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6일부터 시행 중인 "백신 패스"를, 다른 이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어른사람과 대화 기회가 생길 때마다 화두로 꺼냈지만, 번번이 대화로 진행하지 못했다. 대부분은 에둘러 차단했지만, 화내려는 사람도 있었다. 팬데믹 장기화의 시대, 백신 접종은 단지 개인의 안녕뿐 아니라 시민의 의무와 권리, 그리고 국가가 복잡하게 얽힌 배선이기도 하다. 독일의 철학자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Richard David Precht)의 표현대로 코로나는 우리를 "타인과 의학적 운명 공동체"(15)로 엮어 놓았다. 프레히트는 불확실성과 예외성이 증폭된 코로나 시대야말로, 사회구성원의 입장과 태도가 드러나게 마련이라는 전제 아래, 다음의 화두를 던진다. 


  • 국민은 국민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어떻게 인식하는가?
  • 이와 관련해 코로나 사태는 현재의 사회적 상태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


[의무란 무엇인가?]는 위 질문들을 정치철학자의 관점으로 분석하고, 비판하고, 제언까지 하는 프레히트의 최신작이다.



© Raimond Spekking /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얇아서 금세 읽을 거라 생각했지만, 반쪽짜리 이해력을 보충하고자 [의무란 무엇인가?]를 깨알 메모하며 읽고 관련 도서도 찾았다. 칸트, 벤담, 키케로, 푸코, 토크빌 등의 인용 파트가 어려워서 이해력이 반토막 나기도 했지만, 프레히트가 방역 비협조자에 보이는 모멸적 태도를 완전히 수용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두 번 읽었다. 본문에서 프레히트가 코로나 방역에 덜(혹은 안) 협조하는 국민들을 표현하는 용어들을 찾아보았다. 다음과 같다. 


  • 반항몰이해, 트집
  • 이기주의자연대파괴자
  • 스스로 핍박 받는 레지스탕스 혹은 영웅이라 착각
  • 폭력 수반한 음모론자 - 5G 통신탑 파괴
  • "분노한 소수의 바보들(34)"
  • 국가를 불복종 대상 삼아 저항. 저항할 대상도 제대로 모르고 저항하면 이는 바보 같은 짓. 
  • "근거 없는 의심에 기반(101)"
  • "국가로부터 좋은 보살핌을 받는 시민들이 오히려 성을 내며 소아병적으로 반항하고고의로 공익의 의무를 저버리는 행위" (109)



위에 나열한 국민의 속성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바로 "탈도덕화"인 셈이다. 프레히트는 의무를 다하지 않으며 권리주장 하는 국민을 이해할 의향이 전혀 없다. 비판의 수위를 높인다. 당신들은 국가를 적 삼아 음모론이나 퍼뜨리고, 방역 협조도 안 하고 세금은 내기 싫어하면서 왜 경찰서, 소방서, 공공병원, 무상공교육, 수도와 전기를 당연한 권리인 양 누리고 사느냐고 조롱한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예멘이나 아프가니스탄, 남수단, 소말리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같은 나라가 천국"(108)이라면서. 


프레히트는 시민들의 (파렴치한??) 탈도덕화가, 이익추구를 최우선시하는 터보 자본주의와 관련된다고 분석한다. 즉 사람들이 "국가를 서비스 제공자로 보기 시작하고, 자기 자신은 언제나 최상의 서비스가 주어지기만 바라는 고객 또는 소비자"(108) 행세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인간의 내면, 정신세계, 인간의 공동체에 스며든 결과라는 것이다. 



프레히트가 보기에 자본주의가 부추기는 이기심은 민주적 시민의식과 충돌한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민주적 시민의식의 생성과 발현을 저해한다. "성과 사회를 대체한 이익 우선 사회는 성실, 공정, 신뢰성 같은 시민 계급의 중심 가치를 비웃는다. (132)" 프레히트는 독일 사회에 제안했다. 자발적으로 안 되면, 강제로 연습이라도 시키자고. 그는 "사회적 의무 복무 통해서 시민 문화와 새로운 사회계약의 실천을 연습" (147) 시킬 수 있다고 본다. 시민 참여와 봉사 등 사회적 의무복무를 제도화하여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내면화하고 실천하라는 제안으로 나는 이해했다. 



정치도, 철학도, 정치철학이라는 학문도 모르는 독자로서 나는 이 대목에서 이해력 반토막 났다. 프레히트에게 국가는 증류수처럼 불순물 없는, 터보 자본주의의 파쇄력 영향을 받지 않은 신성영역인가?  물론 프레히트의 표현처럼  코로나 시대 국가(독일)의 방역정책이 "연대적 생명 정치의 의무를 다하는 일"(54)이자 국가의 의무이기도 하다. 그런데, 국가가 '적절성의 원칙'을 지켜 '필수적인 조치'를 수행하는지 궁금해하거나 딴죽 거는 시민의 행위도 '소아병적 반항'인가? 통치에 의문을 품는 시민은,  '탈연대, 탈의무, 탈도덕''의 이기적 연대파괴자로 비약되는가? 만약 국가가 당장의 코로나 바이러스 퇴치에 전력투구하면서 기후위기 문제를 뒤편으로 던져두었을 때, 딴죽을 거는 방편으로 비협조하는 시민이 있다면 그는 이기적 연대파괴자인가?(내가 프레히트를 오해했는가?)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의 [의무란 무엇인가?]를 읽고, 국가, 국민의 의무와 권리에 대한 생각이 선명해진 부분도 있지만 혼란스러워진 부분도 있었다. 프레히트야 말로, 자본주의가 조장하는 이기심과 탈연대를  진정한 적(?)으로 제시하면서 그 극복을 위해 결국 국가에 과의존(?)하지 않는가? 한국 사회 병역의무처럼, 독일 사회 정년퇴직한 은퇴자들에게 '의무적 사회 복무'를 수행시킴으로써 시민으로서 연대의식과 소속감을 키우자는 제안은 굉장히 국가 의존적 방편이 아닌가? 국가의 힘을 덜 빌고, 자본주의의 파쇄력에서 좀 더 자유로울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의무란 무엇인가?]  읽고 나서도 개운하지 않아서......
오늘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를 종일 공부했다! 1987년생 사이토 고헤이!!!!!! 전 세계적으로 뛰어난 진보적 저술에 주는 '도이처 기념상' 역대 최연소 수상자이다! He deserves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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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20 1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2-20 1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2-20 1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2-21 1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2-23 1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거서 2021-12-21 19: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읽었는데 심봉사가 한쪽 눈을 먼저 뜬 기분! 실눈으로… ㅋㅋㅋ
저도 공부하고 있어요! ^^

얄라알라 2021-12-20 22:51   좋아요 2 | URL
오거서님, 저도 실은 오늘 종일 제 책상에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빨간 표지 보이게 해놨어요.
저는 자본론 발췌발췌 읽고 기억도 못하는데, 사이토 고헤이는 마르크스가 남긴 독서 일기며 작은 단서들까지 탐정처럼 훑고 읽으며, 어마어마한 공부력을 감추지 못하네요. 이런 책은 한 두 번 읽어야 정리가 될 것 같아서 오늘 밤 다시 2차 리딩 도전하려합니다^^

오거서님께서도 읽었다고 하시니 같이 공부하는 기분이라 좋습니다!

고양이라디오 2021-12-21 18:33   좋아요 2 | URL
오거서님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말씀하시는 거죠? 민주주의라고 쓰셔서ㅎ

오거서님과 얄라님이 좋다고 하니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오거서 2021-12-21 19:30   좋아요 2 | URL
덕분에 오기를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북사랑님이 핵심을 짚어주셨고요,
이 책 말고도 자본주의의 위기를 경고하는 책들이 최근에 많아지고 있는데 특히 이 책은 마르크스를 다시 보게끔 해주더라구요. 마르크스를 잘 몰랐다는 깨달음도요. 저자의 쉬운 설명 덕분에 저한테 공부 의지가 생겼어요. ^^

고양이라디오 2021-12-23 15:46   좋아요 3 | URL
오오!!! 오거서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더욱 보고 싶어요! 새해에 꼭 읽어보겠습니다^^

오거서 2021-12-23 19:40   좋아요 3 | URL
고양이라디오님 새해 목표 중 하나를 알게 되었어요. 비밀을 알게 된 기쁨 ㅎㅎㅎ
완독을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