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부엌 - 노년의 아버지 홀로서기 투쟁기
사하시 게이죠 지음, 엄은옥 옮김 / 지향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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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실제로 이웃에 살고있는 노부부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서울 사는 아들 내외가 부모에게 맞벌이를 해야하니 아이를 봐주십사 하고 연락이 왔다. 노모는 아이를 여기다 데려다 놓으라고 하자 젊은 부부는 아이와 떨어질 수 없다고 하였다. 노부부가 그렇다면 서울로 올라가랴? 하고 물으니 아들 내외의 말인즉 어머니만 올라오시란다. 할아버지는 지금껏 냉수 한그릇조차 스스로 떠드신 적 없이 살아오신 분인데 그렇게는 할 수 없다고 하였더니 그 문제로 아들 내외가 크게 다투고, 급기야 '이혼' 이라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다. 깜짝 놀란 노부부는 결국 아들 내외가 원하는 대로 할수 밖에 없었다. 첨에는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할머니가 내려오셔서 밥을 한솥 해두고 밑반찬을 마련하는 방법으로 지내다가 1년이 넘어가니 할머니가 보름마다 내려오신단다. 자식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기약없는 노부부의 별거는 몇년째 계속되고 있고, 요즘은 할머니가 한달에 한번 정도 내려오시고 명절이나 특별한 기념일은 서울에 가서 몇일 계시다가 다시 할아버지 혼자 내려오신다. 우스겟소리로 어머니가 혼자 되시면 자식들이 서로 모셔갈려고 하고 아버지가 혼자 되시면 자식들간에 싸움이 난다는 말이 현실화되고 있다.

<아버지의 부엌>은 한평생 자식들을 위해 살아오신 아버지가 노년에 이르러서조차 오로지 자식들을 위해 선택한 마지막 희생을 보여준다. 늙었다고 남에게 대접받으려고만 들지 않고 늙었어도 남에게 폐를 끼치며 살지 말자며 눈물겹게 노력하는 한 아버지의 수기가 고르란히 담겨있다. 칼럼리스트인 저자는 독신이며 세째딸이다. 아버지는 전통적인 방식을 따르는, 부엌 근처에도 가본적인 없는 가부장적인 모습으로 한평생을 살아오셨다.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시고 혼자 남게된 아버지, 5명의 형제들이 모여 아버지를 누가 모실 것인가에 대해서 대화를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얼핏 생각하면 그렇다. 적지도 않은 형제들중 어떻게 단 한가정도 83세의 연로하신 아버지를 모실 수 없다는 것인가. 그러나, 남의 집 가정사를 어찌 제 3자가 왈가왈부 할 수 있겠는가. 그들 5형제의 상황을 듣고 나니 욕을 할 수도 없는 입장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아버지는 자식들을 위해서 결국 홀로서기를 선언한다. 이로써 아버지의 홀로서기를 위한 혹독한 훈련이 시작되는데...

책의 내용중 바람직한 부분이라 여겨지는 것은 저자의 아버지가 이웃과 지역사회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금껏 반상회를 비롯한 마을의 행사는 여자들만의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참여를 거부하면서 사셨던 아버지다. 그러나, 홀로서기를 선언한 이후, 아버지는 마을의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분으로 바뀌었다. 오래전부터 취미 생활로 즐기던 화분가꾸기를 통해 이웃의 죽어가는 화분을 살려주고, 비법을 전수한다든지 하는 모습, 애지중지 키우신 화분들을 바자회에 출품함으로써 이웃에 대한 관심에 보답하고, 사회의 일원이 되려하는 적극적인 모습이 바람직해 보였다. 내가 사는 지역에도 노인들을 위한 복지 제도가 시행되고 있어 마음이 훈훈하다. 복지 센타에는 석달에 1,2만원 수준에서 주2회 가량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각종댄스나 요가를 비롯해서 가요교실, 한문지도, 산악회등 누구라도 등록만 하면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신협같은 단체의 지원으로 운영되던 곳도 몇군데 있었지만 경기가 어려워 지면서 유지가 어려워 지고, 결국 정부의 지원하에 운영되는 곳만 남게 되었다. 좀더 많은 이들에게 홍보가 되었음 좋겠고, 꾸준히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질적 향상을 위해 노력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책에는 노인에 대한 사회의 편견에 대해서도 이야기 한다. 죽은 부인의 친구가 몸져 누웠다는 소식을 듣고 몇차례 병문안을 갔던 아버지는 어느날 아픈 할머니로 부터 간곡한 부탁의 말을 듣게 된다. 이웃보기에 자식들 보기에 민망하니 더이상 방문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80을 훌쩍 넘긴 노인들인데도 단지 '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이웃의 시선과 자식들의 체면을 신경써야 하는 현실. 혼자사는 노인에 대한 순수한 동병상련의 마음이었을 뿐인데 아버지는 몹시 충격을 받는다. 같은 처지의 노인들끼리 서로 위로가 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수 없을 것 같은데 그분들이 도대체 뭘 어쨌다는 것인가? 노인들은 무언가를 배우기가 힘들다고들 한다. 그러나 한문이나 바둑은 기본이요 영어나 컴퓨터 배우는 어른들도 많으시다. 노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편히 쉬어야 한다고 하지만 적당한 소일거리가 치매등 정신건강과 육체적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 된다. 노인들은 정치나 사회에 대해 설명해도 모른다는 생각. "FTA 몰라도 되요. 계약직에 대한 법안, 부동산 문제 설명해도 모르잖아요" 하는 말 쉽게 하지 마시라. 당신의 자식이 다~ 보고 듣는다. --;;

몇해전 대통령 선거운동 때로 기억한다. 한 정치가가 뱉은 한마디, 노인들은 투표날 쉬시라(?) 고 했던가 하여간 말 한마디가 노인 비하발언으로 찍히면서 파장이 일파만파 번져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고령화가 지속될수록 노인층은 두터워지고 노인 문제를 현명하게 풀어가는 사람이 대중의 표심을 잡을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사회도 이젠 초고령화 시대로 접어들었다. '노인문제' 가 더이상 개인의 문제, 한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10년전,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만해도 노인문제가 지금처럼 심각하지 않았고 시대에 앞서간 책이었는데 재출간 되면서 다시 노인문제에 불을 붙힌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함으로써 노년을 자식에게 의탁하는 시대는 지났다. 그러나 늙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것만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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