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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의 추리 책방
홍윤(물만두) 지음 / 바다출판사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뒤늦게 인터넷에 카페를 열고 개인 블로그를 만들었을 무렵이었다.
카페와 개인 블로그에 올린 컨텐츠를 찾기 위해 나는 그 어느때보다도 책읽기에 악착같이 매달렸더랬다. 그러던 무렵 미야베 미유키라는 일본 추리소설작가를 알게 되면서 서서히 추리소설 세계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다. 추리소설장르는 한번 빠지면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는 '늪'과 같은 마력이 있는지라 나 역시 지난 겨울 한철을 오로지 추리소설만 읽으면서 보낸 것 같다.
그리고 계절이 두 번이나 바뀐 지금.
추리소설에 대한 흥미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읽으면 읽을수록 알면 알수록 오히려 더 커져만 갔다.
그러다가 인터넷을 통해 물만두를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그녀를 알게 된 건 이미 그녀가 고인이 된 뒤인 것이다. 그녀를 애도하는 글들이 넘쳐나는 물만두의 알라딘 서재를 방문했을 때는 묘한 감상에 빠지기 보다는 방대한 리뷰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손쓸새도 없이 삐져나온 건 다름아닌 '질투심'이었다.
강산도 변한다는 십년동안 추리소설 한 장르만을 꾸준히 읽고 리뷰를 올린 그녀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그러던 참에 그녀가 올린 1388권의 리뷰 중 200여편을 추려 만든 <물만두의 추리책방>과 그녀의 비공개 블로그 일기를 엮어 만든 <별다섯인생>이라는 수필집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물론, 물만두의 블로그에 다 공개되어 있는 내용들이지만 아무렴이나 인터넷보다는 종이책으로 읽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고 정감이 있어 좋다.
그렇게 서점을 들락거리며 한두장씩 읽게 된 그녀의 수필집을 통해 물만두의 본명이 홍윤이라는 것과 불치병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만순이와 만돌이로 불렸던 여동생과 남동생이 있었다는 사실과 삼남매의 우정과 사랑이 얼마나 끈끈했는지도 '덤'으로 알게 되었다.
2012년 어느 봄같지 않은 봄날.
평소 즐겨 찾는 도서관의 신간코너에서 <물만두의 추리책방>이 눈에 띄자마자 고민할 것도 없이 대출하고 또 대출기한을 연장하여 최대한 오래(?) 갖고 있고자 한 것은 어쩌면 이런 사전 정보(?)에 따른 지극히 정상적인 처사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지난 3주동안 평일 오후 한가한 시간을 이용하여 물만두의 추리책방과 도서관 홈페이지를 오고가면서 한국추리소설들과 일본 그리고 서구의 추리소설들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리뷰를 읽고 마음이 동하면 도서관 홈페이지의 자료검색을 통해 바로 검색을 하고 도서대출목록에 하나 하나 기록을 해나갔다. 언뜻 보기에도 다 읽으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필요해 보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대출목록은 점점 늘어만 갔다. 그만큼 그녀의 리뷰는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갖고 있었다. 출판사측에서 그녀를 VIP로 대우할 만했다.
물만두는 2000년 3월2일 처음 글을 올리기 시작해서 2010년 11월17일 기리노 나쓰오의 <메타볼라>까지 무려 1388권을 추리소설을 읽고 리뷰를 달았다. 그녀가 블로그에 공개한 글은 모두 1833편이고 비공개 글까지 포함하면 무려 1만2334편이라고 하니 정말 엄청난 양이 아닐 수 없다.
일단, 그녀를 통해서 한국의 추리소설작가인 류성희를 알게 된 점이 그 무엇보다도 기뻤다. 그리고 애거서 크리스티의 명탐정 푸아로 베스트10과 미스마플 베스트5, 엘러리 퀸 베스트5 그리고 뤼팽전집 순서대로 다시 읽기 등은 모름지기 서양 추리소설의 계보를 가늠할 수 있는 소중한 방향타가 되어 줄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물만두의 추리책방을 통해 히치콕 감독의 영화 <사이코>가 사실은 로버트 블록이 쓴 추리소설 <사이코>를 원작으로 만들어졌다는 놀라운 정보까지 알게 되었다.
끝으로, 부끄러운 말이지만 애거서 크리스티의 명작으로 꼽히는 <그리고 아무말도 없었다>를 읽고는 남몰래(?) 실망을 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 물만두의 추리책방을 읽고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들을 다시 한번 읽어 봐야겠다는 욕망(?)이 샘솟았다.
그러나 그 많고 많은 작품들을 어떻게 다 읽을 수 있겠는가. 그 중에서 몇 편을 골라 읽는 수밖에...
하여, 나중에 추리소설 읽기에 참고하기 위해 물만두가 추천한 책들을 그녀의 짧은 리뷰평과 함께 적어놓는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명탐정 푸아로 베스트10]
커튼: 푸아로의 마지막을 접할 수 있다는 의의가 있는 작품이다. 엘러리 퀸의 드루리 시리즈 마지막 편인 <최후의 비극>도 이 책과 유사한 결말로 끝나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크리스마스 살인: 작가의 장기인 밀실 살인에 시간을 교묘하게 사용한 이중 트릭이 빛나는 작품이다. 체스터튼도 유사한 소재를 다룬 단편에 <최악의 범죄>라는 제목을 붙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이 행할 수 있는 최악의 범죄를 그린다.
오리엔트 특급살인: 달리는 열차 안에서 한 남자가 죽는다. 같은 칸에 탄 13명의 승객 모두가 용의자다. 그러나 이 작품은 살인자를 찾는 것이 아니라 살인에 대한 이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연에 따라서는 살인도 용서될 수 있기 때문이다.
ABC살인사건: 애거서 크리스티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푸아로가 등장하는 작품들뿐 아니라 작가의 작품 전체에서도 수작으로 꼽힌다. 살인자의 놀라운 이중 트릭 앞에서 푸아로가 드물게 인간미를 풍긴다.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 작가의 처녀작이자 명탐정 푸아로가 처음 등장한다는 점에서 추리소설 역사상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이다. 유독 로맨스를 강조하고 돈과 가족 간의 불화를 즐겨 다룬 작가의 성향을 예견할 수있다.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 평론가들 사이에서 페어플레이 논쟁을 가져오며 가장 말이 많았다.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더 재미있다고 생각한 작품이다. 극중 화자, 피해자, 경찰, 최초 목격자까지 모든 사람이 범인이 될 수 있으니 어떤 트릭에도 속지 말기를.
백주의 악마: 푸아로는 휴가를 가서도 범죄를 만난다. 여배우가 살해당하고 심증이 가는 용의자가 너무 많다. 적어도 여자 세 명과 남자 두명, 이 중에 분명히 범인이 있다. 명탐정 푸아로보다 먼저 찾아보시길.
구름속의 죽음: 푸아로 앞에서 버젓이 살인이 일어난다. 이럴 수가.
엔드하우스의 비극: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 중 푸아로가 가장 바보같이 나오는 작품이다. 끝가지 푸아로를 속이려던 범인에게 더 감탄했다. 숨겨진 명작이라고나 할까. 아기자기하면서 재미있는 작품이다.
3막의 비극: 자신보다 뛰어난 자가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살인자가 결국 자만심에 파멸하는 내용이다. 푸아로는 죽을 뻔하다 살아난다. 운 좋은 푸아로.
[애거서 크리스티의 미스마플 베트스5]
예고살인: 조용한 마을의 신문에 살인을 예고하는 광고가 실린다.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둘 살해당하고 미스 마플은 여기저기 자료를 수집하러 다닌다. 아기자기한 재미를 주는 미스 마플만의 매력이 나타난다는 점에서 강력 추천한다.
화요일 클럽의 살인: 미스 마플의 지혜와 매력을 한층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미스 마플이 화요일마다 사람들과 모여 한 사람씩 들려주는 풀기 어려운 13가지 사건을 풀어 가는 이야기다. 미스 마플에 대해 이 작품만큼 알 수 있는 작품은 없을 것이다.
목사관 살인사건: 미스 마플이 처음 등장한 작품이다. 미스 마플이 등장하는 작품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한정된 장소, 한정된 공간, 한정된 인물이다. 이런 구성은 독자에게 안정감을 주고 무엇보다 추리라는 한 점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든다. 특히 여성 독자들은 이런 미스 마플이 등장하는 작품을 좋아할 것이다. 인간적인 감성을 자극하는 매력적인 작품이고, 매력적인 탐정이다.
패딩턴 발 4시50분: 개인적으로 미스 마플의 매력에 푹 빠진,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기차에서 살인을 모격하고 시체를 찾아 나선 미스 마플의 끈기에 감탄할 뿐이다. 너무 재밌어서 두 말이 필요 없는 작품이다.
복수의 여신: <카리브 해의 비밀>에서 만난 백만장자 노인의 의로로 그가 죽은 뒤 그의 아들이 저지른 살인 사건의 진실을 캐기 위해 미스 마플이 고용된다. 의뢰인의 아들이 죽인 소녀와 연관된 사람들이 살해당하면서 서서히 진실이 드러난다.
[엘러리 퀸 베스트5]
Y의 비극: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윌리엄 아이리시의 <환상의 여인>과 함께 세계 3대 추리소설로 꼽히는 대작이다. 나이 들고 귀가 어두운 은퇴한 연극배우 드루리 레인이 탐정으로 나온다. 엘러리 퀸의 비극 시리즈 중 이 작품을 최고로 꼽는 이유는 아주 독창적인 추리 기법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목격자가 3중 장애 즉 청각, 시각, 언어장애가 있어서 용의자를 잡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드루리 레인은 사건을 해결한다.
중간지대: 지저분한 서스펜스, 스릴, 호러나 엽기적인 요소는 찾아볼 수 없고 완벽한 추리의 세계로 독자를 이끈다. 몇 가지 단서로 범인을 찾기 위해 몇 시간 동안 독자를 몰두시킨다는 점에서 진정한 정통 본격 추리소설의 묘미를 보여 준다. 패트릭 퀸티의 <두 아내를 가진 남자>가 연상되기도 한다.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 엘러리 퀸의 국명 시리즈 중 가장 걸작이라고 생각하는 작품이다. 1930년대는 엘러리 퀸의 전성기였고, 그때 쓴 작품 중에서도 비극 시리즈와 이 작품, 그리고 <중간 지대>를 베스트로 꼽고 싶다. 많은 작가들이 목 없는 시체들을 다뤘지만 엘러리 퀸만큼 근사하고 창조적인 솜씨를 보인 절묘한 작가는 없었다. 엘러리 퀸의 작품 중 한 편을 추천하라면 고르고 싶을 정도의 작품이다.
일곱 번의 살인 사건: 라이츠빌 시리즈는 트릭에 중점을 둔 엘러리 퀸의 국명 시리즈나 XYZ시리즈와는 달리 인간의 심리에 초점을 맞춘 드문 작품이다. 그래서 이 시리즈가 특히 눈에 띄는지도 모르겠다. 시리즈 중에서도 이 작품이 제일 괜찮다.
엘러리 퀸의 새로운 모험: 다양함을 맛볼 수 있는 엘러리 퀸의 단편 모음집이다. 집이 사라지는 트릭을 사용한 <신의 등불>은 그의 단편 중 최고로 꼽고 싶은 작품이다. 밀실 트릭, 알리바이 조작에 의한 트릭, 쌍둥이 트릭 등 추리소설에는 몇 가지 트릭이 사용된다. 쌍둥이 트릭이 사용된 작품으로는 아이라 레빈의 <죽음의 키스>가 있는데 <신의 등불>에서 사용한 쌍둥이 트릭을 똑같은 집과 똑같은 여자를 이용한다. 퀸은 초자연적인 현상, 집이 사라진 것을 목격하고 경악하지만 탐정은 언제나 과학적인 추리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