗏목, 불과 , 고독과 연대가 모두 필요했다." (21)

* *

아프지 않았더라면, 티모시 스나이더가 횃불을 들었을까? 나는 어떠한가? 우리는 어떠한가? 억울하고 분노할 상황에 처해보지 않았어도 횃불을 들겠는가? 답은....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혼자 드는 횃불은 꺼지기도 쉽고 위협적이지 않다는 점. 광장이 횃불의 바다로 울렁여야 미약하나마 신호 보낼 수 있다는 점. 견고한 금속성 카르텔은 횃불로도 쉽게 녹거나 해체되지 않는다는 점. 그래서 꾸준하고 집요하게 요구하고 움직여야 한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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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2-01-15 2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티모시 스나이더가 이런 경험을 했고 그 경험을 이렇게 책으로 썼군요. 발췌해 주신 글에서 작가의 행동하는 지성인으로서의 진실한 성찰이 느껴집니다.


얄라알라 2022-01-16 17:11   좋아요 0 | URL
저는 티모시 스나이더의 책을 이번에 처음 읽었어요. [피에젖은 땅]은 알라딘 서재 올라왔던 훌륭한 리뷰들로만 보았고요. [치료받을 권리]를 읽으면서, 이 분 성품, 그리고 coolcat님께서 말씀해주신 대로 ˝행동하는 지성인으로서의 진실한 성찰˝ 느낄 수 있었어요.....아픈 걸 너무 잘 참으시는 것도 같고요^^:;;

미국의 의료현실에 대해서는 신문기사나 이런저런 짤막한 글로만 접하다가 티모시 스나이더의 병상일기 통해 더 자세히 알게 된 것 같아요. 그대로 두면 안 될터인데 어떻게 과연 달라질지, 달라질 수 있을지....

persona 2022-01-15 22: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살아서 다행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나라는 그래도 의료비도 싼 편이고 진료시에도 의료진들이 우수하고 사려깊어서 주의를 많이 해주는 편인 거 같아요. 수술후 감염됐을까봐 저는 파상풍이랑 패혈증이랑 척수염 검사도 받은 적이 있는데 과잉진료란 느낌보다는 썩으면 안 되니까 저도 적극적으로 동의했던 거 같아요. 아나필락시스에 빠른 대처 해준 것도 고맙고, 아빠 복통이 배가 아니라 심장 문제였다는 것도 비록 한쪽이 죽어버렸지만 모든 의사가 다 모르고 지나쳤다면 이날 이때까지 살아남기 힘들었을 거 같단 생각도 들고요. 해외 이민가서 살다가도 아플 땐 다 한국으로 돌아오더라고요.
맹장염 때문에 간농양도 생기고 패혈증까지 갔다니 좀 너무 했지만 ㅠㅠ 그래도 살아서 좋은 연구 많이 하시면 좋겠네요.

얄라알라 2022-01-16 17:14   좋아요 0 | URL
persona님께서도 힘든 경험이 있으셨군요.
척수염 검사가 아마도 척수천자(?)라는 과정이었을까요? 티모시 스나이더는 자신의 허리천자 수행하던 의사들의 휴대폰이 켜 있어서 불안+불쾌햇던 경험을 책에서 자세히 밝혔어요.


맹장 수술을 하고도 간농양과 패혈증까지 가다니 저도 저자가 너무 안쓰럽게 느껴졌습니다. persona님 말씀처럼 이 분 오래 오래 좋은 연구 많이 하시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