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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자 - 개정판 ㅣ 카프카 전집 4
프란츠 카프카 지음, 한석종 옮김 / 솔출판사 / 2017년 5월
평점 :
미국과 카프카는 묘하게 닮았다. 그 명성을 익히 들어왔고,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특수한 지위를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그들의 영역에 발을 들이는 순간, 입문자의 마음에는 당혹감과 두려움이 들어선다. 친절하면서 냉혹하고, 긴밀하면서도 툭툭 끊기는, 그들 특유의 양면성에 애증을 느낀다. 그래서 오랫동안 『아메리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실종자』는 어느 선택지든 독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기 마련이다.
카프카의 다른 소설들이 그렇듯이, 카알 로스만은 설명할 수 없는 현실적인 상황들에 휩쓸린다. 첫 번째 장부터 그 특징은 두드러진다. 모르는 남자에게 트렁크를 대뜸 맡기는 로스만, 그리고 그를 붙잡는 화부, 화부의 억울함을 해소하기 위해 선장에게 찾아가고, 그러다 만나게 되는 외숙부까지, 이 일련의 과정이 어딘가 부적절한 표현들과 부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점철된다. 그리고 카알이 미국까지 떠밀려 오게 된 계기부터 그가 외숙부의 집에서 쫓겨나는 동기 역시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이렇게 카알은 끊임없이 보이지 않는 손에 휩쓸려 세상의 밑바닥으로 떨어진다.
이후 미국에서 독립하는 과정도 순탄하지 않다. 엘리베이터 보이로 취직하지만, 얼마 안 가 한 번의 실수로 바로 해고당하고,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 모여사는 곳에서 하인으로 일한다. 이곳에서의 비참함과 부당함 역시 이루 말할 수 없다. 로스만은 오클라하마 극장의 공고를 보고 새로운 희망을 꿈꾼다. 그리고 클레이톤으로 기차를 타는 과정에서 이 미완성의 작품은 막을 내린다. 언뜻 보면 드디어 카알이 억압과 방랑에서 벗어나 정착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불현듯 끊겨버린 그의 여정은 로스만이 결코 이 사회에서 이름을 가질 수 없게 됨을 의미한다.
아메리카, 라는 영문식 이름이 주는 무언의 압박과 공포는 '실종자'라는 신원 미상의 정보를 통해 완성된다. 분명 그는 실존하지만, 어디에서도 그는 환영받지 못한다. 아들로서의 역할을, 식객으로서의 역할을, 직원으로서의 역할을, 하인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로스만은 가치없는 존재일 뿐이다. 이는 하루 아침에 벌레로 변신하여 생산성을 잃게 된 그레고리의 우화와 다를 바 없다. 극장으로 향하는 로스만의 모습은 앞으로 전진하는 것이 아니라, 종착점이 없는 터널을 향해 돌진하는 기차 안에 탄 승객의 모습이다. 그리하여 완결되지 않은 이 소설은 오히려 더 진한 여운을 독자에게 남기게 된다. 굳이 카알 로스만을 자신에게 대입하지 않아도, 이 땅에 무수한 실종자들이 맴돌고 있으리라는 두려움이 우리를 사로잡지 않는가?
카프카의 소설에는 해답도, 질문도 없다. 그는 현실을 배경으로 하는 어떤 우화들을 제시할 뿐이다. 특이하게도, 그의 교훈은 '인간의 삶에는 어떠한 교훈도 없다'는 문장이지만. 알 수 없는 형벌에 의해 처벌을 받아도, 미지의 땅에 휩쓸려간다 해도, 개인에게는 저항할 힘이 없다. 그렇다고 사회나 체제가 변화되어야 하는가? 글쎄, 세상이 좋아진다고, 정책이 변한다고 인간의 삶이 행복해질까?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소외되기 마련이다. 기계가 추구하는 실용성과 효율성의 관점에서, 인간이라는 부품은 너무나 비효율적이니까. 카알이 가지고 있던 인간성과 저항하는 마음이 그를 추방했듯이, 아메리카에 영혼이 머물 자리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