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4
메리 셸리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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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리 셸리의 기념비적인 소설 『프랑켄슈타인』이 주는 의미는 참으로 다양하다. 역자가 해설에서 밝혔듯이, 소설에 등장하는 가공의 괴물은 과학기술과 문명에 대한 경고이자 메리 셸리의 파란만장한 삶을 비추는 역할을 수행한다. 처음에 내가 주목하고 싶었던 것은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이 창조한 존재가 인간으로 볼 수 있는가의 여부였다. 만약 인간으로 볼 수 있다면, 인간을 정의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인간이 아니라면, 감정과 사고를 지닌 기이한 존재를 만든 빅토르는 왜 칭송받지 못하고 비극을 맞이했을까? 많은 사람들이 괴물의 이름을 창조자의 이름으로 착각하는 것은 단순히 괴물의 이름을 작가가 설정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복수심에 불타 자신의 삶을 파멸로 몰아넣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누가 괴물인지 구별이 잘 가지 않는다. 


 "자기 자신이라는 괴물"이라는 소재는 문학에서 자주 애용되는 소재이다. 오이디푸스 왕이 스핑크스라는 괴물을 물리칠 때, 괴물이 제시한 정답이 인간이라는 점은 실로 의미심장하다. 인간이야말로 쉽게 괴물이 될 수 있는 존재이며 종종 그것을 인식하는 사람이 그렇게 된다. 괴물은 자신의 비극을 합리화하며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정당하다고 여긴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파괴로 몰아넣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그래서 빅토르가 만든 괴물이 인간인지 아닌지는 작품의 말미에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된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씩 죽는 것을 견딜 수 없었던 창조자는 생명체와 자신 중 반드시 한 쪽이 파멸해야 하는 시합을 열었기 때문이다. 괴물이 증언하듯이, 그의 광기는 주변 사람들을 괴롭게 했다. 괴물은 옆에서 발명가의 행보를 항상 지켜보았고 그(여자 괴물을 원했기에)의 눈에 프랑켄슈타인은 겉모습을 제외하면 자신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프랑켄슈타인』이 가진 명성에 비해 상당히 늦게 이 소설을 접했다. 내용이 고전문학에서 쉽게 다루지 않는 것임에도 19세기 영국 소설의 중요한 계보를 담당하고 있는 것은 당대의 풍조에 기꺼이 어긋나기를 택한 천재의 결단에서 비롯되었다.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라는, 일종의 새로운 신화를 만드는 작업이었지만, 메리 셸리는 그 안에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과 생애를 담았다. 내가 포착하고 싶었던 것은 그러한 사소한 장면들이었다. 괴물이 드 라세의 오두막에서 읽은 고전에 대해 감상을 남기는 부분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시점을 계속 변화해가며 어느 한쪽이 편향된 시선으로 이야기를 해석하는 사태를 예방했다. 프랑켄슈타인의 비극은 당연한 것이었으며 괴물 역시 사연이 있었으나 결코 옹호될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 이 소설의 결론이다. 이 단순한 입장을 밝히기 위해 작가는 주변 인물을 설명하는 데에 많은 힘을 쏟는다. 그리하여 우리는 독자로서, 제3자로서 작가의 입장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감정적으로 몰입되는 부분도 있었다. 엘리자베트와 결혼을 약속했으나 밝은 미래를 깨뜨리고 싶지 않았던 빅토르의 심정도 이해가 된다. 그리고 그녀가 괴물에 의해 살해되었을 때 그가 느낀 충격을 상상하니 마음이 참으로 아팠다. 동시에 그를 옹호하는 대신 그녀의 죽음에 그가 일조했다는 냉정한 생각이 한편에 자리잡았다. 가상의 이야기, 또 하나의 세계에 몰입하여 그들의 삶과 생각을 따라가는 일은 참으로 가치 있는 일이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영역을 상상하고 준비하게 만든다. 문학이 일종의 교육이라면, 그리고 교육이 삶 전체에 걸쳐서 일어나야 하는 일이라면 나는 기꺼이 또 다른 세계를 찾아 헤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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