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일간의 세계 일주 펭귄클래식 81
쥘 베른 지음, 이효숙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우다 부인의 남편, 필리어스 포그 신사님. 세숫대야 가져왔습니다."

 "음........"

 포그가 세숫물 속에 손을 담근 후, 파스파르투에게 말했다.

 "29도로군. 하지만 난 자네를 해고하지 않겠어."

 "왜죠? 전의 하인처럼 엄격하게 해고하지 않고."

 "자네는 이미 나에게 너무나 소중한 하인이 되었기 때문이야."

 파스파르투와 포그 신사가 서로를 마주보면서 씩 웃었다. 바로 그 때 아우다 부인이 자신의 방에서 거실로 나왔다.

 "오 나의 사랑스러운 부인! 얼른 이리 와 앉으시오. 마침 즐거운 대화를 하려던 참이었소."

 아우다 부인은 거실에 있는 네 개의 소파 중 한 곳에 편안하게 앉았다.

 "만능열쇠 파스파르투, 런던은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나?"

 "평소처럼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런던 시민들은 여왕을 따르면서 열심히 일하고 있고, 주인님 같은 훌륭한 신사 분들은 즐거운 여가를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일주를 끝낸지 벌써 반 개월 남짓하게 지난 것 같군."

 "벌써 그렇게 지나갔나요? 세월이 참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세 달도 채 안 되어서 세계 일주를 끝마쳤는데, 지금은 세계 일주를 끝마친 날로부터 180일 정도 지났으니........ 하지만 이 180일 사이에 벌어진 사건은 세계일주를 하던 80일의 사건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죠!"

 "미안해, 파스파르투. 내가 너무 칸트처럼 굴었어. 매일 매일 시간을 정해놓고, 그에 따라 행동했단 말이지. 예전처럼 클럽에 다니고, 예전처럼 세수하고........ 자네도 좀 지루했지?"

 "아니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재미 있었죠! 긴장감도 돌았구요. 주인님은 물의 온도를 촉감만으로도 맞힐 분이니, 저는 항상 온도계를 가지고 있어야 했으니까요. 전 절대 여기서 나가고 싶지 않습니다."

 "나 역시 자네를 해고할 생각은 전혀 없네."

 "우리가 세계 일주를 떠났을 때, 영국은 어떻게 돌아갔지?"

 "난리가 났었죠. 그 때만 해도 80일 안에 세계 일주를 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사실 주인님도 처음에는 그것을 믿었겠죠. 하지만 신문이 그 사실을 알려주었잖아요. 주인님은 갑자기 그 신문에 나와 있는 내용을 믿었죠."

 "런던은 나를 상대로 내기를 걸었겠군."

 "네, 정작 내기의 대상인 주인님인 까마득히 모른 채 말이죠. 런던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주인님이 80일 안에 세계 일주를 할 수 있느냐 못 하느냐에 대한 내기를 했죠. 주인님은 클럽에 있는 네 다섯 명의 신사 분들에게만 내기를 하셨겠지만, 실제로는 런던이 주인님과 내기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어요."

 "그렇다면 런던이 전부 내가 실패할 거라고 예상했단 말인가?"

 "그런 셈이에요. 처음에는 절반은 성공, 절반은 실패라고 했는데, 주인님이 런던 은행을 턴 도둑이라는 소문이 떠돌아다니자, 모두가 실패라고 예상한 겁니다.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 끝까지 주인님이 성공할 거라고 믿었죠."

 "내가 은행을 털었다고?"

 "픽스 형사가 그랬어요. 픽스 형사는 주인님이 런던 은행의 5만 파운드를 훔친 범인이라고 생각한 거에요. 몽타주가 거의 비슷하다고. 그리고 그 범인의 행동이 주인님과 유사해서 그랬다고."

 "뭔가 큰 오해가 있었던 모양이군."

 그 때, 노크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입에 담배를 문 픽스 형사가 그들이 있는 거실로 들어왔다.

 "자네를 보니 떠오르는 말이 있군."

 "그런가?"

 픽스가 조용히 대꾸했다.

 "어쨌든 환영하네, 픽스 형사. 이리 와서 남은 소파에 앉게."

  픽스는 마지막 소파에 앉아 파스파르투와 필리어스 포그의 대화를 들었다.

 "파스파르투, 내가 자네한테 준 돈은 어떻게 되었지?"

 "가스등 때문에 다 썼어요."

 "그야 당연하지. 6,912,000초 동안 켜 놓았으니까."

 "너무 정신 없이 출발해서 그런 가 봐요. 우리는 제가 주인님 집에 처음 온 날부터 여행을 떠났으니까요. 제가 프랑스인이라는 사실은 주인님도 알고 계시죠? 사실 제가 주인님 집에 온 이유는 편안하게 지내고 싶어서 온 거에요. 주인님이 칸트처럼 매일 매일을 엄격하게 생활한다는 사실은 런던에 쫙 깔린 소문이니까요. 제가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깨달은 사실은 하인 일이 참 고되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쉬고 싶었어요."

 "자네가 그렇게 말하니 내가 너무 미안하네."

 "처음에 우리는 이집트의 수에즈에 갔었지?"

 "네. 별 일 없었어요."

 "하지만 나에게는 너무 중요한 일이었다고! 우리 영국의 식민지였던 수에즈인지라, 난 당신을 잡을 수 있었어. 영국의 식민지는 곧 영국이나 다름없다고. 수에즈는 수많은 영국 중의 하나였으니, 당신을 잡을 수 있는 영장은 그곳에서도 쓸 수 있었지. 하지만 나는 결국 너를 놓쳤지."

 "이미 지나간 일이니까 잊어, 픽스 형사. 흥분하지 말고."

 

 "중요했던 곳은 인도야."

 "그 곳에서 많은 시간을 소비했죠."

 "그러나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어. 아우다, 당신을 만났기 때문에."

 "인도 사람인 제가 생각해도 그 풍습은 정말 미개해요. 그렇게 인종 차별적인 풍습은 인간이 해야 할 짓이 아니었어요. 남편이 죽었다고 해서 저까지 죽을 필요는 있나요?"

 "그래서 우리는 당신을 구하려고 했지."

 "제가 구했어요!"

 파스파르투가 갑자기 소리쳤다.

 "누가 구했든, 어쨌든 고마워요. 당신들과 함께 일주를 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느꼈어요."

 "인도에서는 참 악몽이 많죠."

 "아니, 나는 별로."

 "주인님이 몰랐던 저만의 악몽이 있죠. 주인님이 그걸 알게 된 이유는 주인님이 법정에 끌려 간 이유죠. 처음에 주인님은 아우다 부인을 데리고 가서 끌려왔다고 생각했죠. 아니, 주인님이 아니라 저였군요."

 수다쟁이처럼 말을 하는 파스파르투가 계속 말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제가 사원에 신발을 밟았는데, 벌을 받지 않고 오히려 승려들을 후려쳐서 법정에 끌려온 거죠. 죄송해요. 저 때문에 주인님의 돈과 시간이 낭비되어서."

 "걱정 마. 지나간 일이야."

 "주인님이 상당히 여유로워지고 느슨해진 것 같아요."

 파스파르투가 웃었다.

 "아니, 그게 아니야. 나는 돈 때문에 세계 일주를 하려던 게 아니야.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내가 모르는 세계의 풍습이나 문화가 어떤 것인지 알아보려고 일주를 한 것이고, 세계의 사람들이 어떤 성격과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려고 한 것이야.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세계 일주를 했던 이유는 그 곳에 내가 찾던 행복이 있을지 알아보려고 한 것이야. 난 행복을 찾기 위해 그렇게 돈을 쓴 것이야. 하지만 너무 여유롭게 굴다가는 내가 찾던 행복을 찾을 수 없 다는 생각에, '80일'이라는 시간적 제한을 둔 것이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네 사람은 각자 무엇인가를 곰곰히 생각하는 듯 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픽스였다.

 "사실 저는 당신이 홍콩을 벗어났을 때, 더 이상 당신을 체포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파스파르투를 홍콩에 남겨두기로 했죠. 그렇게 하면 당신이 그를 찾으러 홍콩으로 돌아올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은 제가 저지른 범죄였습니다. 대체 왜 제가 당신을 체포하려고 파스파르투까지 이용했을까요? 그 때 제가 제정신이 아니었던 걸까요?"

 "그것보다는 자네가 돈을 얻으려고 그랬던 것 같은데?"

 필리어스 포그가 예리하게 물었다.

 "맞습니다. 저는 범인을 잡으면 보상금을 받습니다. 그런데 저는 저만의 이익을 위해 당신을 파산시키려고 했던 거예요."

 "그리고 픽스 형사, 당신은 나에게 아편을 먹였지."

 "돈을 위해 당신들에게 해를 끼친 것, 정말 죄송합니다. 세계 일주 마지막까지 말이죠."

 "픽스 형사, 자네가 런던에 오자마자 나를 체포한 것도 말이지?"

 "예........."

 픽스 형사가 말끝을 흐리며 말했다. 픽스 형사는 고개를 숙이다가 무엇인가 번쩍 떠오른 듯 고개를 들고, 파스파르투에게 물었다.

 "그런데 파스파르투, 왜 자네는 내가 나의 정체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포그에게 말하지 않았지?"

 "글쎄요, 아직 말할 시기가 안 되었다고 생각한 겁니다. 말해 봤자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막상 주인님이 체포되었을 때는 그것을 마구 후회했지만요."

 "파스파르투, 나는 자네와 함께 여행을 떠나지 못한, 그 때의 이야기를 다시 듣고 싶네."

 "제가 아편을 먹고 쓰러진 후부터, 일본에서 서커스 노릇을 하다가 주인님을 만나기까지의 이야기 말이죠?"

 "저는 그 광경을 보면서 놀랐어요. 저는 포그 당신이 파스파르투를 찾으러 홍콩으로 돌아올 줄 알았는데 그냥 아우다 부인과 함께 일본으로 떠났을 때, 당황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일본에서 머물겠지, 라고 생각하며 좌절하는 순간, 당신은 미국으로 떠나려고 했죠. 물론 파스파르투를 만났지만 말이죠. 혹시 당신은 파스파르투를 만날 거라고 계산했던 것인가요?"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픽스 형사가 갑자기 필리어스 포그에게 물었다.

 "아니, 나는 파스파르투를 믿었을 뿐이다. 그의 별명이 '만능열쇠'잖아. 파스파르투는 어떤 짓을 해서라도 결국 나를 만나거나 런던으로 돌아오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

 "어쨌든 저는 먹고 살기 위해서 일본에 적응하기로 했죠. 저의 인간 관계가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게 순탄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자네는 나와 너무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이렇게 친한 이유는 무엇일까? 게다가 신분, 민족, 혈통 모두 다른데."

 "세계 일주, 아니 세계는 그 모든 것을 초월하여 모든 인류를 하나로 이어주는 하나의 끈이니까요."

 "멋진 말인데? 그런데 사람들은 대체로 자네처럼 인맥이 좋은 사람보다 돈이 많은 사람을 좋아하는 모양이야."

 "동양에서는 그게 허용될지 몰라도, 서양에서는 그게 통하지 않나 봐요. 미국인과 영국인의 갈등은 돈으로는 해결이 안 되더군요."

 "인종 차별적인 언사는 삼가하게나, 만능열쇠."

 "그 기분 나쁜 대령은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아요."

 "그 때 인디언들이 온 건 다행일지도 몰라."

 "인디언들과의 싸움은 오히려 재미있었던데요!"

 "우리는 자네를 찾기 위해 피를 말렸지."

 파스파르투는 픽스와 포그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 말했다.

 "그런데 전 인디언보다 물소가 더 싫었어요."

 "그런데 파스파르투, 자네는 정말 영리해. 어떻게 무너지려는 다리를 빠르게 관통하는 극적인 장면을 연출할 수 있었지?"

 "저는 모험적이니까요!"

 파스파르투가 활기차게 말했다. 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파스파르투가 다시 필리어스 포그 신사에게 말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탄 배를 아주 비싼 값에 산 이유는 뭡니까, 주인님?"

 "아까 말했지 않는가.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돈의 희생도 감수해야 한다고."

 "이제 깨달았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한 이 세계 일주가 값진 이유는 바로 그것이죠."

 "그래, 우리가 원하던 것, 얻으려던 것, 그리고 세계 일주의 목적을 이루었기 때문이지. 우리가 얻으려고 했던 것은 돈이 아니야. 그리고 그것은 비록 얻었다고는 해도 금방 잃어버렸지. 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얻었던 것은 '행복'이고, 아직도 그 행복은 우리에게 남아 있지."

 "그 행복은 '사랑'으로 나타난 것 같죠?"

 아우다 부인이 웃으면서 다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 것 같군."

 포그가 그녀의 뒷 모습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이만."

 픽스 형사가 떠났다. 포그는 잠시 픽스 형사가 나간 문을 쳐다보다가 파스파르투에게 말했다.

 "파스파르투, 지금 몇 시지?"

 "11시요."

 파스파르투가 자신의 귀중한 유산인 금시계를 보며 말했다.

 "일본에서 팔지 않길 잘 했어요."

 "그걸 너는 세계 일주의 상징으로 삼거라."

 포그가 시계를 보면서 말했다. 이윽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 다음에 할 자신의 일을 준비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