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을 마무리하며, 모든 해의 마지막 달에 출판된 책들을 살펴보자. 여전히 컨셉은 '눈길을 끈 것'이다.

 

  나는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를 비롯해 대작 영화까지, 단 한 편도 보지 않았으나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캐주얼 베이컨시』에 관심이 간다. 그녀는 "내가 쓰지 않으면 안됐던 작품"이라고 이 두 권짜리 소설에 대해 자평했는데, 문단과 사람들 사이에는 호평과 혹평이 오가고 있다. 하지만 평가가 어떻게 됐든, 판타지 세계에서 벗어나 잔혹한 현실을 담담히 말하려고 하는 롤링의 의지는 충분히 엿보인다. 제목인 '캐주얼 베이컨시'는 '의회의 공석'을 뜻한다. 즉, 의원이 자리를 채울 수 없게 된 상황이라는 것이다. 소설은 이 공백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녀의 소설의 주인공은 마치 성장소설의 주인공들 같다. 마약 중독자인 어머니와 살고 있는 위든, 강박증을 가진 아버지가 있는 팻츠, 파키스탄 이민 가정의 자완다를 비롯한 여덟 가정의 아이들은 대부분 정상적인 환경에 놓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사악한 시작에서 어떤 아름다운 끝맺음을 이끌어낼까? 작가의 역량에 달린 것이다. 물론 『캐주얼 베이컨시』가 성장소설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평화로운 삶에 적개심과 반목이 자리잡는 '파리대왕'을 연상시키는 이 작품, 그러나 그것보다 더 충격적인 내용을 다루는 소설....... 무섭다.

 

 스티븐 킹의 걸작, 그 두 번째 이야기는 우리가 정말 알고 싶고, 추구했던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항상 '이게 영화나 소설로 만들어졌으면!'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것은 함께 그 기억을 공유하고 싶은 까닭이다. 스티븐 킹은 '만약 케네디가 암살되지 않았다면 지금은 어떻게 변할까?'라는 문득의 상상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 『11/22/63』을 쓴 것이 아닐까? 왜 제이크는 과거로 시간여행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암울한 현실, 어두운 미래를 밝게 만들게 하기 위해서이다. 마치 <맨인블랙3>의 설정 같다. 처음에는 해리 가족 살인사건을 막으러 과거로 간 제이크는 자신으로 인해 해리가 죽은 것을 알고, 다시 토끼굴로 들어가고, 그는 베트남전을 막아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케네디를 죽인 오스왈드를 제거해야 했다. 과거는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한 개인이 거기에 끼어드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스티븐 킹은 어떻게 이 장대한 이야기를 그려낼까?

 

 고전이 탄생하기 전에 있었던 고전(『일리아스』 같은)은 정말 값진 보물이지만, '보물'답게 발굴되지 못한 것들도 있기 마련이다. 『슈테른하임 아씨 이야기』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모티브가 된 낭만주의 소설이다. 왜 이 작품이 주목받지 못했는가? 저자인 폰 라슈가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제 그 모든 차별을 넘어서서, 진정한 걸작을 맛 볼 수 있게 되었다.

 

 디킨스에게 바치는 오마주, 『헬로, 미스터 디킨스』. 디킨스 탄생 200주년을 맞았는데 왜 이리 조용해? 하던 차에 디킨스를 위한 작품집이 나왔다. 크리스마스 하면 빠질 수 없는 디킨스의 대표작 『크리스마스 캐럴(애니메이션도 재밌다)』을 개작한 소설을 비롯해,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두 도시 이야기』의 '두 도시'를 주제로 한 소설들까지. 디킨스를 사랑하는 모든 국내 팬들에게는 좋은 크리스마스, 새해 선물이 될 것이다.

 

역사는 강자의 것이라고 했나, 그럼 이번엔 약자에 주목할 차례가 된 거다. 파이더르 오 길린의 세계에서는 약자가 강자가 될 수도 있고, 강자가 약자가 될 수도 있는 세상이다. '약자'가 만약 인류라면 강자란 대체 누구인가? 강자에 맞서 새로운 강자가 될 수 있는가? 인간은 과연 약자인가? 그 모든 물음을 『인피리어』 안에서 확인하라. 주인공은 약자다.

 

 모험 이야기는 언제나 설레고 흥미롭다. 앞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모험은 상상력을 자극하고, 감동과 즐거움을 준다. 『와일드우드』가 매력적인 까닭도 모험 소설이기 때문이다. 출입이 금지된 숲 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디셈버리스츠'라는 인디밴드의 리더인 콜린 맥코이와 그의 아내가 쓰고 그린 멋진 이야기를 만나보고 싶다.

 

 게임 <헤일로>와 관련된 SF 소설이라면, 당연히 환영이다. 표지가 참 인상적이다.

 

 작년에 『인어의 노래』를 통해 '프로파일러'와 '토니 힐'이라는 존재를 만나게 되었다. 그 두 번째 이야기, 『피철사』가 나왔다. 그의 글쓰는 방식은 이미 잘 알고 있으니, 읽는 것만 남았다. 우린 그저 토니 힐의 놀라운 수사만 따라가면 되니까.

 

 여담으로, '50'에 관한 일본 작가의 단편집 『혈안』도 출간되었는데, 내가 전에 그런 테마의 소설 한 번 봤는데....... 별로다.

 

로마의 대표적인 저술가 키케로의 『신들의 본성에 관하여』는 자신만의 주장을 내세우지 않는다. 그는 에피쿠로스 학파의 신들의 본성에 관한 입장을 분석하고, 그것을 비판함으로써 자신의 의견을 독자에게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그는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스토파 학파에 대한 비판을 통해 자신의 '신성론'을 완성시킨다. 가히 고전이라 할 만하다.

 

 20세기는 최고의 격변의 시대이다. 지금껏 볼 수 없었던 대규모의 전쟁과 학살극, 인간을 분열시킨 사상의 갈등, 그리고 민주주의로 가기 위한 변화........ 하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살았던 시대이고, 가장 많이 듣고 배웠던 시기이기에 이 시대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수전 케네디, R.G. 그랜트, 샐리 리건은 말한다. 당신이 알았던 역사는 반쪽 역사라고. 여기 또 다른 깜짝 놀랄 진실이 담겨 있는 것이다.

 

 역사에 길이 남을 영원한 제국, 로마. 로마는 흔히 고대사에서 가장 부유하고 번영한 국가라고 알려져 있다. 그들은 전쟁과 노예를 통해 쾌락의 나날을 누렸다. 여기서 '그들'은 누굴까? 바로 로마의 원로원과 귀족들이다. 그렇다면, 소수의 삶은 어땠을까? 99%가 주목되고 있는 오늘날, 로마의 99%의 삶을 보며 비교, 대조해보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과연 그들은, 우리보다 행복했을까?

 

 자유와 평등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다. 위의 로마의 99%의 삶 중 많은 이들이 자유와 평등을 보장받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프랑스 혁명의 '인권 선언'에서 시작해, 99%들은 끊임없이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었고, 그것을 글로 남겼다. 그 결과, 이렇게 책으로 따로 낼 만큼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우수한 유산이 탄생하게 되었다. 과거의 부르짖음, 오늘의 부르짖음, 무엇이 다른가?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런데....... 마그나카르타부터 새천년선언까지의 52가지 선언문을 모아보니, 그 양이 장난이 아니다. 10만원에 가까운 가격에, 두께는 1576쪽이다. 원문을 대역하는 방식에 풍부한 해설과 역주까지 곁들여서, 엄청난 책이 하나 나왔다. 한 번 가져보고 싶다. 물론 나한텐 1300쪽짜리 『율리시스』가 있지만.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방대한 평전. 평전은 방대할수록 깊다고 했나? 평전이 왜 긴가? 평전을 쓰려는 사람은 그 사람에 대해 수많은 조사를 한다. 그러나 그 모든 조사가 일치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는 사실까지 집어넣는다. 왜냐하면 그것 역시 평전의 주제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평전은 흔하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의 평전은 흔하지 않는다. 그는 단 한 명의 특별한 철학자니까.

 

 톨킨. 판타지 소설의 대가로서 존경한다. 하지만 그는 교사이기도 했다. 그리고 『반지의 제왕』도 심심하게 앉아있을 때, 구상된 이야기라고 한다. 심심할 땐 역시 그림 아닌가? 그렇게 그린 하나하나의 그림들이 책으로 펴내질지 톨킨은 상상했을까? 이렇게 소장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쁘다.

 

 『카사노바는 책을 더 사랑했다』가 『저술 출판 독서의 사회사』로 7년만에 탈바꿈했다. 소재 자체가 나를 흥분시키는 소재인만큼, 꼭 갖고 싶다.

 

 『삼국지』는 소설이자, 역사이다. 과연 그 사이의 오해는 무엇이 있을까? 역사를 중심으로 본 삼국지임을 밝힌다. 소설과 역사 사이에서 헷갈려하는 삼국지 초입자를 위한 친절한 안내서.

 

괴테가 오늘 많이 나오는 듯 하다. 그가 한 말이 모두 글이 되고, 사람들의 사고를 북돋와주는 촉진제가 된다. 이게 거장의 파워인가....... 그가 어떻게 말했는지, 어떻게 행동해야한다고 말했는지, 빨리 듣고 싶다.

 

 우리는 또 다시 대답을 들어야 한다. 조지 버나드 쇼에게 세상이 무엇인지 물었으니, 또 다시 그의 값진 충고를 받아야 한다. 그는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묘비명을 가진 재치 넘치는 희극 철학자이다. 이 교양서의 부제는 '모르면 당하는 정치적인 모든 것'이다. 역시 위트 있다. 88세, 인생의 모든 경험을 겪은 사람으로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듣는다. 그의 예고와 경고는 어느 면에서는 들어맞는다. 세상, 그렇게 살지 마라.

 

 인간의 정신을 분석하기에는 아직 멀었다. 트라우마라는 한 분야에서도 이렇게 광범위한 상황이 나오니까. 가정 폭력도, 정치 테러도, 모두 이 외상장애에서 비롯된다는 것 아닌가? 트라우마를 장애로 부를 수 있을까? 어쨌든 놀랍다.

 

 세상을 바꾼 과학자들도 라이벌 관계가 있다. 서로 이렇게 경쟁 관계에 놓여 있었기에 과학이 더 발전할 수 있지 않았을까? 표지는 갈릴레이와 교황의 다툼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이 책의 목적은 지겨울 수 있는 과학의 역사를 라이벌 간의 대결을 통해 재미있게 풀어내겠다는 의도이다.

 

『이상 소설 전집』과 『이상 평전』만 정독한다면, 이번 해에 이상이라는 작가는 충분히 정복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이상이란 놈은 워낙 이상한데다가 말을 나처럼 하도 꼬아대서 당신은 이해할 수 없으리라 믿고, 어려운 그의 소설보다 이 평전 먼저 독파하기를 권유하는 바이다.

 

 올해는 다산 정약용에 대한 저작도 많이 출간되었다. 그 모든 프로젝트를 종결짓는(물론 내 생각)『다산 간찰집』은 그의 편지집이다. 편지는 좋은 소통거리다. 편지 역시 다산의 중요한 저작으로 인정하겠다. 카뮈와 그르니에의 서한집도 고전으로 인정하는 나니까.

 

 『철학 한 잔』과 『세계사의 구조』는 철학과 세계사를 명확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전자는 술 한 잔 마시듯 철학을 넘어가게 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후자는 동시에 우리에게 숨은 진실을 맛보게 할 것이다. 이것으로 2012년은 지나가겠지.

 

 (추가)

 

우리에게 몽골은 그리 멀리 있는 편이 아닌데도, 낯선 땅이다. 몽골 대제국 외에는 세계사에 이름을 올린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몽골족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민족사는 다른 나라의 역사만큼이나 존중받아야 할 것이다.

 

 이상 평전에 이어, 백석에 대한 글이 나왔다. 두 사람 모두 20세기에 자랑스러운 작가다. 그런데 왜 백석이 갈매나무의 시인일까? 그것은 100쪽의 짧은 글 속에서 확인하자. 비록 양은 적지만, 그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랑과 욕망의 변주곡』은 '안톤 체호프의 에로티시즘 단편선'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다. 제목과 부제, 표지 모두가 이 단편선은 '사랑'과 '욕망'에 대한 소설들임을 짐작하게 한다. 안톤 체호프의 희곡은 많이 봤지만, 단편소설은 처음 만나는 것 같다. 처음 만남을 평범한 여인들의 사랑 이야기로 시작하다니. 중요한 것은 『개를 다니고 다니는 여인』과 『사랑에 대하여』를 제외하고는 모두 국내 초역이라는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다. 처음 알려진 미지의 개척세계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체호프에 빠져보도록 하겠다.

 

 '나는 가수다' 열풍에 이어 '나는 작가다'라는 프로젝트가 진행된 적 있었는데, 한 동안 소식을 못 듣다가 '나는 작가다'의 당선작이 소설로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인터넷을 뒤져봤다. 그 소설의 제목은 『코카브』. 왠지 낯익은 제목이다. 코카브는 UFO, 즉 외계인의 강림을 기다리는 집단을 뜻한다. 그런데 그게 행방불명된 아내를 찾는 남자의 이야기다. 두 소재가 만나서 독자들에게 짜릿한 즐거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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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5-20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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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벤구르 을유세계문학전집 57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지음, 윤영순 옮김 / 을유문화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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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한 보물은 숨겨져 있는 법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고전들은 읽어달라고 간청하며 스스로를 세상에 내보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더 많은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발굴된 것이다. 『체벤구르』라는 이 20세기의 숨은 고전은 저자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이 이름은 마치『국가』를 통해 이상향을 그린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을 연상시킨다)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그의 책을 성경 책으로 삼은 윤영순 교수이다. 그는 플라토노프의 저작에 자신의 인생을 바쳤다. 그리고 그는 1928년에 출간된 이후 60년 간 세상에 빛을 내지 못한 『체벤구르』를 국내에 출간시켰다. 그래서 나는 참으로 기뻤다.

 

 이제 그토록 기다려왔던 『체벤구르』의 속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렇다, 이 작품은 출간되자마자 큰 파란을 일으킬 만큼, 실험적인 수법과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문제작이다. 작가는 조이스나 포크너와 같은 모더니즘 작가와 비교될 정도로, 창의적인 기법을 사용했다. 사실 난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 처음에 내가 제임스 조이스에게 다가간 것은 그의 놀라운 문학적 실험이었으나, 『율리시스』와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여러 번 읽으면서 중요한 것은 형식이나 기법이 아닌 내용과 주제임을 알게 되었다. 과거의 러시아와 농경 생활에 대한 아름다운 구절들이 우리 가슴 속에 파고들지만, 중요한 것은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러시아의 디스토피아 문학은 그 역사가 깊다. 사실 내가 『체벤구르』에 가까이 다가간 계기도 탄압받던 시절의 러시아 문학이기 때문이다. 봉건주의에서 공산주의로 너무 이른 도약을 한 나머지 무지와 가난의 늪에 빠져버린 수많은 러시아인들을 깨우치기 위해, 지식인들이 항상 억압과 이단자 취급을 받으면서 걸작들을 써 내려갔다. 자먀찐의 『우리들』을 시작해서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등 디스토피아 문학과 수용소 문학들의 고전이 모두 『체벤구르』가 쓰여졌던 시기, 즉 이념이 인간을 억누르던 때에 쓰여진 책들이다. 그런 점에서 이 '공산주의 유토피아'는 의미가 깊다.

 

 

        왼쪽은 예브게니 자먀찐의 『우리들』이고, 오른쪽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다. 전자는 세계 최초의 디스토피아 문학이며, 후자는 수용소 문학의 걸작으로 손꼽히고 있는 작품이다. 이 두 소설 모두 러시아의 암흑시대에서 탄생되었다는 점에서,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체벤구르』와 일맥상통한다.

 

 사회주의라는 개념은 마르크스가 『자본론』과 『공산당 선언』을 통해 널리 선포한 혁명적 사상이다. 하지만 그것을 읽지 않고, 공산주의 유토피아를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자본주의를 거치지 않고, 공산주의라는 '최종 과정'으로 급격히 넘어간 20세기 러시아와 다르지 않다. 샤샤의 방랑은 지상 낙원인 체벤구르를 발견하는 것으로 끝이 나지만, 이야기는 그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왜냐하면 체벤구르야말로 플라토노프가 꿈꾸었던 러시아의 모습 그 자체니까 말이다. 그가 애써 그 '슬픈 유토피아'를 유토피아로 묘사하려고 아름답고 평화로운 문체를 사용한 까닭도 바로 그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가 디스토피아를 유토피아로 묘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바꾸고 싶었던 것이다. 조국 러시아를. 그는 공산주의였지만, 배운 지식인의 의무로서 거대한 땅만큼이나 문제점이 보였던 러시아를 변혁시키길 원했다. 그 결과가 바로 『체벤구르』다. 하지만 조국은 그를 믿지 않았고, 그는 자신의 작품이 인정되는 것을 보지 못한 채, 1951년 폐결핵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러다가 2012년 10월, 그의 말에 귀기울인 사람이 나타나 그를 이 세상에 알렸던 것이다. 이 멋진 신세계를 많은 이들이 맛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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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꾸는 책 읽기 - 세상 모든 책을 삶의 재료로 쓰는 법
정혜윤 지음 / 민음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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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나의 전부다. 나 자체가 삶이니까. 그리고 인생은 셀 수 없이 많은 재료들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사람들의 인생이 갈리는 까닭은 그 수많은 재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큰 비중이 음악이 될 수도 있고, 스포츠가 될 수도 있고, 공부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나에게는 글쓰기가 그러하다. 이 책의 저자, 정혜윤에게는 책 읽기가 바로 삶의 중요한 소재가 되었으리라. 그녀는 책 속에서 같은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뿌리깊은 공감대가 형성된다고 적었다. 마찬가지로, 독서가 인생의 핵심이 된 사람들은 모두 그 뜻을 같이하기 마련이다. 그러한 사람들은 독서를 통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

 

  나는 정혜윤 PD의 글을 예스24에 올렸던 칼럼 '어느 날 ~을 알게 되었다'로 처음 만나게 되었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 『거미 여인의 키스』에 대한 칼럼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그 이후, 나는 그녀의 글을 주목하게 되었으며, 그 맛깔나고 간단명료한 글 안에 삶에 대한 교훈이 담겨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번에 읽은『삶을 바꾸는 책 읽기』라는 책에서 저자는 본격적으로 삶과 마주하기 시작한다. 이지성의 『리딩으로 리드하라』를 연상시켰다. 그 역시 인문고전을 통해 삶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책 속에 적었기 때문이다. 한편, 그녀는 독서를 통해 삶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슬플 때나 외로울 때 읽는 책은 곧 위안이 되며 벗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정혜윤 PD는 수많은 고전들과 사례를 예로 들며, 그 책들이 누군가의 인생(또는 그녀 자신의 인생)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생생하게 설명한다. 그녀가 이 책에서 던진 아홉 가지 질문(비밀 질문 포함)에, 과연 나는 답할 수 있을까? 그 질문은 목차에도 나와 있듯이, 아래와 같다.

 

 1. 먹고 살기도 바쁜데 언제 책을 읽나요?

 2. 책 읽는 능력이 없는데 어떡하나요?

 3. 삶이 불안한데도 책을 읽어야 하나요?

 4. 책이 정말 위로가 되나요?

 5. 책이 쓸모가 있나요?

 6. 책의 진짜 쓸모는 뭐죠?

 7. 읽은 책을 오래 기억하는 법이 있나요?

 8.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까요?

 비밀 질문: 그렇게 살아도 돼요?

 

 

 장 오노레 프라고라느의 <책 읽는 소녀(그림 왼쪽)>와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책 읽는 소녀(그림 오른쪽)>. 그들은 무엇 때문에 책을 읽을까? 혼자서 책을 읽는 소녀는 실연을 당했을 수도 있고, 정말 기쁜 일이 있었을 수도 있다. 즉, 그녀에게 책 읽기란 위안의 책 읽기 또는 미래를 위한 책 읽기이다. 반면, 오른쪽 두 소녀들은 함께 책을 읽고 있다. 정혜윤 PD는 함께 책을 읽으면 공감대가 형성된다고 말했다. 나는 그것을 믿는다. 두 소녀는 함께 같은 페이지를 읽으며 무언의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이다.

 

 나는 위의 질문들에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독서에 대해 간단하게 정의내릴 수 없는 까닭이다. 내가 책을 읽는 방식에 문제가 있는 까닭이다. 저자가 "많은 책을 읽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같은 책을 몇 번 되풀이해서 보거나 곱씹어 보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일정 정도 규칙적으로 책 읽는 시간이 몇 권을 읽느냐보다 더 중요합니다. 진정한 독해력이란 문자를 정확히 읽어 내는 능력이 아니라 무엇을 읽건 거기에서 삶을 바라보는 능력입니다"라고 적었을 때, 나는 나의 습관적인 독서 습관, 즉 마지막 장을 덮기 위해 읽는 독서 생활을 반성하게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책은 무언가의 형식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로미오와 줄리엣』은 셰익스피어가 일찍 죽은 어린 아들을 애도하는 형식이었을 수 있습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톨스토이가 남들 눈에 그럴싸하게 보이는 것 말고도 삶에는 다른 것이 있음을 말하는 형식이었을 수 있습니다. 『사물들』은 조르주 페렉이, 행복을 추구하는 동안에 잃어버리는 빛나는 시간들에 대해 말하는 형식이었을 수 있습니다. 『휴먼 스테인』은 필립 로스가 역사와 정치가 개인에게 묻혀 놓은 더러운 얼룩에 대해서 말하는 형식일 수 있습니다. 우린 포기가 어떻게 표현되었나, 슬픔이 어떻게 표현되었나, 양심은, 두려움은, 좌절감은, 위로는 어떻게 표현되었나를 책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책은 더 이상 종이조각이 아니다. 하얀 종이 위에 새겨진 검은 글자의 모음이 아니라, 텍스트 속에 담긴 또 다른 삶의 형식인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책 읽기와 삶은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내 인생에 가치 있는 일이며, 그 책을 통해 변화되는 것은 저자의 마음과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시에 나는 글쓰기에 대한 새로운 가르침을 얻게 되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나에게 가르침을 주었던 책은 내가 예전에 "어렵다"며 무시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였다. 나는 인류 최초의 고전이라는 타이틀과 찬사에만 따라가다 보니, 본질을 놓친 것이다. 그것은, 호메로스가 말하고자 한 삶의 방식은 무엇이었냐는 것이다. 시인은 서사시 속에서 누구도 엑스트라로 만들지 않았다. 별로 중요하지 않는 전사들이 주인공(영웅)들에 의해 죽어가는 그 순간, 호메로스는 마치 신처럼 그것을 포착하여 그 자의 삶을 보여주었다. 어떤 사람의 삶도 결코 헛되지 않는다. 그 자가 사악하든, 선하든. 한 명의 '인간'으로서.

 

 그런 점에서 마지막 비밀 질문, "그렇게 살아도 돼요?"는 지금 나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그렇게? 그래, 지금 내가 살아가는 방식. 그 질문은 다시 말해, "지금처럼 살아도 괜찮아요?"라는 질문이 된다. 정혜윤도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질문에서 시작되어 질문으로 끝난다"고 적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 대답할 수 없는 질문에 응답한다. "아니, 아직 포기할 때는 아니야. 지금에 머무르면 삶을 포기하는 거니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것은 이 책의 저자를 비롯한 어느 누구도 대답할 수 없다. 심지어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고전 작가들도 대답할 수 없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나는 한 가지 방법을 알아냈다. 그들이 쓴 책에 숨겨져 있는 삶을 본받아 가는 것이다. 쥘리앙처럼 살아도 되는가? 카츄사처럼 살아도 되는가? 보바리 부인처럼 살아도 되는가? 그것보다는, 호메로스처럼, 감춰져 있는 또 하나의 인생을 따라갈 것이다. 평범하지 않는, 상상력 없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 그 무엇보다 특별한 나만의 삶을 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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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엔 비문학의 차례다. 그들은 어떤 식으로 우리를 끌어당길까?

 

 지나간 과거는 언젠가의 현재이고,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때에 일어난 대표적인 사건을 알아야 하며, 그 사건은 보는 이들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해석된다. 자유의 투쟁으로 얻어 낸 미국의 독립에서, 노예를 해방시키 위한 남북전쟁을 거쳐, '정의'를 내세우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미국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새디어스 러셀은 '불한당(bad civilians)'들의 시각으로 그것을 해석한다. 여기서 불량한 시민들이란 술꾼, 게으름뱅이, 창녀, 해적들이며, 그들이 만들어 낸 역사와 문화를 작가는 재조명한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자유의 가치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한다.

 

 소로우는 강을 사랑했고, 자연을 사랑했다. 콩고드 강과 메리맥 강을 여행하며 겪는 소로우 형제의 이야기는 『월든』처럼 흥미롭다. 그러나 이 초기작에는 그것뿐만이 아니라, 「다이얼」 지에 올렸던 에세이들과 자신이 쓴 시가 실려 있다. 저자의 첫 번째 책이며, 동시에 그의 사상을 확립시켜 주는 중요한 책이기에 잊을 수 없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재해석했다. 항상 사람들은 플라톤을 따라, 소크라테스의 억울한 입장에서, 다시 말해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비판하는 입장에서 그의 변론과 죽음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아테네의 변명을 들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역사학자 베터니 휴즈는 직접 역사 유적을 찾아다니고 관련 저작을 10년 동안 조사하면서 "왜 아테네는 소크라테스를 법정에 서게 했고,또 그를 죽음에 몰아넣어야 했는가?"라는 궁금증을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역사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당시 아테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져 있었고 내부 혼란 등이 일어나 어지러웠다. 소크라테스는 이 분노의 화풀이 대상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변명이 부족하다. 그것을 합리적으로 못 밝혀낸다면, 아테네는 영원히 현자를 죽인 살인범으로 몰릴 테니까.

 

 나는 왜 평전에 열광하는가? 그 자의 삶과 사상을 통해 본받을 점을 얻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자유로운 영혼'인 예술가, 에드워드 호퍼의 평전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다양한 분야의 미술을 시도하고, 앤디 워홀이 이끌었던 팝 아트의 물결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사실주의를 고집했던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과 『신국론』을 쓴 위대한 철학자이자 신학자. 그의 타락과 회개의 삶은 『고백록』에서 이미 목격한 바 있다. 이번에는 피터 브라운이 쓰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삶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의 삶만이 아니라 몰락하는 로마 제국이라는 시대의 아들로서의 그의 모습이 드러난다. 로마에 막 전파된 기독교를 로마인들에게 알린 전도사 역할을 한 성인, 아우구스티누스의 삶을 되돌아보자.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문예부흥'이라는 뜻의 르네상스는 항상 1000년 동안 지속된 중세의 암흑을 벗겨내고, 새로운 계몽과 이성의 시대를 열었다고 찬사받는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는 법, 르네상스의 대개혁 뒤에는 많은 어둠이 감추어져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진실을 위해 반드시 그것을 들추어 내야 한다.

 

 단 한 순간을 포착하여, 역사를 그려내는 일은 『왕의 하루』도 마찬가지다. 하루가 있기 전, 하루가 지난 뒤의 사건 역시 흥미롭다. 특히, 오랜 제국이 멸망하는 바로 그 날은 매우 중요하다. 역사가 바뀌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술탄과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투쟁과 고뇌를 통해 서사시를 보는 듯한 역사의 현장에 동참할 수 있으리라.

 

 서양 철학자 중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 중 한 명이 바로 헤겔이다. 그래서 헤겔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들이 수없이 나왔다. 헤겔이 왜 중요한가? 그것은 근대로 역사가 바뀌는 과정을 철학적으로 증명해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 '맹목'과 '정치철학'이 추가되어, 그의 사상을 좀 더 풍부하게 볼 수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저작으로는 『신학대전』만 있는 줄 알았는데, 『진리론』도 있다니. 한 번 읽어봐야겠다(이렇게 말하지만 『신학대전』도 안 읽었다. 책세상 고전문고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편이니까 이거 먼저 봐야겠다).

 

 '피노키오의 철학'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은 역시 피노키오의 딜레마이다. 『피노키오』가 세상에 알려진 이후, 끊임없이 회자되던 그 질문, "피노키오는 사람인가, 인형인가?"의 문제가 여기 다루어지고 있다.

 

 '삼국지'가 중국의 고대 역사를 드라마틱하게 그리고 있다면, 『중국지』는 중국 현대사를 웅장하고 장대하게 서술하고 있는 대작이다. 얼마나 자신이 있었으면 『중국지』라고 이름을 붙였겠는가? 신해혁명 이후의 역사는 나도 안 배워서 모르지만, 여기에 그 모든 진실이 담겨 있을 것이다.

 

 작년인가, 『분노하라』는 팜플렛으로 국내에 잠깐 '분노' 열풍을 분고 온 스테판 에셀 할아버지가 안 죽고 또 책을 썼다. 이번엔 분노에 그치지 말고 참여하라는 내용이다. 사실 그게 그거다. 작년의 팜플렛을 읽은 사람은 『분노하라』의 주제가 앙가주망(참여)이니까. 그래도 설마 똑같은 책을 다시 냈겠어?

 

지금 이 세상은 플라스틱이 없으면 도저히 돌아갈 수 없다. 컴퓨터에서 시작해서 컵까지....... 그런데 이 플라스틱에 어떤 성분이 들어있는지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그것이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정확히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여행....... 그것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 책. 이것은 사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결국 문학과 비문학의 대결은 무승부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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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삶에서 문학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기에, 두 글의 기준을 이렇게 나눌 수밖에 없었다. 문학은 주로 소설이며, 비문학은 주로 인문이다. 소설과 인문, 상반되지만 일치하는 점을 동시에 갖추고 있는 이 이중의 분야를 비교해보도록 하자. 과연 11월에는 문학이 승리했는가, 비문학이 승리했는가? 먼저, 문학부터 후보를 소개하자.

 

 

 이인화 작가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소설가가 남들이 이해하기 힘든 자신의 상처를 고백하고 거기에서 공감을 끌어내려 보편성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라면, 이야기꾼은 보편성에서 시작한 완결성 있는 이야기로 독자의 개별적인 상처를 위로하고 인생에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하는 사람"이라고. 그렇다면 소설가는 자신의 상처를 보편성 있게 설명하는 작가라면, 이야기꾼은 그 보편성으로 독자들의 상처를 치료해주는 사람이다. 따라서 소설가와 이야기꾼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이다. 상처가 없으면 소설가가 되지 못하고, 소설가가 되지 못하면 위로해 주는 사람, 즉 이야기꾼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한 이인화 작가는 『영원한 제국』의 작가이자 『지옥설계도』의 작가이다. 그는 지난 8년 동안 리니지 게임에 빠져들다가 소설 창작의 재미를 되새기고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저작 지원 프로그램 '스토리 헬퍼'의 도움(한 마디로 help yourself다)을 받았으며, 2013년 1월에 나올 '인페르노 나인'의 원작으로 사용된다(그러니까 이인화의 직업은 프로그래머이자 소설가인 것이다). 가끔 게임의 스토리가 웬만한 소설보다 뛰어날 때가 있는데, 알고 보니 그 원작이 소설인 경우가 있다. 결국 이 게임은 이인화의 것이다. '인페르노 나인'의 원작도 이인화가 쓴 것이며, 그 원작은 이인화 자신이 개발한 프로그램 '스토리 헬퍼'에서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비밀은 내년에 공개되니, 일단 우리는 이 멋진 소설을 즐겨야한다.

 

 이 표현할 수 없는 자연미와 아름다움, 깨끗함을 담고 있는 글. 『여울물 소리』는 황석영의 것이다. 우리말의 아름다움이란 바로 이것이며, 우리 문화는 우리가 지켜야 한다. 이 작품으로 그의 마지막 이야기를 시작할 것을 알렸다. 작가는 이번 작품을 마지막으로 3기의 만년 문학을 쓰겠다고 선언했다. 최근 절필을 선언한 『휴먼 스테인』의 작가 필립 로스가 떠올랐다. 노년에 누군가는 작가를 포기하지만, 누군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라고 말하고 있으니. 모든 역사소설은 현대의 이야기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왜 소설을 볼 때 그것이 쓰여진 시대 배경을 살펴보아야 하는가? 당연히, 허구와 사실, 과거와 지금 속에 발견되는 공통된 끈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대선, 정권교체 등으로 대한민국이 꿇고 있다. 그리고 『여울물 소리』의 역사적 배경인 동학농민운동이 전개되었던 시기는 일맥상통한다. 부패한 기존 정권이 붕괴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느냐, 아니면 헛된 메아리로 그치느냐. 이 중대한 싸움을 돌이키며,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려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문학사에서 이상만큼이나 이상하고 천재성 넘치는 작가도 없었다. 28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날개를 달고 세상을 떠난 한 모던보이의 죽음은 지금이나 당대나 많은 안타까움을 불러일으켰으리라. 요절 때문인지, '전집'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얻도 그 내용은 많지 않다. 하지만 이 작품 하나로 이상의 사고관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퇴화되는 시대 속에서 비상을 꿈꾸었던 한 천재 시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라.

 

 항상 멋진 소설에는 '시간'이 등장했다. 시간이 멈춘다면? 과거로 간다면? 미래로 간다면? 특히 '과거로 간다면?'은 후회와 안타까움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한다. 스티븐 킹은 그 중에서도 미국의 최연소 대통령이었던 존 F. 케네디의 죽음과 그 뒤에 숨겨진 음모를 추적한다. 그의 소설적 상상력과 '만약 ~이라면'이라는 흥미로운 소재가 만나, 걸작이 하나 탄생했다. 그 때로 돌아가자. 시간을 거슬러, 시간 속에 들어가자. 자세한 이야기는 12월에 만날 두 번째 이야기에서 확인하도록.

 

 

 

 

『세계의 신화』처럼 방대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다룰 때에는 그것이 얼마나 독자를 사로잡을 수 있는지의 여부가 중요하다. 다양한 삽화까지 곁들어 있으니 아주 풍부한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책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쓴 루이스 캐럴은 수학자이자 교수이자, 시인이자, 작가이자, 사진작가였다고 한다. 한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지,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우석훈의 장편소설 『모피아』를 보면 그 궁금증이 풀리기도 한다. 우석훈은 『88만원 세대』를 쓴 저자이며, 그 책을 통해 우리는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비판과 많은 사람들을 전율시킨 진실을 폭로한 바 있다. 이번에 그는 '마피아'를 연상시키는 경제찬탈범, '모피아'를 창조해내어 사람들에게 또 다시 돈의 욕망 속에 무너져내리는 사람들을 그리고자 한다. 그가 이 소설이 배경을 2014년으로 삼은 것은, 이것이 먼 미래가 아님을 경고하는 것이다.

 

 말이 필요 없는 좀비 소설의 대작인 『세계대전 Z』의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니. 그 자체로 만족이며, 기대다.

 

 13번째 걸음을 보지 말도록 하여라. 불행해질테니. 러시아 민담의 일부다. 그런데 중국 작가가 그것을 모티프로, 15억 인구에 거대한 땅을 가지고 있는 중국에 살고 있는 한 소시민의 삶을 그린다. 그 작은 일화를 포착할 수 있는 능력이 대단하다. 환상적 리얼리즘을 구사하고 있다면, 나는 환영이다. 설정이 『템테이션』을 연상시킨다. 한 순간의 상승과 순식간의 추락. 그러나 차이점이 있다면, 이들에게는 재기가 없다는 것.

 

제목과 표지가 처음에 나를 사로잡았다. '붉은 머리 가문의 비극', 그리고 인디언을 연상시키는 생김새와 가면........ 나에게 『모히칸 족의 최후』를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그 고전과는 달리, 이 추리소설은 꽤 평범한 편이다. 『붉은 머리 가문의 비극』의 범인은 붉은 머리 가문이라는 사실을 연상할 때, 우리는 범인이 결국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되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그 전에 그의 인간적인 이야기를 들어야 하겠지만. 이 소설에서 중요시되는 것은 사건보다는(어찌 보면 뻔하디 뻔하니까) 인물과 배경이다. 특이한 것은, 이 연쇄살인범에 대한 추리를 두 명의 상반된 성격을 가진 형사가 진행한다는 것인데, 전반부는 영국 경찰청 형사인 마크 브렌던의 주도로 추리가 이루어지고, 후반부에는 미국인 탐정인 피터 건스가 이야기를 전개해간다. 후반부가 클라이막스인 만큼, 이 소설이 해결사 역할을 하는 인물은 바로 후자일 것이다. 그리고 그에 맞게 배경도 영국의 황무지와 이탈리아의 호수라는 대립되는 공간을 무대로 펼쳐진다. 범인의 매력도 무시할 수 없으리라. 비극에 이르기까지 독자를 즐겁게 하고, 최후에는 슬픔을 안겨주는 것이 바로 비극 아니겠는가? 『붉은 머리 가문의 비극』이 그 기대에 상응하기를 바란다.

 

 원더랜드는 『피터팬』에 나오는 '네버랜드'를 연상시킨다. 그곳은 노는 곳이다. 하지만 원더랜드, 즉 이상한 나라는 우리를 성장시키게 하는 곳이다. 여기 상처받은 청소년이 있다. 그를 치유시키는 놀이동산, 원더랜드에 초대한다. 청소년 소설 중에서 가장 내 관심을 끌었다.

 

 디스토피아를 유토피아로 표현하는 것은 얼마나 난제인가? 혁명을 차분하게 서술하는 것은 낭만주의로서 허용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한 사람의 격동적인 인생을 담담하게 서술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며, 따라서 그것에 성공한다는 것은 그 소설이 뛰어나다는 하나의 증거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 '격동적인' 소재가 무엇이냐에 따라 또 소설의 질은 달라진다.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는 9·11 테러 이후 변화된 파키스탄 청년의 이야기를 미국인에게 들려주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의 이야기를 아무 말 없이 들어준 미국인의 마음으로, 이 소설에 임하자.

 

 우리나라에도 이런 게 많아야 한다. 추리, 스릴러, 미스터리 분야가 요즘 대세인 만큼, 그 분야를 발전시킬 수 있는 작가를 최대한 발굴해야 한다. 언제까지 외국 작가들의 환상적인 이야기에만 빠져들 것이다. 결국 소설은 정서 아닌가? 아무리 재미있어도, 아무리 교훈이 있어도, 정서가 없으면 공감되기 힘든 법이다. 쉽게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는 우리 소설을 맛보자.

 

 

또 다시 좀비다. 강남에 좀비가 떴다. 좀비 바이러스가 전세계를 강타해, 인류는 위협에 몰리고, 이 세기말의 전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결국 스토리는 비슷하다. 어떻게 서술하느냐에 따라, 얼마나 매혹적이느냐에 따라 그 작품의 질이 판가름날 뿐이다. 내 생각에 『인플루엔자』라는 소설은 기존 좀비 바이러스와는 조금 다르다. 주인공 제훈은 군인이다. 누가 좀비와 직접 맞서야 하는 군인의 심정을 그렸는가? 다들 갑작스럽게 재난의 상황에 맞닥뜨린 일반인들이 영웅이 되는 과정을 그리지 않았는가. 그래서 '조금은' 특별하다.

 

 드디어 '타우누스 시리즈'가 그 정점을 찍었다. 독일 작가인 만큼, 독일의 어두운 과거(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두가 알 것이다), '깊은 상처'를 직접 드러내며 미스터리 소설을 진행한다. 『깊은 상처』는 스스로를 치유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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