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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나에게 ADHD라는 이름을 주었다 - 서른에야 진단받은 임상심리학자의 여성 ADHD 탐구기
신지수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년 6월
평점 :
"누가 누구를 고치겠다는 건가? 너나 잘 살피세요."
대학병원에서 "환자"의 ADHD 증상 감별해서 진단내리고 치료하는 임상심리학자 본인이 (알고보니) ADHD 범주에 속한다면? [나는 오늘 나에게 ADHD라는 이름을 주었다]의 저자 신지수가 그랬다. 그녀는 학창시절 교무실에 자주 불려 다녔다. 그녀가 제출한 반성문만으로 담임 선생님께서 두툼한 노트를 엮어낼 수준으로 자주 지적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신지수는 ADHD 진단을 받지도, 받아볼 생각도 못했다. 까불까불 산만한 사내아이의 얼굴을 한 ADHD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이었다. 남성에게 많이 나타나는 "과잉행동"을 진단 기준으로 강조하는 분위기 때문에 여성에게 유병율 높은 "조용한 ADHD"는 주목받지 못했다. 저자 역시 "조용한" 즉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부주의형 ADHD였기에 진단받아볼 생각조차 못했던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단초삼아, 정신의학에서 여성이 얼마나 배제되어 왔는지 어떤 점에서 불합리한지를 에세이형 문장에 담아낸다.
저자는 DSM의 ADHD 진단 기준이 "여상의 증상을 세밀하게 감별할 수 있는 문장을 기술하는 데 실패"(75)했기에 젠더 적합성gender appropriateness에서 이탈되었다고 본다. 실제 DSM 도구 타당성 검증단계에 동원된 연구 대상의 78.4%가 남성, 84%가 백인으로 편향되었는데, 이는 DSM이 다루는 정신장애에서의 젠더평향성을 드러낸다. 여성의 "조용한" ADHD는 기껏해야 기질의 문제로 축소되거나 우울장애, 양극성장애 등 다른 이름을 얻는 경우가 많았다. 한 마디로 제 이름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오늘 나에게 ADHD라는 이름을 주었다]의 전반부는 저자가 ADHD 진단 받은 이후 맹렬하게 공부한 정신장애 진단에서의 젠더편향성에 대한 학문적 논의와 그 극복방안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주를 이룬다. 신지수는 정신장애의 진단과 이해 과정에서 젠더 감수성 필요하며 과잉진단만큼이나 과소진단도 문제적이라는 시각을 보인다. 후반부는 저자가 실제 어떤 방법을 동원해 이 "장애"를 극복하고 있는가 구체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다른 잠재적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의도를 담았다. 임상심리학자로서 약물치료의 힘을 믿는 책의 부록으로 본인의 "약물-콘서타-일지(약물 복용으로 인한 신체적 정신적 변화의 기록)"를 공개한다. 약물의 힘만으로는 부족한 부분은 인지행동치료로 개선할 것을 권고한다.
저자는 성장과정에서 그리고 현재의 삶에서 "ADHD"라는 이름을 진작 만났더라면 덜 빼았겼을 삶에 대해 안타까워한다. 과소진단으로 인해 ADHD 환자되기에서 누락된 다른 여성의 억울함에도 항변해준다.
의료문제의 개념화와 진단 과정에서 젠더 편향성 문제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지만, 나는 ADHD 라는 진단명 남용 자체를 껄끄럽게 느껴온지라 "과잉" "과소"에 대한 저자의 고민에는 반만 동의한다. 저자는 [나는 오늘 나에게 ADHD라는 이름을 주었다]를 시작점 삼아, 이후로도 자신 외 다른 성인 여성과 여자아이들의 이야기를 채집하여 좋은 후속작을 펴내줄 책임감 있는 의사라는 게 내 촉이다(문제제기만 하지는 않으실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