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속의 서울 - 한국문학이 스케치한 서울로의 산책 서울문화예술총서 2
김재관.장두식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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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에 아이가 너무나도 간절히 소원을 말했던 적이 있다. 유아채널에서 파워레인저 매직포스 뮤지컬 공연에 대한 광고가 나올때마다 팔짝팔짝 뛰면서 보러 가고 싶다고 졸라대는 것이었다. 내 새끼여서 그런게 아니라 지금까지 마트에서 뭐 사달라고 징징거린적 한번 없을 만큼 성격이 차분한 아이다. 어린이집 입학식때, 엄마들과 아이가 함께 참석한 자리에서 30여분이 지나자 다른 아이들은 돌아다니고 눕고, 뒹굴고 여하튼 난리가 났는데 1시간 반이 넘도록 내 앞에 앉아서는 "엄마! 언제 마쳐?" 이 말만 세번인가 묻고는 꿋꿋히 자리를 지킨 아이다. 그런 아이가 그 광고를 보고는 얼마나 졸라대는지... 마음이 조금씩 흔들렸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서울에서 공연하고 있었고 입장료만 우리 가족 세명분 10만원이 넘었다. 뮤지컬이니 관람료는 그렇다 치고 당일 교통비에 식비까지 합치면... 헐~ 도저히 계산이 나오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머리를 맞대고 상의한 끝에 아이에게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너무 멀고, 값도 비싸고 도저히 소원을 들어줄 수 없다고 말이다. 다섯살 인생에서 그토록 간절히 바랬던 일인데 부모로써 들어주지 못하게 되어 얼마나 아픔 아팠는지 모른다.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나면 제주로 보내라' 는 말이 있다. 언제부터 쓰이기 시작했는지는 알수 없지만 조선시대 선비들의 꿈이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 한자리 하사받아 임금계시는 곳 가까이(지금의 강북) 살고 싶어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예나 지금이나 서울은 사람이 몰리는 곳이다. 사실 나 자신은 30여년 넘도록 지금 살고 있는 지방을 떠나 본적이 없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면서 서울로 가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절실히 해본적도 없다. 단지 내게 있어 서울이 좋아보이는 것은 앞서 언급한대로 다양한 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런 부러움이 때론 질투가 되고 서운함이 된다. 때문에 서울은 이기적인 도시라고 말하고 싶다. 문화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경제등 모든 분야에서 독식하고 비대해진 도시며, 그늘이 많은 도시다. 문학속 서울의 모습은 산업화로 인한 서울의 이면, 꿈을 찾아 서울로 온 이들의 아픔과 좌절을 그린 작품이 눈에 많이 띈다.

특히,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 가슴 한켠이 저려왔다. 대한민국을 이끌어 갔던 경제력의 핵은 우리 누이들의 희생과 피땀위에 세워진 것이었다. 벽을 보고 이야기 하는 것처럼 한때는 권력자들에게 말이 통하지 않았던 시대가 있었다. 결국 분신을 통해서 '진실'을 알리려 했던 그는 노동자들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다. 그러나, 이 부분을 읽으면서 시대의 아이러니함을 느낀다. 우리 누이들이 고통받던 그자리는 세월이 흐르면서 더 나은 노동 환경으로 대체된 것이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들에 의해 채워졌다. 사업주들은 요즘의 젊은이들이 힘들고 고된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고 하고, 젊은이들은 일자리가 없다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우리의 일자리마저 빼앗고 있다고 주장한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 서울은, 대한민국은 더이상 과거만을 되내이며 살 수는 없다. 아픈 과거를 묻어둔 채 세계를 품는 넉넉함을 보여줄 때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 책을 펼쳐들 때에는 자랑스러운 서울, 화려한 서울의 모습을 기대하였다. 그러나, 문학속에 비친 서울의 모습은 회색빛이다. 조용한 찻집에서 커피를 마시며 비오는 창밖을 내다보는 풍경이랄까 좀 심할 땐 황사비를 맞으며 길을 걷는 듯한 느낌이 들때도 있었다. 문학 속의 서울은 도대체 왜 이렇게 서울을 홀대하는가? 내가 아는 서울은, 대한민국의 중심이면서 불과 수십년만에 전쟁의 흔적을 몰아내고 세계속에 우뚝서게 한 자랑스러움을 간직한 곳이 아니던가? 문제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와진 만큼 사람들의 마음은 더욱 메말라졌다는 것이고, 사람들은 어느새 물질의 가치만를 최우선으로 인정하기에 이른다. 문학속에 비친 서울은 그점을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대중이 볼수 없는 곳을 비추고, 잊혀 져 가는 것들 우리가 잊어서는 안되는 것들을 상기시킨다. 문학 속의 서울이 회색빛인 이유는 서울에 대한 애증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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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롯의 거미줄 (양장본)
엘윈 브룩스 화이트 지음, 가스 윌리엄즈 그림, 김화곤 옮김 / 시공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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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라노 사우루스가 제일 좋긴한데 다른 친구들을 잡아 먹으니까 싫어. 티라노가 다른 공룡들을 잡아먹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 공룡을 무지하게 좋아하는 아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던 적이 있다. 아들의 진지한 표정이 너무 귀여워서 첨엔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그러다가 과연 어떤 대답을 해주어야 할지 머뭇거리는 사이 머리속이 점점 복잡해져만 갔다. 전래, 명작동화속에 등장하는 포식자들은 대부분 나쁜 캐릭터로 나온다. 호랑이와 토끼가 등장하는 책에서는 항상 호랑이는 무식하게 힘만 세고 성질까지 나쁘다. 반대로 토끼는 영리하고 착하다. 두말할 것도 없이 책을 읽는 내내 약자인 토끼를 응원하게 된다. 책을 통해서 지혜로운 토끼처럼 되라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아이의 눈에는 사나운 호랑이가 더 오래 기억되는 것이 문제다. '친구를 잡아먹는 나쁜 동물'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샬롯의 거미줄>은 거미와 돼지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무녀리(한배 새끼 가운데에서 맨 먼저 태어난 새끼)로 태어나 죽을 뻔 했던 아기 돼지 윌버는 주인집 딸인 펀의 도움으로 살아나 주커만 삼촌네로 보내진다. 우리안에 갇힌 윌버는 하루종일 심심해서 견딜수가 없었고 진심으로 친구가 필요했다. 농장의 다른 동물들이 아기 돼지를 귀찮아 할때, 샬롯은 윌버에게 친구가 되어주겠다고 한다. 윌버가 처음 거미 샬롯을 만났을 때, 윌버는 샬롯에게 의심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 어쨌든 새 친구가 생겼어. 하지만 너무 위험한 우정이야! 샬롯은 지독하고 잔인하고 교활하고 피에 굶주려 있어. 그건 모두 내가 싫어하는 것들인데. 내가 샬롯을 좋아할 수 있을까? " p.58

윌버와 샬롯이 친구가 되기로 한 후, 서로를 알아가면서 대화는 곧 신뢰가 된다. 윌버는 샬롯이 벌레들을 퇴치하는 방식이 얼마나 분별있으며 농장 식구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다. 게다가 샬롯이 먹이를 먹기전에 그것을 잠들게 한다는 점에 대해서 생각이 깊음을 칭찬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윌버에게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 있으니 크리스마스를 즈음해서 주커만씨네 식탁에 오르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샬롯은 윌버를 구하기위해 거미줄에 글씨를 새기기로 결심한다. 인내와 끈기로 만들어진 거미줄 속의 '대단한 돼지' 라는 문구는 단번에 사람들을 사로잡았고, 윌버는 농장 헛간에서 일어난 기적의 주인공이 된다. 사람들이 '대단한 돼지'라는 문구에 싫증을 낼 무렵 '근사해' 라는 문구를 새겼고, '겸허한' 이란 문구와 함께 품평회에서 특별상을 수상한 윌버는 마침내 평생토록 안전을 보장받는다.

"나는 근사하지 않아, 샬롯. 난 그냥 보통 돼지야." "나한테는 네가 근사한 돼지야. 바로 그게 중요한 거야. 너는 나의 가장 친한 벗이고, 나한테는 네가 놀라워. " p.124 작은 거미인 샬롯이 친구를 위해 애쓰는 모습이 참으로 놀랍다. 더구나 세번째 문구를 새겨넣을 무렵은 샬롯에게 있어 필생의 역작을 앞둔 순간이었다. 혼신을 힘을 쏟아 윌버를 위한 거미줄을 만들고 오백열네 개의 알주머니를 완성한 샬롯은 조용히 숨을 거둔다. 윌버는 샬롯의 알주머니를 헛간으로 무사히 옮겨오고, 샬롯의 새끼들과 손자, 증손자들이 세상을 향해 날아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여생을 보낸다.

언젠가는 내 아이도 티라노를 진심으로 이해할 날이 올 것이다. 티라노는 풀을 먹고 살수 없었다는 것을. 그리고 티라노 같은 육식공룡이 초식 공룡을 잡아먹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초식공룡이 넘쳐나서 풀이 없어지고 결국은 초식공룡 전체가 굶주리게 된다는 것을. 생존을 위해, 먹기 위해 다른 동물을 죽이는 것은 '자연의 법칙' 이다. 오히려 인간처럼 상아를 빼앗기 위해 코끼리를 죽이고, 가죽만을 얻으려고 밍크를 죽이는 행위보다 훨씬 정당하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어쩌면 난 널 도와 줌으로써 내 삶을 조금이나마 승격시키려고 했던 건지도 모르겠어. 어느 누구의 삶이든 조금씩은 다 그럴 거야. " p.216 그리고, 겉으로 보이는 것만 가지고 누군가를 판단한다면 상대가 가지고 있는 내면의 아름다움과 진실함을 결코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동화의 매력은 단연코 풍부한 상상력과 순수한 마음의 조화로움이다. 타코타 페닝이 역을 맡은 펀은 농장의 동물들이 대화하는 것을 알아듣는 순수한 영혼을 가진 소녀다. 펀은 윌버의 목숨을 처음 구해준 장본인이며 하루도 거르지 않고 헛간으로 달려가 동물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직접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주인으로서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헛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관심을 기울이며 함께 고민하는 케릭터다. 총 240여 페이지로 결코 만만치 않은 분량의 동화다. 어린시절 꼬마 주인의 손바닥을 핥던 강아지와 다정스레 대화해본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이 책을 통해 가슴 찡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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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서태후
펄 벅 지음, 이종길 옮김 / 길산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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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동안 소서노, 장희빈, 장록수, 명성황후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를 장식한 여인들의 이름을 떠올려 보았다. 이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영화로도 몇차례나 제작되었고, TV에서 사극으로도 여러차례 방영되었음을 기억할 것이다. 한국 사람이라면 내용이야 모르는 이가 없겠지만 그럼에도 단 한번 흥행에 실패한 적이 없다는 특징이 있다. 지금에라도 다시 제작될 기미가 보인다면 쟁쟁한 여배우들이 배역을 탐낼 것이 분명하고, 다시금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킬 것이다. 역사는 history 서구나 동양 할것없이 남성 중심으로 흘러왔고, 남성의 남성에 의한 남성을 위한 역사가 씌여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한 역사의 기록중에서도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궁중을 배경으로 한 여인들의 암투에 대한 소재는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흥미를 유발하는 좋은 소재다. 군왕 중심, 남성 중심의 역사 속에서 한 줄이라도 이름을 남긴 '여인'이라면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평범한 여인네는 아니라는 뜻이다. 한 때 한류 문화의 붐을 주도했던 <대장금>도 실제 역사에는 단 한 줄의 기록만 가지고 있을 뿐이고, <여인천하>의 주인공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조선 사회가 이러할진데 유교의 근원지인 중국 대륙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거대한 중국대륙을 호령한 '꽃과 칼날의 여인'. 서태후라는 인물이 매력적으로 와닿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26세의 나이에 수렴청정을 시작하여 70여 평생을 통해 죽는 순간까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 철의 여인. 살아 생전 자신의 힘으로 세명의 황제를 등극시킨 여인. 누가 감히 서태후가 단지 미모만으로 함풍제의 총애를 받았고, 충성스러운 대신을 얻었을 뿐인 운 좋은 여인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인가?

시대적 배경은 청말기다. 곳곳에서 봉기가 일어나고, 민심은 흉흉하다. 서구 열강이 앞다투어 개화를 요구하였지만 사실은 침략 전쟁을 일으키기위한 빌미를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나약한 황제인 함풍제를 모성과도 같은 정성으로 감싸안고, 때를 기다리며 내적, 외적으로 스스로를 가꾸어 나가는 서태후의 모습은 치밀하다 못해 영악하기까기 하다. 함풍제 서거 후 동치제가 즉위할 무렵 내부적으로는 거칠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정적들로부터 아들을 지켜 무사히 황제에 오르도록 하고, 정치적 기반을 다져주는 것이 최대 목표였다. 결국, 동치제 등극 후에도 권력에서 멀어지지 못했지만 말이다. 서태후는 동치제가 죽자 여동생의 아들을 데려다가 광서제로 삼는다. 서태후의 여동생은 함풍제의 동생인 순친왕과 혼인하여 광서제를 낳았던 것이다. 아들에게도 그토록 엄한 어머니였던 서태후는 조카인 광서제도 자신의 명령하에 있기를 바랬다. 서태후를 아들의 어머니로, 사랑을 갈망하는 여인으로 묘사한 부분이 많이 보이지만 서태후의 강한 면을 숨기지는 못했다.

서태후는 일생동안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고 만든 인물이다. 그녀가 가진 복중에 복이라면 청왕조에 대한 희망을 품은 체 죽을 수 있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서태후가 세 번째로 등극시킨 황제가 바로 푸이(부의)다. 진정 서태후가 청을 떠받친 철의 여인이었는지 집권 초기에 쇄국정책으로 일관함으써 쓰러져 가는 왕조를 넘겨주고 떠난 폭군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그녀가 죽은 후 한참의 세월이 흐른뒤 중국 오지에서 서태후의 사망 소식을 접한 민초들이 "이제 누가 우리를 지켜줄 것인가" 하며 탄식했다는 점은 궁중의 대신들이나 백성들 모두에게 서태후란 인물이 얼마나 큰 산이었는지를 말해준다고 하겠다.

서태후의 아명인 예흐나라에서 자희황후, 서태후, 노불야(늙은 부처)에 이르기까지의 일대기가 마치 수십편 분량의 대하드라마를 한권의 책에 압축해 놓은 느낌이다. 강하면서도 부드럽고, 때론 포악하고 변덕스러웠던 서태후의 복잡한 심리묘사가 빠른 전개와 박진감넘치는 구성과 어우러져 책속에 푹 빠지게 만든다. 펄벅이 여류작가였기 때문에 더욱 섬세한 묘사가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몇년만에 기록적으로 두꺼운 책을 읽었다. 724페이지. 하필 적지 않은 분량의 이 책을 처음 펼친 날로부터 일상생활의 분주함이 겹쳐 무척 당황스러웠다. 나를 찾는 이 없는 어디론가로 이 책과 함께 사라져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간절히 하면서 읽은 책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서태후에 대해서 잘 몰랐다. 책을 덮은 후, 책의 내용이 어디까지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 궁금했던 까닭에 한동안 인터넷을 뒤지고 다녔다. 생각보다 그녀에 대한 평이 좋지 않았다. 특히, 책을 통해 일부 언급된 서태후의 사치스러움은 당시 어두운 시대적 상황으로 고통받는 백성들의 아픔과 대비되면서 그녀가 정적에게 행했던 가혹함 만큼이나 잔인하게 느껴졌다. 실제로 야사에 서태후와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지는 알수 없지만 이 책에서 서태후가 한평생 사랑한 남자 영록은 실존 인물이다. <마지막 황제>의 푸이(부의)는 광서제의 이복동생인 순친왕 재풍(아버지 순친왕과 같은 작호를 씀)의 아들로 순친왕 재풍은 영록의 딸과 혼인한 관계이므로 푸이는 영록의 외손자가 된다. 헉헉~ ㅠ.ㅠ 왕족의 족보는 너무 복잡해 --;; 그러나, 실존 인물의 일대기가 소설적인 요소와 결합했을 때, 얼마나 흥미진진하게 구성이 가능한지를 보여준 책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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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부엌 - 노년의 아버지 홀로서기 투쟁기
사하시 게이죠 지음, 엄은옥 옮김 / 지향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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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웃에 살고있는 노부부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서울 사는 아들 내외가 부모에게 맞벌이를 해야하니 아이를 봐주십사 하고 연락이 왔다. 노모는 아이를 여기다 데려다 놓으라고 하자 젊은 부부는 아이와 떨어질 수 없다고 하였다. 노부부가 그렇다면 서울로 올라가랴? 하고 물으니 아들 내외의 말인즉 어머니만 올라오시란다. 할아버지는 지금껏 냉수 한그릇조차 스스로 떠드신 적 없이 살아오신 분인데 그렇게는 할 수 없다고 하였더니 그 문제로 아들 내외가 크게 다투고, 급기야 '이혼' 이라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다. 깜짝 놀란 노부부는 결국 아들 내외가 원하는 대로 할수 밖에 없었다. 첨에는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할머니가 내려오셔서 밥을 한솥 해두고 밑반찬을 마련하는 방법으로 지내다가 1년이 넘어가니 할머니가 보름마다 내려오신단다. 자식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기약없는 노부부의 별거는 몇년째 계속되고 있고, 요즘은 할머니가 한달에 한번 정도 내려오시고 명절이나 특별한 기념일은 서울에 가서 몇일 계시다가 다시 할아버지 혼자 내려오신다. 우스겟소리로 어머니가 혼자 되시면 자식들이 서로 모셔갈려고 하고 아버지가 혼자 되시면 자식들간에 싸움이 난다는 말이 현실화되고 있다.

<아버지의 부엌>은 한평생 자식들을 위해 살아오신 아버지가 노년에 이르러서조차 오로지 자식들을 위해 선택한 마지막 희생을 보여준다. 늙었다고 남에게 대접받으려고만 들지 않고 늙었어도 남에게 폐를 끼치며 살지 말자며 눈물겹게 노력하는 한 아버지의 수기가 고르란히 담겨있다. 칼럼리스트인 저자는 독신이며 세째딸이다. 아버지는 전통적인 방식을 따르는, 부엌 근처에도 가본적인 없는 가부장적인 모습으로 한평생을 살아오셨다.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시고 혼자 남게된 아버지, 5명의 형제들이 모여 아버지를 누가 모실 것인가에 대해서 대화를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얼핏 생각하면 그렇다. 적지도 않은 형제들중 어떻게 단 한가정도 83세의 연로하신 아버지를 모실 수 없다는 것인가. 그러나, 남의 집 가정사를 어찌 제 3자가 왈가왈부 할 수 있겠는가. 그들 5형제의 상황을 듣고 나니 욕을 할 수도 없는 입장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아버지는 자식들을 위해서 결국 홀로서기를 선언한다. 이로써 아버지의 홀로서기를 위한 혹독한 훈련이 시작되는데...

책의 내용중 바람직한 부분이라 여겨지는 것은 저자의 아버지가 이웃과 지역사회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금껏 반상회를 비롯한 마을의 행사는 여자들만의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참여를 거부하면서 사셨던 아버지다. 그러나, 홀로서기를 선언한 이후, 아버지는 마을의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분으로 바뀌었다. 오래전부터 취미 생활로 즐기던 화분가꾸기를 통해 이웃의 죽어가는 화분을 살려주고, 비법을 전수한다든지 하는 모습, 애지중지 키우신 화분들을 바자회에 출품함으로써 이웃에 대한 관심에 보답하고, 사회의 일원이 되려하는 적극적인 모습이 바람직해 보였다. 내가 사는 지역에도 노인들을 위한 복지 제도가 시행되고 있어 마음이 훈훈하다. 복지 센타에는 석달에 1,2만원 수준에서 주2회 가량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각종댄스나 요가를 비롯해서 가요교실, 한문지도, 산악회등 누구라도 등록만 하면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신협같은 단체의 지원으로 운영되던 곳도 몇군데 있었지만 경기가 어려워 지면서 유지가 어려워 지고, 결국 정부의 지원하에 운영되는 곳만 남게 되었다. 좀더 많은 이들에게 홍보가 되었음 좋겠고, 꾸준히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질적 향상을 위해 노력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책에는 노인에 대한 사회의 편견에 대해서도 이야기 한다. 죽은 부인의 친구가 몸져 누웠다는 소식을 듣고 몇차례 병문안을 갔던 아버지는 어느날 아픈 할머니로 부터 간곡한 부탁의 말을 듣게 된다. 이웃보기에 자식들 보기에 민망하니 더이상 방문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80을 훌쩍 넘긴 노인들인데도 단지 '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이웃의 시선과 자식들의 체면을 신경써야 하는 현실. 혼자사는 노인에 대한 순수한 동병상련의 마음이었을 뿐인데 아버지는 몹시 충격을 받는다. 같은 처지의 노인들끼리 서로 위로가 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수 없을 것 같은데 그분들이 도대체 뭘 어쨌다는 것인가? 노인들은 무언가를 배우기가 힘들다고들 한다. 그러나 한문이나 바둑은 기본이요 영어나 컴퓨터 배우는 어른들도 많으시다. 노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편히 쉬어야 한다고 하지만 적당한 소일거리가 치매등 정신건강과 육체적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 된다. 노인들은 정치나 사회에 대해 설명해도 모른다는 생각. "FTA 몰라도 되요. 계약직에 대한 법안, 부동산 문제 설명해도 모르잖아요" 하는 말 쉽게 하지 마시라. 당신의 자식이 다~ 보고 듣는다. --;;

몇해전 대통령 선거운동 때로 기억한다. 한 정치가가 뱉은 한마디, 노인들은 투표날 쉬시라(?) 고 했던가 하여간 말 한마디가 노인 비하발언으로 찍히면서 파장이 일파만파 번져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고령화가 지속될수록 노인층은 두터워지고 노인 문제를 현명하게 풀어가는 사람이 대중의 표심을 잡을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사회도 이젠 초고령화 시대로 접어들었다. '노인문제' 가 더이상 개인의 문제, 한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10년전,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만해도 노인문제가 지금처럼 심각하지 않았고 시대에 앞서간 책이었는데 재출간 되면서 다시 노인문제에 불을 붙힌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함으로써 노년을 자식에게 의탁하는 시대는 지났다. 그러나 늙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것만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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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답게 산다는 것
안대회 지음 / 푸른역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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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답다'는 말이 칭찬으로 와닿지 않는 시대다.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학문에 심취했던 '선비'의 진정한 의미 보다는 의리와 원칙만을 따지는 유통성 없는 사람, 현실에 어두운 사람으로 더 많이 쓰인다. 나 또한 '선비'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괜시리 숨이 막힌다. 선비들이 주로 활동했던 조선시대를 떠올리면 관직에 집착하고, 당쟁을 일삼고, 체면만 차리는 부정적인 모습들이 자꾸만 떠오른다. 우연한 기회에 읽었던 '조선의 선비'의 모습을 담은 책에서 느꼈던 것은 청렴함이 곧 궁상스러움으로 다가왔고, 무언가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나, 그때의 우연한 기회는 내게 '선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에 충분했고 다시한번 인문학 서적을 기웃거리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신윤복의 미인도를 감상하면서 정말 미인답다고 생각하는 현대인은 드물것이다. 한껏 기대하고 검색해 보았던 중국의 양귀비나 조선의 황진이도 마찬가지다. 옛사람들의 미적 감각이 현대인에 비해 수준이 낮았기 때문일까? 사실이 그러하다면 그 시대의 문화유산들이 오늘날에 이르러서까지 높은 예술성을 인정받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옛것을 대하고자 할때는, 사물이나 사람을 대하는 가치의 기준은 시대마다 같을 수도 혹은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내용면에서 크게 네파트로 나뉘는데 인생과 내면, 취미와 열정, 글과 영혼, 공부와 서책으로 분류되어 있고, 각 파트별로 많은 선비들이 등장한다. 우선은 저자가 선비들을 독자에게 소개하는 방식이 맘에 들었다. 선비들을 한명씩 소개할 때마다 현재 이슈화 되고 있는 사회문제나 저자의 취미, 습관등을 화두로 던지고 자연스럽게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다. 자신의 묘비명을 직접 썼던 선비, 애서광들의 이야기, 수집 마니아, 풍류를 즐겼던 모습, 지식인으로서의 선비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나로 하여금 '선비'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책의 곳곳에 등장하는 시조와 글, 그림을 감상하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지 ^^ 때론 미소 짓기도 하고, 때론 키득거리기도 했으며, 무릎을 쳐가며 읽은 대목도 있다. 무엇보다 과거시험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던 선비들 이야기, 조선시대 3대, 4대 베스트셀러 서책에 대한 이야기와 당시의 출판현실등 오늘날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내용이라서 관심이 갔다.

'진정한 선비'들은 팔방미인 이어야 했다. 어려서 부터 글을 읽고, 서예를 배우고, 그림을 그렸다. 음악,미술,문학등 각 분야에 대해 고루 조예가 깊어야 했고 작품을 가리는 눈을 가져야만 했다. 직접 시를 짓고 글을 쓰면서 자신의 이름을 건 문집을 내는 것을 일생동안 가치있는 일중 하나로 꼽았다. <선비답게 산다는 것> 책과의 만남을 통해 비로소 '참된 선비' 들의 세계를 알것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학창시절 옛시조를 읊으면서 작가와 시대적 배경, 시조의 의미를 외우느라 머리를 쥐어짜던 그 때는 옛것에 대해 이토록 친밀함을 느끼는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하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였다. 요즘들어 그말의 의미가 조금씩 깨달아지니 어쩜 내가 나이먹는 티를 내고 있음이리라. 시대가 변한다는 것은 '강산도' 변하게 하고, 사람도 변하게 하고, 대중적 가치관도 변하게 한다는 것이다. 옛사람들의 숨결을 느끼고자 하는 마음 자세와 옛것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이 책에 흠뻑 취할 준비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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