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평전
안도현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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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기회가 된다면 백석같은 사람과 연애 한번 해보고 죽고 싶다'는  어떤 이의 진담같은 농담을 듣고,  「백석 평전」을 읽었다.  「백석 평전」을 다 읽고나니, 뜬금없이 누군가가 한없이 그리워져서 안도현의  「연어」를 펼쳐 들었다. 



 

그리움, 이라고 일컫기엔 너무나 크고,

기다림, 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넓은 이 보고 싶음.

삶이란 게 견딜 수 없는 것이면서 또한 견뎌내야 하는 거래지만,

이 끝없는 보고 싶음 앞에서는

삶도 무엇도 속수무책일 뿐이다.     - 도현 <연어>  39쪽 -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가 나온지도 벌써 이십 년이 지났건만, 그리움이라고도 기다림이라고도 부를 수 없는 이 간절함은 변함없이 속수무책으로 세월을 삭혀내고 있다.


언제 만나도 좋은 사람 극히 드물듯, 언제 읽어도 좋은 문장 역시 드물다.

결국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좋은 사람이 진짜 좋은 사람인 거고, 진짜 좋은 문장일 뿐이다. 다른 건 없다. 아무것도...


일찍이 안도현의 문장들을 읽어왔고 좋아했지만, 진짜 좋은 문장인 줄은 몰랐었다.

백석의 시들을 읽고 나서야 안도현의 시들이 다시 보였고, 그속엔 분명 월북시인 백석의 모습이 어려 있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 -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의 대표작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다.

속절없이 푹푹 눈은 내리고 연인을 향한 시적 화자의 마음도 속수무책 쌓여만 간다. 언뜻보면 사랑에 목매여 세상사 나몰라라 하는 연약한 실패자의 한탄같다.  

속으로 '에잇, 못난 놈'하고 돌아서려는데,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고 되묻는 목소리에 그만 발목이 잡히고 만다. 


그래, 남들 눈엔 기생과 모던보이의 불장난으로밖에 안 보였겠지만 백석은 자야에게 자야는 백석에게 북풍한설 모진 추위도 견뎌낼 수 있는 뜨거운 연탄과 같은 존재였으리라.

 

 

 

 

 

 

백석은 1912년 평안도 정주에서 태어나 오산고보를 졸업했다. 열 아홉살 때  ‘그 모(母)와 아들’이라는 작품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일찌감치 문학적 감수성을 발휘하였다고 한다.  장학금을 받고 일본 유학을 다녀온 후 서울과 함흥 등지에서 각각 신문기자와 영어교사로 재직하였고, 1936년 한정판(100부)으로 시집  『사슴』 을 남긴 후, 해방과 함께 '사라진' 시인이다.



하수상한 그 시절, 사라진 시인이 어디 백석 한명 뿐일까.

이육사가 그러했고, 윤동주도 그러했다. 특히 백석처럼 북국에서 태어난 윤동주는 백석의 시집 <사슴>을 힘겹게 대학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는 밤을 새워 필사를 했을 정도로 백석 시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윤동주 뿐만 아니라 당시 많은 시인들이 백석의 시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으며, 백석은 후대의 많은 시인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중에서도 신경림과 안도현이야말로 '백석 키즈'로 불릴 정도로 백석의 시풍과 닮아 있다.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 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 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 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 신경림 「가난한 사랑 노래」 - 




 

한때 무던히도 읊어댔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 시를 마음껏 읊을 수 있어서 견뎌낼 수 있었던 순간들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몰랐다.

가난하지 않다고해서 외롭지 않은 건 아니라는 걸.

가난하지 않다고해서 두렵지 않은 것도 아니며 그리움을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걸.

가난하지 않다고해서 사랑을 아는 것도 아니며, 가난하지 않다고해서 모르는 것도 아니다.

가난하지 않아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할 때도 있다는 걸.



백석의 시에는 평안도 사투리와 향토 음식들과 의성어 의태어들이 살아 움직인다.

만약 그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기교에만 의존했다면 그의 시들은 입안에서만 맴돌다 그쳤을 것이다. 그는 전통과 지방색과 토착어를 자기 시의 바탕으로 삼으면서 동시에  의연한 기개와 도도한 세련미를 놓치지 않았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中-




백석의 시는 이상(李箱)처럼 난해하지 않으면서도 서구와 일본을 모방한 어쭙잖은 모더니즘이나 탐미주의 시와도 구별되며, 경향적인 카프계열의 시인들과도 다른 길을 찾아 걸어갔다. 이광수를 필두로 김동환, 정인섭, 주요한, 이기영, 박영희, 김문집, 정지용, 김기림, 최재서, 이태준, 백철, 임화, 김억, 김동인, 김기진, 박영희, 함대훈, 이기영, 이석훈, 최정희, 모윤숙, 노천명 등 주변의 많은 문인들이 친일로 돌아섰지만, 그는 그 어떤 노선에도 가담하지 않고 침묵했다. 

 

그를 독립투사로 칭송할 순 없어도 북한 정권에 순응한 '빨갱이'로만 보아서도 안된다. 북한에서 그가 러시아 문학작품 번역만에 몰두하고 동화시쪽으로 분야를 바꿔 창작 활동을 이어간 것과 삼수갑산 오지로 숙청당한 후 체제 찬양시들을  쓴 것 등은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바다가 물웅덩이에 깊지도 얕지도 않은

집게 네 형제가 살고 있었네


막내 동생 하나를 내어놓은 집게네 세 형제

그 누구나 집게로 태어난 것 부끄러웠네


남들 같이 굳은 껍질쓰고

남들 같이 고운 껍질 쓰고

뽐내며 사는 것이 부러웠네


그래서

맏형은 굳고 굳은

강달소라 껍질 쓰고 강달소라 꼴을 하고 강달소라 짓을 했네


그래서

둘째 동생은 곱고 고운 배꼽조개 껍질 쓰고 배꼽조개 꼴을 하고 배꼽조개 짓을 했네


그래서

셋째 동생은 곱고도 굳은 우렁이 껍질 쓰고 우렁이 꼴을 하고 우렁이 짓을 했네


그러나

막내동생은 아무것도 아니 쓰고 아무 꼴도 아니 하고 아무 짓도 아니 하고

집게로 태어난 것 부끄러워 아니 했네


그런데

어느 하루 밀물이 많이 밀어 물웅덩이 밀물에 잠겨버렸네


이때에 그만이야

강달소라 먹고 사는 이빨 센 오뎅이가 밀물 다라 떠들어 와

강달소라 보더니만 우두둑 우두둑 깨물었네


강달소라 껍질 쓰고 강달소라 꼴을 하고 강달소라 짓을 하던 

맏형 집게는 이렇게 죽고 말았네​


그런데

어느 하루 난데없는 낚시질꾼 주춤주춤 오더니 물웅덩이 기읏했네


이때에 그만이야

망둥이 미끼하는 배꼽조개 보더니만

낚시질꾼 얼른 주워 돌에 놓고 돌로 쳐서

오지끈 오지끈 부서졌네


배꼽조개 껍질 쓰고 배꼽조개 꼴을 하고 배꼽조개 짓을 하던

둘째 동생 집게는 이렇게 죽고 말았네

그런데 

어느 하루 부리 굳은 황새가 진창 묻은 발 씻으러 물웅덩이 찾아왔네


이때에 그만이야

황새가 좋아하는 우렁이 하나 기어가자

황새는 굳은 부리 우렁이 등에 쿡 박고

오싹 바싹 쪼박냈네

우렁이 껍질 쓰고 우렁이 꼴을 하고 우렁이 짓을 하던

셋째 동생 집게는 이렇게 죽고 말았네


그러나

막내동생 아무것도 아니 쓰고 아무 꼴도 아니 하고 아무 짓도 아니 해서

오뎅이가 떠와도 겁 안 나고

낚시질꾼 기읏해도 겁 안 나고

황새가 찾아와도 겁 안 났네

집게로 태어난 것 부끄러워 아니하는

막내동생 집게는 평안하게 잘살았네  

                                                                                     - 백석, 「집게네 네 형제」 -




 

누가 읽어봐도 동화시로써 흠잡을 데 하나 없이 완벽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이 시속에서도 안도현의 시 한 편이 떠오른다. 물론 그가 백석을 표절했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오마주라면 또 모를까.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는 간장이 울컥 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 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드렸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 안도현  「스며드는 것」 -



이제는 글을 써서 사는 삶보다 글도 쓰며 사는 삶을 살고 있지만, 불쑥불쑥 글만 써도 되는 삶을 꿈꾸곤 한다. 

특히, 시를 그것도 좋아했던 시를 읽을 때면 밀물처럼 멀미가 밀려오곤 한다.

 

아직도 미련이 남았나 보다. 미련이 남았다는 건 그만큼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걸 잘 알면서도 이제는 최선을 다할 자신이 없다.


굳이 내 글을 팔지 않아도 삼시 세끼 거룩한 밥상을 마주할 수 있고, 미래의 어느날 오래된 오늘을 꺼내봤을 때 남루하지 않을 추억 몇 조각 떠올릴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안도현 시인이 백석 시인을 떠올리고, 내가 안도현 시인을 떠올리는 것처럼...



시를 읽으면 삶이 깊어진다!
시를 읽어도 세월은 가고, 시를 읽지 않아도 세월은 간다. 그러나 시를 읽으며 세월을 보낸 사람에 비해 시를 읽지 않고 세월을 보낸 사람은 불행하다. 시 읽기가 새롭고 다양한 세계에 대한 하나의 경험이라면, 시를 읽지 않은 사람의 경험은 얕아서 찰방거리고 추억은 남루할 테니까 말이다.    

                                                             - 안도현  「하찮은 것들에 대한 애착」  후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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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 지음 / 난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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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고아가 되고 있거나

이미 고아입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   


 


 Dear My Friend:



 

나는 공적인 관계가 아닌 사적인 만남의 경우에는 헤어지고 돌아가는 길에 습관적으로 그 만남의 의미를 되짚어보곤 해.

굳이 만나지 않아도 될 만남이었거나 만나지 않은 것만 못한 만남의 경우에는 서로 알고 지낸 시간이 얼마나 오래되었든 한때 얼마나 친밀한 사이였든 상관없이 그 인연은 이미 수명이 다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인간 관계는 천칭 저울과 같아서 양쪽의 무게가 똑같지 않으면 결국 무너지고 말지.


네 마음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기에 나에게 이번 만남은 일종의 '모험'이었지만, 더이상 미룰 수도 미루고 싶지도 않았어. 

근데 참 신기했던 건, 아주 오랜만에 만났음에도불구하고 어색하거나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이야. 

그만큼 마음 밖에선 멀어도 마음 속에선 가까운 사이였기 때문일까?


 

난 어떤 말도 다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어. 물론, 오랫동안 물음표로 남아 있는 것들도 있었지만 내가 직접 물어보지는 않겠다고 다짐도 했었지. 어찌되었든 심적으로 힘든 상황에 있는 너에게 또다른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런데 오히려 위로를 해줘야 했던 내가, 너의 미소에 위로받았고 너의 말들에 공감했으며 너의 진심에 감동했단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좀더 일찍 만날 걸...'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시간은 늘 우리의 기대를 배신하면서 우리의 후회를 불러일으키는 법이지. 

'지금이 아니었다면 안 되었을 거라는 건' 그 누구보다도 우리가 잘 알고 있잖니.


 

미안하다는 말 대신 고맙다는 말을 해줘서 정말 고마웠어.


헤어져선 안 될 사람들이 헤어지는 가장 큰 이유가 뭔지 아니? 그건 서로에 대한 미움도 원망도 아닌 미안함 때문이래.

너무 미안해서, 미안하다는 말조차 차마 할 수 없으면, 결국 그 사람 곁을 떠날 수밖에 없으니까...


참!
선물로 전해준 박준의 산문집을 오늘 다 읽었어.

시인의 에세이는 늘 시(詩)같아서, 시시(詩詩)하게 읽어야 제맛이라지만, 나는 편지처럼 읽었단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이 책을 다 읽고나서,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고 싶어졌어.  

 

시인처럼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보기도 하고...

미처 말이 되어보지 못한 소리들이 넋두리가 되어 가슴 속을 맴돌고...

 

 

네가 어느 문장에 밑줄을 그었을지... 어디 부분에서 눈시울을 붉혔을지... 알 것 같더구나.


 


관계가 원만할 때는 내가 그 사람을 얼마나 생각하고 그 사람이 나를 얼마나 생각하는지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한 사람이 부족하면 남은 한 사람이 채우면 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계가 끝나고 나면 그간 서로 나누었던 마음의 크기와 온도 같은 것을 가늠해보게 된다. 이때 우리는 서운함이나 후회같은 감정을 앓는다. 특히 서로의 의지와 상관없이 인연의 끝을 맞이한 것이라면 그때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후회될 만큼 커다란 마음의 통증을 경험하게 된다. -45쪽


상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자책과 후회로 스스로의 마음을 더 괴롭게 할 때, 속은 내가 속인 나를 용서할 때, 가난이나 모자람 같은 것을 꾸미지 않고 드러내되 부끄러워하지 않을 때. 그제야 나는 나를 마음에 들어 할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이라 믿는다. -57쪽


사람을 좋아하는 일이 꼭 울음처럼 여겨질 때가 많았다. 일부러 시작할 수도 없고 그치려 해도 잘 그쳐지지 않는, 흐르고 흘러가다 툭툭 떨어지기도 하며. -70쪽


사랑에 대해 내리는 정의들은 너무나 다양하며 그래서 모두 틀리기도 모두 맞기도 하다. 다만 세상에 수많은 사람이 수많은 사랑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언제나 참일 것이다.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여전히 이 세상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다면 그 이유도 바로 이것일 것이다. -95쪽


원래 삶은 마음처럼 되는 것이 아니겠더라고요. 다만 점점 내 마음에 들어가는 것이겠지요. 나이 먹는 일은 생각보다 괜찮아요. -148쪽


나는 아버지에게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오늘은 운전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아버지는 "그 정도로 몸이 안 좋다고 운전을 안 할 수 있나. 아프다고 해서 안 해도 되는 일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아." 하며 웃었다. 나는 아버지의 웃음에 서운하고 야속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169쪽



 

물론, 너는 이미 '감'을 잡았겠지만 내 글을 읽을 때엔 반드시 알아둬야 할 게 몇 가지 있단다.

 


 

첫째는, 내가 쓴 책 리뷰들은 책 내용과는 별반 상관이 없다는 점이야. 그럼에도불구하고 책리뷰란에 포스팅을 하는 건, 그 책을 읽고 나서 쓴 글이기 때문이지. 만약 내가 그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결코 쓰여질리 없는 글들이니까...

 


 

둘째는, 나는 정말 좋아하면 '침묵'하는 버릇이 있단다. 

기록은 망각을 막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망각을 불러오는 핑계가 되기도 하지. 너무 좋아하는 것들은 표현되어질 수 없고 표현되어져서도 안된다고 생각해. 물론 망각되어져서도 안되겠지. 그렇기 때문에 기록되지 않은 그 모든 사랑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되새기고 되새겨져서 마음의 무늬가 되는 거란다. 


 

 

셋째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들과 해야할 말들은 리뷰에 다 담겨 있다는 점이야.

나를 가장 잘 이해하는 방법은 내 말들보다는 내 글들 속에서 찾아야 돼. 말은 한번 하고, 한번 들으면 끝이지만, 글은 여러번 반복해서 씌여지고, 읽혀질 수 있으며,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말보다 훨씬 더 정직할 수밖에 없지.



 

그런 의미에서 내가 그날 '커피 홀릭'이라고 한 말에는 약간의 해명(?)이 필요할 것 같구나.

나는 커피숍에 가면 항상 커피를 주문하거든. 그러니까 사람들이 '너는 늘 커피만 마신다'고 말해서, 나도 그만 무의식적으로 '나는 커피 홀릭'이라고 인식해버렸던 것 같아.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평소 나는 차를 더 많이 마시거든. 그래서 어쩌다 커피숍을 가게 되면 차 대신 다른 음료 즉 커피를 주문하게 되는 거야. 너를 만난 그날에도 오전에 집에서 한잔 그리고 너와 만나서 두 잔, 총 석잔을 마셨을 뿐이건만 '불면증'에 시달렸단다. 


 

사실, 커피 석잔은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많은 양이라고 할 수는 없지. 어쩌면 그날밤 내가 잠들지 못했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을지도 몰라...


 

이제, 이 글의 본론이자 나의 진심을 말해야 할 것 같구나.


사실, 그날 눈물을 흘린 건 너만이 아니었단다.

너와 서둘러 헤어졌던 건 시간이 늦어서가 아니라 조금만 더 있으면 나도 곧 눈물을 보일 것만 같아서였어. 수술한지 며칠 안되서 오래 걸을 수 없다는 너를 배웅하고, 지하철역까지 걸어와선 화장실에 들려 손을 씻고 너에게 문자를 보냈더랬지. 그리고 전철 안에서 이 책을 읽기 위해 펼쳐들었다가, 그제서야 "**문고에는 이 책이 없더라고요." 라는 너의 한마디가 떠올랐지...


 

그날 너는, 내가 너를 배웅하고 혼자 걸어왔던 그 길을 두번 왕복했던 건 아니었을까?

지하철역에서 내려 약속장소인 **문고까지 걸어왔다가 이 책이 없다고하니까 다시 00문고까지 걸어가서 사온 거였어. 약속시간에 딱 1분 늦게 도착했으니 늦지 않으려고 서둘렀을 테고... 건강한 성인의 걸음으로도 반시간은 족히 걸리는 그 거리를 수술한지 얼마 안 된 몸으로 걸었던 거였어, 너는...


 

 

(울컥)


 

 

'이럴 줄 알았더라면, 아까 함께 울 걸 그랬어...'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러니까....



친구야!

앞으로는, 우리 혼자 울지 말고 함께 울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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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문장들 세트 - 전2권 - 청춘의 문장들 + 청춘의 문장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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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애정일수록 식을 땐 더 매몰차다.' 

한국 문학에 대한 나의 태도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이렇지 않을까 싶다.


십대후반부터 이상문학상집을 모았고 각종 문예지들을 정기구독했으며 신춘문예 발표에 촉각을 곤두세우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그러다가 (글을) '쓰는 삶'보다 '읽는 삶'이 나에게 더 적합하다는 걸 깨달은 이후부터 한국 문학과도 서서히 멀어지지 않았나 싶다. 물론, 여기엔 정치사회적 이데올로기 아니면 서사를 배제한 채 의식의 흐름만을 지나치게 추구한 당시 문학 풍토도 한몫했음을 부인하진 않겠다.


이런 나에게 한국 문학을 다시 사랑하게 만든 작가가 있다.

바로 김연수다.

나는 2년 전 어느 여름날, 그를 작품이 아닌 에세이집으로 먼저 만났다. 그가 서른 즈음에 쓴 <청춘의 문장들>과 그후 십년 뒤에 쓴 <청춘의 문장들 +>을 읽으면서 공감 버튼을 백만번쯤은 누른 것 같다. 


 

작가가 서른 넷에 출판한 <청춘의 문장들>은 이십대를 막 지나 직장생활을 거쳐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선 직후까지의 작가를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유년시절과 사춘기의 추억들 그리고 시인으로 등단하고 작가가 되기까지의 과정 및 습작의 세월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그런지 열정적이고 치열하다. 뭔가 이루고자 하는 충만함이랄까...? 확실히 청춘의 기운이 느껴진다.


당시, 나 역시 서른 초반이었고 그때를 떠올리면 십대와 이십대의 방황과 미숙함에서는 많이 벗어났지만 여전히 막막했고 여전히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그때 그시절 내곁에만 머물고 있다고 생각했던 김광석이었는데, 김연수 작가에게도 찾아갔었던 모양이다. 그에 대한 작가의 애상에, 내 마음이 나도 모르게 '뚝ㅡ'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때까지 팽팽하게 작동하던 한국 문학에 대한 방어기제가 순식간에 해제되는 순간이라고나 할까.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 김광석은 젊어서 죽고 2003년을 기점으로 나는 김광석이 살아보지 못한 나이를 살게 됐다. -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p141 -

 

 

이를 두고 <청춘의 문장들 +> 발문을 쓴 작가 김애란은, "세상의 모든 인연들은 두 번 만난다. 한번은 각자의 나이로, 또 한번은 상대방의 나이가 되서..."라고 표현했다.

순간 머리속이 '멍'해졌다.


한때 너무 좋아했던 사람들보다 더 나이를 먹어버린 자기자신을 발견한다는 건, 놀라운 깨달음을 동반한다.



 

<청춘의 문장들> 곳곳엔 고전과 한문, 한시가 자주 등장한다.

익숙한 것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낯선 것들이다. 작가는 몇 백년 혹은 그보다도 훨씬 더 먼 옛날 옛적 사람들의 생각과 삶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해냈지만, 난 아쉽게도 그와 같은 경지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그래서 너무 고풍(?)스러워서 책장을 덮으라치면, 등장하곤 하는 빼어난 문장들... 문장들...



 

살아오면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영어 가정법 문장을 어떻게 만드는지도 배웠고 3차 방정식을 그래프로 옮기는 법도 배웠다. 하지만 내가 배운 가장 소중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일 수 있는지 알게 된 일이다. 내 안에는 많은 빛이 숨어 있다는 것, 어디까지나 지금의 나란 그 빛의 극히 일부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일이다.  -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p195


재촉하는 만큼 빨리 흐르지는 않는다고 해도 나이가 들고 싶다는 아이의 소원쯤이야 들어준다는 것. 삶이 너그러운 건 그때 뿐이다.  -  p210


흘러간다. 세월은, 그렇게, 그렇게, 부드럽게, 따뜻하게, (...) 가끔 아무런 후회도 없이, 아쉬움도 없이 세월을 보내던 그때 그 시절이 떠오른다. 내가 그리워 하는 것은 그렇게 흘러가는 세월의 속도이지 그 시절이 결코 아니다.  -  p212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 삶이란 그런 것이구나. 어른들은 돌아가시고 아이들은 자라나고... 다시 돌아갈 수 없으니까 온 곳을 하염없이 쳐다보는 것이구나. 울어도 좋고, 서러워해도 좋지만, 다시 돌아가겠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것. 삶이란 이런 것이구나.  - p242


이런 문장들은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때론 조각배를 타고 인생이라는 바다를 건너갈 때 '노'가 되어 주기도 한다. 이런 건 경험하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고, 표현할 수도 없다. 


경험하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것들...

그래서 청춘일때는 절대로 알 수 없고, 알 수 없으니 절대로 이해할 수도 없는 것들...



 

피는 꽃이 좋았던 시절에는 그 꽃잎들이 지는 걸 굳이 지켜보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틈엔가 나도 나이가 들고, 이제는 지는 꽃은 모두 화려한 옛 시절을 품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 수없이 반복된, 꽃지는 시절의 이별은 오늘도 계속된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에게는 떨어지는 꽃잎 앞에서 배워야 할 일들이 남아 있다. 어쩌면 인생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알지 못해서 몰랐던 게 아니라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모르는 척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배워가는 것.

 -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 p191 -


 

청춘인 나에게, 삶이란 사랑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의 집합같은 거였다.

그러나 알지 못해서 몰랐던 게 아니라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모르는 척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배워가는 과정이 삶이라는 걸 깨달은 뒤부턴 삶이란 이해되지 않아도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당신은 언제 눈물을 흘리는가? 적어도 나는 짐작과는 다른 일들을 겪을 때 눈물을 흘린다. 대체적으로 삶이란 짐작과는 다르다. 그 사실을 깨닫게 된 순간부터 나는 삶을 추측하는 일을 그만 뒀다. 삶이란 추측되지 않았다. 그냥 일어날 뿐이다. 소설은 그 일어난 일들의 의미를 따져보는 일이다. 짐작과 달랐던 일들의 의미를 나와 당신이 함께 납득해가는 과정이다. 삶의 어느 순간에, 당신이나 내게 진심으로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던, 혹은 진심으로 기뻐하게 만들었던 그 일들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는 걸 당신과 내게 납득시키는 일이다. 당신이나 나나 이제 다른 존재가 돼 살아가겠지만, 그 일들이 사라지지는 않으리라. -  p100~101

 

그는, '한국 소설은 이젠 왠지 잘 읽지 않게 된다.'라는 생각을 남몰래 가지고 있던 나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순전히 지어낸 이야기일뿐인 소설을 읽는다는 건, 어쩌면 아이같은 순진함이나 미성숙함의 발로라는 생각들도 부끄럽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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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는다는 건, 이런 거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관심을 갖지 않았던 일들에 관심을 갖게 만들고, 이해할 순 없지만 그래도 사랑하게 만든다.

나를... 너를...

그리고, 우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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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행복해지는 이야기 - 수의사 헤리엇이 만난 사람과 동물 이야기
제임스 헤리엇 지음, 김석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2년 8월
평점 :
절판


제임스 헤리엇의 『사랑의 선물』과『조금씩 행복해지는 이야기』를 읽었다.


1916년에 태어난 저자(본명: 제임스 앨프레드 와이트)는 55세부터 1995년 사망할때까지 영국 요크셔 지방에서 평생을 수의사로 일한 경험담을 책으로 엮어냈다.


 

그가 남긴 책들 중, 『사랑의 선물』이 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책이라면 『조금씩 행복해지는 이야기』는 성인을 위한 에세이로 부족함이 없다. 나 역시『사랑의 선물』을 읽을때는 사건 위주로 전개되어 흥미롭긴 했지만 깊은 사색이나 진한 감동을 받진 못했더랬다.

그런데 『조금씩 행복해지는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제임스 헤리엇을 수필 작가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밤낮 구분없이 동물들과 시름해야하는 힘든 일상 속에서도 일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 그리고 자연과 동물에 대한 저자의 사랑은 마치 쉼없이 샘솟는 온천수마냥 읽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적셔준다.


 

사실, 수의사라는 직업은 과로와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3D직종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거대한 체구의 말이나 소의 바로 옆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새끼를 받아내는가 하면, 차도가 없는 동물 환자를 직접 안락사시켜야 하는 상황과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동물들의 겁에 질린 눈동자와 수시로 마주해야 할 뿐만 아니라 수의사의 노고에 고마워하기는 커녕 탓만 하는 농부들의 무례함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육척 장신인 농장 일꾼 하나가 말 머리에 쒸운 마구를 단단히 움켜잡고 머리를 구유에 눌러대고 있는 동안, 나는 상처에 재빨리 요오드포름을 뿌렸다. 다행히 말은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 거대한 체구에서 발산되는 생명력과 힘이 손에 잡힐 듯했기 때문에, 말이 얌전한 것은 다행이었다. 나는 비단 봉합사를 바늘에 꿰고, 상처 가장자리를 들어올려 거기에 바늘을 꿰었다. 이어서 반대쪽 가장자리에 바늘을 꿰면서 이 일은 쉽게 끝날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바늘을 잡아당기고 있을 때 말이 갑자기 껑충 뛰어올랐다. 돌풍이 휙 소리를 내면서 내 앞을 스치고 지나간 듯 한 느낌이었다. -「조금씩 행복해지는 이야기」134쪽-

 

 

내 판단은 틀렸다. 순식간에 덩치가 큰 말이 비척대기 시작했다. 거대한 말이 땅바닥에 쓰러진 순간, 내 발밑의 자갈도 흔들리는 것 같았다. 잠시 동안 말은 몸을 쭉 뻗고 모로 누워 있었다. 허공에 대고 발을 마구 흔들더니 곧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되고 말았다. 이 잘생긴 말을 내가 죽이고야 말았다. -「조금씩 행복해지는 이야기」101쪽-

 

 

눈을 감아도 그 기괴한 얼굴과 고통에 못 이겨 내지르는 그 소름끼치는 울음소리를 기억에서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가장 가슴아픈 것은 두려움과 당혹감에 가득 한 눈, 겁에 질려 어찌할 바를 모르는 눈이었다. 말 못하는 동물의 고통을 바라볼 때 가장 견딜 수 없는 바로 그 눈이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쟁반에 놓인 넵부탈을 서둘러 집어들었다. 어쨌든 이 고통을 빨리 끝내주는 것은 그나마 수의사가 고통받는 동물에게 해줄수 있는 일이다. -「조금씩 행복해지는 이야기」187쪽-


 

기가 막혀서. 나는 차를 몰고 나오면서 생각했다. 고맙다는 말도, 잘 가라는 말도 하지 않고 불평만 늘어놓다니. 그리고 필요하면 구운 거위고기를 먹고 있는 나를 식탁에서 끌어내겠다고? 갑자기 분노의 물결이 밀려왔다. 빌어먹을 농부들! 농부들 중에는 무례하고 비열한 사람도 있었다. 브라운 씨는 내 머리에 찬물 한 양동이를 퍼부은 것처럼 효과적으로 내 축제 기분을 망쳐놓았다. -「조금씩 행복해지는 이야기」151쪽-

 

 


 

이처럼 언뜻봐도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라는 건 자명해 보인다.

그렇지만 저자는 수의사라는 자신의 직업을 천직으로 여길 뿐만 아니라 매순간 생명의 경이로움과 삶의 기쁨을 깨닫게 해주면서 동시에 돈까지 벌게 해주는 이 일에 진심으로 고마워한다.


 

시골 수의사 노릇보다 쉽게 빌어먹고 살 길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또 밀려왔다. 하루 24시간, 1주일 7일 내내 일은 거칠고 더럽고, 재앙에 가까운 사건이 터지고.

나는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몇 분 후 눈을 떠보니, 구름 사이로 햇살이 나와 푸른 언덕을 비췄다. 햇살을 받아 눈 덮인 산등성이는 반짝반짝 생기가 돌았고, 튀어나온 바위 질벽은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차창을 내리고 차고 맑은 공기를 들이마셨다. 황무지의 공기는 선선하고 톡 쏘는 맛이 있었다. 평온함이 내 몸에 밀려들기 시작했다. 내가 케틀웰 씨의 말에게 잘못한 게 아닐 거야. 항히스타민제가 가끔 그런 반응을 일으키는 게지. 어쨌거나 차의 시동을 걸고 출발하자니, 오래된 느낌이 내 안에 차고 올랐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감정은 점점 더 강하게 흘러넘쳤고, 이런 황홀한 시골에서 동물들과 일할 수 있었서 좋았다. 요크셔 데일스에서 수의사 노릇을 하다니 난 복 많은 사내였다.

-「사랑의 선물」102쪽-


 

새끼 양을 받느라 3~4월을 정신없이 보낸 후, 5월과 6월 초순의 내 생활은 한결 느긋하고 푸근했다. 스켈데일 하우스는 등나무에 보랏빛 꽃이 만발해서 열린 창으로 꽃내음이 풍겼다. 아침에 면도를 할 때면, 거울 옆까지 뻗은 꽃송이의 진한 향기에 취했다. 목가적인 생활이었다. 때로는 일을 하고 돈을 받는 것이 정당하지 않다고 느껴졌다. 아침 일찍 왕진을 나서면, 들판에는 희미한 빛이 반짝이고 높은 언덕 꼭대기는 안개가 자욱했다. 바다처럼 싱그러운 공기에는 초지에 점점이 피어난 수천 송이 야생화의 향기가 있었다. -「사랑의 선물」151쪽-

 

 

 

나는 이런 사람들이 진짜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자신의 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 줄 아는 사람들이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성공이란 '궁극적으로 행복해지는 것'이라는 근원적인 명제를 한시도 잊지 않고 실천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부와 명예에 휘둘리지 않는다.  


 

그가 죽은 뒤, 그의 생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전기적 측면들이 여러 매체에 상당히 자세하게 소개되었습니다. 특히 강조된 것은 헤리엇의 청빈한 생활 태도였습니다.  책이 아무리 팔리고(그의 책들은 모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20여 언어로 번역되어 전세계에서 수천만 부가 팔렸습니다.), 텔레비전 드라마가 인기를 얻어도(그의 책을 대본으로 한 드라마가 영국 BBC방송에서 제작되어, 1978~80년과 1988~90년에 총 90회의 시리즈로 방영되었습니다), 헤리엇은 생활을 전혀 바꾸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내와 함께 아담하고 소박한 침실 두 개짜리 단층집에서 계속 살았고, 마지막까지 온화하고 겸손한 시골 수의사였습니다.


<타임>의 인터뷰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토로가 실려 있습니다.

"나에게 성공이 가져다준 유일한 혜택은 생활 기반이 다소 단단해졌다는 것이다. 나는 전에 하지 않은 일은 지금도 하지 않는다. 전에 사지 않은 물건은 지금도 사지 않는다. 생활 방식을 바꾸는 것의 의미를 모르겠다. 일을 하고 개들을 산책에 데려가고 친구들과 맥주 한잔하고...... 이런 생활이 좋다. 호화로운 생활이나 상류 사회나 값비싼 물건을 나는 천성적으로 싫어한다." -「조금씩 행복해지는 이야기」옮긴이의 말 中-

 

 

 

우리는 흔히 나는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남들과는 다른 운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굳게 믿곤 한다. 나도 그랬다. 2,30대까지는 특별한 내일을 꿈꾸면서 평범한 오늘을 견뎌내곤 했다. 지금 이 순간은 아름다운 미래를 위한 어쩔 수 없는 '통과의례'로만 여겼을 뿐, 내 삶의 일부라는 걸 인정하지 못했더랬다.

 

그러나 지금은, 평범한 일상의 위대함을 안다.

 

평범한 일상을 구축하고 유지한다는 게 얼마나 힘겨운 싸움의 결과인지... 평범함을 견뎌내기 위해 얼마나 많이 인내해야 하며...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크고 작은 유혹들에 저항해야 하는지...

이제는 잘 안다.

 

 

이 책의 저자 또한 시골 수의사라는 지극히 고생스럽고 단조롭고 심지어 비루할 수도 있는 자신의 일상을 견뎌냈다. 아니, 어디 저자인 제임스 헤리엇 한명 뿐이랴. 그의 기록들 속에 등장하는 농장 사람들 역시 '평범함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특별함'이라는 진리를 다시 한번 증명해 준다. 


 

 

내가 힘들면 다른 사람도 똑같이 힘들다는 그 평범한 진리...

내가 기쁘고 슬프면 다른 사람도 똑같이 기쁘고 슬프다는 그 평범한 진리...

그리고 무엇보다도,

동물도 사람과 똑같이 느끼고 아프다는 그 평범한 진리 말이다.

 

 


 

아름답고 사랑스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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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12년 - Movie Tie-in 펭귄클래식 139
솔로몬 노섭 지음, 유수아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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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한 주제를 엇비슷하게 다룬 작품들을 종종 접하곤 한다.

예를 들면, 광주 민주화 운동이라든지.... 나치의 홀로코스트라든지... 아니면, 미국의 인종차별주의라든지...

주제도 결론도 심지어는 이야기 전개 방식도 매우 흡사하다. 예술작품의 가장 큰 특징을 '창조성'이라고 본다면, 이런 류의 작품들은 예술의 범주에서 논할 수 없다.

 

'뻔하고 식상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종류의 작품들을 접할 때마다 특별한 감동을 받는 이유는 뭘까?

바로 실제로 일어난 일, 즉 '사실성'때문이 아닐까 싶다. 창조성이 아무리 뛰어난 작품일지라도 사실성 앞에서 만큼은 한발 물러설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점이 바로 기록문학이 존재하는 이유이자 근간이리라. 


이 책의 주인공인 솔로몬 노섭은 1808년 뉴욕주에서 태어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지만 1841년 워싱턴 DC에서 납치되어 무려 12년 동안 노예 생활을 하다가 극적으로 구출된 실존 인물이다.

 

『노예 12년』는 노섭이 풀려난 이후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기록한 책으로, 일말의 과장도 없이 '사실 그대로'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특히 책이 출간되기 한 해전인 1852년에 나온 해리엇 비처 스토의 소설『톰 아저씨의 오두막』과 비교되면서 그 가치가 더욱 커졌다고 하겠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은 출간되자마자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키면서 흑인노예제 폐지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으나, 꾸며진 이야기라는 점에서 노예제 지지자들의 공격을 받아야만 했으나 솔로몬 노섭의 논픽션 자서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책이 출판되면서 스토의 소설속 이야기들이 전혀 근거 없는 '사실무근'만은 아니라는 점을 증명해주었기 때문이다.

 

 

솔로몬 노섭은 12년 동안 3번이나 주인이 바뀌는 와중에서도 자유을 향한 투쟁을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짐승같은 주인으로부터 짐승처럼 학대를 당하면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포기하지 않았다.


 

두 딸의 아버지이자 한 여자의 든든한 남편이었던 그가 어떻게 납치되어 노예가 될 수 있단 말인가? 라는 의문에 대해서는 이 책 초반부에 잘 나와있다. 다만 나는 개인적으로 그의 불운을 인간을 믿었던 그의 선량함과 남다른 바이올린 솜씨도 한몫(?)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아! 그때까지 나는 인간을 향한 인간의 잔인함에 대해서도, 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인간이 얼마나 사악한 짓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몰랐던 것이다.

(...)

'하느님의 자비로운 중재로 제가 당신의 피조물의 피로 제 손을 더럽히는 일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 놓여보지 않은 사람들은 나를 호되게 비난하지 말라. 쇠사슬로 몸이 묶이고 매질을 당하기 전까지는, 집과 가족을 떠나 속박의 땅으로 가던 나와 똑같은 처지에 놓이기 전까지는, 자유를 얻으려고 그런 짓을 하지는 않을 거라고 단언하지 말라. 하느님과 인간의 눈에 내가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을까?

 

 -솔로몬 노섭, 『노예 12년』p49~67 中 발췌-

 

 

자신을 곡마단에서 바이올린 연주자로 고용하겠다고 속여 노예 상인 버치에게 팔아 버린 메릴 브라운과 에이브럼 해밀턴에 대한 노섭의 평가는 유보적이다. 그들이 준 술을 마시고 정신을 잃었기 때문에 정황상 그들의 악행이 분명해 보임에도 불구하고, 노섭은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보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그 무엇도 단정하지 않았다. 이 정도로 노섭은 자신의 이야기를 정확성과 사실성에 입각하여 기록하고자 하였다. 그러니 이 책은 사실 그 자체라고 믿어도 무방할 것 같다. 

 

노섭의 이야기를 받아 적은 데이비드 윌슨의 필체가 객관적이고 담담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러번 읽기를 멈추고 숨을 골라야만 했다. 그러므로 인간에 대한 분노와 실망 그리고 역시 같은 이유로 생겨나는 인간에 대한 희망으로 여러번 가슴이 무너질 각오를 하기 전까지는 이 책을 함부로 펼치지 마시라.


특히, 인간 본성에 대한 솔로몬의 깊이 있는 성찰과 견딜 수 없는 고통의 순간조차도 애써 담담하게 표현하는 그의 인간성 앞에서는 그 누구라도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두려움과 무지 속에서 자란 노예들은 백인의 눈길 앞에서 자신들이 얼마나 비굴하게 움츠려드는지 자각조차 못한다. -p68

 

태양이 그토록 불타오르듯 내리쬐고 또 그토록 느리게 움직이는 것은 그날 생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머릿속은 셀 수 없는 생각으로 넘쳐나지만, 다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온 종일 생각해 봤지만, 단 한번도 주인이 먹여주고 입혀주고 보살펴주고 매질도 하는 남부 노예의 삶이 북부에서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유색인종의 삶보다 더 행복하다는 결론을 얻지 못했다고만 말해두겠다. -113

 

피를 빨아먹는 악마같은 주인의 노예로 살아가면서 극한의 공포를 견뎌내는 것은 몹시 힘들었다. 나는 신께서 내가 꼭 살아야 할 이유이기도 한 사랑하는 내 아이들을 주시기 전에 왜 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p117~118

 

바유뵈프의 또 다른 농장주 짐 번스는 여자들만 노예로 부렸다. 그는 잔인성을 뽐냈으며, 근방에서는 엡스보다 더 철저하고 기운 넘치는 사람으로 평판이 나 있었다.  '자신도 짐승인 주제에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짐승들에 대한 약간의 자비심도 없이 어리석게도 자신의 재산을 만들어 주는 바로 그 힘을 향해 채찍질을 해댔다. -p165

 

오만과 질투 그리고 욕심과 분노로 가득 찬 복수극으로 인해 주인 엡스 내외의 집에는 다툼과 소란이 끊이질 않았다. 그리고 이 모든 가정불화의 불똥은 순진하고 마음씨 착한 노예 팻시가 받아야만 했다. -p178

 

남부에 존재하는 잔혹한 형태의 노예제 역시 남부인들의 성정과 기질을 난폭하게 만드는데 일조했을 것이다. 날마다 인간이 고통받는 모습, 즉 고통에 찬 노예들의 비명 소리, 무자비한 채찍질을 당하는 노예의 몸부림, 개한테 잔혹하게 물리고 뜯기는 모습, 사람이 죽어도 신경조차 쓰지 않으며 관을 짜거나 수의도 입히지 않고 그냥 묻어버리는 일 등을 목격하는 이들로서는 생명의 고귀함에 무뎌지고 잔혹해지는 게 당연한지도 모른다. -p182

 

그러나 모든 노예주인이 이처럼 잔인한 것은 아니었다. 비록 드물긴 했지만...

 

노섭 역시 이 점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첫번째 주인인 윌리엄 포드 역시 자비심 넘치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윌리엄 포드는 재정적 어려움에 처하는 바람에 1년 반만에 노섭을 티비츠에게 넘겨야만 했다. 티비츠를 거쳐 세번째이자 마지막 주인인 엡스밑에서 노섭은 10여년을 노예로 살아야만 했다. 물론, 그도 도망을 치려고 했고 폭동을 일으키려고도 했으며 가족과 지인에게 편지를 부치려고 무던히도 노력했지만 번번히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베스라는 백인을 만나기 전까지는...


 

노섭은 베스라는 인물에 대해서 '그는 미혼, 정확히 말하자면 독신주의의 노총각이었고 가족이나 왕래하는 친척도 없는 혈혈단신이었다.'라고만 적어놓았다. 그러나 그는 베스가 엡스와 나눈 대화를 정확하게 기억했다가 기록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베스가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있도록 도와준다. 

 

"법이란 것도 가변적이며 불변의 진리는 아닙니다. 법이 허용한다면 아무거나 해도 되나요? 피부색이 다르다고 해서 영혼의 색깔마저 달라야 합니까? 하! 이 노예제도는 잔인할 뿐만 아니라 정당성마저 없는 제도입니다. 엡스씨는 죽어도 노예를 포기하시지 못하겠지만, 저는 루이지애나의 제일 좋은 농장을 준다고 해도 노예를 사지는 않을 겁니다." 


 -솔로몬 노섭, 『노예 12년』p239~241 中-

 

 

'침묵은 동조'라고 했던가.

악은 '어쩔 수 없다.'라는 식으로 자포자기하는 다수의 침묵을 양식 삼아 존속된다. 베스는 백인이었지만 노예제도의 부당성을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용감하게 표현한 인물이다.


역사는, 인류 사회는 이런 인물들에 의해서 조금씩 진보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노섭이 뉴올리언스로 오는 배 안에서 보낸 편지가 가족에게 정확히 전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노섭의 정확한 위치와 주소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를 구출할 수 없었다. 그 이후 배에서 내린 노섭은 자신의 이름이 노예 상인 버치의 동업자 시어필러스 프리먼에 의해 '플렛'으로 바뀌었음을 알게 된다. 그뒤, 노섭은 우연히 농장으로 목수일을 하러 온 베스를 만나 그를 통해 고향의 지인들에게 편지를 부쳐 구출될 때까지 플렛으로 불리운다. 이렇게 해서 가족들이 그를 수소문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마저 사라져 버린 것이다.


모든 노예들이 태어날때부터 전부 노예였던 건 아닐 것이다. 솔로몬 노섭처럼 분명 자유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예로 둔갑(?)된 노예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모두 노섭처럼 구출될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노섭은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바이올린으로 다져진 올바른 성정과 곧은 마음이 특별히 그를 구원했을지도 모른다. 

 

바이올린 연주 일자리를 주겠다는 꾐에 속아 노예로 팔린 노섭이건만, 단 한번도 바이올린이나 바이올린을 연주할 줄 알았던 사실을 원망한 적이 없다는 점이야말로 이와 같은 그의 성품을 잘 설명해준다.그는 오히려 노예 생활 중간중간 바이올린으로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자신 또한 치유받았노라고 고백한다.


 

바이올린은 내 동반자였다. 내가 기쁠 때는 나와 함께 기쁨의 노래를 불러주고, 슬플 때는 부드러운 위로의 노래를 불러준 내 친구, 간혹 불행한 운명에 대한 걱정으로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바이올린 연주가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주곤 했다. 우리 노예들에게 한두 시간의 휴식이 허락되는 안식일이면 나는 바이올린을 들고 늪지대 근처의 조용한 곳으로 가 바이올린이 들려주는 상냥하고 아름다운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또 바이올린은 내가 이름을 날리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연주가 아니었다면 나에 대해 잘 몰랐을 이들과도 친구가 될 수 있었고, 해마다 열리는 크리스마스 연회에서 가장 상석에 앉을 수 있었던 것도 악기 연주 실력 덕분이었다.

 

-솔로몬 노섭, 『노예 12년』p192~193 中-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노예가 정말 물건처럼 매매,대여,상속되며 다른 농장에서 일하게 한 후 주인이 일당을 챙긴다는 사실과 주인이 써준 통행증 없이는 이동의 자유도 없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글을 읽거나 쓸 수 없었으며, 노예가 아닌 자유인라고 주장하는 노예는 재산을 잃을 것을 두려워한 주인에 의해서 더 외진 곳으로 재빨리 매매된다는 것과 도망친 노예를 추적하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통행증 없는 흑인 노예를 발견한 백인은 그 노예를 소유하거나 판매할 수 있었고, 원래 주인이 되찾아오기 위해선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점도 알게 된다.


 

마치 그물망과 같아서 한번 노예의 삶에 빠지면 북부의 자유인일지라도 천운이 닿지 않는 한 노예의 삶에서 벗어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한편,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노섭은 자신을 노예로 만들어 팔아버린 노예 상인을 법정에 고소하지만 그들은 무죄로 풀려나고 만다. 이후, 그는 이 책을 출판하고 노예제의 참상을 고발하는 연설과 강연활동을 활발하게 펼치던 중 행방이 묘연해졌으며 사망 연도는 1863~1875년로 추정되고 사망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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