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면술사 : 마크 트웨인 단편집 인류 천재들의 지혜 시리즈 3
마크 트웨인 지음, 신혜연 옮김 / 이소노미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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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음의 방식은 크게 두 가지이다. 예상하지 못한 언행과 상황을 제시하거나, 예상한 상황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하거나. 신기하게도 이 방식은 웃음의 정반대에 놓인 공포의 전달 방법과 동일하다. 현재 내가 읽고 있는 세 명의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과 잭 런던, 그리고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는 각자의 장단점이 뚜렷하다. 그중 마크 트웨인은 웃음에 가장 능통하다. 그가 한 말과 쓴 글들은 언어와 시대의 장벽을 뚫고 독자인 나에게 큰 웃음을 준다. 가벼운 웃음, 비웃음이 아니라 정말 책을 읽고 낄낄거리는 웃음 말이다. 그것이 이야기의 본질 아닌가? 


 누군가 나에게 왜 그렇게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영어를 공부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항상 주저없이 '좋아서' 혹은 '재미 있으니까'라고 대답한다. 다른 이유가 또 있을까? 있다고 해도 처음 대답을 능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수업 시간에 분석의 대상으로 접근하다 보니 나는 마크 트웨인이 미국 최고의 유머 작가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최면술사』는 편하게 볼 수 있는 책이다. 대부분 그의 자서전에서 추려낸 글로 이루어져 있으며 편집자의 의도가 담긴 두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감기 치료법>과 <우울증 치료제>, 두 단편소설을 제외하면 제목이 없는 글들에 편집자들이 제목을 붙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러한 시도들에 대해 나는 만족한다. 대부분의 가제들이 핵심을 짚었다. 

 

 마크 트웨인이 주로 사용하는 웃음의 방식은 비틀기가 아닐까 싶다. 독자가 당연히 이것이라 예상하면, 그는 재치있게 거기서 도망친다. 허를 찔린 우리는 헛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곧 복장을 갈아입은 동명의 신사가 정곡을 찌르는 말을 남기면 박장대소를 터뜨린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아 참, 지금까지는 소설이었답니다. 물론 사실도 들어있습니다." 마치 실제로 있었던 일을 들려주는 듯이 생생하게 이야기를 전한 후, 그것이 허구였음을 밝히는 부분, 그러나 사실도 들어있다고 귀띔하며 마무리를 짓는 순간, 우리의 머릿속에서는 그가 들려준 일화가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리고 그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가 함정임을 알아채면 무릎을 탁 치는 것이다. 


 소설에서도 이러한 재치는 빛난다. 너무나 유명한 「뜀뛰는 개구리」는 고사하고, 「이상하고 끔찍한 중세 모험담(원제를 번역해 보았다)」의 마무리는 이렇다. 아버지 때문에 평생 여자임을 숨기고 공작이 된 콘래드는 자신에게 구애하는 여인 콘스탄스를 거절했고, 콘스탄스는 자신이 콘래드의 아이를 배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놓인 콘래드와 그의 아버지는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그리고 저자는 이렇게 쓴다. "사실, 주인공을 이런 아슬아슬한 상황에 처하게 해놓기는 했는데 이 상황에서 빠져나오게 할 방법을 모르겠다. 그러니 나는 그만 여기서 손을 떼겠다." 세상에, 완결되지 않은, 아니 완결될 수 없는 이야기라니! 얼마나 애간장이 타는가? 그러나 이야기가 원래 그렇다. 끝나는 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해피엔딩이든, 새드엔딩이든, 아니면 열린 결말이든 이야기는 끝내 도달하는 지점이 있다. 마크 트웨인은 그것을 살짝 비틀었을 뿐이다. 어차피 허구의 이야기인데, 그들이 어떻게 되든 무슨 소용이람? 


 마크 트웨인을 보며 내가 읽는 책과 글을 돌아본다. 그래, 원래 문학은 재미를 추구했지.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사람들의 호응을 받아 계속된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문학은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하면 그야말로 이상하고 끔찍해진다. 근래에 내가 쓴 글이 지나치게 의미에 중점을 두지 않았나 싶다. 의미는 아름답고 희망적이지만, 흥미롭지는 않다. 의미가 재미를 넘어서서는 안 된다. 원래 문학은 그러했으니, 유머가 담긴 소설이 필요한 순간이다. 세상에 이로운 주제, 고운 우리말로 된 표현이 담겼다 한들, 재치가 없다면 그 책에 생명력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기이한 일이죠. 최면술사의 공연이 모두 끝나고 나서 마을에 최면술을 믿지 않는 사람은 딱 한 명뿐이었는데, 그게 바로 나였습니다. - P35

내가 쓴 원고를 아내가 검토할 때면 아이들은 항상 옆에서 돕곤 했습니다. 아내가 농가 현관에 앉아 손에 연필을 쥐고 큰소리로 읽으면, 아이들은 그 오른쪽에 앉아서 잔뜩 경계하는 눈초리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지요. 왜냐하면 특별히 마음에 드는 구절을 우연히 발견할 때마다 엄마가 삭제해버릴 것이 뻔했기 때문이에요. - P76

그들이 직접 출판사 주주가 되어 저작권과 출판사업에 대해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는 날이 오지 않느 한 그들이나 그 후임자들이나 계속 이 상태일 겁니다. 그런데 현 지질연대가 지나기 전에 그런 날이 과연 올까요?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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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복복서가 x 김영하 소설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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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 어땠어?

 O: 뭐가?

 V: 김영하가 쓴 살인자의 기억법』. 한 시간 만에 읽었다며.

 O: 모르겠어. 정리가 안 돼. 나는 당연히 박주태가 위험한 인물이고, 은희가 연쇄살인마의 딸이라고 생각했어. 지금 생각해 보면 곳곳에 이상한 점들이 있었는데, 왜 그걸 우습게 여겼을까?

 V: 그럼 너는 박주태와 경찰들이 하는 말을 믿어?

 O: 적어도 알츠하이머에 걸린 노인이 하는 말보다는 믿을 만해. 게다가 이 사람은 자기가 쓴 것도 기억하지 못하잖아. 이 소설은 김병수가 쓴 기록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어. 중간에 자기가 죽었을 때 은희가 보게 될 거라는 서술도 나오잖아. 독자를 가정하고 적은 거지.

 V: 아무 것도 모르는 노인한테 죄를 덮어 씌우는 거라면? 어쩌면 김병수는 시 강의 시간에 상상의 날개를 펼쳤는지도 몰라. 대나무숲에서 시체들이 발견되었지만, 살인의 명확한 증거도 없고 말이야.

 O: 그럼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게 뭔데? 작가가 말하고 싶은 건 뭐야?

 V: 적어도 무서운 건 악이 아니라 시간이다라거나 죄책감은 본질적으로 약한 감정이다따위의 따분한 말을 전달하려는 건 아닐 테지. 애초에 첫 문장에 사람을 죽였다는 문장도 독자들의 시선을 끄는 동시에 감정이입을 막으려는 장치였으니까.

 O: 변함없이 경찰은 무능하다고 비웃었지만, 그들은 언제나 그를 주시하고 있었구나. 그럼 최근에 일어난 연쇄살인과 박주태의 차에 묻은 피, 그리고 은희의 아빠라는 호칭은 어떻게 설명하지? 은희는 어쩌다 살해당한 거야?

 V: 우습지. 가장 핵심적인 기록은 누락되었다는 게. 결국 김병수는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해. 아니, 이 사람한테는 기록이 곧 기억이니까, 자신한테 필요한 과거만 적어놓는 셈이지. 나머지는 모두 혼돈, 또는 공으로 흘러갈 뿐이고.

 O: 뭐야, 그럼 우리한테는 알 권리가 없는 거야?

 V: 김영하가 후기에 그렇게 썼잖아. 자기는 어떤 세계를 방문한 여행자에 불과하다고. 작가한테 허용된 기록의 영역에는 한계가 있어. 어차피 그 세계에도 우리 세계와 비슷한 원칙이 적용되니까 나머지는 독자의 몫이야.

 O: 어떤 원칙?

 V: 사람은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특히, 미지의 영역에 대해.

 O: 동의하기 어려운데. 사람은 모르는 것에 당혹감을 표현하거나 도망치잖아.

 V: 너는 논란이 되는 주제를 좋아하니?

 O: , 열린 결말이나 음모론 같은 것들?

 V: 그렇지. 의견이 갈려서 타협되지 않는 주제들.

 O: 딱히. 너는?

 V: 나는 기꺼이 한쪽 입장을 택해. 동시에 다른 입장도 존중하지. 사람은 미지의 영역에 공포를 느끼는 동시에 맹목적인 확신을 품거든. 그곳에서는 인간의 믿음이 곧 근거가 돼. 사람이 가진 가장 약한 믿음은, 자신의 믿음이 확실하지 않다는 거야. 진실을 말해줘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아. 김병수가 마침내 혼돈에게 주시당하는 순간이 이 소설의 결말을 장식하는 것처럼.

 O: 나는 연쇄살인마의 생각과 대부분 달랐어. 특히 시간에 대한 인식은 정반대였지. “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가상의 접점일 뿐, 그 자체로는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했잖아. 나는 오히려 인간은 현재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생각해. 과거와 미래는 현재에 잠시 개입하지만, 결국 인간은 현재로 돌아오지.

 V: 어쩌면 치매 환자뿐만 아니라 사람은 언제나 적절하지 못한 곳을 떠다니는 존재라는 생각도 들어. 그래도 김병수의 통찰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지는 순간도 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 이거거든. “인간을 틀 몇 개로 재단하면서 평생을 사는 바보들이 있다. 편리하기는 하겠지만 좀 위험하다.” 자기 눈 안에 있는 대들보를 못 보고 남들을 평가하는 행동 자체가 우스운 일이지. 어떤 면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기도 하고.

 O: 어찌 됐든 김병수가 연쇄살인마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살인자의 기억법은 그럴 듯한 가르침을 전해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자주 했던 일, 또는 몰입했던 일로 형성된다는 걸. 처음에 아버지를 죽였을 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필요에 의해 정당화되지만, 그다음 살인부터는 순수한 몰입감이었잖아. 이제 김병수에게 삶의 고민이란 사람을 죽이거나 살리거나, 둘 중 하나뿐이었어.

 V: 초반부에 재미 있는 에피소드가 있었잖아. 「신부라는 시를 첫날밤에 신부를 살해하고 도주한 신랑 이야기로 읽었다면서 그걸 어떻게 달리 읽겠는가?”라고 따지듯이 쓴 장면. 누가 누구한테 이해를 바라는 거지? 연쇄살인마 주제에 독자한테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고 있어.

 O: 이해도 안 되고, 용서도 안 돼.

 V: 김병수의 시각을 떼어놓고 이 소설을 보면 조금 다른 점도 발견돼. 연쇄살인마 자리에 주어가 없으면 우리는 미지의 존재에 공포를 느끼지. 하지만 그 존재가 주변의 도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치매 환자임을 아는 순간, 공포가 아닌 다른 감정이 그 자리를 채워. 사람에 대한 감정은 꽉 찬 그릇과도 같은 거야. 내용물이 대체될 수는 있어도, 비워질 수는 없어.

 O: 박주태의 시각으로는 치밀한 수사물이고, 은희 입장에서는 비극이겠지.

 V: 개의 입장에서는?

 O: 그것까지 알아야 하나?

 V: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데, 무시할 수는 없지.

 O: 혼란, 무수한 혼란.

 

 N: 그래서 김병수는 마음의 안식을 얻었나?

 V: 감옥에 갇혔다면, 그랬겠지.

 N: 내가 보기에 그한테는 공에 이르는 것이 진정한 휴식인 것 같은데.

 V: 죽음 말인가?

 N: 죽음이 또 다른 구속인지, 자유의 시작인지 어떻게 알고?

 V: 그한테는 남아 있는 삶이 죽음보다 가혹했으니.

 N: 연쇄살인마한테 삶을 선고하는 것이 더 잔인하다니, 이해가 안 가.

 V: “아버지가 대답했다. 우린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니.” 다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다면, 우리는 앎을 택할까, 무지를 택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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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전하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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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색다른 시도들을 엿볼 수 있었다. 현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듯한 묘사들이 눈에 띈다. ‘0%를 향하여‘의 경우, 영화계를 비롯한 한국 문화시장의 단면을 잘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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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자 - 개정판 카프카 전집 4
프란츠 카프카 지음, 한석종 옮김 / 솔출판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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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과 카프카는 묘하게 닮았다. 그 명성을 익히 들어왔고,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특수한 지위를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그들의 영역에 발을 들이는 순간, 입문자의 마음에는 당혹감과 두려움이 들어선다. 친절하면서 냉혹하고, 긴밀하면서도 툭툭 끊기는, 그들 특유의 양면성에 애증을 느낀다. 그래서 오랫동안 『아메리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실종자』는 어느 선택지든 독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기 마련이다. 


 카프카의 다른 소설들이 그렇듯이, 카알 로스만은 설명할 수 없는 현실적인 상황들에 휩쓸린다. 첫 번째 장부터 그 특징은 두드러진다. 모르는 남자에게 트렁크를 대뜸 맡기는 로스만, 그리고 그를 붙잡는 화부, 화부의 억울함을 해소하기 위해 선장에게 찾아가고, 그러다 만나게 되는 외숙부까지, 이 일련의 과정이 어딘가 부적절한 표현들과 부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점철된다. 그리고 카알이 미국까지 떠밀려 오게 된 계기부터 그가 외숙부의 집에서 쫓겨나는 동기 역시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이렇게 카알은 끊임없이 보이지 않는 손에 휩쓸려 세상의 밑바닥으로 떨어진다. 


 이후 미국에서 독립하는 과정도 순탄하지 않다. 엘리베이터 보이로 취직하지만, 얼마 안 가 한 번의 실수로 바로 해고당하고,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 모여사는 곳에서 하인으로 일한다. 이곳에서의 비참함과 부당함 역시 이루 말할 수 없다. 로스만은 오클라하마 극장의 공고를 보고 새로운 희망을 꿈꾼다. 그리고 클레이톤으로 기차를 타는 과정에서 이 미완성의 작품은 막을 내린다. 언뜻 보면 드디어 카알이 억압과 방랑에서 벗어나 정착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불현듯 끊겨버린 그의 여정은 로스만이 결코 이 사회에서 이름을 가질 수 없게 됨을 의미한다. 


 아메리카, 라는 영문식 이름이 주는 무언의 압박과 공포는 '실종자'라는 신원 미상의 정보를 통해 완성된다. 분명 그는 실존하지만, 어디에서도 그는 환영받지 못한다. 아들로서의 역할을, 식객으로서의 역할을, 직원으로서의 역할을, 하인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로스만은 가치없는 존재일 뿐이다. 이는 하루 아침에 벌레로 변신하여 생산성을 잃게 된 그레고리의 우화와 다를 바 없다. 극장으로 향하는 로스만의 모습은 앞으로 전진하는 것이 아니라, 종착점이 없는 터널을 향해 돌진하는 기차 안에 탄 승객의 모습이다. 그리하여 완결되지 않은 이 소설은 오히려 더 진한 여운을 독자에게 남기게 된다. 굳이 카알 로스만을 자신에게 대입하지 않아도, 이 땅에 무수한 실종자들이 맴돌고 있으리라는 두려움이 우리를 사로잡지 않는가? 


 카프카의 소설에는 해답도, 질문도 없다. 그는 현실을 배경으로 하는 어떤 우화들을 제시할 뿐이다. 특이하게도, 그의 교훈은 '인간의 삶에는 어떠한 교훈도 없다'는 문장이지만. 알 수 없는 형벌에 의해 처벌을 받아도, 미지의 땅에 휩쓸려간다 해도, 개인에게는 저항할 힘이 없다. 그렇다고 사회나 체제가 변화되어야 하는가? 글쎄, 세상이 좋아진다고, 정책이 변한다고 인간의 삶이 행복해질까?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소외되기 마련이다. 기계가 추구하는 실용성과 효율성의 관점에서, 인간이라는 부품은 너무나 비효율적이니까. 카알이 가지고 있던 인간성과 저항하는 마음이 그를 추방했듯이, 아메리카에 영혼이 머물 자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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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에 우연히 영화 <메이즈 러너>를 본 이후, '영 어덜트'와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두 장르를 적절히 조화시킨 원작을 읽고자 하는 관심이 꽤 높았다. 각 작품의 설정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이 각각의 작품을 접할 때 방해가 될까 봐 3부작은 천천히 감상했다. 하지만 프리퀄 시리즈는 영화화될 가능성이 희박한 데다가 원작의 완성도가 영화보다 높다는 판단 하에 소설을 모두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달에 걸쳐 『킬 오더』와『피버 코드』를 읽었다. 후자는 토머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어 『메이즈 러너』에서 설명되지 못한 것들을 드러낸다. 사악이 어떻게 아이들을 교육했으며, 토머스와 테리사가 미로 제작에 참여하게 되는 과정, 그리고 공터 아이들과의 만남. 이 시리즈의 끝을 동참한 독자들에게 남기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싶다. 

 

 한편, 『킬 오더』는 태양 플레어 현상의 시작과 플레어 병이 퍼지는 모습을 생생히 담았다. 익숙한 인물들이 등장하지 않아 당황스러울 수 있으나, 오히려 제임스 대시너 특유의 필력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영화의 시나리오를 읽는 것 같은 긴박한 서술이 특히 두드러지며, 원작에만 존재하는 평면 이동문의 원리, 그리고 플레어 병의 경과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매혹적인 서사를 이끌어 낸다. 마지막 장이 지나고 나서야 다음 시리즈와 이어질 준비가 끝나는 것을 보아, 작가가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다. 

 

 두 프리퀄이 훌륭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다섯 권으로 이루어진 『메이즈 러너』 시리즈는 완성도 있게 마무리 된 듯 하다. 원인 모를 대재앙 이후 인류가 살아남는 과정, 그속에서 드러나는 어른들의 이기심과 그것을 뛰어넘으려는 아이들의 협동과 지혜, 그리고 희망으로의 여정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 소설들은 언제라도 영 어덜트 SF 시리즈의 대표작으로 회자될 준비가 되어 있다.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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