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궁금했던 적이 있긴 하다. 어른들은 "세계"랑 "세상"을 다르게 쓰는지. 그 차이를 아는 건 중요했다. 적어도 온라인 공간에서 책을 함께 읽을 때는! 고양이라디오님은 [~~~세계]를 염두했고, 나는 [~~~~세상]을 얘기했으니, 동상이몽(될 뻔!). 


2년차, 앞으로 3년차 혹은 10년차가 될지 모를 펜데믹 터널 안에 있으면서도 사람들은 어지간히 터널 밖이 궁금했다 보나. 'POST' 코비드_19을 예측, 분석한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오죽하면 "세계"와 "세상" 한끝 차이만 두는 책 제목들을 뽑았겠나. 실수로 두 권 구비한 김에, 함께 읽었다. 




[코로나 이후의 세상]은 2020년 팬데믹 발발 이후, "뭉크 디베이트 Monk Debate" 출연진의 대담을 정리한 책이다. 말콤 글레드웰, 파라드 자카리아, 니얼 퍼거슨 외 6인 총 9인 등장한다. 이들의 트위터 팔로워를 (중복일 수 있겠지만) 모두 합하면 490만명이라 하니 '글로벌 인플루언서'라는 출판사의 홍보문구가 과장은 아니다. 2022년을 5일 앞둔 시점에서 읽기에는 다소 설익은 전망이 등장하는데 [코로나 이후의 세상]을 제목으로 택하기까지 편집진의 설왕설래가 있었겠다. 특히 제1화자로 등장하는 말콤 글레드웰의 경우, WHO가 팬데믹 선포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2020년 4월에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2021년 12월 시점에서 보면, 당황스러운데 2020년 4월의 대담은 팬데믹 이후에 초점을 두고 있다. 말콤 글래드웰은 COVID-19가 사회의 약한 고리weak link를 드러내며, 사회는 이 약한 고리 때문에 붕괴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되리라 전망한다. 이 점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 다만 파라드 자카리아 등 다른 대담자들도 지적했듯, 팬데믹은 지구적 차원의 시련인데 불구하고, 세계가 이에 대응하는 방식은 여전히 자국중심적이거나 편협하고 글로벌 약자를 배제하기도 한다. 

그 외 7인의 대담에서 '한국'이 모범 방역 사례로 자주 등장하는 점이 흥미롭다. 대담자들은 다양한 자료를 인용하며 "왜 한국이?"에 대한 해석을 내놓는다. 예를 들어, 니얼 퍼거슨은 한국이나 이스라엘은 심각한 안보 위협을 경험해본 적 있어 위기 상황에서 현실에 대응하기 보다 발빠른 대응이 가능하다고 해석한다. 갤펀드 교수의 tight/loose culture를 인용하며 한국 국민이 질서 순응도가 높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등장하고. 


[코로나 이후의 세상]이 저널리즘, 문화, 정치, 경제, 안보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의 글로벌한 식견을 드러낸다면 [코로나 이후의 세계]은 제이슨 솅커를 단일 저자로 한다. 맥킨지에서 일했었고 Prestige Economics와 Futurist Institute CEO이며, 블룸버그 선정한 미래학자라 한다. 총 21권의 책을 썼다는데, [코로나 이후의 세계] 본문 중간중간 솅커 본인의 책을 자주 언급했기 때문에 짐작은 했다. 책날개 약력 말고, 저자의 세계관을 간접적으로 드러내주는 글을 일부 인용해본다. 



2001년 경기 불황에 휩싸인 후 나는 경제학자가 되었다. 과거에 나는 경제학자가 아니었다. 경제를 잘 몰랐기 때문에 지난날 입지가 좋지 못했다....(대학원 진학하면) 난 석사 학위가 있을 테고 그러면 난 돈을 더 벌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이게 내 인생의 첫 번째로 멍청한 생각이었다. 난 경제학자처럼 생각하지 못했다. (179-180)"

본문을 직접 읽기 전, 위 인용문 행간을 살피면 제이슨 솅커가 어떤 관점에서 세상 흐름을 읽고, 개입하고 싶어하며, 스스로 경제 전문가이자 미래학자라고 자부하는지 추측할 수 있다. 독자로서 나는, 경제학자로 자신의 정체성을 몇 번이고 강조한 제이슨 솅커가 왜 POST Covid-19논의에서 '교육, 에너지, 금융, 일자리, 농업, 안보, 먹거리 공급망, 미디어, 국제관계, 리더쉽, 여행과 레저, 스타트업, 지속가능성.....'등 온갖 키워드를 끌어와 겉만 두드리고 가는 방식으로 글을 썼는지 의아하다. 게다가, '블룸버그 선정 세계 제 1의 미래학자'가 아닌 대중도 뻔히 알 수 있는 이야기들을 전문가 진단인양 제시한다. 예를 들어, Covid19로 식량의 안정적 공급이 어려워지면 농업이 중요해진다거나, 팬데믹이 지속되면 의료인력이 부족하니 이 분야 일자리를 노려보라는 식이다.


 이 분은 현상의 명과 암 중, "명"을 부각시키는 방식에 익숙한지, 온라인 교육의 확산으로 교육격차, 일자리 격차가 해소될 것이라고 낙관한다. 재택근무를 하니 자동차 타고 이동이 적어져서 환경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거나, 재택근무 덕분에 회사 공간이 다른 용도로 전환되는 등 부동산 시장이 안정될 것이라고 (단순전망) 한다. 한 마디로, 재택근무가 post Covid19시대에는 더 돈이 되니까, 재택근무 하는 게 유리하다는 "전망"은 하지만, 재택근무 직종에 속하지 못한 채 "필수 인력"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바이러스에 노출되는 상황에서 일해야 하는 사람들은 고려하지 않는다. 이 분이 쓴 21권의 책 중 다른 책을 더 읽어볼 생각이 없어졌다. 





[딴 소리] 미니멀리스트 공간 꾸리기에 골몰하는 나로서는, 두꺼운 양장본 보다는 얇고 부피 작은 페이퍼백이 좋다. 양장본 3권 꽂을 자리에, 잘 편집한 페이퍼백 6권은 들어갈 걸?

[코로나 이후의 세계]와 [코로나 이후의 세상] 두 권, 모두 적어도 "몸집 줄이기" 항목에서는 ★★☆☆ 이하 평점. 

예를 들어, 아래 본문 사진을 보시면, 총 195쪽, 19장 구성의 [코로나 이후의 세계] 중 15장은 고작 2쪽 분량이다. 페이지를 1장만 넘기면 바로 16장이 시작된다. 편집이 헐렁헐렁하다. 눈은 편하지만, 150쪽 아래로 모양 갖췄으면 좋았을 텐데.



[코로나 이후의 세상]도 마찬가지. 대담 형식인만큼, 들여쓰기 편집을 통해 Q&A를 차별화했다. 문제는 과하게 들여 썼고, 여백도 과하다는 점.알뜰한 편집을 했더라면 최종판의 2/3로 몸집 줄여서 나올 수 있었겠는데...... 종이도 아끼고, 책값도 낮아지고, 서가 공간 차지하는 부담도 덜어주고.....


콘텐츠가 아닌, 모양새를 두고 잔소리 딴소리만 늘어놓다니. 책 만들어주시는 분들께 미안해지니,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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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12-27 13: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이러니 하게도 코로나에 대해 언급한 책들은 죄다 편집이 저렇더라고요. 여백 텅텅에 쓸데없이 행간 넓고 저자 사진 양쪽에 다 박아놓고... 환경을 생각하자고 부르짖는 책들인데 정작 그 책이 환경보호에서 가장 멀리 있지 뭡니까. 저도 두 권인가, 코로나에 대해 말하는 책 읽고 화나서 리뷰 썼던 기억이 나네요.

얄라알라 2021-12-27 15:58   좋아요 1 | URL
아, 그렇군요! 저도 넉넉한 편집, 트렌드인가 이해하고 싶어도, 담은 내용은 많지 않은데 책 무게가 늘어 있으니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다락방님 말씀처럼 ˝아이러니˝ 맞다고 생각해요.

챕터 챕터 계속 환경, 기후위기 이야기를 하는 책이면서, 정작....

고양이라디오 2021-12-27 1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벌써 리뷰 올리셨군요! <코로나 이후의 세계>의 저자 제이슨 생커는 블룸버그 선정 세계 1위 미래학자라고 하는데... 전 앞으로 블룸버그 선정은 안 믿기로 했다는ㅎ

저도 다음 주까지 읽고 리뷰 올릴께요~

얄라알라 2021-12-27 15:59   좋아요 1 | URL
저는 고양이라디오님의 말씀을 아주 자~~알 알아 들었습니다^^

앞으로는 블룸버그 말고 ˝La& La˝ 선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