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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예술가의 초상 ㅣ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9
제임스 조이스 지음, 김종건 옮김 / 범우사 / 1999년 9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전적으로 보아서 난해한 책이기에 비평판 해설을 참고할 수밖에 없었다. 스티븐 디덜러스의 성장 과정을 그린 이 교양 소설의 주제는 무엇이고, 문체와 서술 기법은 또 무엇인가? 그것에 대해 김종건 교수님은 친절한 해설로 답해 주신다. 나는 해설 1의 형식을 빌려서 리뷰를 쓰겠다.
1. 서론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야말로 훌륭한 교양 소설이자 성장 소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이 책은 미국의 대학생들에게 널리 읽히며 연구되고 있는 고전 중 하나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읽어야 하지 않을까?
2. 줄거리
서론에서도 그랬고, 앞으로도 계속 그랬듯이, 김종건 교수님은 자꾸 앞의 첫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렇게 내내 강조했으니 그 부분이 이 작품에서 어떤 부분을 하는가 보자. 우선 그 부분은 작품의 서론과도 같다. 서론이란 작품을 요약한 것이다. 그러므로 앞의 그 부분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그 뒤는 매우 수월하게 읽힐 것이다. 그러나 그 부분은 이 작품 전체처럼 어렵다. 그래서 해설 없이는 읽기가 어렵다. 이 줄거리 부분을 읽는 독자는 분명히 읽는 내내 의문이었던, 그 보이지 않은 줄거리가 보일 것이다.
3. 주제
나는 문학의 주제야말로 그것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기법이나 문체가 독특해도, 내용이 재미 있어도 주제가 미약하면 고전이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 안에 있는 주제를 파악해야 한다.
이 책의 주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하나는 '맹목 주제'이다. '맹목 주제'란 일종의 반복법이다. 이 책의 가장 앞에 나오는 핵심 구절들이 작품 내내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어린 왕자』처럼 유기적인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는 '부정(父情) 탐색의 주제'이다. 이 주제는 20세기 문학에서 대중화된 주제이다. 아무래도 '잃어버린 세대'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듯이, 가족과의 대화가 줄고 세대간의 갈등이 심화되는 시대가 바로 20세기이다 보니, '잃어버린 가족간의 정'을 찾는 문제가 문학에서 많이 다루어진 것 같다. 특히 이 작품의 중요한 모티브가 된 것 중 하나가 '이카로스 신화'이다 보니 조이스는 이 작품에서 '부정 탐색의 주제'를 강조한 것 같다. 참고로 이카로스와 다이달로스는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이다.
4. 문체와 기법
사실 사람들이 조이스의 문학을 어려워하고 그에 따라 기피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문학이 문체와 기법의 기교를 통해 난해함을 낳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들을 알고 보면 그토록 재미 있는 게 없다. 즉, 조이스의 문학은 알면 알수록 재미 있다.
사실 조이스의 작품은 작품 내에서도 계속 장마다 문체가 바뀐다. 물론 그것은 일부러 한 것이고, 다양한 표현법을 낳지만 독자들은 정신 없이 바뀌는 문체에 따라가지 못하고 지쳐버리기 일쑤이다.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스티븐이 성장함에 따라 문체는 점점 성숙해져 간다. 조이스의 문학의 특징은 내용이 성숙해짐에 따라 문체 역시 성숙해져 간다는 것이다. 더구나 스티븐의 성장을 다룬 소설이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다 보니 그것은 더욱 두드러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의 작품에서 주목해야 할 것 중 하나는 바로 '서술 기법'이다. 이 작품뿐만이 아니라 조이스는 그의 모든 작품에서 어떤 세 가지의 서술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만의 독특한 것도 있고 프루스트나 버지니아 울프 같은 작가와 함께 쓰는 기법도 있다. 그 세 서술 기법은 이렇다.
<1> 의식의 흐름: '의식의 흐름'이라는 말은 원래 현대 정신분석학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나 격변하는 20세기 문학은 기존의 수법의 한계를 느끼고 다른 분야의 용어까지 따오게 되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의식의 흐름'이다. 사실 이 기법(수법)은 제임스 조이스뿐만이 아니라 거의 동시대의 작가였던 마르셀 프루스트나 버지니아 울프 같은 작가들도 사용한 것이다.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 나온 의식의 흐름 수법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혹은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에서도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이 수법은 조이스만의 특별한 것이 아니고 그에 따라 '의식의 흐름' 분야에서 조이스가 차지하는 비중도줄어든다. 이 기법은 조이스의 문학에서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그에 못지 않은 중요성을 갖춘, 조이스만의 서술 기법은 그 다음에 있다.
<2> 에피파니: 원래 '에피파니'는 세 명의 동방박사가 탄생한 아기 그리스도를 방문한 것으로 상징되는 현현(顯現)이다[그런데 저 한자를 보면 둘 다 '나타날 현' 자다. 결국 그리스도의 '나타남(appearance)' 그 자체를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이스의 문학에 있어서의 에피파니란 그와 조금 다른 개념이다. 그것은 주인공이 경험하는 갑작스러운 정신적 발로 또는 계시로서, 베일이 걷히며 드러나는 사물의 본질 같은 것이다. 에피파니의 동기는 가장 사소한 소리나 몸짓에 의하여 야기된다. 나는 에피파니의 동기에 대해서 주목하고 싶다. 『율리시스』의 1, 2, 3장을 보면 스티븐은 멀리건의 소리, 디지 씨의 서재에 있는 물건, 샌디마운트에 온 여인으로부터 에피파니를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은 에피파니에서 멈추지 않고, 곧 의식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즉, 조이스는 위의 두 주제를 따로 따로 놓지 않았다. 에피파니의 동기로써 시작하여 의식의 흐름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이것은 의식의 흐름이 나온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다.
어쨌든 이 '에피파니'란 조이스가 20세기 문학사에 공헌한 것 중 가장 큰 부류에 속할 정도로 귀한 것이다. 사소한 것이 큰 것을 이야기할 수 있고, 사소한 것으로부터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는 이 '에피파니 기법'을 그냥 두기에는 너무 아깝기 때문이다.
<3> 신화의 사용: 위에서 잠깐 밝혔듯이, 이 책의 중요한 모티브 중 하나는 '이카로스 신화'이다. 그 신화의 내용은 간략하게 표현하자면 이렇다.
"고대 크레타 왕국의 예술적 거장 다이달로스는 미노스 왕의 명을 받아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감금하기 위해 미로를 설계한다. 이 미로는 너무나 정교하여 그 곳에서 탈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나중에 그는 왕의 미움을 받아 그의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그 미로에 감금된다. 그러나 다이달로스는 하늘로는 탈출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털깃과 납으로 날개를 만들어 아들과 함께 크레타를 탈출한다. 다이달로스는 이카로스에게 지나치게 높이 올라가 태양열에 납이 녹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이카로스는 그것을 무시하고 높이 올라가다가 태양열에 날개가 녹아 지중해로 떨어져 익사했다(p.353참조)."
이 신화에서 스티븐은 누구인가? 다이달로스인가? 이카로스인가? 이렇게 고민할 필요 없다. 스티븐은 그 둘 다이다. 그렇다면 '부정 탐색'은 무엇인가? '아들' 스티븐이 '아버지' 스티븐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아들과 아버지는 동격이다. 즉, 그것은 자기 자신의 탐색이다. 그리고 위 신화를 보면 다이달로스 자신이 만든 '철저한 미궁(이 미궁은 더블린이기도 하다)'에 자신이 갇혀버린다. 이것은 곧 자기 자신 안에 갇힌 것이다. '하늘'은 '자기 자신의 탐색'을 일컫는다. 즉, 자기 자신을 탐색하지 않고서는 자기 자신의 미궁(우리)로부터 빠져 나올 수 없다. '털깃과 납'은 곧 '예술'이다. 그러나 예술로 만든 '날개'로써 '자기 자신의 탐색'을 시도하려는 것은 무리이다. 그것만으로 자기 자신을 탐색하려고 하다가 태양열(자기 한계)에 날개가 녹아버린다. 그렇다면 무엇이 더 필요하다는 말인가? 그것은 '성장'이다. 결국 무질서하게 날아오르려다가 날개가 녹은 것 아닌가? 게다가 아버지 다이달로스(자기 자신)의 충고를 무시해서 그렇게 된 것 아닌가? 결국 그것은 정신적으로 덜 성장했다는 증거인 셈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끝까지 스티븐을 성장시킨다.
하지만 조이스는 이러한 그리스 신화 외에도 성경, 단테,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들을 그의 작품 속 주인공의 차원을 심화하기 위해 자신의 심리적 목적에 적응시켰다. 그리고 그는 과거와 현재의 두 개의 세계, 즉 질서와 무질서의 융합을 그의 작품을 통해 성취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주인공인 스티븐 디덜러스(Stephen Dedalus)의 이름이다. 일단 '스티븐(Stephen)'부터 알아보자. 이 이름의 유래는 신약 성서에 나오는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을 영어식으로 파생한 것 중 하나이다. 스데반은 자신의 믿음을 전파하려다가 죽었다. 즉, 스티븐이 이 세상을 구원하려고 온 '사도'라는 것을 암시하는 동시에 햄릿처럼 우유부단하게 행동하여 세상에게 죽지는 않았지만 패배자로 남은 사람이라는 것 역시 암시한다. 그리고 '디덜러스(Dedalus)'는 다이달로스의 영어 식 발음이다. 다이달로스와 스티븐의 관계는 이미 충분히 설명한 것 같으니 생략하겠다.
5. 스티븐의 심미론
스티븐의 심미론은 이 작품뿐만이 아니라 조이스의 다른 작품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니 반드시 알아두어야 한다. 김종건 교수님은 친절하게도 그것을 간단히 요약해 주었다.
미의 세 가지 인식 단계
1. 전체성
2. 조화
3. 광휘
이것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 바구니를 예로 들겠다. '전체성'이란 바구니를 전체적으로 보는 것이고, '조화'란 바구니의 부분부분을 분해하여 보는 것이다. 그리고 '광휘'란 바구니 그 자체를 인식하는 것이다. 즉, 미의 인식 단계는 간단히 표현하자면 '보고 인식한다'라고 할 수 있다.
그 다음은 미의 세 가지 형식이 있다.
미의 세 가지 형식
1. 서정적 형식: 예술가가 자신의 이미지(image)를 자기 자신과 직접적인 연관 속에 두는 것.
2. 서사적 형식: 예술가가 자신의 이미지를 자기 자신과 남에게 간접적으로 연관시키는 것.
3. 극적 형식: 예술가가 자신의 이미지를 남과 직접적인 연관에 두는 것.
이렇게 나온 심미론 또는 예술론은 스티븐의 성장 과정에 대입시키면 매우 합당하게 받아들여진다. 바구니의 비유가 아니라 스티븐 그 자신의 성장 과정 자체가 비유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미의 인식 단계는 바구니의 비유를 통해 이해가 되리라고 생각하고, 미의 세 가지 형식이 스티븐의 성장 과정에 어떻게 대입되는지 한 번 살펴보자.
"그의 유년 시절의 서정적 단계 동안에는 만사가 그 자신에게 연관되고 모든 표현은 자기 중심적인 개성에서 울려 나온다. 잇달아 그의 청년기에는 타인을 인식하고 그의 가족, 그의 친구, 그의 학교 선생님들과의 직접적인 연관 속에 살며 부모와 거리의 연인들 그리고 신부들과 어울려 살기 위해 스스로를 적응시키려고 노력한다. 마지막 단계에서 그는 극적 상황, 즉 한 사람의 행동예술가로 승화되는 것이다.(p.358)"
그리고 최종적으로 스티븐이 정의한 '예술가의 정의'란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예술가는 창조의 하나님처럼, 그의 작품의 안에 또는 뒤에 또는 그 너머 또는 그 위에 남아, 세련된 나머지 그 존재를 감추고 태연스레 자신의 손톱을 다듬고 있는 거야(p.358~359)."
이러한 정의는 현대 문학을 특징짓는 몰개성(沒個性)의 정의이기도 하다.
6. 진화와 출판
원래 이 작품의 초고는 『영웅 스티븐(Stephen Hero)』였다. 그러나 조이스는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 작품을 더 발전시켜 그 작품과 별개의 것을 창조해내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이 작품은 다른 모든 위대한 고전들이 그랬듯이, 출판 내역이 복잡하다.
7. 스티븐과 제임스 조이스
흔히 사람들은 스티븐과 조이스가 동격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스티븐과 조이스는 다르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완전하게 일치한다. 그러니 스티븐은 조이스의 반(半)자전적인 인물이라고 보아야겠다.
8. 역사적 배경
문학은 그 문학이 쓰여진 시대를 반영한다. 특히 조이스가 이 작품을 쓴 시기인 20세기 초반은 시대를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 알다시피, 20세기 초반은 격변의 시대였다.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모든 게 변하는 시대였다. 그래서 원래 있던 것과 새로운 것의 충돌이 벌어졌다. 조이스의 조국 아일랜드 역시 반란 당원들이 활발하게 움직여 분쟁이 자꾸만 벌어졌다. 그런 와중에서 개인의 정체성과 신의 존재감은 상실되어 갔다. 기근과 분쟁의 반복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자 문학은 이런 현실에 분노했다. 조이스 역시 그들 중 하나였다. 그는 이 책에서 '정체성을 잃은 개인의 방랑'을 그렸다. 또, 그의 대표작 『율리시스』는 신의 부재하에서 인간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지에 대해 다룬 작품이다. 이렇듯, 조이스의 문학은 당시 시대와 개인의 사상, 그리고 예술이 혼합되어 만들어진 하나의 걸작품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