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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12년 - Movie Tie-in ㅣ 펭귄클래식 139
솔로몬 노섭 지음, 유수아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4년 2월
평점 :
품절
동일한 주제를 엇비슷하게 다룬 작품들을 종종 접하곤 한다.
예를 들면, 광주 민주화 운동이라든지.... 나치의 홀로코스트라든지... 아니면, 미국의 인종차별주의라든지...
주제도 결론도 심지어는 이야기 전개 방식도 매우 흡사하다. 예술작품의 가장 큰 특징을 '창조성'이라고 본다면, 이런 류의 작품들은 예술의 범주에서 논할 수 없다.
'뻔하고 식상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종류의 작품들을 접할 때마다 특별한 감동을 받는 이유는 뭘까?
바로 실제로 일어난 일, 즉 '사실성'때문이 아닐까 싶다. 창조성이 아무리 뛰어난 작품일지라도 사실성 앞에서 만큼은 한발 물러설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점이 바로 기록문학이 존재하는 이유이자 근간이리라.
이 책의 주인공인 솔로몬 노섭은 1808년 뉴욕주에서 태어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지만 1841년 워싱턴 DC에서 납치되어 무려 12년 동안 노예 생활을 하다가 극적으로 구출된 실존 인물이다.
『노예 12년』는 노섭이 풀려난 이후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기록한 책으로, 일말의 과장도 없이 '사실 그대로'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특히 책이 출간되기 한 해전인 1852년에 나온 해리엇 비처 스토의 소설『톰 아저씨의 오두막』과 비교되면서 그 가치가 더욱 커졌다고 하겠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은 출간되자마자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키면서 흑인노예제 폐지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으나, 꾸며진 이야기라는 점에서 노예제 지지자들의 공격을 받아야만 했으나 솔로몬 노섭의 논픽션 자서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책이 출판되면서 스토의 소설속 이야기들이 전혀 근거 없는 '사실무근'만은 아니라는 점을 증명해주었기 때문이다.
솔로몬 노섭은 12년 동안 3번이나 주인이 바뀌는 와중에서도 자유을 향한 투쟁을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짐승같은 주인으로부터 짐승처럼 학대를 당하면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포기하지 않았다.
두 딸의 아버지이자 한 여자의 든든한 남편이었던 그가 어떻게 납치되어 노예가 될 수 있단 말인가? 라는 의문에 대해서는 이 책 초반부에 잘 나와있다. 다만 나는 개인적으로 그의 불운을 인간을 믿었던 그의 선량함과 남다른 바이올린 솜씨도 한몫(?)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아! 그때까지 나는 인간을 향한 인간의 잔인함에 대해서도, 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인간이 얼마나 사악한 짓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몰랐던 것이다.
(...)
'하느님의 자비로운 중재로 제가 당신의 피조물의 피로 제 손을 더럽히는 일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 놓여보지 않은 사람들은 나를 호되게 비난하지 말라. 쇠사슬로 몸이 묶이고 매질을 당하기 전까지는, 집과 가족을 떠나 속박의 땅으로 가던 나와 똑같은 처지에 놓이기 전까지는, 자유를 얻으려고 그런 짓을 하지는 않을 거라고 단언하지 말라. 하느님과 인간의 눈에 내가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을까?
-솔로몬 노섭, 『노예 12년』p49~67 中 발췌-
자신을 곡마단에서 바이올린 연주자로 고용하겠다고 속여 노예 상인 버치에게 팔아 버린 메릴 브라운과 에이브럼 해밀턴에 대한 노섭의 평가는 유보적이다. 그들이 준 술을 마시고 정신을 잃었기 때문에 정황상 그들의 악행이 분명해 보임에도 불구하고, 노섭은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보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그 무엇도 단정하지 않았다. 이 정도로 노섭은 자신의 이야기를 정확성과 사실성에 입각하여 기록하고자 하였다. 그러니 이 책은 사실 그 자체라고 믿어도 무방할 것 같다.
노섭의 이야기를 받아 적은 데이비드 윌슨의 필체가 객관적이고 담담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러번 읽기를 멈추고 숨을 골라야만 했다. 그러므로 인간에 대한 분노와 실망 그리고 역시 같은 이유로 생겨나는 인간에 대한 희망으로 여러번 가슴이 무너질 각오를 하기 전까지는 이 책을 함부로 펼치지 마시라.
특히, 인간 본성에 대한 솔로몬의 깊이 있는 성찰과 견딜 수 없는 고통의 순간조차도 애써 담담하게 표현하는 그의 인간성 앞에서는 그 누구라도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두려움과 무지 속에서 자란 노예들은 백인의 눈길 앞에서 자신들이 얼마나 비굴하게 움츠려드는지 자각조차 못한다. -p68
태양이 그토록 불타오르듯 내리쬐고 또 그토록 느리게 움직이는 것은 그날 생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머릿속은 셀 수 없는 생각으로 넘쳐나지만, 다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온 종일 생각해 봤지만, 단 한번도 주인이 먹여주고 입혀주고 보살펴주고 매질도 하는 남부 노예의 삶이 북부에서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유색인종의 삶보다 더 행복하다는 결론을 얻지 못했다고만 말해두겠다. -113
피를 빨아먹는 악마같은 주인의 노예로 살아가면서 극한의 공포를 견뎌내는 것은 몹시 힘들었다. 나는 신께서 내가 꼭 살아야 할 이유이기도 한 사랑하는 내 아이들을 주시기 전에 왜 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p117~118
바유뵈프의 또 다른 농장주 짐 번스는 여자들만 노예로 부렸다. 그는 잔인성을 뽐냈으며, 근방에서는 엡스보다 더 철저하고 기운 넘치는 사람으로 평판이 나 있었다. '자신도 짐승인 주제에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짐승들에 대한 약간의 자비심도 없이 어리석게도 자신의 재산을 만들어 주는 바로 그 힘을 향해 채찍질을 해댔다. -p165
오만과 질투 그리고 욕심과 분노로 가득 찬 복수극으로 인해 주인 엡스 내외의 집에는 다툼과 소란이 끊이질 않았다. 그리고 이 모든 가정불화의 불똥은 순진하고 마음씨 착한 노예 팻시가 받아야만 했다. -p178
남부에 존재하는 잔혹한 형태의 노예제 역시 남부인들의 성정과 기질을 난폭하게 만드는데 일조했을 것이다. 날마다 인간이 고통받는 모습, 즉 고통에 찬 노예들의 비명 소리, 무자비한 채찍질을 당하는 노예의 몸부림, 개한테 잔혹하게 물리고 뜯기는 모습, 사람이 죽어도 신경조차 쓰지 않으며 관을 짜거나 수의도 입히지 않고 그냥 묻어버리는 일 등을 목격하는 이들로서는 생명의 고귀함에 무뎌지고 잔혹해지는 게 당연한지도 모른다. -p182
그러나 모든 노예주인이 이처럼 잔인한 것은 아니었다. 비록 드물긴 했지만...
노섭 역시 이 점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첫번째 주인인 윌리엄 포드 역시 자비심 넘치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윌리엄 포드는 재정적 어려움에 처하는 바람에 1년 반만에 노섭을 티비츠에게 넘겨야만 했다. 티비츠를 거쳐 세번째이자 마지막 주인인 엡스밑에서 노섭은 10여년을 노예로 살아야만 했다. 물론, 그도 도망을 치려고 했고 폭동을 일으키려고도 했으며 가족과 지인에게 편지를 부치려고 무던히도 노력했지만 번번히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베스라는 백인을 만나기 전까지는...
노섭은 베스라는 인물에 대해서 '그는 미혼, 정확히 말하자면 독신주의의 노총각이었고 가족이나 왕래하는 친척도 없는 혈혈단신이었다.'라고만 적어놓았다. 그러나 그는 베스가 엡스와 나눈 대화를 정확하게 기억했다가 기록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베스가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있도록 도와준다.
"법이란 것도 가변적이며 불변의 진리는 아닙니다. 법이 허용한다면 아무거나 해도 되나요? 피부색이 다르다고 해서 영혼의 색깔마저 달라야 합니까? 하! 이 노예제도는 잔인할 뿐만 아니라 정당성마저 없는 제도입니다. 엡스씨는 죽어도 노예를 포기하시지 못하겠지만, 저는 루이지애나의 제일 좋은 농장을 준다고 해도 노예를 사지는 않을 겁니다."
-솔로몬 노섭, 『노예 12년』p239~241 中-
'침묵은 동조'라고 했던가.
악은 '어쩔 수 없다.'라는 식으로 자포자기하는 다수의 침묵을 양식 삼아 존속된다. 베스는 백인이었지만 노예제도의 부당성을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용감하게 표현한 인물이다.
역사는, 인류 사회는 이런 인물들에 의해서 조금씩 진보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노섭이 뉴올리언스로 오는 배 안에서 보낸 편지가 가족에게 정확히 전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노섭의 정확한 위치와 주소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를 구출할 수 없었다. 그 이후 배에서 내린 노섭은 자신의 이름이 노예 상인 버치의 동업자 시어필러스 프리먼에 의해 '플렛'으로 바뀌었음을 알게 된다. 그뒤, 노섭은 우연히 농장으로 목수일을 하러 온 베스를 만나 그를 통해 고향의 지인들에게 편지를 부쳐 구출될 때까지 플렛으로 불리운다. 이렇게 해서 가족들이 그를 수소문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마저 사라져 버린 것이다.
모든 노예들이 태어날때부터 전부 노예였던 건 아닐 것이다. 솔로몬 노섭처럼 분명 자유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예로 둔갑(?)된 노예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모두 노섭처럼 구출될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노섭은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바이올린으로 다져진 올바른 성정과 곧은 마음이 특별히 그를 구원했을지도 모른다.
바이올린 연주 일자리를 주겠다는 꾐에 속아 노예로 팔린 노섭이건만, 단 한번도 바이올린이나 바이올린을 연주할 줄 알았던 사실을 원망한 적이 없다는 점이야말로 이와 같은 그의 성품을 잘 설명해준다.그는 오히려 노예 생활 중간중간 바이올린으로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자신 또한 치유받았노라고 고백한다.
바이올린은 내 동반자였다. 내가 기쁠 때는 나와 함께 기쁨의 노래를 불러주고, 슬플 때는 부드러운 위로의 노래를 불러준 내 친구, 간혹 불행한 운명에 대한 걱정으로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바이올린 연주가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주곤 했다. 우리 노예들에게 한두 시간의 휴식이 허락되는 안식일이면 나는 바이올린을 들고 늪지대 근처의 조용한 곳으로 가 바이올린이 들려주는 상냥하고 아름다운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또 바이올린은 내가 이름을 날리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연주가 아니었다면 나에 대해 잘 몰랐을 이들과도 친구가 될 수 있었고, 해마다 열리는 크리스마스 연회에서 가장 상석에 앉을 수 있었던 것도 악기 연주 실력 덕분이었다.
-솔로몬 노섭, 『노예 12년』p192~193 中-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노예가 정말 물건처럼 매매,대여,상속되며 다른 농장에서 일하게 한 후 주인이 일당을 챙긴다는 사실과 주인이 써준 통행증 없이는 이동의 자유도 없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글을 읽거나 쓸 수 없었으며, 노예가 아닌 자유인라고 주장하는 노예는 재산을 잃을 것을 두려워한 주인에 의해서 더 외진 곳으로 재빨리 매매된다는 것과 도망친 노예를 추적하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통행증 없는 흑인 노예를 발견한 백인은 그 노예를 소유하거나 판매할 수 있었고, 원래 주인이 되찾아오기 위해선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점도 알게 된다.
마치 그물망과 같아서 한번 노예의 삶에 빠지면 북부의 자유인일지라도 천운이 닿지 않는 한 노예의 삶에서 벗어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한편,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노섭은 자신을 노예로 만들어 팔아버린 노예 상인을 법정에 고소하지만 그들은 무죄로 풀려나고 만다. 이후, 그는 이 책을 출판하고 노예제의 참상을 고발하는 연설과 강연활동을 활발하게 펼치던 중 행방이 묘연해졌으며 사망 연도는 1863~1875년로 추정되고 사망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