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
정영욱 지음 / 부크럼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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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배틀그라운드를 같이 플레이하는 학교 후배가 생일이라고 이 책을 선물해줬다. 생일 이틀 전, 우리는 경쟁전에서 치킨을 먹었기 때문에 (1등을 했다는 뜻이다) "엊그제 치킨 먹은 우리에게 어울린다"는 말과 함께 받은 이 책의 의미는 더욱 선명해졌다. 우리는 배틀그라운드를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라니, 이것보다 든든한 격려가 어디 있을까? 4인으로 경쟁전에 들어가면 순위 방어까지 하지만, 대부분 작은 실수 또는 결정적인 실수로 팀원이 죽거나 전멸하여 치킨을 놓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서로에게 철저하게 피드백을 해 가며 운영과 실력을 보완해 왔다. 그리하여 후배가 선물한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는 배틀그라운드를 할 때마다 되뇌이는 주문이 되었다. 


 나에게 배틀그라운드란, 쉽게 말해서 '인생 게임'이다. 2017년에 출시되었을 때는 군 복무 중이라 즐길 기회가 없었다. 2018년에 휴가를 나와서 친구들과 함께 처음 배틀그라운드를 접했을 때의 신선함과 즐거움이란! 그때는 운영도, 조준 실력도 형편없었지만, 그래서 내가 왜 죽는지도 모르고 상황 판단이 매우 느렸지만, 가상의 세계 속에 동료들과 소통하고 교전에서 승리할 때의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얼마 후, 나는 실력을 쌓기 위해 솔로 모드를 돌렸고 수많은 실패 속에서 스스로를 보완했다. 특히, 사람이 얼마 남지 않는 후반전에서 느끼는 긴장감과 집중력에서 오는 감정은 다른 어떤 게임에서도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솔로 모드에서도 치킨을 먹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다양한 사람들과 치킨을 먹으면서 배틀그라운드에 대한 이해도는 계속 높아졌다. 


 시간이 흘러 2022년, 여전히 실력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게임을 보는 눈은 어느 정도 생겼다. 적어도 남의 도움에 의존하는 운영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플레이를 만드려고 한다. 물론 그것이 욕심이 되어 팀 전체를 전멸시킬 때도 있지만, 돌이켜보면 과감한 결단이 좋은 결과를 낳은 적이 더 많았다. 고작 30분 남짓의 시간 동안 실시간으로 전략을 수정한다는 점에서, 이 게임은 FPS보다는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RTS와 비슷하다는(배틀그라운드 이전의 인생 게임이 바로 스타크래프트였다) 생각을 종종 한다. 2018년에 느꼈던 소중한 기억들, 예컨대 길리 슈트를 입은 적을 찾지 못해 유리한 상황에서 치킨을 놓쳤다거나 구급상자 먹는 법을 몰라서 경밖사(자기장에 불타 죽는다)하는, 서투르지만 그것조차 즐거웠던 추억들은 이제 재현될 수 없음을 안다. 그리고 게임도 늙어서 고인물(오래된 유저)과 핵(불법 프로그램)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유저들의 수도 초창기 같지 않다. 무엇보다 주변에서 배틀그라운드를 즐기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 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치킨에 대한 갈망은 남아 있다. 이 게임은 생존이 목적이다. 적을 많이 죽인다고, 좋은 아이템을 보유한다고 승리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다만 점수를 많이 획득하거나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질 뿐이다. 때로는 적을 죽이지 않아도 승리를 획득하기도 한다. 스쿼드 모드에서는 전투 능력이 탁월한 팀원을 보조하기만 해도 1인분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지만, 전장에 투입되는 100명의 인원은 모두 한 가지의 목표로 참여한다. 바로 '치킨'이다. 한 명, 또는 한 팀이 우승하기 위해 다른 모든 이들은 주인공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치킨을 먹지 못하면 언제나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아예 초반에 교전을 하다가 죽으면 미련없이 다음 판으로 가겠지만, TOP10(생존자 10명) 이하에서는 작은 실수나 판단 오류가 치명적인 결과를 낳기 때문에 자책을 하기 쉽다. 그럴 때마다 다시 한 번, 이 책의 제목을 주문처럼 되새겨야 한다. 너는 배틀그라운드를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 치킨을 먹지 못하더라도, 과거에 느꼈던 감정들을 기억하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점검하며 팀원과 함께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서평은 안 하고 왜 게임 이야기만 하냐고? 이 책은 말하자면, 랜덤 스쿼드와 같은 것이다. 우연히 만난 유익한 동료다. 하지만 매치가 끝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제 갈 길을 간다. 당신이 어떤 삶을 살았든, 아무렴 관심이 없다. 만나게 된 이상 치킨을 향해 정진하고 실패하든 성공하든 헤어질 인연이다. 그러니 나는 무미건조한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 랜덤 스쿼드의 본질이 그런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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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 읽은 두 작품에 대해 생각해 본다. 공교롭게도 이 두 책을 쓴 작가가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두 사람에 의해 쓰였으며, 사랑과 결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헛소동』은 원어로 도전했는데 셰익스피어 특유의 말장난이나 어휘 구사력을 이해하는 것이 도통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Dogberry가 일부러 단어를 틀리는 것은 주석이 없으면 도무지 그 의중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극작가가 구사하는 pun 역시 난해했고 신화나 당대 문화에 기반한 비유적 표현들도 주석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희극이 비극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구나 인지도가 낮은 이유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어쨌든 즐거움이나 말장난의 영역은 문화와 언어를 넘어가는 순간, 그 의도가 완화되는 경향이 있다.


 『노생거 사원』은 제인 오스틴의 다른 작품들과는 조금 다르다. 물론 나 역시 오스틴의 소설을 모두 읽은 것은 아니지만, 이 작품만큼이나 작가의 목소리가 강력하게 개입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작가의 의견이 직접 삽입되는 것이 메시지 전달에는 효율적이지는 몰라도 작품에 몰입하는 데에는 유용하지 않다. 어쩌면 그녀는 이것을 의도했을지도 모른다. 뭐랄까, 캐서린과 틸니의 연애와 결혼은 지나치게 평범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을 통해 당대의 풍속이나 결혼관을 비판하고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고전문학에서 접하기 힘들었던, 특이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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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호 품목의 경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7
토머스 핀천 지음, 김성곤 옮김 / 민음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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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그 속에 숨겨진 은유와 상징을 해석하려면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여러모로 다시 한 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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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4
메리 셸리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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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리 셸리의 기념비적인 소설 『프랑켄슈타인』이 주는 의미는 참으로 다양하다. 역자가 해설에서 밝혔듯이, 소설에 등장하는 가공의 괴물은 과학기술과 문명에 대한 경고이자 메리 셸리의 파란만장한 삶을 비추는 역할을 수행한다. 처음에 내가 주목하고 싶었던 것은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이 창조한 존재가 인간으로 볼 수 있는가의 여부였다. 만약 인간으로 볼 수 있다면, 인간을 정의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인간이 아니라면, 감정과 사고를 지닌 기이한 존재를 만든 빅토르는 왜 칭송받지 못하고 비극을 맞이했을까? 많은 사람들이 괴물의 이름을 창조자의 이름으로 착각하는 것은 단순히 괴물의 이름을 작가가 설정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복수심에 불타 자신의 삶을 파멸로 몰아넣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누가 괴물인지 구별이 잘 가지 않는다. 


 "자기 자신이라는 괴물"이라는 소재는 문학에서 자주 애용되는 소재이다. 오이디푸스 왕이 스핑크스라는 괴물을 물리칠 때, 괴물이 제시한 정답이 인간이라는 점은 실로 의미심장하다. 인간이야말로 쉽게 괴물이 될 수 있는 존재이며 종종 그것을 인식하는 사람이 그렇게 된다. 괴물은 자신의 비극을 합리화하며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정당하다고 여긴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파괴로 몰아넣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그래서 빅토르가 만든 괴물이 인간인지 아닌지는 작품의 말미에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된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씩 죽는 것을 견딜 수 없었던 창조자는 생명체와 자신 중 반드시 한 쪽이 파멸해야 하는 시합을 열었기 때문이다. 괴물이 증언하듯이, 그의 광기는 주변 사람들을 괴롭게 했다. 괴물은 옆에서 발명가의 행보를 항상 지켜보았고 그(여자 괴물을 원했기에)의 눈에 프랑켄슈타인은 겉모습을 제외하면 자신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프랑켄슈타인』이 가진 명성에 비해 상당히 늦게 이 소설을 접했다. 내용이 고전문학에서 쉽게 다루지 않는 것임에도 19세기 영국 소설의 중요한 계보를 담당하고 있는 것은 당대의 풍조에 기꺼이 어긋나기를 택한 천재의 결단에서 비롯되었다.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라는, 일종의 새로운 신화를 만드는 작업이었지만, 메리 셸리는 그 안에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과 생애를 담았다. 내가 포착하고 싶었던 것은 그러한 사소한 장면들이었다. 괴물이 드 라세의 오두막에서 읽은 고전에 대해 감상을 남기는 부분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시점을 계속 변화해가며 어느 한쪽이 편향된 시선으로 이야기를 해석하는 사태를 예방했다. 프랑켄슈타인의 비극은 당연한 것이었으며 괴물 역시 사연이 있었으나 결코 옹호될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 이 소설의 결론이다. 이 단순한 입장을 밝히기 위해 작가는 주변 인물을 설명하는 데에 많은 힘을 쏟는다. 그리하여 우리는 독자로서, 제3자로서 작가의 입장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감정적으로 몰입되는 부분도 있었다. 엘리자베트와 결혼을 약속했으나 밝은 미래를 깨뜨리고 싶지 않았던 빅토르의 심정도 이해가 된다. 그리고 그녀가 괴물에 의해 살해되었을 때 그가 느낀 충격을 상상하니 마음이 참으로 아팠다. 동시에 그를 옹호하는 대신 그녀의 죽음에 그가 일조했다는 냉정한 생각이 한편에 자리잡았다. 가상의 이야기, 또 하나의 세계에 몰입하여 그들의 삶과 생각을 따라가는 일은 참으로 가치 있는 일이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영역을 상상하고 준비하게 만든다. 문학이 일종의 교육이라면, 그리고 교육이 삶 전체에 걸쳐서 일어나야 하는 일이라면 나는 기꺼이 또 다른 세계를 찾아 헤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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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 리포트 - 필립 K. 딕 단편집
필립 K. 딕 지음, 조호근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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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편소설의 정수는 마지막 문장에 달려 있다. 특히 반전이 존재하거나 특이한 설정이 존재하는 단편들의 경우 그 중요성은 배가 된다. 이러한 법칙을 적용했을 때, 필립 K. 딕은 장편소설보다는 단편에 더 걸출한 능력을 보인다. 정신착란이나 꿈처럼 보이는 인상들이 반복되면 읽는 이들은 쉽게 지친다. 하지만 잘 마무리된 단편은 그의 정신세계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납득이 될 만큼 설득력이 있다. 수많은 SF 영화의 영감을 제공하거나 실제로 영화가 된 그의 단편들을 언젠가 꼭 읽어보고 싶었고, 마침내 접하게 된 그의 대표작들은 왜 그가 여전히 최고의 SF 작가들 중 한 명으로 칭송받는지 보여주었다. 나는 어렴풋한 인상을 남기기보다 각 작품들의 장단점과 특징을 남기고 싶었다. 그래야 나중에 리뷰를 다시 보았을 때,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1. 워브는 그 너머에 머문다: 워브의 원형을 찾기 위해 독자는 작품을 다시 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워브는 돼지가 아니다. 그렇다고 인간도 아니다. 자신을 먹어치운 생명체의 뇌를 장악하여 생존한다. 설정의 한계가 존재하지만, 짧은 분량 안에서 작가의 독특한 생각과 워브의 평온함이 주는 묘한 공포감이 충분히 전달되었다. 또한, 필립 K. 딕이 주로 모색하는 주제인 "인간은 어떻게 정의되는가?"에 대해 탐구하고 있기 때문에 입문하기에 적절하다. 


 2. 수호자: 내가 여러 버전으로 존재하는 작가의 단편집들 중 『마이너리티 리포트』을 선택한 이유였다. 필립이 선호하는 배경은 언제나 핵전쟁 이후 몰락한 문명 또는 새롭게 세워진 문명이다. 이 소설은 방사능으로 오염된 지상에서 활동할 수 없는 인간 대신 리디라는 로봇이 전쟁을 대신 수행하는 설정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전쟁은 지표면이 파괴된 순간 끝나 있었고, 리디는 인간의 눈을 속인 채 자연을 보전하고 있었다. 적절한 반전과 흥미로운 설정들은 소개만으로 나를 매혹하기에 충분했고, 실제로 읽으니 더 만족스러웠다. 그가 활동하던 시기가 냉전과 메카시즘으로 얼룩져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이것이야말로 작가가 제시하려는 대안에 가깝다.


 3. 두 번째 변종: 상상력이 빛나긴 하지만, 그 빛이 매우 날카로워 독자들을 때로 혼란스럽게 한다. 굳이 반전을 넣지 않아도 충분히 매력적인 이야기였다. 물론 곱씹어 볼수록 주제의식이 강렬해진다는 효과가 있지만, 변종이 끊임없이 생기고 그들은 서로를 파괴하려 한다는 결말을 보고 나서 의아함이 먼저 들었다.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는, 즉 서술자가 불안정할 때 독자 역시 마찬가지의 감정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멸절 이후의 세상의 모습을 창의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한다.

 

 4. 콜로니: 이른바 '생활 공포'라고 할까? <트랜스포머>에서 가장 무서웠던 순간은 우리가 사용하는 전자기기와 자동차가 순식간에 인간을 위협할 때일 것이다. 도구가 도구가 아니게 될 때, 인간은 어떠한 위치에 있을까? 옷조차 믿을 수 없어 발가벗은 채 우주선에 오르는 군상을 묘사하는 필립 K. 딕의 어조에는 조소가 느껴진다. 인간이 인간으로만 남아 있을 때 얼마나 초라한 존재인가? 조금은 유치할 수도 있는 상상에서 출발하여 자신만의 주제의식을 보여주는 작가의 통찰력이 돋보인다. 


 5. 페이첵: 표제작이 없었다면, 분명 이 작품이 그 자리를 차지했을 것이다. 가장 영화로 구현하기 좋은 소재와 줄거리를 갖추었다. 물론 실사화된 이야기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지만, 이 소설에서 보여준 '시간 트릭'은 무척 참신했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독자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고, 추격전에서 느껴지는 스릴, 그리고 작가가 강조한 '사소한 물건의 놀라운 쓰임새' 등은 꽤 즐거운 경험이었다. 다만 설정에 있어서 의문스러운 지점들이 존재했다. 개인의 삶을 얼마든지 박탈할 수 있고, 억압할 수 있는 보안경찰이 기업 앞에서 쩔쩔맨다는 설정이, 다른 디스토피아에 익숙한 나로서는 설명력이 부족했다. 또한, 아무리 무력하다 해도 수십 년 동안 시간 창문을 개발했는데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 제닝스 혼자서만 그것을 수리할 수 있다는 것들도 아쉬웠다. 하지만 만족스러웠기에 아쉬운 지점이 보이는 법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이 단편은 매혹적이었다. 


 6. 변수 인간: 과거의 능력자가 현재에 찾아와 미래를 조작한다. 이 소설의 줄거리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것이다. 변수 인간에 집중하기만 해도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이 소설의 경우, '필립스러움'이 사족이 되었다. 센타우리 행성과의 전쟁을 넣을 필요가 거의 없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물론 확률을 계산하는 컴퓨터에 의존하는 라인하트를 비꼬고, 더 높은 이상을 꿈꾸는 토머스 콜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지만, 지구 내에서 이야기를 해결해도 별 문제는 없었으리라. 그러나 작가의 아이디어가 상당히 두드러지는 작품이며, 꽤 집중력 있게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이 있기에 기꺼이 좋은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7. 통근자: 가상의 세계로 인한 현실의 붕괴라는 소재는 현대에 있어서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가상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 현실에 영향을 주는 이야기는 이제 새롭지 않다. 필립의 유쾌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예지적인 작품이다. 


 8. 요정의 왕: 작가가 시도한 몇 안 되는 판타지 소설이다. 하지만 필립 K. 딕에게 기대하는 것은 언제나 '그럴 듯한 이야기'가 아니던가? 아무리 무리한 설정을 사용해도 그가 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에 가미가 되면 그만이다. 핵폭탄과 수소폭탄이 몇 번이 터지든 상관없다. 그에게는 판타지 소설이 일반 소설과 다를 것이 없다. 때로 이러한 환상적인 이야기와 해피엔딩은 독자들에게 쉼터를 제공한다. 


 9. 단기 체류자의 행성: 적어도 필립 K. 딕은 인간의 정의에 '지구에 거주하는 생물'을 절대 포함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어떻게든 우주로 공간을 확장한 다음, 인간의 거주지를 지구 밖의 어딘가로 보내버린다. 전쟁 이후, 수많은 돌연변이들로 인해 우리가 알던 인간의 정의는 바뀌었고, 지구는 우리가 아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대신, 새롭게 정의된 인간들이 그 영역을 차지했다. 그러니, 제목에 나타난 '단기 체류자'는 바로 현 인류다. 

 

 10. 자가 광고: 굉장히 극단적인 방식으로 광고를 비판하고 있다. 말하자면, 광고에 지친 남자가 태양계를 벗어나 재가 되는 이야기이다. 끝까지 에드 모리스의 옆에 붙어서 광고를 해대는 파스라드를 보면, 쉴새없이 광고에 노출되는 현대인으로서는 경각심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결말에 대해 불만을 내뱉는 독자들이 있겠지만, 주제의식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죽여도 좋다. 어차피 그의 이야기는 모두 대체현실을 기반으로 한다. 


 11. 황금 사나이: '인간을 적대하는 절대자'라는 설정을 굳이 내세울 필요가 없다. 언제나 선제공격은 인간이 먼저 했으니까. 진화된 인류는 그냥 살아남기를 바랄 뿐이고, 기존의 인류는 그것을 허용할 리가 없다. 하지만 역사는 증명하지 않는가? 끝에 누가 살아남는지 말이다. 


 12. 제임스 P. 크로우: 「페이첵」에서 사용되었던 시간 창문이 다시 등장한다. 이번에는 인류가 전쟁으로 멸망하고, 로봇과 인간의 위치가 도치된 미래 세계이다. 줄거리를 설정대로 따라가면 의문스러운 지점이 생기기 때문에 일종의 상징으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편으로는 두 상응하는 존재의 공존은 불가하다는, 필립 K. 딕의 쓸쓸한 현실 인식이 반영되어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13. 사칭자: SF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공포소설에 가깝다. 자기 자신의 실존을 의심하는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인가? 만약 1인칭으로 전개되었더라면, 주인공이 느낀 감정이 더 극대화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필립 K. 딕은 독자가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변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작품 속에 던져진 단서와 암시를 확인하고 그가 제시하는 결말에 대해 사유하길 바라는 듯하다. "하지만 저게 올햄이라면, 나는 분명..."이라는 완성되지 않은 문장이 기폭제라는 것에 대해 나는 납득할 수 있었다. 자신이 폭탄이라고 인식되는 순간, 사칭자의 세계는 붕괴된다. 앞으로 존재할지도 모르는 복제 생물에 대한 작가 나름대로의 해답일 것이다. 


 14. 음울한 대지에 고하노니: 러브크래프트의 '우주적 공포'가 연상되는 작품이었다. 다만 필립은 언제나 그것을 지구 전체의 규모로 확장시킨다는 차이점이 있다. 실비아의 형상이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장악하여 마침내 릭까지 차지해버리는 모습, 그리고 정작 본인은 무엇이 문제인지 모른다는 점이 공포감을 유발한다. 작가의 창의력이 절제 있게 구현되어 개인적으로 무척 마음에 든 작품이다. 


 15. 조정 팀: 현실의 붕괴, 조정 팀, 그리고 진실을 알 수 없는 투쟁 등, 이 소설은 '필립스러움'이 가득 담겨 있다. 그의 팬이라면 이 소설을 사랑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줄거리와 결말에 대해 의구심을 표할 것이다. 나는 물론 만족했다.

 

 16. 아버지 괴물: 그의 다른 SF 소설들에 비하면 평범하지만, 그의 순수한 상상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더욱 재미 있게 감상할 수 있다. 다만 미완성된 것 같다는 인상을 주는 결말은 찝찝함을 남긴다. 조금만 이야기를 발전시켰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강하게 들었다.


 17. 포스터, 넌 죽었어!: 전체가 대의를 위해 개인에게 희생을 강요하면 어떤 모습이 되는지 선명하게 보여준 작품이다. 메카시즘에 정면으로 맞서는 그의 태도가 엿보인다. 미국과 러시아 독자들에게 골고루 사랑을 받았는데, 이는 대중들 대부분이 만들어진 증오의 물결에 휩쓸려 지쳐 있었다는 방증이었다. 그놈의 명분이 뭐라고 우리의 삶이 침해되고, 때로는 빼앗겨야 하는가? 이러한 부당함에 대한 의문은 표제작으로 연결된다. 

 

 18. 독점 시장: 이 작품까지 보고 나서 느낀 것은, 특별한 반전이 없으면 필립의 마지막 문장은 그렇게 힘이 강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언제나 그는 호기롭게 독자를 사로잡고 나서 후반부에 그것을 풀어버리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 대부분은 끝까지 나를 붙잡았지만, 이 소설은 예외라고 할 수 있다.

 

 19. 얀시의 허울: 여러모로 실존 인물보다는 '빅 브라더'를 연상시킨다. 조지 오웰이 만든 인물과 뚜렷한 차이점은, 빅 브라더가 힘과 단순한 구호로 사람들을 억압한다면, 얀시는 그럴 듯한 말장난과 눈에 좋은 허울들로 대중들을 현혹한다는 것이다. 얀시의 환상에 휘말려 자신의 의견을 잃어버린 자들을 제시하는 이 단편은 현대인에게도 충분히 경고가 된다. 자극적인 언론이나 대중매체를 접할 때 충분한 거리를 두고, 그리고 자신만의 사유를 가지고 접근하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되새기게 한다.


 20. 마이너리티 리포트: 필립 K. 딕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영화는 알고 있다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그리고 직접 읽어보니 납득할 만큼 잘 썼다. 분량이 길지 않음에도 많은 주제를 담고 있었다. 프리크라임의 정당성, 시스템과 개인 사이의 우위, 예측할 수 있는 미래라는 환상 등 '필립스러움'의 장점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상상해 보라. 나는 평화롭게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데, 경찰이 들이닥쳐 나를 살인죄로 체포하는 장면을. 가족과 친구들과 떨어져 하루아침에 수용소에 감금되는 모습을. 카프카나 카뮈의 소설에서 나오는 부조리한 상황이 미래에 현실이 되고, 시스템이 되는 모습을. 그러한 상상력이 있다면, 누구나 프리크라임 제도를 거부할 것이다. 소수점에 그치는 범죄율 따위는 전혀 설득력이 없다. 인간은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낙관적인 법이다. 다시 말해, 필립은 인간의 속성을 잘 알았고, 프리크라임의 현실화는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었다. 대신 그는 불가능한 설정을 도입하여 인간의 의지와 정의에 대해 묻는 것이다. 누가 평범한 인간을 살인자로 만드는지 말이다. 


 그의 상상력은 현실에 대한 통찰만큼이나 날카롭다. 문체나 구체적인 설정, 캐릭터 등이 상상력을 못 따라간다는 점은 아쉬웠다. 하지만 시대를 뛰어넘는 주제의식이 탈시대적인 배경과 만나 참으로 멋지고 매력적인 이야기가 탄생한 것을 볼 때, 그의 작품은 계속 조명받을 가치가 있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의 대부분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언젠가 똑같은 위기가 찾아올 때, 인간은 실수를 반복할까? 아니면 교훈을 찾아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답을 찾을까? 그 답이 나오기 전까지 '필립스러움'은 언제나 우리 곁에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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