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 지음 / 난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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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고아가 되고 있거나

이미 고아입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   


 


 Dear My Friend:



 

나는 공적인 관계가 아닌 사적인 만남의 경우에는 헤어지고 돌아가는 길에 습관적으로 그 만남의 의미를 되짚어보곤 해.

굳이 만나지 않아도 될 만남이었거나 만나지 않은 것만 못한 만남의 경우에는 서로 알고 지낸 시간이 얼마나 오래되었든 한때 얼마나 친밀한 사이였든 상관없이 그 인연은 이미 수명이 다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인간 관계는 천칭 저울과 같아서 양쪽의 무게가 똑같지 않으면 결국 무너지고 말지.


네 마음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기에 나에게 이번 만남은 일종의 '모험'이었지만, 더이상 미룰 수도 미루고 싶지도 않았어. 

근데 참 신기했던 건, 아주 오랜만에 만났음에도불구하고 어색하거나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이야. 

그만큼 마음 밖에선 멀어도 마음 속에선 가까운 사이였기 때문일까?


 

난 어떤 말도 다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어. 물론, 오랫동안 물음표로 남아 있는 것들도 있었지만 내가 직접 물어보지는 않겠다고 다짐도 했었지. 어찌되었든 심적으로 힘든 상황에 있는 너에게 또다른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런데 오히려 위로를 해줘야 했던 내가, 너의 미소에 위로받았고 너의 말들에 공감했으며 너의 진심에 감동했단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좀더 일찍 만날 걸...'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시간은 늘 우리의 기대를 배신하면서 우리의 후회를 불러일으키는 법이지. 

'지금이 아니었다면 안 되었을 거라는 건' 그 누구보다도 우리가 잘 알고 있잖니.


 

미안하다는 말 대신 고맙다는 말을 해줘서 정말 고마웠어.


헤어져선 안 될 사람들이 헤어지는 가장 큰 이유가 뭔지 아니? 그건 서로에 대한 미움도 원망도 아닌 미안함 때문이래.

너무 미안해서, 미안하다는 말조차 차마 할 수 없으면, 결국 그 사람 곁을 떠날 수밖에 없으니까...


참!
선물로 전해준 박준의 산문집을 오늘 다 읽었어.

시인의 에세이는 늘 시(詩)같아서, 시시(詩詩)하게 읽어야 제맛이라지만, 나는 편지처럼 읽었단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이 책을 다 읽고나서,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고 싶어졌어.  

 

시인처럼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보기도 하고...

미처 말이 되어보지 못한 소리들이 넋두리가 되어 가슴 속을 맴돌고...

 

 

네가 어느 문장에 밑줄을 그었을지... 어디 부분에서 눈시울을 붉혔을지... 알 것 같더구나.


 


관계가 원만할 때는 내가 그 사람을 얼마나 생각하고 그 사람이 나를 얼마나 생각하는지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한 사람이 부족하면 남은 한 사람이 채우면 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계가 끝나고 나면 그간 서로 나누었던 마음의 크기와 온도 같은 것을 가늠해보게 된다. 이때 우리는 서운함이나 후회같은 감정을 앓는다. 특히 서로의 의지와 상관없이 인연의 끝을 맞이한 것이라면 그때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후회될 만큼 커다란 마음의 통증을 경험하게 된다. -45쪽


상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자책과 후회로 스스로의 마음을 더 괴롭게 할 때, 속은 내가 속인 나를 용서할 때, 가난이나 모자람 같은 것을 꾸미지 않고 드러내되 부끄러워하지 않을 때. 그제야 나는 나를 마음에 들어 할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이라 믿는다. -57쪽


사람을 좋아하는 일이 꼭 울음처럼 여겨질 때가 많았다. 일부러 시작할 수도 없고 그치려 해도 잘 그쳐지지 않는, 흐르고 흘러가다 툭툭 떨어지기도 하며. -70쪽


사랑에 대해 내리는 정의들은 너무나 다양하며 그래서 모두 틀리기도 모두 맞기도 하다. 다만 세상에 수많은 사람이 수많은 사랑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언제나 참일 것이다.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여전히 이 세상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다면 그 이유도 바로 이것일 것이다. -95쪽


원래 삶은 마음처럼 되는 것이 아니겠더라고요. 다만 점점 내 마음에 들어가는 것이겠지요. 나이 먹는 일은 생각보다 괜찮아요. -148쪽


나는 아버지에게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오늘은 운전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아버지는 "그 정도로 몸이 안 좋다고 운전을 안 할 수 있나. 아프다고 해서 안 해도 되는 일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아." 하며 웃었다. 나는 아버지의 웃음에 서운하고 야속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169쪽



 

물론, 너는 이미 '감'을 잡았겠지만 내 글을 읽을 때엔 반드시 알아둬야 할 게 몇 가지 있단다.

 


 

첫째는, 내가 쓴 책 리뷰들은 책 내용과는 별반 상관이 없다는 점이야. 그럼에도불구하고 책리뷰란에 포스팅을 하는 건, 그 책을 읽고 나서 쓴 글이기 때문이지. 만약 내가 그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결코 쓰여질리 없는 글들이니까...

 


 

둘째는, 나는 정말 좋아하면 '침묵'하는 버릇이 있단다. 

기록은 망각을 막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망각을 불러오는 핑계가 되기도 하지. 너무 좋아하는 것들은 표현되어질 수 없고 표현되어져서도 안된다고 생각해. 물론 망각되어져서도 안되겠지. 그렇기 때문에 기록되지 않은 그 모든 사랑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되새기고 되새겨져서 마음의 무늬가 되는 거란다. 


 

 

셋째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들과 해야할 말들은 리뷰에 다 담겨 있다는 점이야.

나를 가장 잘 이해하는 방법은 내 말들보다는 내 글들 속에서 찾아야 돼. 말은 한번 하고, 한번 들으면 끝이지만, 글은 여러번 반복해서 씌여지고, 읽혀질 수 있으며,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말보다 훨씬 더 정직할 수밖에 없지.



 

그런 의미에서 내가 그날 '커피 홀릭'이라고 한 말에는 약간의 해명(?)이 필요할 것 같구나.

나는 커피숍에 가면 항상 커피를 주문하거든. 그러니까 사람들이 '너는 늘 커피만 마신다'고 말해서, 나도 그만 무의식적으로 '나는 커피 홀릭'이라고 인식해버렸던 것 같아.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평소 나는 차를 더 많이 마시거든. 그래서 어쩌다 커피숍을 가게 되면 차 대신 다른 음료 즉 커피를 주문하게 되는 거야. 너를 만난 그날에도 오전에 집에서 한잔 그리고 너와 만나서 두 잔, 총 석잔을 마셨을 뿐이건만 '불면증'에 시달렸단다. 


 

사실, 커피 석잔은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많은 양이라고 할 수는 없지. 어쩌면 그날밤 내가 잠들지 못했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을지도 몰라...


 

이제, 이 글의 본론이자 나의 진심을 말해야 할 것 같구나.


사실, 그날 눈물을 흘린 건 너만이 아니었단다.

너와 서둘러 헤어졌던 건 시간이 늦어서가 아니라 조금만 더 있으면 나도 곧 눈물을 보일 것만 같아서였어. 수술한지 며칠 안되서 오래 걸을 수 없다는 너를 배웅하고, 지하철역까지 걸어와선 화장실에 들려 손을 씻고 너에게 문자를 보냈더랬지. 그리고 전철 안에서 이 책을 읽기 위해 펼쳐들었다가, 그제서야 "**문고에는 이 책이 없더라고요." 라는 너의 한마디가 떠올랐지...


 

그날 너는, 내가 너를 배웅하고 혼자 걸어왔던 그 길을 두번 왕복했던 건 아니었을까?

지하철역에서 내려 약속장소인 **문고까지 걸어왔다가 이 책이 없다고하니까 다시 00문고까지 걸어가서 사온 거였어. 약속시간에 딱 1분 늦게 도착했으니 늦지 않으려고 서둘렀을 테고... 건강한 성인의 걸음으로도 반시간은 족히 걸리는 그 거리를 수술한지 얼마 안 된 몸으로 걸었던 거였어, 너는...


 

 

(울컥)


 

 

'이럴 줄 알았더라면, 아까 함께 울 걸 그랬어...'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러니까....



친구야!

앞으로는, 우리 혼자 울지 말고 함께 울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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