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 2 - 동물 편 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 시리즈 2
최승호 지음, 윤정주 그림 / 비룡소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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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제 막 6세가 된 아이의 한글 공부때문에 속 꽤나 끓였다. 내 주위엔 모두다 영재들만 있는 건지 아님 극성스런 엄마들만 있는건지 "누구네집 아이는 40개월에 한글떼고 영어 시작한다더라 " 하는 말이 왜 그렇게 많이 들려오는지 작년 여름부터 괜시리 아이만 닥달했었다. 나름 책도 많이 읽어주고 똑똑하다는 소리도 들었던 아이다. 똑똑하다는 기준과 한글을 빨리 깨치는 것은 무관하다는 위로의 말에도 그다지 맘이 놓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모든 것은 시간이 필요한 것이 맞긴 맞나보다. 5세 한해동안 'ㄱ'부터 'ㅣ' 까지 자음,모음만 열심히 배워오는 것 같더니 작년 겨울, 5세 후반이 되자 '가나다'를 쓰기 시작했다. 해를 넘겨 갑자기 한글에 가속도가 붙더니 막 6세로 접어든 지금은 어지간한 글자는 자음,모음 낱으로 불러주면 받아쓰는 정도에 이르렀다. 그리고 받침을 좀 어려워해서 그렇지 글자도 제법 읽어낸다. 그제야 무릎을 치며 아이에게 미안했던 지난 몇달간이 떠올랐다. 직장맘이라는 핑계로 다른 엄마들처럼 따로 한글공부를 지도해 준적도 없으면서 아이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란것은 아닌지 반성도 해보았다.

이젠 한글에 자신이 붙은 아이에게 '읽기 독립'을 위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만한 책을 골라주는 것이 문제였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또래의 아이들이 그러하듯 우리 아이도 '말장난'을 좋아한다. 예를 들어 어린이집에서 짝꿍 이름이 '서민수'인데 집에와서 말하기를 "엄마, 내 짝꿍 민수만 보면 자꾸 '서산에 해가 뜨네~' 라는 말이 떠올라" 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때는 노파심에서 혹시라도 친구가 그말을 싫어하면 하지 마라. 이름은 엄마,아빠가 골똘히 생각해서 소중하게 지어준 것이니 놀려서는 안된다고 타일렀는데 내가 어렸을때도 그런 장난을 많이 했던것 같다.

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은 말그대로 '놀이' 같은 동시다.
아이와 내가 동시집을 읽을때면 옆에서 듣고 있던 남편이 힐끗 쳐다보면서 "방금 동시집 읽은거야 아님 말장난 한거야? " 라고 몇번이나 물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동시집을 읽으면서 깔깔거리고 웃어대니 도대체 아이랑 뭘하나 싶기도 했을 것이다.

말놀이 동시집은 제목부터 흥미롭다. 총 67편의 동시가 실려 있는데 마지막 '저녁 어스름'편을 제외하고는 모두 새나 동물, 곤충,어류가 제목이다. 알,참새,독수리,말,돼지,기린,청개구리,해마,매미 이 모든것이 제목이고 소재가 된다. 가끔식 '된장잠자리', '나나니벌'같은 특이한 제목은 아이와 함께 인터넷 검색을 해야하는 수고로움이 있었지만 흥미를 유발하는 면에서는 더 튀었던 것 같다. 그리고, 각 동시마다 코믹하게 그려진 그림도 책을 보는 또다른 재미였다.

<말놀이 동시집>을 음미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대담해 진다. 나와 내 아이도 힘을 합쳐 동시 하나쯤 지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이와 둘이 앉아서 '낱말 잇기'를 하다가 서로 밑천이 떨어지면 낱말대신 '문장 만들어 이어붙이기'로 넘어가곤 했는데 어쩜 그런 놀이도 자연스러운 동시짓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무심코 쓰는 한글이어서 잊고 살았지만 아이에게 글을 가르치면서 새삼 한글이 쉽지 않은 글임을 깨닫게 된다. 그렇지만 한글만큼 과학적이고 세련된 문화유산도 없다.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우리의 자랑이 아닌가? <말놀이 동시집>은 소리글자인 한글의 장점을 최대한 살린 작품이며, 이제 막 한글을 시작하려는 유아에서부터 초등학생까지 두루 읽힐 수 있는 유용한 책이다.
<말놀이 동시집2 >를 먼저 만났고, 이 책을 읽다가 <말놀이 동시집1>도 구입하였다. 참고로, 1권은 가나다 순서에 맞춰서 제목이 정해지고 동시가 씌여졌다는 특징이 있고 그림이나 구성은 2권과 분위기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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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밝은세상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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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최근들어 절실히 느낀다. 어릴 때 가정이나 학교로 부터 받은 교육을 통해 '고정관념화'된 사고는 어른이 되어서도 쉽게 떨쳐버리기가 어렵다는 것을.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때는 학교 운동장에 '이승복 동상'이 있었고 '모의 간첩훈련'이 실시되었으며, 명절때면 북한군이 늑대로 그려진 만화영화를 방송했다. 같은 민족끼리도 이러할진데 일본이란 나라에 대해서는 어떠하랴. 할머니로부터 일제치하의 끔찍했던 현실을 직접 듣고 자랐고, 부모님들은 해방직전에 태어나 격변의 한국사를 몸소 겪으신 세대다. 일제 강점기때 우리 나라를 짓밟은 것도 모자라 민족의 비극인 6.25를 발판삼아 경제선진국으로 도약한 일본, 생각할수록 파렴치하고 괴씸하기 짝이없다.

고백하건데 일본 소설 읽어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 20대 초반 내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책을 읽었던 시기에는 주로 고전 명작이나 한수산, 양귀자, 이문열님등 한국작가의 작품세계에 빠져 살았고 이따금씩 전여옥님 <일본은 없다>, 이어령님 < 축소지향의 일본인 그 이후> 라는 책을 통해 일본 사회를 엿보았을 뿐이었다. 최근에 시사프로였던가... '한국의 20대 일본 소설 읽는다' 라는 제목을 보고 첨엔 맘이 좀 그랬다. 나 자신의 책에 대한 편식은 마치 책상 한가운데 줄을 긋고 학용품이 넘어올때마다 교실 구석으로 휙~ 던져버리던 초등학생처럼 유치했던 것은 아닐까? 지금에야 느끼는 것이지만 어린시절 내가 가장 아끼던 샤프에는 Made in japen 이라는 문구가 찍혀 있었다. ^^;;

책에 대한 나의 편견을 깨뜨리고 싶었다. 그래서, 일본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에쿠니 가오리, 츠치 히토나리,구로다 겐지,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을 한권씩 읽었다. 가볍기도 하지만 깔끔하고 담백한 맛이 난다. 책한권만으로 그 작가의 작품세계를 모두 알 순 없다. 한권의 책으로 나를 광팬으로 만든 작가도 아직 못만났다. 그러나, 그 책들을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선 조금 알것 같기도 하다. 이번엔 요시다 슈이치다. 상복이 많은 작가라고 많이들 띄워준다. 대표작이라는 <동경만경>, <캐러멜 팝콘> 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어쨌거나 내가만난 그의 첫작품은 <나가사키> 였다.

미무라가의 3남 2녀중 차녀인 치즈루는 남편과 사별하고 친정으로 돌아온다. 치즈루의 두 아들 šœ과 유타, 이 이야기는 5학년 šœ의 눈으로 바라본 야쿠자 집안의 떠들썩한 풍경에서 시작한다. 문신이 새겨진 덩치큰 남자들이 날마다 술판을 벌이고 수발하는 여인들이 뒤섞여 분주했던 집안은 시대적 상황이 변함에 따라 점점 몰락하게 되고, šœ은 야쿠자 세계에 대한 동경과 내면에 존재하는 예술적 감수성 사이에서 갈등하고, 나가사키를 떠나고 싶은 마음과 고향에 대한 미련으로 갈등하고, 어머니기에 앞서 여자이기를 선택한 어머니 치즈루에대한 애증으로 고통스러워하며 점차 청년으로 성장해 간다.

"떠나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지만, 조용히 남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지. 어딘가로 가려고 결정하면 장래가불안해지고, 남겠다고 결심하면 나중에 떠나지 못한 걸 후회하게 될 것 같아 또 불안해지더군." "젊었을 때는 무슨 일이든 스스로 결정하지 않으면 왠지 인생에서 진 것 같은 패배감이 드는데, 실제로는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더라는 말이지. p. 178,179

새벽녘 차를 타고 시골길을 달려본적이 있는가?
희뿌연 안개가 자욱하고 여기저기 김이 무럭무럭 피어 오르는 한폭의 그림같은 풍경, <나가사키>는 그런 시골냄새가 난다. 비포장도로, 깜장고무신, 졸졸 흐르는 시내가 눈에 선하다. 너무나도 낯익은 정서적 공감이라고나 할까. 어쩌면 기존의 일본소설에 심취한 이들에게는 <나가사키>가 낯설지도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후한 점수를 주고싶다. 야쿠자가 등장함에도 그다지 요란스럽지 않은 점, 지루한듯 보이는 일상 속에서도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주인공들의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점, 역자의 말을 빌리자면 '요란 하지 않은 담담한 묘사, 객관적인 시각을 잃지 않는 절제의 재능'이 느껴진다. 조용하고 잔잔한 흑백영화같은 내용으로 60년대에서 80대를 걸친 시대적 배경, 가속화되는 도시화와 대비되는 농촌의 현실이나 인간의 가치관의 변화등을 떠올리면서 감상한다면 더 좋을 것이다. 참고로 우리 영화중에 <집으로>같은 느낌, 같은 느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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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s - 인생이 내게 준 소중한 가르침
피터 윗필드 지음, 이민주 옮김 / 예솜기획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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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동안 '자기개발서'를 열심히 읽었더랬다. 꼼꼼하게 메모도 해가며 나 자신을 지금의 내가 아닌 전혀 새로운 사람으로 '개조'할 욕심으로 자기개발서만 줄곧 읽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곧 좌절했다. 이론과 실천의 갈림길에서 차라리 아니 읽은만 못한 상황을 겪기에 이르렀는데... ㅠ.ㅠ;; 그에 따른 부작용으로 한동안은 자기개발서를 쳐다보지도 않게 되었다. '육아서'도 마찬가지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류의 책에 손이 가질 않았다. 시간이 지남에따라, 책 고르는 취향에 약간의 변화가 오기 시작했는데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형식의 '자기개발서'에 대한 관심이 그것이다.

이 책에는 놀이울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는 아기 브라이언과 수호천사 루크가 등장한다. 아직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두 팔조차도 원하는 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브라이언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오직 놀이울에서 벗어나 엄마, 아빠의 관심을 받기만을 바란다. 브라이언에게 루크는 삶의 지혜, 인생을 바라보는 눈을 뜨게 도와주는 존재이다.
한가지 주목할 것은 루크가 브라이언에게 수호천사로의 역할을 수행하는 방식이다.
루크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 브라이언 스스로 답을 찾도록 유도하고 있다. 심지어는 브라이언이 던진 질문에 대해서도 절대 직접 해답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언제나 답은 질문안에 존재해. 질문을 한다는 건 단지 바라는 걸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길 바란다는 거고, 삶에 대한 진정한 질문들을 하게 된다는 건 가치있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는 걸 의미해." p.20

루크는 삶의 주체가 브라이언 자신이고 질문과 대답, 삶에 있어 행복의 열쇠는 모두 스스로에게 달렸다고 말한다.   '행복'은 아주 가까이 있고, 우리 일상에서 늘 누릴 수 있는 것이라는 점, 이것이 바로 기존의 자기개발서와 차별화 된 부분이다.
계획을 세우고, 열정을 가지고, 기회를 주시하고, 쟁취하는 것이 인생의 묘미이고 짜릿함일까?
저자는 과감하게도 '행복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상태야' 라고 말한다.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레 늘어가는 주름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식당에서 원하는 메뉴를 골라 먹는 것,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원하는 장난감을 골라서 가지고 노는 것도 행복이라는 것이다.

수호천사 루크와 브라이언의 끊임없는 대화는 마치 '선문답' 같다. 책의 많은 부분이 대화체로 되어있고, 두 사람의 대화속에 주요 내용이 녹아 있다. 문득 브라이언이 돌남짓 밖에 되지 않은 아기임을 떠올리고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루크는 왜 하필 아기에게 나타나 인생수업을 하고 있는 것일까? 어쩜 세상의 모든 아기들에겐 원래 각각의 '수호천사' 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누구나 어린시절 내게로 와 '인생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수호천사의 존재를 떠올리고 마음의 눈과 귀를 연다면 자신의 수호천사를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



"내가 원하는 것을 가졌으니까 행복한 건 당연한 이치 아냐?"
"원하는 것을 가지면 행복하지. 그렇지만 왜?"
"아마 내가 더 이상 원하는 게 없기 때문이겠지"
"바로 그거야. 네가 행복을 느끼는 건 아주 짧은 시간 동안이나마 어떤 것도 원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지.
행복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상태야. " p.151-152

사랑받기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자신이 진정 누구인가를 부정하는 첫 단계다.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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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남편 - 주부 자기 개발 시리즈 1
조슈아 콜맨 지음, 오혜경 옮김 / 21세기북스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책을 읽고 있는데 남편이 한마디 한다.
"요즘 책 좀 읽는것 같더니 이젠 별 희한한 책도 다 읽는구만. 지금 나 한테 시위하는 거야 뭐야?"
"응? 아니... 당신은 '부지런한 남편' 이잖아. ^^ 남들은 어떻게 사는지 그냥 궁금해서 보는거야~ 재미있잖아. 사람 사는 이야기. 흐흐흐"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가슴속 깊은 상처의 흉터가 새삼스레 통증을 일으킨다. 다 나은 상처는 더이상 아프지 않을 줄 알았는데 말이다. 짧은 몇초동안 결혼 8년차 직장맘으로서 피터지게 험난했던 지난 세월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내 남편의 심기를 건드린 이 책, 책을 읽으며 몇번씩이나 깜짝깜짝 놀라기도 하고 신기해 하면서 읽었다. 마치 나의 일기장을 들여다 보는 듯 지난 세월 우리 부부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결혼전 남편의 헛공약, 가사 분담으로 인한 부부간의 다툼, 육아로 인한 스트레스등 일반적인 부부들의 실례가 많이 등장하는데 대부분이 공감가는 내용이다. 그들의 한마디 대화조차도... ^^;;

책에서는 부부의 유형을 세가지로 나누고 있는데 전통적인 부부, 평등주의적 부부, 과도기적 부부이다. 각각의 유형을 설명하고 남편을 설득하는 '대화의 기술'에 대해 이야기한다. 남자와 여자의 근본적 사고방식의 차이, 오랜 세월 굳어진 유전적인 요인에 대한 설명도 꽤 설득력이 있다.

# 슈퍼우먼이 되려 하지 마라~
모든 것을 혼자서 해야만 하고 본인만 할 수 있다는 착각을 버리라는 것이다. 남편이 대신 해준 설거지를 다시 한다든지, 걸레질, 변기청소등 남편이 했던 일에 대해서 못미더워하지 말자. ^^ 육아에 있어서도 남편이 잘 할 수 있다고 큰소리 치는데도 우유 태우고, 기저귀가는 것이 못미더워 아이를 떼놓고는 아무데도 못가는 엄마는 되지 말자. 내 아이지만 남편의 아이기도 한 것을...

# 때론 정말 몰라서 못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 주자.
감기 몸살때문에 꼼짝도 못할때, 아이에게 우유한잔 데워 주라고 했더니 남편왈 어디다 데워? 어떻게 데워? 전자랜지 몇초눌러? 왜 안움직여? 도대체 오가는 질문이 몇번인지도 모를만큼 차라리 천근만근 내 몸 벌떡 일으켜 움직이는 게 낫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정말 모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면 대화가 훨씬 수월하다. 나의 경우는 전자랜지에 포스트잇으로 사용법을 간단하게 적어두었다. 문열고--> 음식 넣고--> 문닫고 --> 버튼 눌러(우유 30초, 식은밥 1분, 배즙 40초) 라고 말이다.
남편에게 세탁물을 널어 달라고 할땐, 세탁기에 아예 메모를 붙여두자. '탈탈 털어서 널어줘~'

# 남편에게도 선택하도록 유도하라
현실적으로 생각하자. 지금까지 발가락으로 리모컨을 눌러대던 남편이 어느날 부터인가 학창시절 주번 정하듯이 격주로 집안을 나누어서 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은가? 몇가지를 제시하고 고르도록 한다. 쓰레기 버리기, 청소기 돌리기, 욕실 청소, 창틀 닦기, 화분관리, 아이 목욕시키기 정도에서 몇가지 고르게 하라. 그리고는 때때로 도와주는 것이 아닌 완전히 분담된 가사의 일부분이 되도록 하라. 가끔씩 쓰레기가 넘쳐나도, 거실에 먼지가 쌓여도, 창틀이 지저분해 집안으로 먼지가 날아 들어와도, 화초가 시들어 죽어도 분담된 가사임을 상기만 시켜주고 손은 대지 말라. 생색 오만상 내면서 한번씩 도와주는 척 거드는 것보다 한가지라도 제대로 분담시키면 장기적으로 훨씬 수월하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친구들 사이에선 우리 부부가 나름 가사분담이 잘 되고 있는 경우로 오르내리는 편이다.
과거는 과거일 뿐, 어느새 나보다 늦게 결혼한 친구들에게 결혼생활에 대해 조언해주는 입장이 되었는데 그중 유난히 언성을 높이는 친구때문에 경악한 적이 있다. 시집(특히 시어머니)와 남편에 대한 불만이 많던 친구의 말인즉, 일상을 점검해 보면 자기도 모르게 아들은 씩씩하게 딸은 다소곳하게를 주지 시킨다는 것이다. 예 를 들면 두아이가 놀이터에서 놀고 왔을 때 아들이 옷을 더렵혀서 오면 두말없이 갈아입히고 씻기는데 딸아이가 옷을 더렵혀서 오면 나무라게 된다는 것.평소에 식사준비를 하면 그나마 딸아이가 수저를 놓아주는등 조금이라도 자기를 도와준다든지 슈퍼에 심부름도 딸아이에게 전적으로 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그러면 아들한테 수저 놓으라고 시키냐? 어쩔수 없자나~ 그런데 말야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 해도 역쉬 아들은 있어야 해. 안그러냐? 대는 이어야지~" 그 친구의 한마디 땜에 정말 왕따시키고픈 충동이 일어났다. ㅠ.ㅠ 이론 모순덩어리 여인이여~ 당신은 공공의 적!!!

그렇다면 우리의 아이들은 어떻게 키울 것인가?
스스로 변하지 않는 한 내 자신은 미래에 지금의 시어머니가 될 것이고, 내 아들은 전통적인 유형의 남편, 딸은 지금의 나처럼 불만족스러운 결혼생활을 할 것이다. 우리 자식들에게는 되물림 하지 말자 하는 것이다.
우선은 내가 변해야 하고, 남편이 변하면, 자식들은 그런 부모밑에서 자연스럽게 배우고 자라게 될것이다. 남편들을 게으르다고 단정짓는 것은 옳지 못하다. 왜냐하면 게으른 것은 일종의 습관이지만 우리 남편들은 너무 오랫동안 그렇게 교육되어졌기 때문이다.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에게 알아서 척척 해주지 않는다고 나무라는 것은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결론은 예상대로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는 것.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야한다는 것이다. 부부를 위한 남편들의 책 <당신의 손에 물을 묻히면 와이프가 행복해 집니다> 뭐 이런책은 안나오나 싶지만 출간되더라도 남편들이 책을 사서 읽고, 실천한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는 일임으로...
 
 
ps. 이렇게 말하는 내 남편은 어떠냐구요? 이참에 자랑질 좀 할까싶네 ^^
나 서른초반, 남편은 40대 접어들었다. 지난 8년동안의 결혼생활중 3년까지는 사기당한 기분으로 부들부들 떨면서 살았고, 5년쯤 지나니까 한쪽 눈을 꿈쩍 하더이다. 수년에 걸쳐 '느림의 미학'으로 오늘에 이르렀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 부부가 타협점을 찾은 가사분담의 대원칙 세가지 '더럽고, 무겁고, 무서운 것은 남편이 한다' 라는 것이다. 청소랑 정리정돈, 다림질은 남편이 나보다 더 잘한다. (군대가서 배운거란다. ^^) 집밖을 나서면 제법 무거운 짐이라도 크로스로 메고 아이를 안고 어지간히 높은 산도 오른다. (친정 식구들도 대단하다고 감탄한다. ^^;;) 계란, 오뎅같은 반찬은 꼭 밤에 사러간다. 왜냐면... 밤엔 무서우니까 ㅋㅋ 집안 곳곳에 쓰레기를 모으는 남편의 뒷모습, 변기 청소하는 모습, 특히, 욕조 배수구에 그 큰손을 집어넣어 머리카락 한뭉치를 끄집어 내는 날이면 반주하라고 술상이라도 봐주게 된다. 정말 고맙다. 그리고, 대원칙과는 상관없이 아이를 목욕탕에 델구 가는 것도 남편의 몫이다. 예전부터 하고싶었단다. ^^ 누이좋고 매부좋고~ 온천이나 수영장갈때도 남편이 아이를 맡아주니까 편하다.
대신 남편은 빨래와 음식만드는 것은 절대 하지 않는다. 세탁기 앞에서서 빨래를 분류하는 짓(?)은 도저히 못하겠단다. 그리고 지금까지 단 한번 남편이 끓여준 라면조차도 먹어본 적이 없다. 내가 몸살이라도 나면 차라리 시켜 먹는다. 평소에도 외식이 잦은 편이고 주로 남편이 제안한다. 그럴땐 절대 돈이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고 비용대비 얻는 것, 내가 누리는 것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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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그네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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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개인적으로 머리아픈 일들이 좀 있다. 사무실에 대대적인 보직이동이 예고 되어 있어서 어느정도 안정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직장 15년차, 내 업무에 대해서 만큼은 누구 보다도 자신있는 상황이지만, 책임자가 바뀐다는 것은 업무에 있어 내 스타일을 일부 포기해야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책임자가 원하는대로 기존의 업무 형태가 없어질 수도, 새로운 방식이 도입될 수도 있다. 사무실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는 더이상 직장에 얽메이고 싶지 않지만 요즘은 집에서도 업무를 걱정한다. 머리가 복잡하다.
최근에 책읽기에 가속도가 붙은 상황인데 어떤 책들은 도저히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다.
책장이 잘 넘어가는 책, 가능한 가벼운 책, 아무 생각없이 나를 웃겨줄 책을 만나고 싶었다.
요란한 광고 문구보다는 '입소문' 때문에 이 책을 골랐고,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책을 읽어 내려갔다.


옴니버스식의 코믹 영화나 시트콤 같다.
뾰족한 것을 것을 보면 공포를 느끼는 조폭 중간보스, 어릴 때부터 서커스에서 자란 최고의 재주꾼이면서 공중그네에서 추락하는 곡예사, 병원 원장인 장인의 가발을 벗겨 버리고 싶은 충동때문에 괴로워하는 정신과의사, 급부상하는 꽃미남 후배를 의식하느라 공에 집중하지 못하는 3루수, 매너리즘에 빠져 괴로와하는 여류소설가 이 다섯명이 각각의 주인공이다.
주인공들은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이라부의사를 찾아오는데 우습게도 모두 같은 처방을 받는다. 육감적으로 생긴 간호사가 놔주는 바늘이 엄청 큰 비타민 주사, 게다가 의사라는 사람은 코를 벌름거리며 흥분된 표정으로 주사약이 주입되는 것을 지켜본다. ^^;;

이라부라는 황당한 의사는 환자의 하소연을 대수롭지 않다는 식으로 들으면서도 환자의 직업적인 일이나 해보고 싶은 일들을 직접 해보아야 직성이 풀린다. 어설픈 조폭 흉내도 내보고, 공중그네타기에 도전하고, 가발을 벗기고, 야구를 해보고, 소설을 쓰는등 도무지 두려움도 없고 대책도 없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의 과정이 어떠하며 얼마나 어려운지.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에 대한 것보다 일단은 해보자하는 마음이다. 이라부의 무모함이 천진함이 너무나도 부럽다.
더욱 황당한 것은 등장하는 주인공 모두 의사로서의 이라부는 미심쩍어 하면서도 중독처럼 그를 찾게된다는 설정이다. 욕을 하고 돌아서면서도 또다시 이라부를 찾게되는 사람들. 효과가 의문인 비타민 주사를 맞아가며 ^^;; 이라부와 함께 사고(?)를 친다.

이라부의 모습은 어쩜 '순수함'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앞만 보고 가는... 마냥 좋아서 하고 싶어 못견디는... '열정' 일수도 있겠다. 주인공들이 '강박관념'이라는 족쇄에 손발이 묶어 꼼짝도 하지 못할 때, 이라부는 한때 그들이 각자의 '목표' 만을 위해 달려가던 상황을 일깨워 주고, 하고싶은 욕망을 함께 이루어주는 존재다.

솔직히 말하자면 '오쿠다 히데오'라는 작가의 작품도 처음이고 일본의 문학상 '나오키상'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그렇더라도 내용없이 웃기기만 한 작품에 문학상을 수여하지는 않을 것인데 뭔가 깊이가 있을 법도 하다. 하지만,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다. 지금은 책에 대한 많은 것을 생각하고 고민하기엔 심적인 여유가 없다.

한가지 와닿는 것은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주인공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분야에서 자신감이 넘쳤던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지금 내가 이렇게 고민하는 것도 15년차라는 나의 타이틀에 행여나 오점을 남기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이리라. 항상 완벽해야 하고, 항상 깔끔해야 하고,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말하자면 '눈 감고도 해낼 수 있어야 하는' 그런 위치에 있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고민 자체가 나답지 못한 것일수도 있다.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뚜렷한 대책도 없이 고민만 하는 나의 모습도 일종의 '강박관념'이 아닐까?

이쯤에서 서평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내게 필요한 건 '웃음'이었고, 이 책 <공중그네>는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고 본다.
내겐 어려서부터 '공상'에 잠기는 습관이 있었는데 어른이 되어서도 그 버릇이 여전하다. 특히, 책을 읽는 내내 혹은 읽은 후, 내용을 '영화화' 해서 머리속에 떠올리는 것이다. 기존 영화에서 보았던 한 장면을 배경삼고, 내 맘대로 주연배우 캐스팅하고 해서 연출을 한다. 그렇게하면 책의 내용이 입체화 되면서 기억회로에 오래도록 저장된다. 사무실에 앉아서 일을 하다가도 <공중그네> 라는 나만의 영화속 한 장면이 떠올라 킥킥 거리고 있다. 이라부는 책을 통해 만난 환자(?) 들에게도 적당한 처방을 해주는 독특한 의사가 아닐까 싶다. 아님 이라부 자체가 치료제인가 싶기도 하다. 크크~~

비타민 주사대신 비타민 한알을 입속에 털어넣으며... ^0^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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